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침묵

8:1~11

2018. 7/15. 11:00

타우라스(Tauras)의 두루미

타우라스(Tauras)라는 산이 있다. 현재 터키남부에 있는 토로스(Toros) 산맥이다. 이 산은 독수리 서식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독수리의 가장 좋은 먹이는 두루미인데, 두루미들이 타우라스 산을 넘을 때면 독수리들은 포식을 하는 날이다. 두루미가 독수리의 먹이가 되는 것은 시끄럽게 울면서 날기 때문이다. 이 울음소리로 독수리들은 먹잇감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나이 많은 노련한 두루미는 타우라스 산을 수없이 넘어도 거의 희생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행을 떠나기 전 입에 돌을 물고 날기 때문이다. 돌을 문 두루미는 돌 때문에 소리를 내지 못하니까 독수리에게 발견되지 않고 무사히 산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말의 지혜로운 사용을 위한 교훈으로 자주 사용되어 온 유명한 이야기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더 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화근이 되기도 하고 사단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성경에 나온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잘못된 언어사용에 대한 심판이고, 경고다(9:).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말을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의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의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말의 잘못된 사용으로 곤욕을 치룬 사람들이 많다. 지난 6.13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얼마 앞두고 어느 야당 대변인이 적절하지 못한 말을 해서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그 당에서 탈당을 해야 했고, 의원직 사퇴압박까지 받았다. 한 마디 말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말에 대한 교훈이 많은 것이다. 명심보감은 입을 화를 부르는 문’(口禍之門)이라고 했다. 우리가 어려서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듯 수리수리 마수리 얍!!!했던 놀이도 말과 관련이 있다. 이는 천수경(千手經)이라는 불경 첫 머리에 나온 말로 원래는 이렇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修里修里 摩訶修里 修修里 娑婆訶). 이것은 마법의 주문이 아니라 불경을 읽기 전에 입으로 지은 죄를 정화(淨口業眞言)하는 진언이다. 먼저 이것을 세 번을 외운 다음 불경을 읽는데,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뜻이다. 즉 입()이 깨끗하면 좋은 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히브리어에도 주문처럼 사용되는 말이 있다. ‘아브라 카다브라’(אברא כדברא). ‘네가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뜻이다. 이 역시 무슨 말을 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네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되게 하시니까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언어생활의 제동장치(브레이크), 침묵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말의 실수를 줄일 수 있을까? 화를 부르는 문(之門)에서 복을 부르는 문(之門)으로 우리의 입()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 답은 타우라스의 두루미이야기에 있다. 침묵훈련이다. 내 말을 멈춰야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고, 잘 들어야 적절하게 말을 잘 할 수가 있다. 그러면 복을 부르는 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복을 부르는 언어생활을 위해 침묵훈련이 꼭 필요하다.

 

내가 자동차 운전을 시작한지가 거의 30년이 되어 간다. 가끔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면 자동차의 제동장치의 중요성을 생각한다. 사실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맘껏 달릴 수 있는 것은 제동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엔진만큼 중요한 것이 제동장치다. 아무리 엔진이 좋아도 제동장치가 말을 듣지 않으면 말 그대로 그것은 재앙이다. 제동장치가 고장난 폭주기관차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제동장치는 자동자의 안전장치다. 달릴 때 속도를 줄여주고, 멈춰야할 때 멈추게 하여 사고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방향을 전환할 때도 제동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언어생활에 있어서 침묵이 자동차의 제동장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침묵은 말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말의 실수를 막아주는 안전장치다. 또한 화를 부르는 말에서 복을 부르는 말로 방향을 전환시켜주는 장치가 침묵이다. 침묵은 말을 자제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예수님은 침묵의 생활에 있어도 우리의 모범이시다. 이 시간에는 주님의 침묵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주님의 침묵

성경에는 주님께서 침묵하신 장면이 두 번 나온다. 하나는 오늘 본문이고, 다른 하나는 생애 마지막 주간에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거짓 증거로 주님을 고발해도 주님은 아무런 변명도 없이 그저 침묵하셨다. 재판석에 앉은 빌라도가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변호의 기회를 주어도 주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우선은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53:7a), 침묵을 통해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한 것이다. 다음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변명도 없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선 아무리 억울하고 힘들어도 변명하지 않고 꾹 참고 침묵해야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애매히 고난을 받으면서도 주님을 생각하며 한 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하며 견뎠다(김은국의 순교자에 나온 신 목사처럼).

 

그리고 또 하나의 침묵사건이 본문이다. 본문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사건인데, 그것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뢰할 만한 사본에는 빠져있어 우리 성경에서는 ( )로 처리되어 있다. 본문에서 주님은 침묵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셨다. 7장에서부터 주님과 유대교 지도자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어 그들이 주님을 체포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자 본문에서 이런 함정을 만든 것이다. 내용인 즉, 주님께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 아침 일찍 성전에 가시니 유대교 지도자들이 각기 손에 돌을 들고 한 여인을 짐승처럼 끌고 와서 주님 앞에 세우고 외쳤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종교의 본질인데 생명을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다. 이 한 장면으로도 당시 유대교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이 여자는 음행현장에서 붙잡혔소. 모세의 법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돌로 치라고 했소. 선생은 어떻게 하겠소?사실이라면 율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을 굳이 주님께로 데리고 와서 묻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의견을 듣고자 함이 아니라 주님을 무너뜨리기 위한 함정이다. 그러니 이 사건에는 두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었다. 이제 주님은 꼼짝 없이 그들이 만들어놓은 덫에 걸려들게 되었다. 이 때 주님께서 보이신 태도가 침묵이다. 한 동안 대답을 재촉하던 그들도 잠잠해졌다. 주님께서 침묵을 하시자 그들도 침묵하게 된 것이다. 침묵은 침묵을 낳기 때문이다. 그 때 주님께서 입을 여셨다. 그리고 천금 같은 한 말씀을 하시고 다시 침묵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 이로써 주님의 승리로 상황이 종료되었다.

 

침묵의 힘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이다. 적절하지 않는 말을 그치고 꼭 필요한 때 필요한 말을 하게 하는 것이 침묵이다. 주님의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주님의 적절한 말 한 마디가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켰다. 이것이 침묵의 힘이다. 또한 침묵은 입을 닫고 마음과 귀를 활짝 여는 것이다. 주변의 소리, 특히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침묵이다. 흥분하여 답을 재촉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이들은 무슨 엉뚱한 소리냐며 더욱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주님을 항해 돌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님은 기다리셨다. 그들이 잠잠할 때까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묵할 때까지 기다리셨다. 그들이 말을 멈추고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주변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그러자 이 말씀은 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단지 현행범이 아니라는 것 외에 자신 역시 이 여인과 다르지 않다는 내면적인 자기 성찰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젊은 사람까지 모두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 또한 침묵의 힘이다. 주님의 침묵영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른 아침부터 피바람을 일으킬 끔찍한 사건을 주님의 침묵이 해결한 것이다

 

기도가 곧 침묵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이와 같은 침묵영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주님의 기도생활이다. 7장 마지막 53절을 보면. 저녁이 되어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8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주님은 감람산으로 가셨다.’(1). 그곳에서 밤을 꼴딱 새고 아침 일찍 성전으로 돌아오셨다(2). 감람산에서 밤을 보냈다는 것은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는 뜻이다. 감람산은 주님의 기도장소였다. 이와 같이 기도생활은 주님의 습관이었고, 이런 습관적인 기도생활이 침묵영성이 된 것이다. 흔히 기도의 한 방법으로 침묵기도란 말을 하는데, 침묵기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가 곧 침묵이다. 기도는 세상을 향하여 입을 닫고 주님을 향하여 입을 여는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귀를 막고 주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이 기도다. 기도는 세상에 대하여 눈을 감고 주님을 향하여 두 눈을 크게 뜨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마음의 창을 닫고 주님을 항한 마음의 창을 활짝 여는 것이 기도다. 세상과 내 자신에 대한 침묵에서부터 참된 기도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에바그리우스(Evagrius)라는 영성가는 기도를 이렇게 정의했다. ‘기도는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다.기도는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 주님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기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침묵훈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주님께 사로잡히고, 주님께 집중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기도가 이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기도가 곧 침묵인 것이다. 우리 모두 주님처럼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통해 침묵의 사람이 되자. 그러면 우리 또한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고, 삶의 어려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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