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축복하심

24:50-53           

2018. 9/23. 11:00

작은 것이 중요하다!

미국 과학전문 잡지 라이브 사이언스에 실린 내용이다. 지구상의 생물 중에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생물 10을 선정하여 발표했는데, 제일 위험한 것이 연간 2백만 명을 죽게 하는 모기라고 한다. 모기는 말라리아 등의 질병을 일으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가장 위협적이고 치명적이라고 했다. 2위는 매년 5만 명 이상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코브라, 3위는 60명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맹독을 지닌 호주산 박스 해파리, 그 뒤를 이어 북극곰, 독개구리, 백상어, 코끼리, 아프리카 물소 순이었다. 놀라운 것은 가장 작고 연약한 것이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크고 중요한 것보다 작은 것, 사소한 것이 치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틈이 큰 방죽을 무너뜨리고,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큰 건물이나 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1차 세계대전도 세르비아 청년의 총 한 방에서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작고 사소한 죄, 염려, 분노, 습관, 말 한마디가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에서 특히 경계하며 무서워해야 할 것이 이다(3:2).

 

소중한 말

말은 참으로 소중한 축복이고 도구다. 성경이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첫 장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천지창조의 마지막 순서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1:27) 창조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존재를 뜻한다. 한 마디로 특별한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 특별함의 중심에 이 있다. 말로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료 인간과 교제가 가능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과 최초의 언약을 세우셨고(2:17), 각종 짐승과 새의 이름을 짓게 하는 최초의 사명을 주셨다(:19). 말로서 이뤄진 사건들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소중한 말을 잘못 사용하였다.

 

하나님과의 교제, 동료 인간과의 교제를 위해 사용해야 할 이 말을 사단의 하수인 뱀과 교제하는데 사용했고,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말, 경건하지 못한 말들이 오고가면서 죄를 짓게 되었다(3:1~6). 신령한 교제의 도구로 주어진 말이 죄를 짓는 도구가 된 것이다. 더 이상 말은 하나님과 교제의 도구,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도구,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구가 되었다.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도구가 되었다. 수많은 범죄가 말과 관련되어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말 한 마디가 다툼의 원인이 되고, 상처를 주고, 낙담하게 하고,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히게 하고, 무너지게 하고, 분노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이런 우리의 말을 회복시켜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주님은 복을 빌어주는 축복의 말씀을 많이 하셨다. 본문 역시 그 중에 하나다. 본문을 통해 주님의 축복하심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축복하시는 주님

주님의 삶은 축복하시는 삶이었다. 복음서에는 주님께서 축복하시는 모습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어린이를 안고 축복하시고,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성만찬을 축복하시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식사 자리에서 축사하셨다. 특히 산상보훈에서는 8개의 복을 선포하셨고(5:3~10), 평행본문인 누가복음에서는 4개의 복을 선포하셨다(6:20~23). 본문도 그 중 하나다. 누가복음에만 나온 기사로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 앞 감람산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축복하셨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시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50). 단 며칠이지만 그 동안은 제자들에겐 엄청난 충격의 시간이었고,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3년 동안 모셨던 주님이 민란을 주도한 반역자로 몰려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셨다. 제자들은 자신들 또한 한 패거리로 몰려 죽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그런데 주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그들에게 돌아오셨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그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베다니 앞(동쪽) 감람산까지 걷게 된 것이다. 한 번 상상해 보라! 얼마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가? 제자들은 얼마나 감회가 깊고 행복했을까!

 

그런데 이것은 긴 이별을 위한 준비였다. 주님께서 이곳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이다. 본문은 주님께서 감람산에 도착하여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서둘러 하늘로 올라가신 것으로 되어 있으나 사도행전은 다른 일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얼마 있지 않아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 성령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당부, 성령을 받으면 증인이 되라는 명령이다(1:4~8). 종합하면 주님은 약속, 당부, 명령을 하신 다음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이다. 사도행전이 누가복음 후속이니 전편을 마치면서 약술을 하고 후편을 시작하면서 이를 자세하게 언급한 것이라고 본다. 결국 본문은 주님과 제자들의 이별장면인데, 이 이별을 주님은 축복기도로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복을 빌고 그냥 떠나시는 주님의 뒷모습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가?

 

사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나그네 인생길을 마칠 때 자녀나 후손, 민족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했던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등). 주님도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신 것이다. 예배순서에서 마지막을 축도로 끝맺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축복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단순히 예배의식에만 머물러있고, 삶에서 실천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주님께로 이끌어야 할 사회, 주님께로 인도해야 할 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이유가 여기 있다. 많은 교회들, 특히 내 노라 하는 큰 교회들의 뒷모습이 아름답지를 못한 것이다. 주님처럼 축복하고 그냥 떠나지 못한데 있다. 아무튼 막론하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주님을 본받지 못한 것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모쪼록 우리는 끝을 항상 축복하는 것으로 마치자! 마지막 자리, 마지막 순간에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믿음을 갖자! 그리고 떠나자!

 

크게 기뻐하는 제자들

본문은 또한 주님의 축복기도를 받은 제자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52,53). 이별의 자리는 아쉬움이 남고, 정들었던 감정이 작용하여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자들은 도리어 크게 기뻐하였다. 자신들의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과 이별의 아쉬움보다 감사와 기쁨이 더 컸다는 뜻이다. 주님의 축복기도에 제자들이 크게 은혜를 입고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이 슬픈 일이지만 도리어 기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제자들이 크게 변했다는 점이다. 사실 그들은 주님께서 잡혀가실 때는 두려워서 뿔뿔이 흩어졌고 주님을 모른다고 발뺌했다. 심지어 저주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지금은 흩어지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늘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몇 날이 못 되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를 받았고(2:1), 어디서나 주님을 증거하는 담대한 증인이 되었다. 주님의 축복기도가 이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자!

이 땅에 참된 복을 주시러 오신 주님은(2:10), 이 땅을 떠나 하늘로 돌아가실 때에도 복을 빌어주셨다. 이와 같이 복을 빌어주시는 주님의 축복기도가 제자들에게는 큰 기쁨을 안겨주었고, 오늘 우리에게는 복을 빌어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에게서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한다면 주님처럼 진심으로 복을 빌어주어야 한다. 주님처럼 복을 빌어줄 때, 축복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주님께서 지상생애를 마무리하시며 제자들을 축복하시는 모습이 우리에게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주님을 통해 이 사실을 온 몸으로 체험한 베드로도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8,9). 여기서 베드로는 우리를 못되게 구는 사람에게까지도 복을 빌어주라고 말한다. 우리가 복을 빌어주기 위해 부름을 받았고, 복을 빌어줌으로 주님의 복을 그가 이어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을 빌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말을 헨리 나우엔도 했다.

 

축복받은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을 축복합니다. 사람들은 정말 축복받기를 원합니다. 어디서나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저주나 험담, 고발이나 비난으로 얼룩지게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늘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어두움, 파괴, 죽음을 부릅니다. 축복받은 사람인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노력을 많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고 우리를 축복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 어둠이 우리를 더 이상 혼란스럽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사랑받는 자로 부르시는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알게 하실 것이며, 그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축복받은 존재임을 그들 자신에게 드러내주실 것입니다.’(아침을 여는 명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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