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지(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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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지(地) 탐방4, ‘성 앤드류스’(st. Andrews)

 

 

스코틀랜드인은 켈트족이다. 켈트족은 우리 한민족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고인돌을 가지고 있고, 고대의 민요는 5음계로 되어 있다. 또한 그들은 고대에 ‘가을’이라고 불렸다. 이 명칭은 ‘갈리아’ ‘골’ 등으로도 불린다. 이것은 우리말 ‘고을’ 그리고 ‘고려’와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고려는 구려와 비슷하고, 이것은 ‘골’ 혹은 ‘굴’이라는 말과 비슷하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인이 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영어는 이들 켈트족의 언어가 유입되어 혼용된 것이다. 우리말 밀(mill)과 보리(barley)는 영어와 발음과 뜻이 일치하고 있는데, 이 영어 단어들이 켈트족의 언어가 아닌지........

 

andrews.jpg

좌측은 순교자 기념탑이고, 우측 상단은 파괴된 성벽의 모습이고,

아래는 신교도가 판 땅굴의 모습이다.

 

아침에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섰다. 에덴버러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깬 것처럼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아직 태풍의 꼬리가 이곳에 걸려 있어 비가 오락가락했고 바람은 찼다. 이곳 비는 그냥 맞아도 좋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우산도 없이 나섰다. 다소 쌀쌀한 날씨지만 견딜 만 했다. 우리가 찾아 나선 첫 번째 탐방지역은 성 앤드류스(st. Andrews)다. 에딘버러에서 81㎞쯤 북쪽에 있는(버스로 약 1시간 반 거리), 스코틀랜드 동부해안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일행은 골프클럽하우스 앞에서 버스에서 내려 순교자 기념탑이 세워진 공원을 지나 해안 길을 따라 앤드류스 성으로 향했다. 패트릭 해밀톤이 순교한 North Street뒤쪽 바닷가에 위치한 성은 1,100년경에 견고한 바위 위에 축조된 천혜의 요새다. 그런데 여기에도 우리나라처럼 ‘땅굴’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존 낙스가 패트릭 해밀튼과 더불어 ‘선생님’으로 모셨던 죠지 위샤트가 성 안에 있는 ‘병처럼 생긴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성 밖 길거리에서 화형을 당하면서 땅굴의 추억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굴의 존재는 1879년에 성 밖 도로변에 민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데이빗 비튼 추기경이 구교의 수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는 유럽대륙을 휩쓸고 있던 종교개혁의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무자비한 박해와 억압을 가했다. 유럽의 개혁사상을 소개하며 신교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죠지 위샤트도 예외일 수 없었다. 비튼은 대중의 영웅 위샤트를 공개적으로 처형하면 신교운동이 위축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위샤트의 추종자들이 석공으로 위장하여 성으로 잠입하였고, 마침내 비튼을 참수하여 성벽에 효수(梟首)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성을 장악한 이들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개신교회를 조직하면서 구교와 대치하였다. 이 무렵 위샤트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자 존 낙스가 이 성에서 목회자로 소명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비튼이 참수된 후, 구교 옹호자 아란 백작이 이끄는 정부군이 성을 포위함으로 신교도는 꼼짝없이 성 안에 고립되었다. 아란이 이끈 정부군은 여러 번의 공격이 무산되자, 13세기 잉글랜드 로체스터 성을 포위하여 땅굴로 승부를 가른 역사에 착안하여 비밀리에 굴을 파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현재처럼 굴착장비가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헤머로 단단한 바위를 부수었기에 소리가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성 안의 신교도 또한 그 소리를 들어가면서 그것에 대비하는 땅굴을 팠다. 그래서 정부군의 땅굴작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 군대가 정부군과 연합하여 성을 공격함으로 대부분의 성곽과 건물이 파손되었고, 낙스를 포함한 신교도는 프랑스군에 포로가 되었다. 이 당시 파괴된 앤드류스 성은 그 후 재건되지 못했고, 오랜 세월 비바람에 할퀸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오늘도 순례자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성의 모습에서 개혁신앙을 위해 목숨을 건 개혁자들의 몸부림을 느낄 수가 있었고, 아울러 세속의 비바람에 무너진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개혁신앙에 대한 신념과 열정으로 뚫어간 이들의 땅굴을 보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목숨을 건 이들의 헌신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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