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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미래, 어린이 전도와 교육

2:6~10

2018. 5/6. 11:00(어린이/어버이 주일)

어린이날의 유감

이스라엘 사람은 어린이를 미래의 건설자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어린이라는 단어와 건설자라는 단어가 어원이 같다. 어린이는 바님’(בנים)이라 하고, 건설자는 보님’(בונים)이라 한다. 그러므로 어린이가 건설자곧 미래의 건설자라는 것이다. 가정의 미래를 건설할 건설자, 교회의 미래를 건설할 건설자, 나라의 미래를 건설할 건설자라는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어린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어린이의 중요성은 어느 나라 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가난과 질병과 전쟁과 학대와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이가 세계에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3백 년 전까지 어린이란 단어도 없었다가 3백 년 전부터 사용했다. 그리고 불과 1백 년 전까지도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래서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소파 방정환 선생을 비롯한 색동회를 중심으로 어린이를 한 인격으로 보고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1922년도에 어린이날이 제정되어 올해로 96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날이 언젠가부터 상업주의에 휘둘리고, 아이들의 무리한 요구에 시달려 부모에겐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날로 전락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참으로 유감스러운 날이 되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중요성을 새겨보며, 어떻게 이 아이를 미래의 건설자로 잘 키워낼 것인가 부모로서 무거운 책임을 갖는 날이다. 교회 역시 교회의 미래를 건설할 건설자인 어린이의 신앙교육과 어린이 전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어린이 전도와 신앙교육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신앙교육의 일차적 책임자는 부모다.

히브리어로 부모라는 단어에는 어떤 모양을 만든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부모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부모는 자녀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보호하고, 잘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부모가 자녀의 모양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부모라는 뜻이다. 아이는 아직 굳지 않은 한 덩어리 진흙과 같다. 그것이 어떤 모양이 될지, 즉 커다란 항아리가 될지, 아담한 쌀독이 될지, 조그마한 장종지가 될지, 혹은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 될지, 하찮게 쓰이는 그릇이 될지, 유익한 그릇이 될지, 무익하고 해로운 그릇이 될지 그것이 부모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부모는 자녀에게 거의 절대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신잉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녀에게 믿음의 전수자, 진리의 전수자,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중요한 존재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미지가 너무 왜곡이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은 자기 부모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육의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비행청소년의 비중이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중국보다 3배가 높은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자녀교육열로는 유대인 못지않고, 신앙인구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런 충격적인 결과가 우리의 현실이다. 이 말은 우리의 자녀교육이나 신앙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교육에 실패하면 모두 사상누각이 된다.

교육의 실패는 모든 것을 사상누각으로 만들어버린다. 본문이 그 증거다. 광야 40년의 생활을 마치고,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했다(여호수아서 내용). 불과 5년 만에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거의 점령하고, 지파별로 분배까지 마쳤다(1). 그 지긋지긋한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정착해서 살게 되었는데, 그 생활이 얼마 못가 주변 나라의 침략을 받아 혹독한 압제를 당하게 되었다(14). 본문을 보면 이런 불행이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전쟁에 참여했던 부모세대가 죽은 다음 곧 일어났다(7).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불과 30~40년만이다. 왜 그들이 이토록 빨리 하나님을 떠나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그 이유가 10절에 나온다.

 

그 세대 사람도 다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10).

 

자녀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자녀에게 교육을 시키지 못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루는 시기라 전쟁하느라 바쁘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영토를 넓혀가는 재미에 빠져 그만 자녀교육은 뒷전이 된 것이다(1:26). 하나님은 말씀대로 전쟁에 승리하여 그들이 채우지 않은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고, 파지 않은 우물을 차지하게 하고, 심지도 않은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여 배불리 먹게’(6:11) 하셨다. 그런데 이를 경험한 부모 세대가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소중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자녀에게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자녀가 하나님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불과 몇 년 만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다 빼앗기게 되었다. 복이 복이 되려면 그 복을 이어갈 수 있는 신앙이 건실한 자손이 있어야 한다(20:6,12). 이를 위해 신앙교육이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성경은 부모가 본을 보이면서 기회 있는 대로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치도록 강조한 것이다(6:4~9). 이것에 실패하면 부모 세대가 피를 흘리며 세웠던 것들이 한순간의 물거품이 되고 만다. 본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까지 우리 한국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교회를 개척하면 사람들이 몰려오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아이들도 북을 치면서 지나가면 골목에서 쏟아져 나왔고 사탕 하나씩만 주어도 교회로 몰려왔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로 들어온 수보다 타종교로 옮기는 수가 많고, 중도에 신앙생활을 포기한 사람도 많다. 연령이 낮을수록 그 수치가 더욱 높다. 그래서 교회성장이 정체에서 쇠퇴로 급속도로 바뀌었다. 특히 교회학교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는 물론 아예 아이들이 없는 교회가 수두룩하다. 정말 어린이를 교회의 미래를 건설할 건설자로 여긴다면 우리 한국교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어떻게 이 암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린이 전도신앙교육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도록 깨우치는 것이다. 위기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하나님을 알자!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1983년에 쓴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지역의 종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50년 전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러시아에 불어 닥친 재앙에 대해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문제다. 이것이 우리가 이런 재앙을 당하는 이유다. 그후 나는 러시아의 혁명역사를 50년 이상 연구했다 수백 권의 책을 읽었고 수백 권의 개인적 체험담과 전기를 읽었다. 8권이나 되는 책을 손수 써서 이 문제를 파헤쳐보기도 했다. 6천만 명이나 삼켜버린 무시무시한 혁명의 주요원인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보라 한다면 나는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보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문제다. 이것이 우리가 이런 재앙을 당했던 이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할 때 역사도 개인도 불행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역사도 인생도 진공상태로 머물 수 없다. 결국 하나님이 없으면 그 자리에 유한하고, 썩어지고, 부패할 세상적인 것과 마귀적인 것이 채워지게 되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인생이나 역사의 결말은 불행 그 자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과 솔제니친 시대의 러시아가 잘 대변하고 있다. 개인이나 역사의 진정한 미래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돌아서게 하는 방법이 전도. 또한 신앙교육이다. 특히 미래의 건설자인 어린이를 전도하여 그들로 하나님을 아는 신앙,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아는 신앙으로 무장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가정의 미래, 교회의 미래, 국가의 미래를 바로세우는 길이다. 특히 7절에서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여호와를 섬겼더라.는 말씀에 주목하자! 여호수아와 같은 큰 인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영적 영웅이 사는 동안에는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다. 시대에 빛을 비출 수 있는 여호수아와 같은 걸출한 인물을 길러내는 일이다.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시대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되고, 섬기게 되고, 따르게 된다. 이렇게 한 번 외쳐보자! ‘주님, 이 시대의 빛을 키우는 우리 가정, 우리 교회가 되게 하소서! 이 시대를 밝히는 복음의 빛이 우리 자녀 중에서,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게 하소서!이런 인물도 전도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 교회의 미래는 어린이 전도와 신앙교육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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