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열매, ‘긍휼

3:13~18, 9:9~13

2017. 10/8. 11:00

꽃다발과 사랑
국립묘지 옆에서 묘지를 찾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파는 꽃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한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꽃다발을 팔고 있었다. 꽃가게 아들이 살펴보니 자기 가게에서 판 꽃다발이었다. 할아버지는 묘지를 돌면서 묘지 앞에 놓여있는 꽃다발을 모아서 파는 것이었다. 자본금 없이 장사하는 분이었다. 이를 본 아들이 화가 나서 자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 노인을 고발해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그렇지 어떻게 남의 산소에 꽃다발을 갖다 팔아요? 차라리 구걸을 하지!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눈 때문에 묘지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수입도 없었다. 그날 아버지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묘지로 가서 뿌려놓고 왔다. 그 꽃다발을 주우러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웃었다. 이를 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에 울어버렸다.

 

팍팍한 세상에서 한 줄기 단비와 같고, 더운 날의 시원한 냉수와 같은 이야기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이웃을 향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과 사랑의 시선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런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살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글을 읽으면 왠지 내 자신이 초라해지고, 이제껏 무엇을 믿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셨던 삶이 바로 이런 삶이었고, 이런 마음과 시선을 가지라는 것이 주님의 간곡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사랑이 메말라 어둡고 살벌하다고, 사람들이 하나같이 아귀(餓鬼)와 같다고 탄식은 하면서도 이런 세상을 밝혀주고 변화시키는 주님의 삶, 주님의 마음, 주님의 시선과는 거리를 두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주님의 삶을 압축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지혜의 열매 다섯 번째 긍휼’(矜恤)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긍휼에 대한 정의

어느 글에서 긍휼에 대한 멋진 정의를 보았다. 간단한 영어로 표현을 하고 있었는데, 먼저 긍휼은 Not if라고 했다. 긍휼은 ~하면 ~하겠다.는 무언가 조건을 제시하는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긍휼이라는 것이다. 또한 긍휼은 Not because라고 했다. 자녀니까, 부모형제니까, 혹은 부부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주님을 믿는 지체니까, 또는 그()가 무언가를 해주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해서 ~한다.는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떠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되지 않는 사랑이 바로 긍휼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긍휼은 Not give and take라고 했다. ‘~하면 ~하겠지?라는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하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이 긍휼이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 이유 없는 사랑, 보상 없는 사랑이 긍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앞에서 긍휼을 주님의 삶을 가장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고 한 것이다. 주님이야말로 무조건적이고, 이유가 없고,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이 긍휼과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에 긍휼이 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마가복음에서 이 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온 사람마다 엘레에손 메’(ελεησον με)라고 부르짖었다. ‘나를 불쌍히(긍휼히) 여겨주십시오!라는 뜻이다. 주님이 긍휼히 여기시면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님의 긍휼은 질병에 시달린 사람이나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사람, 사회적 종교적으로 소외된 세리나 창기와 같은 죄인뿐만 아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한 사람들, 십자가 아래서 주님을 향하여 조롱하며 비웃는 사람들까지도 긍휼히 여기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라고 십자가 위에서 외치셨던 주님의 기도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과거에 살았던 사람이나 지금 우리나,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사람까지도 이와 같은 주님의 긍휼 때문에 사는 것이다.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한 것이다. 그러니 우린 그 사랑을 위하여살아야 한다.

 

마태의 출정식

마태복음 본문 역시 주님의 긍휼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말씀이다. 열 두 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마태를 부르신 내용인데, 제자로 부름 받은 마태는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자기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주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는 당시 유대인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던 세리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주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자리였다. 소위 주님 제자로서의 출정식과 같은 의미를 지닌 행사였다. 본문은 담담하게 이 사건을 취급하고 있지만 사실 마태로서는 더 없이 감격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자기 같은 세리가 어찌 주님의 제자가 되겠는가? 말 그대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그저 무조건적인 사랑, 이유 없는 사랑, 보상을 바라지 않는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범죄 현장에서 부름 받은 사람

본문에서 주님이 마태를 부르신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다. 물론 이것은 주님께서 베드로나 안드레,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실 때도 그랬다. 할 일이 없어 빈둥대고 있을 때 부르신 것이 아니다. 비록 내세울 것은 없어도 주어진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현장에서 부름을 받았다. 구약시대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드온은 포도주를 짜고 있다가 사사로 부름 받았고, 사사 드보라 역시 나무 아래서 재판하다가 부름을 받았다. 사울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나귀를 찾다가 왕으로 부름을 받았고,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다가 부름을 받았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는 소 다섯 겨리로 밭을 갈다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고, 아모스는 뽕나무를 재배하다가 부름을 받았다. 모두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 마태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물론 그에게는 세관에 앉아 세금을 받는 것이 그의 삶이고 삶의 현장이었으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곳은 범죄의 현장이었다. 그러니 마태는 범죄의 현장에서 주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이 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세금은 넓게, 그리고 얇게 거두는 것이 좋다!이것이 당시 로마제국의 조세정책이었다. 탈세자가 없게 하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거두라는 뜻이다. 로마제국이 오랫동안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중 하나가 이와 같은 합리적인 조세정책 때문이다. 로마는 일정지역에서 세금 징수권을 공개입찰을 통해 최고 입찰자에게 팔았다. 세리는 입찰을 통해 징수권을 산 사람(publicana)으로, 세금을 징수하여 할당된 금액만 로마정부에 넘겨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겼다. 이 때 그가 챙길 수 있는 금액은 징수액의 10%를 넘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이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바로 여기서 부정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세리가 미움을 받았다. 게다가 갑자기 형편이 악화되어 세금을 내지 못할 경우, 그 사람의 세금을 대신 내주고 최고 30% 이상의 이자를 받았다. 결국 고리대업자가 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세리에 대한 시선이 좋을 수가 없었고, 특히 심했던 곳이 유대사회였다.

 

사람을 바꾸는 것

유대인은 세리가 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들이 용서받는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다. 세리를 구원의 길이 완전히 막힌 절망적인 죄인으로 본 것이다. 그들이 세리를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민족을 배신하고 로마(이방인)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점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도하게 세금을 징수한다는 점, 율법이 금하고 있는 동족에게 고리대업을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 유대인의 눈에 세리는 범죄자고, 세리가 하는 일은 범죄행위고, 세리가 일하는 곳은 범죄현장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범죄자가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그 현장까지 찾아가셔서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게다가 그가 마련한 잔치에 참석하여 혐오스러운 범죄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유대인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을 하신 것이다. 이 때문에 주님께 죄인의 친구라는 주홍글씨가 붙여지게 된 것이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주님은 경직된 종교적 신념이나 편협한 문자주의적인 교리에 사로잡힌 편향된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시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필요한 존재로 바라보셨다. 12절과 13절이 이를 잘 보여준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주님은 정죄보다 사랑을, 심판보다 용서를 택하셨다. 그래서 죄인의 친구라는 낙인을 감수하며 세리들과 어울리신 것이고, 모두가 혐오하는 죄인 세리가 제자가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랍고 감격스러운 것은 나와 같이 못난 인간이 구원을 받고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곧 긍휼의 복음이다. 그리고 이 긍휼이 성도다움을 드러내는 지혜의 열매다. 사람은 오직 무조건적이고, 이유가 없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 곧 주님의 긍휼을 통해서 변한다. 긍휼은 상대가 너무 불쌍하기에 강한 자가 오히려 그 앞에서 약해진 것이다. 고집이 없어지고, 굳은 마음이 녹아진 것이다. 상대방을 사랑해서 나를 낮추는 것이 긍휼이다. 이 사랑 때문에’,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 사랑이 우리를 변하게 하고, 살게 한다. 그러니 우린 이 사랑을 위하여살아야 한다. 주님처럼 긍휼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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