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열매, ‘거짓

3:13~18, 5:1~11

2017. 10/22. 11:00

정직이 뉴스거리가 된 시대

미국 시카고 데일리라는 뉴스지에 난 기사라고 한다. 일리노이주()에 어글스피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람 이야기다. 그는 손님이 맡긴 세탁물의 주머니에서 2만 불을 발견하였다. 세탁물을 맡긴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 사람이 나타나질 않았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그것을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그것을 지역 신문사에 알렸다. 그래서 신문에 그 기사가 났다. 그 기사를 썼던 기자는 기사의 마지막 줄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제는 정직이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그냥 흘러버릴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정직이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 시대! 자기 돈이 아니니까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한 일이 오히려 드물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당연한 일이 뉴스거리가 된 것이다.

 

돌려 말하면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정직하지 못한 거짓이 판을 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직이 실종되고, 거짓이 상식이 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고,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런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탈진실’(post-truth)2016년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고, 독일 언어학회도 탈사실’(postfaktisch)2016년도 올해의 단어로 뽑았다. 거짓이 지배하는 공동체, 거짓이 지배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솔제니친이 스탈린 시대를 암()병동에 비유한 것처럼 암병동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반드시 도덕적인 위기가 찾아온다. 진실을 잃어버리고 양심이 통하지 않는, 신용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을 때, 그 사회의 복된 미래를 어떻게 기대할 수가 있을까? 이 시간에는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로서 성도다운 삶의 마지막 열매 거짓이 없는 삶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거짓을 부추기는 문화

원 제목은치팅 컬처(Cheating Culture)이고, 부제가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라는 책이 있다. 미국사회의 다양한 편법, 부정, 불법 등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불법의 원인 중에 가장 눈에 띤 것은 그것을 조장하는 문화.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들켰을 때 잃는 것보다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이 더 크다는 점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우리나라도 일찍이 부패공화국이란 딱지를 받았다. 특히 기업범죄가 미국 못지않게 화려하다. 처벌이 너무 약하고, 구속이 되어도 대부분 집행유예나 여러 이유로 곧 석방이 되기 때문이다. 재벌총수의 경우 구속만 되면 하나같이 휠체어를 타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영어로 회장을 Chairman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회장은 여기에 바퀴라는 단어를 덧붙여 Wheelchairman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은 이런 문화가 불법과 거짓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의 특징은 이런 것을 심각한 죄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물론 죄는 경중(輕重)을 따질 수가 없다.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거짓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그 거짓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이 좋은 예다. 본문은 초대교회(예루살렘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고 있을 때 일어난 거짓말사건이다(내용설명 생략). 그런데 이 사건은 두 생명의 죽음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얼마나 거짓을 엄격하고 단호하게 다루는지를 보여주고, 동시에 거짓의 심각성을 경고한 것이다.

 

거짓의 유혹에 빠진 이유

본문의 사건은 4장 마지막 부분에 나온 바나바의 헌신(4:36,37)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초대교회는 자신의 물질을 아낌없이 헌신해서 서로 섬겼다(4:32~35). 압제와 착취가 상식이 된 시대에서 초대교회의 이와 같은 모습은 자랑이고 감동이다. 이는 복음의 능력과 십자가의 사랑에 중독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일을 가장 탁월하게 했던 사람이 구브로 출신 바나바(본명은 요셉)였다. 그의 헌신이 교회와 사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나바’(위로자=Helper)라고 지어주었다(4:36). 이런 바나바를 부러워한 사람이 있었는데, 본문에 나온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다. 선한 일에 욕심을 갖는 것, 그래서 닮고 싶어서 따라하는 것은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행위는 그들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것은 물론 교회 공동체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뻔 했다. 그것은 그들의 행위가 거짓으로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거짓행위로 교회 공동체에 부담을 주고, 자신들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까?

 

허위의식(Coram Populo)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또한 명예를 얻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여기에 과시욕과 허영심(소위 척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면 허위의식을 낳게 된다. ‘히는 순간 허위의식이 풍선에 바람이 들 듯 부풀어 오르게 된다. 그래서 허위의식을 과시욕과 허영심에서 비롯된 자신의 위선적인 의식구조나 행위체계, 사고방식이라고 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이 허위의식이란 올무에 걸린 것이다. 그들이 밭을 판 것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그래서 교회로부터 바나바처럼 명예를 얻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이것을 코람 포풀로’(Coram Populo)라고 한다. ‘사람 앞에서란 뜻이다. 한마디로 사람 앞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잘 믿는 , 잘 섬기는 , 주님을 사랑하는 , 교회를 사랑하고 지체를 사랑하는 ......이것은 사단에게 자기 인생의 결정권을 통째로 넘겨준 것과 같다. 허위의식을 갖는 순간 사단이 그들에게 속삭였다. ‘어떻게든 인정받고, 잘 보이고, 명예를 얻는 것이 목적이니까 굳이 밭 값을 다 바칠 필요가 있냐? 일부만 바치고 이것이 전부하고 한들 누가 알겠냐?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까 다 바친척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단이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을 모르고 이런 충고를 했을까? 알면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속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단을 거짓의 아비(거짓말 대장)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사단의 충고대로 척하다가 그만 들통이 나고 만 것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 질타하셨던 내용이 그들의 허위의식이었다. 그들의 보이기 위한 기도, 보이기 위한 구제, 보이기 위한 금식, 보이기 위한 예배생활, 보이기 위한 안식일 준수, 보이기 위한 십일조를 신랄하게 책망하셨다. 결국은 사람 앞에서 믿음이 좋은 척, 경건한 척, 의로운 척하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 퍼포먼스였기 때문이다. 이런 허위의식이 생명력을 잃은 신앙, 생명력을 잃은 종교로 그들 자신의 신앙과 종교(유대교)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의해 이런 허위의식이 초대교회로 들어오려고 한 것이다. 그것도 초대교회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자발적인 물질적 헌신부분에 말이다. 자칫 은혜롭게 출발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성령께서 이를 아시고 그들 부부의 거짓 행위를 엄단하신 것이다.

 

신전의식(Coram Deo)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결말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거짓에 대한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한 사람이면 충분하지 둘 다 죽일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두려워서 신앙생활 어떻게 하겠냐!하지만 이는 이 문제의 성격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신성모독사건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사건은 사람 앞에서’(coram populo) 라는 행동기준에서 발단된 것이다. 사람 앞에 잘 보이기 위해 이런 거짓을 저질렀다. 한 마디로 척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의 행위를 성령을 속이는 것’(3,9)이라 책망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4)고 했다. 초대교회는 주님의 공동체. 만일 그들의 거짓이 성립되었다면 공동체의 주인이신 주님의 존재가 부정되었을 것이다. 초대교회가 마치 주인이신 주님이 없는 세상 모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이 계시다면 어찌 이런 거짓이 있겠는가?라고 교회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은 세상에서의 단순한 거짓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주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신성모독에 해당되는 죄였다. 그래서 사형이라는 공개처형을 당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거짓(허위의식)을 극복할 수가 있을까? 아니 어떻게 이 거짓을 예방할 수가 있을까? 혹은 거짓에 빠졌을 때 어떻게 빠져 나올 수가 있을까?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있고, 하나님은 다 아신다. 다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 그러니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이 모두를 한 마디로 신전의식’(Coram Deo)이라고 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밭 값의 일부만 바치고 이것이 전부라고 한들 누구 알겠냐?는 사단에 속삭임에 그토록 쉽게 넘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Coram Deo정신보다 Coram Populo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넘치고 있다. 그래서 교회도 신자도 하나님의 눈치를 살펴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보다 사람 눈치만 살피는 사람들 비위나 맞추고 있는 것이다. 신자와 교회가 거짓된 삶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좌우, 곧 사람의 눈치를 살피기에 앞서 위에 계신 하나님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항상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의식으로 살아야 한다.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피할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다는 생각, 또한 하나님께서는 선/악 간에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갚으시는 분이심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 수가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짓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 수가 있다. 사단의 속삭임을 단박에 알아채고 단호하게 물리칠 수가 있다.

 

 

조회 수 :
202
등록일 :
2017.10.22
13:38:17 (*.0.40.41)
엮인글 :
http://www.joypc.or.kr/48392/f22/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joypc.or.kr/48392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비추천 수 날짜 최근 수정일
559 확신의 삶Ⅱ, ‘구원’ new 장양식 23     2017-11-19 2017-11-19 14:57
확신의 삶Ⅱ, ‘구원’ 1요5:10~13 2017. 11/19. 11:00(추수감사주일)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믿는다’(Believe)는 영어단어에서 ‘e’를 빼면 ‘Be live’가 된다. 이는 ‘생명이 되라’는 뜻이다. 믿는다는 것은 생명이 되는 것이다. 즉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지난번에 말씀드렸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와 신자가 ‘예수결핍장애’(Jesus Deficit Disorder)상태라는 것이다(레너드 스윗). 상황이 이러다보니 교회와 신자가 생명이 되지 못하고,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하지 못하고 있다. ...  
558 확신의 삶Ⅰ, ‘복음’ 장양식 155     2017-11-05 2017-11-05 14:48
확신의 삶Ⅰ, ‘복음’ 요14:1~6 2017. 11/5. 11:00 아이드마(AIDMA)의 법칙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것은 개인에게나 기업에게나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광고와 마케팅에 ‘아이드마(AlDMA)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Attention(주의, 인지), Interest(관심, 흥미), Desire(욕망), Memory(기억), Action(행동/구매)의 첫 글자를 따서 ‘AlDMA’라고 부른다. 사람이 행동하기까지 주의(attention)→흥미(interest)→욕망(desire)→기억(memory)→행동(action)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기까지 이와 같은 5가지 과정을 거친다는...  
557 다른 복음은 없다! 장양식 173     2017-10-29 2017-10-29 12:59
다른 복음은 없다! 갈1:6-12 2017. 10/29. 11:00(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 성공의 요건, 3C 운동선수에게 요구되는 원리적인 운동철학이 있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 또는 운동을 잘하려면 이런 생각, 이런 자세(태도)를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운동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그래서 성공적인 삶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로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다. 그것은 C자로 시작되는 세 단어다. ‘3C’라고 한다. Confidence(확신), Concentration(집중력), Courage(용기) 이렇게 세 가지를 말한다. 우선 ①‘확신’(Confidence)이다. 무슨 일이든 마음의 안정이 중요하다...  
» 지혜의 열매Ⅶ, ‘거짓’ 장양식 202     2017-10-22 2017-10-22 13:38
지혜의 열매Ⅶ, ‘거짓’ 약3:13~18, 행5:1~11 2017. 10/22. 11:00 정직이 뉴스거리가 된 시대 미국 시카고 데일리라는 뉴스지에 난 기사라고 한다. 일리노이주(州)에 어글스피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람 이야기다. 그는 손님이 맡긴 세탁물의 주머니에서 2만 불을 발견하였다. 세탁물을 맡긴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지만 그 사람이 나타나질 않았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그것을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그것을 지역 신문사에 알렸다. 그래서 신문에 그 기사가 났다. 그 기사를 썼던 기자는 기사의 마지막 줄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제는 정...  
555 지혜의 열매Ⅵ, ‘편견’ 장양식 213     2017-10-15 2017-10-15 13:07
지혜의 열매Ⅵ, ‘편견’ 약3:13~18, 요9:1~7 2017. 10/15. 11:00 마음속에 있는 두 마리의 개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한다. 하나는 ‘선입견’(先入見)이고, 다른 하나는 ‘편견’(偏見)이라고 한다. 그저 웃고 넘기에는 그 숨은 뜻이 가슴을 찌른다. 사실 인간은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견고한 감옥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가볍게 말해서 선입견과 편견이지, 이들은 ‘교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이다. 그래서 신학자 칼 바르트(K. Barth)는 교만을 원죄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이런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두 마리 개를 잡아버리는 한 마리의 특별...  
554 지혜의 열매Ⅴ, ‘긍휼’ 장양식 270     2017-10-08 2017-10-08 14:39
지혜의 열매Ⅴ, ‘긍휼’ 약3:13~18, 마9:9~13 2017. 10/8. 11:00 꽃다발과 사랑 국립묘지 옆에서 묘지를 찾는 사람에게 꽃다발을 파는 꽃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한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꽃다발을 팔고 있었다. 꽃가게 아들이 살펴보니 자기 가게에서 판 꽃다발이었다. 할아버지는 묘지를 돌면서 묘지 앞에 놓여있는 꽃다발을 모아서 파는 것이었다. 자본금 없이 장사하는 분이었다. 이를 본 아들이 화가 나서 자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 노인을 고발해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그렇지 어떻게 남의 산소에 꽃다발을 갖다 팔아요? 차라리 구걸을 하지!’ 그러나 아...  
553 지혜의 열매Ⅳ, ‘양순’ 장양식 337     2017-10-01 2017-10-01 12:55
지혜의 열매Ⅳ, ‘양순’ 약3:13~18, 요8:1~11 2017. 10/1. 11:00 대나무를 생각함 옛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四君子)라고 불렀다. 여러모로 군자의 기품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중에서도 대나무를 으뜸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들은 대나무를 정원에 심어놓고 가꾸었다. 중국의 시성(詩聖) 백거이(白居易)는 대나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나무가 성질이 곧으니 곧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세우고, 속이 비었으나 비어 있음으로써 도를 체득하고, 마디가 곧으니 곧음으로써 뜻을 세운다.’ 시경(詩經)에도 대나무를 일컬어 ‘훌륭한 저 군자여, 잘라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