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섬김

13:1~15

2018. 8/26. 11:00

섬김의 르네상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지금 우리 사회는 섬김의 르네상스라고 했다. 섬김이란 말이 이 시대의 화두(話頭)가 되었다는 뜻이다. 사실 교회에서 목회자나 성도는 물론 정치하는 사람이나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요즘처럼 이 단어가 자주 입에 오르내린 적이 없는 듯하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섬김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섬김이란 단어는 중요한 우리 기독교 용어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배에 섬김(Service)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기독교 사역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봉사(διακνία)라는 단어나 봉사를 주무로 담당하는 직분으로 세워진 집사(διάκονος)라는 단어의 어원도 모두 섬김(διακονέω)에서 왔다. 아무튼 이와 같은 우리 기독교 용어가 사회 전반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섬김이라는 기독교 정신이 사회에서도 통용이 되고, 또한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과 올바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섬김이란 단어가 상당히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겉으로는 섬긴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수사(修辭)로 섬김을 이용한 예()가 많다. 요즈음 한창 논란의 중심에 있는 머슴목회를 표방한 어느 목사를 비롯하여 섬김의 정부를 내세운 정권, 섬김의 리더십을 주장한 어느 정당대표 등. 섬김이란 말이 자주 사용되다보니 이런 부정적인 사례도 늘어나는 것 같다. 이러다 자칫 이 아름다운 단어가 웃음거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섬김의 올바른 의미

칼 바르트는 섬김을 이렇게 정의 했다. ‘섬김은 자기의 목적이나 계획이 있음에도 타인의 필요와 의도와 지시에 따라 행동할 때의 의지(Will)와 수고(Working)와 행동(Doing)이다.말만 앞세우고 뒤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섬김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이나 목적보다 타인의 필요나 요구에 응하려는 의지, 대가를 지불하는 수고, 그것을 실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성도는 주님을 위해, 그리고 주님의 몸인 교회와 지체를 위해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계획이나 목적을 뒤로 하고 주님의 뜻과 요구에 따르려는 의지(Will), 그것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수고(Working), 또한 묵묵히 실천(Doing)하는 삶이다. 이것이 섬김의 삶이고 이런 삶을 통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더욱 빛나게 된다. 본문에서 이와 같은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주님을 만날 수가 있다

 

예전(禮典)보다 섬김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저녁이었다. 주님은 제자들과 이 땅에서 마지막 식사를 가지셨다. 다른 복음서들은 이 식사를 성만찬 제정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요한복음은 그저 일상적인 식사로만 소개하고, 다른 복음서에 없는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사건(세족사건)을 기록하여 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반()성례전적인 복음서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인 것 같다. 적극적이지는 않아도 요한복음에도 세례(1:31)와 성찬(6:52~58)에 대한 말씀이 언급되고 있다. 단지 요한복음이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더 집중한 것이라 생각한다. 성례를 거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삶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종처럼 자신을 낮춰서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섬김을 이토록 강조하신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에는 생략이 되었지만 예루살렘으로 오는 도중 제자들 사이 심각한 언쟁이 있었다. 주님은 이번 예루살렘 여행이 생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지도자들에게 붙잡혀 죽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자신들의 편의대로 받아들였다. 드디어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거사를 일으켜 나라를 로마로부터 독립시키고, 로마의 꼭두각시 헤롯 왕가를 몰아내고 주님이 직접 왕위에 오를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소 충돌은 있겠으나 주님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주님은 마음이 답답하고 발걸음이 무거운데 제자들은 들떠 있었다. 이런 제자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있었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다. 그녀가 주님을 찾아가서 왕이 되시면 두 아들 중 한 아들은 주님의 우편에, 다른 아들은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소위 치맛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다른 제자들에게 알려져 심한 언쟁이 일어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주님께서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은 이방 집권자들이나 하는 짓이고, 자신은 섬기기 위해 오셨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위해 목숨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으뜸이 되려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10:42~45). 하지만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했고, 이런 불편함이 계속되어 마지막 식사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올바른 섬김의 모범

율법에 따라 유대인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전에 발을 씻고, 식사하기 전에 손을 씻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은 이런 과정을 건너뛰고 식사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발을 씻고 손을 씻으려면 먼저 주님께 물을 떠다 드리거나 발을 씻겨드려야 했다. 이것이 스승에 대한 제자의 예의다. 하지만 누구도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위신이 깎기고, 위치 경쟁에서 밀린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아예 발을 씻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고, 손을 씻지 않고 식사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식사 중간에 갑자기 일어나셔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 하나하나의 발을 씻어주셨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니까 몸소 실천하여 제자들에게 섬김의 중요성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것은 당시 제자들 사이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님은 성만찬 제정보다 섬김의 실천을 강조하신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점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섬기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구가 나온다(4,5,1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이들은 섬김의 자세와 방법, 그리고 중요성을 보여준다. ~는 섬기는 자세와 관련된 모습이다. 이는 당시 주인을 섬긴 종이나 하인의 모습이다.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종이나 하인처럼 낮춰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섬김(service)이란 단어와 종이나 하인(servant)을 뜻하는 단어가 어원이 같은 것이다(serve). 역시 섬김의 자세를 보여준다.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선 계급장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다. 이는 섬김의 긴급성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곳을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서 읽으면 주님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지금 이 식사는 일반적인 식사가 아니다. 성만찬을 거행하고 있는 엄숙한 식사였다. 그런데 주님은 그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이다.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인 행동이다! 이는 섬김의 긴급성과 중요성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성찬예식을 거행하다말고 주 또는 선생이란 계급을 떼고 자신을 종처럼 낮추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이다.

 

성도에게 예배보다 중요한 일이 없지만 예배자가 먼저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가 있다(5:23,24). 서로 사랑하는 마음, 서로 존중하는 마음, 서로 감사하는 마음, 서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 서로 화목한 마음, 서로 하나된 마음이다. 그런데 서로 으뜸이 되려고 하면 반드시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관계가 불편해진다. 파이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을 서로 가지려고 하니 다툼은 불가피한 것이다. 반면에 자신을 낮추어 섬기면 하나가 되고, 화목이 일어난다. 섬김이 있는 곳에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편안이 있다. 섬김이 있는 곳에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천국은 섬기는 곳이다.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래서 주님은 성찬예식을 거행하시다말고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면서 섬김을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가 속한 가정, 교회, 직장, 사회를 천국으로 만들라고 말이다.

 

섬김은 사명이다

스코틀랜드의 많은 가정이 이런 표어(가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섬기기 위하여 구원받았다.’(Saved to serve). 섬김이 구원의 중요한 목적이고 사명이라는 뜻이다. 사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섬김을 모르는 삶은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삶이다. 다시 말해 구원의 감격이 깊은 사람은 섬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주님은 물론이고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서다. 우리를 날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신 것도, 하루하루 생명을 이어가게 하신 것도, 건강을 주신 것도, 명예를 주신 것도, 물질을 주신 것도 섬기기 위해서다. 우리의 몸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섬김의 도구로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인생은 탁구 경기와 같다. 탁구에서의 서브(섬김)는 승패를 좌우하는 기술이다. 서브 하나로 승점을 올리고,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는 경우가 많다. 인생도 서브를 잘 해야 한다. 섬김을 잘 해야 한다. 잘 섬기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다. 잘 섬기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 잘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잘 섬기는 사람이 또한 잘 믿는 사람이고, 천국을 누리는 사람이다. 인생의 성패는 서브(섬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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