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열매, ‘관용

3:13~18, 5:38~42

2017. 9/17. 11:00

관용이 부족한 사회

이효리의 유기농 콩사건을 기억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 기사를 보며 지금 우리 사회가 관용이 부족한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콩을 내다팔면서 유기농 콩이라고 표시한 것이 문제기 된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 친환경 농산물 인증표시 위반이겠지만 텃밭에서 기른 콩 몇 줌 판 것을 관련기관(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신고하고, 그 기관에서 텃밭 토양조사까지 했다고 한다. 신고할 일도, 토양조사까지 할 일은 더욱 아니었다. 그저 유기농표시를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끝낼 일이었다. 수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유명인사의 언행이니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고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공명심이 발동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자신과 다른 생각, 다른 행동에 비난과 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별 것 아닌 일도 법을 들먹이며 문제 삼고, 표현이 눈과 귀에 거슬린다고 검찰에 고발하고, 진보보수의 진영논리로 편 가르기하고, 교계에서 해결해야 할 신앙적 문제조차도 사법의 힘을 빌리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박멸해야 할 적, 때려눕혀야 할 경쟁상대로 여기는 것 같다. 특히 이효리를 좌효리로 부르며 좌파로 몰아 척결대상으로 낙인찍는 행태는 공존을 포기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관용이 절실하다는 경고음이 벌써 울렸지만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가운데 관용사회 부문 순위는 199525위에서 200030위로, 200931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경쟁과열로 삶이 각박해진 탓에 사회적 갈등이 날로 넘쳐나고 있다. 마치 치킨게임처럼 누구 하나 죽거나 무릎을 꿇어야 끝이 나는 적대와 증오가 넘치는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지혜의 열매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지혜의 열매 세 번째 관용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관용이 사람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릇의 크기는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의 양에 있다. 많은 양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큰 그릇이다. 그래서 이 흙 저 흙 가리지 않고 모든 흙을 다 받아들여서 큰 산()이 된 것이고(泰山不辭土壤), 이 물줄기 저 물줄기 가리지 않고 모든 물을 다 받아들여서 큰 강(大河), 큰 바다(大海)가 된 것이다(河海不擇細流). 이와 같이 받아들여서 품는 것포용(包容)이라고 한다. 포용과 함께 사용하는 말이 관용’(寬容)이다. 예일대 에이미 추아(Amy Chua)교수는 자신의 책 제국의 미래 에서 고대 페르시아부터 로마, 몽골, 그리고 오늘날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주름잡아 온 강대국의 공통점은 관용을 바탕으로 한 포용이라고 지적한다. 이들 나라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포용하고 이를 통하여 보다 강력한 힘을 축적함으로써 국가를 융성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너그럽게 이해하고 용납하여 잘 품어주는, 포용력이 큰 사람을 큰 사람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분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온갖 규제를 만들어 사람을 차별하여 외부인으로 내몰았다. 반면에 주님은 종교의 본질과 핵심은 사랑이라며 사람 사이의 모든 차별을 걷어내고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품었다. 널리 포용한 것이다(십계명). 이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와 주님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주님이 가신 곳마다 사람이 구름처럼 주님 곁으로 몰려든 이유였다. 이렇게 차별을 무너뜨리고 차이를 넘어서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포용의 사람, 관용의 사람이 주님이셨다. 주로 갈릴리 어부출신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의 작은 다락방에서 시작한 우리 기독교가 짧은 기간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서부 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남부 유럽 일대까지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이와 같은 주님의 관용정신에 있다. 그래서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한 기독교가 유대교를 넘어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야고보서 기자가 관용을 성도다운 삶의 원리인 지혜의 열매로 꼽은 것은 너무 당연하다.

 

관용의 정신

관용이란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취향을 이해하고 존중하여 받아들여 품어주는 것이다. 어떤 수필가는 관용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자기 안에 자기와 다른 사람을 품는 것이다.마치 위()가 이물질을 다 소화하듯 관용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품어주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이 바로 관용이다. 다르지만 인정하고 받아주는 것,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이해하고 품어주는 것, 호감이 가지 않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끌어안아 주는 것, 이것이 관용이다. 마태복음 본문이 이와 같은 관용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다. 인격적인 무시와 경멸(39), 비열한 착취(40), 부당한 압제(41)가 그것이다. 이와 같이 얼토당토 않는 악한 자의 태도에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는가? 소극적으로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라고 하셨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고, 속옷을 요구하면 겉옷까지 벗어주고, 오리(五里)를 가자고 하면 기꺼이 십리(十里)까지 가주라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요구를 받더라도 거절하지 말고, 오히려 여유 있게 더 많은 것을 스스로 내어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관용정신이다. 이러한 삶은 철저한 은혜의식권리포기’(자기부인)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행하되, 억지가 아닌 자원함, 인색함이 아닌 풍성함, 의무가 아닌 감사함으로써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돌려대며”(39), “가지게 하며”(40), “동행하고”(41), 이 세 동사가 모두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관용의 복음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은혜의식과 자기부정을 통한 관용의 삶이 가능할까? 어떻게 자원함과 풍성함과 감사함으로써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관용의 삶을 실천할 수 있을까? 이 나무를 통해서 그 방법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 나무의 이름이 파키라. 나에게 화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나무다. 모양이 마음에 들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곁에 두고 보다가 이 나무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을 나름 발견하였다. 우선 이 나무는 덩치나 가지, 잎에 비하여 뿌리가 아주 빈약하다. 그리고 이파리가 사람의 손가락처럼 다섯 개이고, 모두가 하늘을 향해서 활짝 펴고 있다. 또한 줄기나 가지도 하늘을 향하고 있다. 나무의 생명은 뿌리다. 뿌리가 강해야 자생력도 강하다. 뿌리가 빈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생력이 약하다는 것이고, 세심한 관리와 돌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까? 이파리를 활짝 펴고 가지가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모습이 스스로 살 수 없으니까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자세로 하늘을 향해 간구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파키라의 이런 모습을 통해 겉모습에 비해 뿌리가 빈약한, 그래서 주님의 세심한 관리와 돌보심이 필요한 내 자신을 발견한다. 연약한 내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은혜가 절실하기에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아가야함을 배운다. 그렇다. 우리는 은혜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더더욱 은혜가 아니면 본문이 요구한 관용의 삶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 하고, 은혜를 받으려면 파키라처럼 주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하여, 주님 품에 안기기 위해 위를 향하여 손을 뻗는 것, 이것이 관용의 삶을 실천하는 최우선이다. 주님 품에 안기는 은혜를 받아야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주님이 내 삶의 전부라는 사실을 알아야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권리포기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파키라의 꽃말이 관용이다(어떤 사람은 행운이라고도 함). 하늘을 향해 가지를 쭉 뻗고 이파리를 활짝 편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끌어안고 품으려는 모습이다. 그래서 다섯 개의 이파리를 활짝 펴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어로 손을 펴().’(abrir la mano)는 말이 관용을 베풀다.는 뜻이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본문은 관용을 자원함으로 기꺼이, 풍성하고 감사함으로 실천하도록 능동태 명령형을 사용하고 있다. 관용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라 뜻이다. 파키라의 다섯 개 이파리가 활짝 펴져 있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웃을 향해 손을 활짝 펴야한다. 항상 끌어안을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언제든지 끌어안고 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스캇 맥나이트(Sott Mcknight)는 우리 기독교 복음을 관용의 복음’(끌어안는 은혜)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끌어안으심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끌어안는 것이 복음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 주님처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주고, 존중하는 관용의 사람이 되자! 교회는 용광로처럼 모두를 끌어안는 곳이고, 성도는 누구든지 품어주는 사람이다. 또한 관용은 한 사람의 인격, 관계,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존중받는 삶의 원리이기도 하다.

 

관용은 행운을 부른다.

한 때의 관용이 복이 되어 돌아오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다. 궁에서 잔치를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돌풍이 불어와 모든 불을 꺼버렸다. 이 틈을 타고 누군가 왕의 애첩에게 입을 맞췄다. 놀란 그녀는 엉겁결에 그 사람의 갓끈을 잡아뗐고, 분한 목소리로 왕에게 고했다. 무례한 자의 갓끈 잡아뗐으니 당장 불을 밝히고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왕은 노발대발하며 당장에라도 그 사람을 잡아 죽일 듯 화를 냈다. 그러나 왕의 입에서 나온 명령은 좀 엉뚱했다. 모두 신하에게 갓끈을 떼서 던져버리도록 했다. 그리고 불을 밝히도록 했다. 그리고 말했다. ‘무례한 짓을 저지른 놈을 살려둘 수 없다. 허나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이번만은 없던 일로 하겠다. 더 이상 이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잔치를 즐겨라.’ 그리하여 풍악은 다시 울렸고, 잔치는 밤이 늦도록 흥겹게 진행되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다. 나라에 위급한 일이 닥쳤다. 이웃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 것이다.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 때였다. 별안간 장수 하나가 날렵한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 적군을 무찌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적군은 크게 패하여 도망갔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 장수가 왕에게 불려갔고, 그 장수는 왕 앞에 무릎을 꿇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폐하께서 저에게 베푼 은혜를 오늘에야 갚았을 뿐입니다. 몇 년 전, 연회에서 불충한 짓을 저지른 자가 접니다. 폐하의 은혜로 무사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에야 그 은혜를 보답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관용이 커다란 복이 되어 돌아온 예다. 파키라의 꽃말을 행운이라고 한 것도 의미가 있다. 관용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한 주간도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까운 사람들부터 관용을 실천하기 바란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 우리의 관용을 알게 하는(4:4) 한주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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