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열매, ‘양순

3:13~18, 8:1~11

2017. 10/1. 11:00

대나무를 생각함

옛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四君子)라고 불렀다. 여러모로 군자의 기품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중에서도 대나무를 으뜸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들은 대나무를 정원에 심어놓고 가꾸었다. 중국의 시성(詩聖) 백거이(白居易)는 대나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나무가 성질이 곧으니 곧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세우고, 속이 비었으나 비어 있음으로써 도를 체득하고, 마디가 곧으니 곧음으로써 뜻을 세운다.시경(詩經)에도 대나무를 일컬어 훌륭한 저 군자여, 잘라내고 다듬고 조고 갈아 자신을 닦는 도다.라고 노래하였다. 한 겨울에도 잎이 푸른데다가 세찬 비바람에도 쉽게 뽑히거나 꺾이지 않는 모습 때문에 대나무를 군자의 높은 인품과 절개로 여긴 것이다.

 

아무튼 키도 크고, 잎도 무성하고, 가늘고 여리게 생긴 대나무가 거친 폭풍우에도 뽑히거나 꺾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뿌리유연성 때문이다. 대나무의 뿌리는 땅 속으로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옆으로 뻗어가면서 주변의 돌이나 다른 나무의 뿌리들과 잘 엉킨다. 이렇게 뿌리가 주변의 돌이나 다른 나무의 뿌리들과 뒤엉켜 지탱해 주기 때문에 쉽게 넘어지지도 뽑히지도 않는다. 더불어 함께함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연성이다. 바람이 약간만 불어도 잘 흔들리는 것이 대나무지만 휘어질 듯 흔들려도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다. 유연성 때문이다. 대나무의 이런 유연성은 속이 비어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대나무를 비움의 상징으로 무심(無心)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매듭이 두 번째 이유다. 속이 비어만 있으면 쉽게 쪼개진다. 비어있어도 쪼개지지 않는 것은 적절한 위치에 매듭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매듭 때문에 대나무는 쪼개지거나 꺾이지 않고, 또한 연약하지만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매듭을 인생의 시련, 환난, 고난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시련은 우리를 교만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안전장치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시련이다. 성장과 성숙을 돕는 것이 시련이다. 대나무처럼 이와 같은 시련의 매듭이 어떤 시험의 비바람도 견뎌낼 수 있는 유연성을 갖게 한 것이다. 이 시간에는 이 유연성과 관련이 있는 지혜의 열매 네 번째 양순’(良順)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죽이는 종교 Vs 살리는 종교

서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무장단체를 보코하람이라고 한다. 이는 나이지리아 북부종족의 방언 하우사어로 서구식 교육의 죄악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주요 테러목표는 서구식 교육을 실시하는 교사다. 이들에 의해 납치 혹은 살해된 교사의 수가 천여 명에 이르고, 백만에 가까운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빼앗겼다. 특히 학생들에게 우리 돈 3만원을 주면서 자기가 다닌 학교에 불을 지르도록 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경직된 종교적 신념 때문이다. 문자주의에 얽매인 편협한 교리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구는 둥근 것이 아니라 평평하며,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신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교리에 어긋나게 가르치는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교육을 시키는 교사를 먼저 처단하고, 학생들에게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학교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비로운 신의 이름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성경에도 가끔 보이는데, 오늘 요한복음 본문도 그중에 하나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셨다(1,2). 그때 성난 무리가 양손에 돌멩이를 들고 살기등등(殺氣騰騰)하여 주님께 몰려왔다. 그들은 짐승처럼 끌고 온 한 여인을 주님 앞에 내 동댕이쳤다. 이미 초죽음이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여인을 그들은 주님께 고발했다. 그들은 이 여인을 간음현장에서 붙잡아왔다고 했다. 모세의 법(율법)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주님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5). 만약 그들의 고소가 사실이라면 제사장이나 장로를 찾아가야지 주님을 찾을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렇게 주님을 찾아온 것은 다른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빌미로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생명력을 상실한 종교와 종교인의 전형(典型)이다. 생명을 사랑하고 구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고 종교인의 사명인데,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여 무고한 생명을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이런 사람에겐 종교도 신앙도 그가 믿는 신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다. 아무튼 앞에서 말했듯이 경직된 종교, 편협한 종교적 신념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런 종교는 폭력이고, 말 그대로 재앙이다. 이것이 당시 유대교의 실상이었다.

 

반면 주님의 모습은 참된 종교의 본질과 종교인의 사명을 보여준다. 주님은 그들의 흥분한 태도나 다급한 요구와 달리 차분하고 조용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시고 해결하셨다. 주님은 즉시 답하지 않고 잠시 허리를 숙이고 땅에다 글씨를 쓰셨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하는 조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숨을 죽이고 이와 같은 주님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향해 주님은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한 마디의 말씀을 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 조용하지만 마음을 찌르는 참으로 충격적인 말씀이었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굽혀 땅에다 글씨를 쓰셨다. 그러자 생각이 깊은 어른부터 손에 들고 있던 분노의 돌, 정죄의 돌, 미움의 돌을 가만히 내려놓고 그곳을 떠났다. 이제 그곳에는 주님과 여인만 남았다. 주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고 하셨다. 이렇게 사망의 덫에 걸린 한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종교의 본질은 생명을 구하고 살리는 것이지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것이 종교인의 사명이다. 그래서 참된 종교는 주님처럼 종교적인 신념이나 문자적인 계율보다 생명을 구하고 살리는데 초점을 둔다(2:27 참조).

 

양순의 모델이신 예수님

우린 본문에서 죽이는 종교와 살리는 종교의 특징을 보았다. 죽이는 종교는 생명보다는 편협한 교리와 경직된 종교적 신념에만 사로잡혀 있다. 그러다보니 종교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그렇지만 살리는 종교는 생명에 초점을 둔다. 물론 교리나 종교적 신념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거기에 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한다. 주님의 삶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 자주 율법을 무시한 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는 죽이려고까지 했다(7장 참조). 본문은 이와 같은 계획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리고 주님의 이런 모습이 야고보서 기자가 말한 지혜의 네 번째 열매 양순(良順)이다.

 

양순(εὐπειθής)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여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상태를 뜻한다(‘온유와 유사함). 야고보서 본문에만 단 한번 소개된 단어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양순을 하나님 앞에서 고분고분한 상태로 번역하였다.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양순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했다. ‘시기의 가시가 아무리 찔러도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 화를 내며 대들어도 어지럽힐 수 없는 사람, 거친 행동이 흥분시킬 수 없는 사람, 격분으로도 불타지 않은 사람이 바로 양순한 사람이다.그래서 양순한 사람은 원수를 사랑으로증오하는 사람에게는 친절로, 모욕하는 사람에게는 기도로, 박해하는 사람에게는 선행으로 대한다.고 했다. 양손에 돌멩이를 들고 살기등등한 유대인의 모습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신 주님의 모습이 바로 양순이다. 그래서 주님은 살리는 종교, 살리는 사람의 모델이 되셨다. 우린 다른 사람의 태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소한 말이나 태도에도 쉽게 흥분하고, 상처를 받고, 낙심한다. 하루에 수도 없이 천국과 지옥을 들락거리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하나님께 잘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나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상처받고, 쉽게 화내고, 쉽게 실망한다. 쉽게 포기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말이, 표정이, 행동이, 태도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고, 낙심이 되고, 아픔이 되는 것,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도 양순하지 못함 때문이다. 양순한 사람은 이 쿠션과 같은 사람이다.

 

부드러움의 힘

찰스 다윈은 유연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화의 길고 긴 과정 속에서 어떤 생물이 살아남고 어떤 생물이 사라졌던가? 힘이 강한 생물이 살아남은 것이 아니고, 재능이 있는 생물이 살아남은 것도 아니다. 유연한 적응력이 있는 생물이 살아남았다.옳은 지적이다. 사람들은 흔히 부드럽고 유연함을 약한 것으로 생각하고, 온유함이나 양순함을 무능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한 것을 강조한다. 살벌한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한 사람, 강한 기업, 강한 나라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요즈음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 그렇고, 이런 북한을 막으려는 미국을 비롯한 열강이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오해중의 오해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부드럽다. 부드러운 것이 강함을 이긴다. 유연함이 경직된 것을 이긴다. 이것이 복음서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주님의 삶과 가르침의 핵심이고, 우리가 이미 확인했듯이 요한복음 본문도 그 중에 하나다. 이 알로카시아가 이렇게 여리게 생겼지만 천년을 사는 비결은 강해서가 아니다. 유연성 때문이다. 알로카시아는 허물을 벗듯이 자란다. 원줄기에 캥거루의 애기주머니 같은 것이 생기고, 거기서 연한 연둣빛 새순이 나와서 자라게 된다. 이것의 반복이 알로카시아의 성장과정이다. 이 연한 순이 알로카시아가 천년을 사는 비결이다. 신앙생활은 주님께 길들여져 가는 훈련이다. 이 알로카시아의 연한 순처럼 주님 앞에서 고분고분한 양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주님 손에 잘 길들여져서 양순한 성도가 됩시다! 그래서 물이 모든 굳은 것, 강한 것을 품어 부드럽게 만든 것처럼 굳은 마음, 경직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 부드럽게 녹여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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