아름다운 모성(母性)

마15:21~28

2010. 3/14 08:00, 11:00(박종현 유아세례식)

눈물로 진주를 만드는 사람, 어머니

 

m1.jpg

 

 

 

 

이 한 장의 사진이 2005년 13억 중국인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교통사고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눈물로 진주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자식을 위해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는 사람이 어머니다. 이 사진은 이 사실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m2.jpg

이 사진은 2008년도에 발생한 중국 쓰촨성 지진 참사현장에서 찍은 것이다. 가옥이 무너져 진흙더미로 변한 지진참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모녀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어머니가 무너지는 흙더미 속에서 9살 된 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로 딸의 머리를 감싸 안고 죽은 것이다. 이 사진의 공개로 마지막 순간에도 자식을 보호하려는 모성애에 온 중국이 감동했다. 그리고 2009년 ‘제5회 중국국제보도사진(CHIPP) 컨테스트’에서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되었다. 이 사진들은 부모의 존재에 대하여, 특히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의 존재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얼마 전 게임에 중독이 되어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굶겨 죽인 부부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가끔 뉴스에 이렇게 엽기적인 부모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세상 모든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감동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종현이의 유아세례식이 제게는 특별하다. 물론 제가 주례했던 이들의 자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현이의 탄생을 기억하신 분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난산(難産)이어서 부모는 물론,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외삼촌들과 숙모, 고모, 그리고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교우들이 얼마나 애를 태우며 기도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고 유아세례까지 받게 되니 그저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 역시 이런 부모의 감동적인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한결같다. 오늘 본문도 아름다운 모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잠시 휴식을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두로(Tyre,현재 레바논의 가장 큰 도시 중 하나) 지역으로 가셨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힘들면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마음이 병들면 회복이 어렵다. 육체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토록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불신과 배척, 배신이 주님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저들은 계속된 가르침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열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이단으로 몰아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주님은 휴식을 위해 두로를 찾으신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이르자 안타까운 사정을 가진 한 여인이 주님을 찾아왔고 예루살렘 사람들과는 달리 주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성과 믿음이 예루살렘에서 지친 주님의 심신을 위로해 주었다.

 

딸을 위한 아름다운 희생

이 여인에게 딸이 있었는데,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이는 병이 들었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병의 원인을 귀신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흉악히 귀신들렸다”(22)고 한다. ‘흉악히’(κακῶς)라는 말은 ‘위험할 만큼 해로운’이란 뜻으로, 아이의 병세가 매우 심각한 상태인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여인은 심각한 딸의 병을 고치고자 주님을 찾아왔다. 그런데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여인의 결단과 도전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지만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사역을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소문만 듣고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었다. 또한 당시 이방인에 대한, 여성에 대한 유대인의 차별은 거의 병적이었다. 어떤 냉대와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여인은 이 모든 것을 무릅쓰고 찾아간 것이다. 이것은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그 무엇도 감내하는 모성이 아니고는 감히 시도할 수 없는 도전이다. 이 여인의 이런 모습에서 앞의 두 사진을 연상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태도다. 한마디로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철저히 외면하셨다. 딸의 치유를 거듭 거듭 호소하였지만 주님은 그녀에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다(23). 그녀의 호소를 무시하고 외면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큰 소리로 호소했다. 아니 간절히 부르짖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주님 곁에 있던 제자들이 보기에도 민망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만큼 간절하게 부르짖었다(23). 그래서 제자들까지 나서서 그녀의 청을 들어달라고 주님께 요청하였다. 하지만 주님은 주님답지 않게 모욕적인 표현까지 사용하시면서 그녀의 청을 거절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24).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6).

 

이것은 무시나 외면을 넘어 인격적 민족적인 모욕이다. 상황이 이 정도면 대개의 사람들은 내가 이런 모욕을 받으며 이 사람에게 매달여야 하나, 차라리 아이를 죽게 할지언정 구차하게 살지 않겠다며 돌아섰을 것이다. 그것도 심한 반감과 욕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이런 주님의 태도와 말씀을 재치있게 받아넘겼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27).

 

딸의 구원을 위해 민족적 반감이나 개인적 자존심을 버리고 주님께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참 믿음의 모습이다. 참 믿음은 이런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주님을 감동시킨 믿음

그렇다면 이런 간절함, 이런 끈기와 참을성, 그리고 겸손과 재치가 어디서 왔을까? 고통당하고 있는 자녀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모성의 발로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반드시 고쳐주시리라는 주님에 대한 강한 신뢰다. 사실 주님의 이런 부정적인 태도와 말씀 이면에 강한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이 여인은 이것을 볼 수 있는 눈,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주님의 강한 부정에 더욱 강한 긍정으로 반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주님을 감동시킨 것이다.

 

특히 본문에서 주님을 감동시킨 이 여인의 아름다운 신앙을 확인할 수가 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하신 일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고 배척했다. 그런데 이 이방 여인은 단순히 소문만 듣고도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이심을 알았다(22). 이것은 유대인들에게서 들어볼 수 없는 예수님에 대한 완벽한 신앙고백이다. 주님은 우리의 올바른 신앙고백을 들으실 때 기뻐하신다(마16:17~19).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달려 나왔다. 이는 예수님이 자신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다.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히11:6). 그리고 계속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며 더욱 간절히 부르짖었다. 이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절박성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님께 대한 강한 신뢰의 표현이기도 하다(잠8:17). 더욱 놀라운 것은 주님의 냉대와 모욕까지도 겸손과 재치로 받고 그것을 주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은혜에 대한 사모함으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장애와 거절을 자신의 간절함과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사용한 것이다. 그녀의 이와 같은 희생, 간절함, 겸손, 믿음에 주님께서 감동하시고 만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8).

 

아름다운 부모의 삶

주님은 이 여인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셨다. 아니 이 여인의 큰 믿음에 감동하셨다. 이 사건이 제자들의 믿음 적음에 대한 책망(14:31)과 유대인의 불신을 경고(11:20~24)하신 다음에 일어난 사건이어서 주님의 감동은 더욱 컸다. 헬라어 원문에는 “여자야” 앞에 감탄사 “오”(ὦ)가 있어 놀람과 감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우리 인생의 성공은 주님을 감동시키는데 있다. 주님만 감동시키면 만사형통이다. 본문은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고 하였다. 특히 본문에 나온 이 여인에게서 주님을 감동시킨 아름다운 부모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정말 우리의 자녀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주님을 감동시키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부모인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삶이다.

 

1. 올바른 신앙고백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2. 모든 것 내어놓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3.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

4. 겸손과 깊은 신뢰로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다.

 

본문에 나온 이 여인처럼 우리 역시 이런 삶을 살면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 아름다운 믿음의 부모가 될 수 있다. 특히 유아세례를 받은 종현이 아빠와 엄마가 이런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유아세례란 부모가 믿음 안에서 아이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며 아이를 주님의 사람으로 잘 키우겠다고 결단하는 시간이다. 정말 주님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믿음의 부모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 주님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자.

조회 수 :
3340
등록일 :
2010.03.14
15:53:49 (*.10.162.71)
엮인글 :
http://www.joypc.or.kr/5886/ce3/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joypc.or.kr/5886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비추천 수 날짜 최근 수정일
349 타협을 모르는 사람, ‘모세’ file 장양식 3441     2013-10-13 2013-10-13 13:49
타협을 모르는 사람, ‘모세’ 출11:1~8 2013. 10/13. 08:00, 11:00 타협과 양보의 시대 춘추전국시대에, 뛰어난 학식과 곧은 의지를 가진 초(礎)나라 사람 ‘굴원’(屈原)의 일화다. 정적의 모함을 받아 귀양을 가는 그에게 한 어부가 말을 걸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흐려 있거늘 당신은 왜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굴원이 어부에게 말했다. ‘맑고 깨끗한 몸에 어찌하여 더러움을 받아들이겠는가? 강물에 빠져 고기밥이 될지언정 어찌 결백한 몸에 세속적인 먼지(塵埃)의 더러움을 묻힐 수 있겠는가?’ 이 때 어부가 그를 강가에 내려주고는 뱃전을 두들기며 이렇게 노래...  
348 내 백성을 보내라! ‘모세’ file 장양식 3460     2013-10-06 2013-10-08 13:38
내 백성을 보내라! ‘모세’ 출5:1~9 2013. 10/6. 08:00, 11:00 돌아온 모세 지난 주 두 거물급 정치인(손학규와 서청원)의 정가복귀가 화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인생이란 저벅저벅 떠나 터벅터벅 떠돌다가 머뭇머뭇 돌아온다.’고 표현한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삶(生)이란 이런 생활의 연속이고, 죽음(死)이란 이런 생활이 끝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초라한 모습으로 떠났다가 화려한 모습, 소위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성경에 나온 탕자처럼 화려하게 떠났다가 쫄딱 망해 거지가 되어 부끄러운 모습으로 돌아온 ...  
347 하나님의 설득, ‘모세’ file 장양식 3904     2013-09-29 2013-09-30 12:06
하나님의 설득, ‘모세’ 출 4:1~9 2013. 9/29. 08:00, 11:00 소명과 사명 소명과 사명은 다르다.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 그 자체이고, 사명은 그 부르심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래서 소명감이란 내가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뜻하고, 사명감은 주님께서 내게 ‘이것을 하라’ 명하셨다고 깨닫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소명과 함께 사명이 주어진다. 지난 시간에 보았듯이 모세의 경우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3:4) 하고 부르신 후, 이어서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  
346 소명의 사람, ‘모세’ file 장양식 4006     2013-09-22 2013-09-28 16:11
소명의 사람, ‘모세’ 출3:1~12 2013. 9/22. 08:00, 11:00 소명에 이끌리는 삶 고든 맥도널드(G. MacDonald)는 현대인에게 두 가지 삶의 유형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충동적인 삶, 혹은 ‘끌려 다니는 삶’(driven life)이다. 별로 의미 없는 일에 바쁘게 끌려 다니며 충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의 삶에서는 어떤 생산적인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삶의 가치관도 없고,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우선순위도 없다. 바쁘기는 무지하게 바쁜데 의미 없이 끌려 다니며 바쁘다. 충동적으로 살다보니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일을 만나면 화내고 판단하고 상처주고 그러면서 자기도 ...  
345 광야에서, ‘모세’ file 장양식 3553     2013-09-15 2013-09-15 13:12
광야에서, ‘모세’ 출2:15~22 2013. 9/15. 08:00, 11:00 광야대학 고생과 어느 신자가 자신은 지금 ‘광야대학 고생과’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 분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 모든 인생이 광야대학 고생과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실제로 광야를 경험하였다. 그 중에서 광야생활을 가장 오래 한 사람, 즉 광야대학을 가장 오래 다닌 사람은 모세다. 모세는 40세에 광야에 들어가서 죽을 때(120세)까지 80년을 광야에서 살았다. 그리고 광야대학에서 가장 성공적인 학생 또한 모세다. 챨스 스윈돌(Charles R. Swindoll)은 모세는 이 광야대학을 통해 4...  
344 도망자, ‘모세’ file 장양식 3795     2013-09-08 2013-09-08 13:16
도망자, ‘모세’ 출2:11~15 2013. 9/8. 08:00, 11:00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쌓고 세우는 것, 가꾸고 이루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쉽다. 세우는 데는 많은 시간과 기술, 많은 열정과 정성, 많은 재물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수개월 혹은 수년,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건축물을 무너뜨리는 데는 단 몇 초면 충분하다. 지난주에 핀란드의 국민기업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합병이 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노키아는 그동안 핀란드 국민을 먹여 살리다시피 한 150년 된 기업으로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모바일업계 부동의...  
343 섭리의 아이, ‘모세’ file 장양식 3315     2013-09-01 2013-09-01 14:49
섭리의 아이, ‘모세’ 출2:1~10 2013. 9/1. 08:00, 11:00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어려서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가끔 들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었는데, 나중엔 정말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특히 부모님이 섭섭하다고 여겨질 때면, ‘나를 주어 와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더욱 들었다. 이 말이 생겨난 곳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 근처 ‘청다리’(옛 이름은 제월교)로, 여기에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이 된 세조 때,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아들)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복위 운동을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