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열정

2:13~22

2018. 7/29. 11:00

열정이 차이를 만든다.

동기부여 전문가 팻 윌리엄스(Pat Williams)는 그의 책에서 마이클 조던을 농구의 신으로, 그리고 20세기를 빛낸 영웅으로 우뚝 서게 한 그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런데 그는 조던의 현란한 플레이와 농구기술, 체력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화려한 재능 이면에 숨어있는 조던의 피나는 노력, 뛰고 있는 경기마다 100% 몰입하는 집중력, 열정, 집념, 승부근성 등을 꼽았다. 한 번은 농구캠프에서 한 참석자가 조던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했나요?그러자 조던이 말했다. ‘시간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시계를 본 적도 없고요. 지칠 때까지, 아니면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연습했습니다.한 마디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그를 농구의 신으로 만든 것이다.

 

어느 집단에서든지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열정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통로다. 그리고 이 열정은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열정 자체가 의미는 아니지만 의미가 열정을 품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간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이미 성공한 삶이고, 또한 의미 있는 삶이다. 맥도날드의 창업자 레이 크록(Ray Kroc)의 말이다. ‘사업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라 열정이다.사업은 지식이나 학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으로 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하든, 예술을 하든,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신앙생활을 하든 중요한 것 하나가 열정이다. 열정이 있어야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열정이 차이를 만든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열정의 사람이었다. 지난 번 전도에 대한 설교에서 자주 언급했지만 사도바울은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으로 일생을 보냈다. 자신의 안일과 안락함은 뒤로하고 오직 맡은 일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불태웠다.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소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뻗어갔고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열정이 식어지는 그날이 바로 우리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주어진 일에 열정을 다하는 것이다.

 

열정의 온도보다 중요한 방향

어떤 분이 도적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도적은 자기가 하는 일, 곧 도적질을 위해서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을 세운다. 만약 준비가 소홀하거나 계획이 잘못되면 소득이 없음은 물론이고 감옥에 가야하기 때문이다(준비성과 계획성). 또한 도적은 도적질을 위해 남의 집 담을 넘을 때마다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한다(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다시 말하면 준비성과 계획성,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고, 또한 모든 사람 모든 것을 배움의 기회로 선용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도적의 이런 준비성이나 계획성,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을 칭찬하기보다 오히려 위험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방향이 잘못되면 위협이 된다. 같은 바람이지만 순풍은 도움이 되지만 역풍은 위협이 된다.

 

열정도 마찬가지다. 열정이 중요하지만 이 열정의 온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열정의 방향이다.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느냐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고, 열심히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을 버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열정에도 방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방향이 없는 맹목적인 열정을 성경은 지식 없는 열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을 말하고 있다. “지식 없는 소원(열정)은 선하지 못하고”(19:2). 지식 없는 맹목적인 열정은 자칫 광기(狂氣)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주님을 만나기 전 바울의 열정이 좋은 예다(9:1,2). 그래서 이 시간에는 주님의 열정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 될 열정과 그 방향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주님의 분노

예수님은 한 마디로 열정 맨이셨다. 복음서에 소개되고 있는 주님의 삶과 사역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식사하실 겨를도 없을 만큼 열정적으로 섬기며 사셨다(3:20). 밤을 지새며 열정적으로 기도하셨다(8:1). 잃어버린 영혼을 열정적으로 찾아다니셨다(4;,5:). 본문 역시 열정적인 주님의 삶을 보여준다. 본문은 편의주의에 편승한 상업주의, 형식주의에 물든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주님의 거룩한 분노다(구체적인 설명은 생략).

 

그런데 본문의 저자는 주님의 이와 같은 분노를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17)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시편의 말씀(69:9)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무척 사랑하셨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셨던 그 성전에서 기도소리 대신 짐승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고, 찬양소리 대신 동전 바꾸는 소리, 감사의 소리대신 장사꾼의 호객소리만 가득하니 주님이 분노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본문에 당시 주님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동사가 세 개 나온다. ‘내쫓으시고’(throw out), ‘쏟으시며’(scatter), ‘엎으시며’(overturn). 무척 단호하고 과격한 주님의 행동을 보여주는 동사들이다. 동시에 이 동사들은 성전에 대한 주님의 열정을 잘 대변하기도 한다. 그토록 자상하시고 온유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과격하게 행동하신 것은 성전을 향한 주님의 사랑과 열정이 그만큼 크고 강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주님의 열정이 단지 성전을 향한 사랑과 열정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성전을 성전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 마디로 성전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성전의 본질을 훼손한 사람들에 대한 경고였다. 성전의 본질은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집’(16)이라는 말씀 속에 잘 나타난다. 하나님은 성전의 주인이시고 머리시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으로서, 때로는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시되었다. 성전은 오직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봉헌되었다(11:17). 그런데 유월절에 주님께서 성전을 방문하셨을 때 주님의 눈에 비친 성전의 모습은 성전의 본질과는 매우 다르게 심히 오염되어 있었다. 소위 장사하는 집’(16), ‘강도의 소굴’(11:17)이 되어 있었다. 사실 종교적 열정으로 말하면 유대인을 따를 수 없다(18:11,12, 23:23). 그런데 주님을 통해 그들의 열정이 잘못된 열정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저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엔 하나님의 집인 성전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성전을 찾아온 예배자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열정의 상징의 분노의 채찍을 휘두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빗나간 열정에 분노의 채찍을 휘두르신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그때는 노끈으로 만든 채찍이었지만 끝 날에는 쇠몽둥이라는 사실이다(2:27).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열정과 그 열정의 방향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열정 가꾸기

그렇다면 우리의 열정은 유대인과 다를까? 보너(Boner) 박사라는 분이 하루는 꿈을 꾸었다. 꿈에 천사가 나타나 그의 열정을 저울에 달아보겠다고 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열정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구나 생각했다. 그의 열정을 저울에 달아본 천사가 말했다. ‘당신의 열정은 100kg입니다.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여러분의 열정은 몇 kg이나 될 것 같은가?(적어도 자기 몸무게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천사는 곧이어 그의 열정내용을 분석해 보여주었다. 100kg의 열정 중에 50kg은 이기적인 열정이고, 25kg은 당파를 짓는데 사용한 열정, 22kg은 자기의 명예를 위한 열정, 단지 3kg만이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었다. 우리 열정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우리 역시 주님 당시 유대인들처럼 주님을 위한다는 명분만 앞세우고 실상은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지 않은지 깊이 따져볼 일이다.

 

본문에서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열정을 가져야할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진짜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주님의 몸이다(19,21). 그리고 그 몸은 곧 교회다(1:24). 주님을 위한 열정,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한 열정이 올바른 열정이고, 열정의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우리의 열정을 쏟아야할지가 분명해졌다. 그것은 주님과 주님의 몸인 교회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님께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을 비롯하여 주님을 섬기는 모든 행위 즉 예배, 기도, 찬양, 전도 등에 열정을 쏟는 것이다. 자신의 야망실현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 자기만족을 위한 찬양이 아니라 입술의 열매로서 드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과 같은 찬양, 교회의 숫자를 채우기 위한 전도가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여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전도,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듣기 위한 섬김이 아니라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그 몸의 지체인 성도를 세우기 위한 섬김, 생명력을 잃어버린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성이 가득한 예배에 열정을 쏟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열정을 가꾸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 모든 영역에 열정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도록 하자! 한국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간 어느 목사님께서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미치자. 크게 미치자. 예수를 위해 미치는 것만이 우리의 목적이다.주님을 위한 열정이 아니고는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그분의 지론이다. 이것이 우리의 거룩한 고백이고, 거룩한 신념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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