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붙잡아주심

14:22~33

2018. 11/11. 11:00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찬양인도자 토마스 도르세이(Thomas A, Dorsey) 이야기다. 그는 12살 때부터 파티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돈을 벌 정도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다. 1925년 네티 하퍼(Nettie Harper)와 결혼 후 교회에 나갔고, 영적 체험을 했다. 1932년 시카고 필그림 침례교회의 지휘를 맡게 되어 40년간 계속했다. 1932년 가을 도르세이는 만삭된 아내를 집에 남겨두고, 세인트 루이스에서 열리는 부흥집회에 초청을 받아갔다. 그가 집회에서 찬양을 인도하려는 순간 전보가 왔다. 시카고에 사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였다. 그는 집회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아내는 벌써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고, 뱃속에는 얼굴도 보지 못한 아들이 있었다. ‘전보를 받는 순간 집에 왔더라면 당신 음성이라도 들었을 텐데하고 죽은 아내를 끌어안고 한없이 울었다. 그런데 그날 밤, 갓 태어난 아기마저 죽고 말았다.

 

아내와 아기를 같은 관에 넣어 장사를 지내고 집에 돌아온 그는 감당 못 할 슬픔에 잠겼다.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찬송을 부르거나 작곡하지 않고 교회도 다니지 않겠다고 맘먹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고 울부짖었다. 그때 한 친구가 찾아와 말없이 그를 피아노앞에 앉혀두고 나왔다. 저녁노을과 넘어가는 햇살이 피아노 건반을 비췄다. 그 때 그가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놓고 연주를 시작했다.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얼굴은 한없이 평화롭게 보였다. 그때 탄생한 곡이 유명한주님여 이손을 꼭잡고 가소서이다.

 

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깨진 유리 조각도 예술가의 손을 거치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된다. 깨진 유리 조각에 햇빛이 비치면 수정처럼 반짝인다. 인생의 시련도 주님의 손을 거치면 보석이 되고, 상처에도 은혜의 빛이 비치면 영광의 광채가 난다. 찬양 사역자 도르세이에게 아내와 아들의 죽음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아픔이고 상처지만 그로 인하여 인생의 폭풍우를 만나 흑암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회복을 주는 불후의 명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을 했는데,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곳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었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0).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강한 팔로 붙잡아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모든 상황을 역전시켜 아름답게 유익하게 빛나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신다(8:28). 이 시간에는 위기 가운데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붙잡아(회복시켜)주시는주님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본문은 주님께서 밤중에 갈릴리 호수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는 제자들을 물위로 걸어오셔서 구출하여 주신 사건이다. 같은 사건이 마가복음요한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본문에는 이 사건 속에 베드로의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 삽입된 짤막한 이야기에 베드로의 도전-실패-회복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베드로의 에피소드는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다. 인생이란 도전-실패-회복의 연속이다.

 

주님께서 풍랑을 밟고 물위로 걸어오시자 다들 유령이라고 혼비백산했다. 그런데 베드로만이 두려움 속에 우뚝 서서 외쳤다.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위로 오라 하소서.”(28). 야심차게 도전을 한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라”(29). 그래서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뚜벅뚜벅 걸어서 주님께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못가 그만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바람을 보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분문은 말씀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고 발걸음을 옮겼을 때는 주님처럼 물위를 걸을 수 있었으나 바람으로 인해 거친 파도가 요동치는 바다를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멋진 도전이 참담한 실패로 끝이 났다. 베드로가 도전하기 전이나 도전하여 실패할 때나 상황이 바뀐 것은 없다. 모두가 그대로였다. 단지 베드로의 시선이 주님에게서 바람으로 바뀐 것뿐이다. 반석이신 주님께 시선을 두었을 때는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물위를 걸을 수 있었는데, 흔들리는 바람에 시선을 두자 그의 인생이 심하게 흔들리며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시선을 두고 마음을 두는 것에 흔들릴 수밖에 없고, 또한 거기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세상 것에 시선을 두고 마음을 두면 세상 것에 사로잡힌다. 두려워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걱정하고 염려하면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힌다. 의심하면 의심에 사로잡히고, 미워하면 미움에 사로잡힌다.

 

즉시......붙잡으시며

다행이 베드로는 자신의 처한 상황을 속히 파악했고, 회복의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주님을 찾는 것이다.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것이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Κυριε, σωσον με!)”(30). 그러자 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주셨다. 회복시켜 주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생의 거센 바람과 풍랑을 헤치고 나가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주님을 찾는 것, 그리고 주님께 부르짖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신다. 주님의 팔은 길고, 강하고, 튼튼하다. 그래서 인생의 어떤 수렁에서도 우리를 끌어올려주시고, 어떤 시련의 풍파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든든히 서도록 붙들어주시고, 또한 붙잡아주신다.

 

여기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씀을 좀 더 따져보겠다. 우리 성경은 청원(간구)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원문은 부정과거명령형으로 되어있다. 헬라어에서 부정과거명령형은 권위를 가진 사람이 무조건적으로 수행해야 할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한다. 군대 신병신고식에서 선임이 신병에게 안거! 인나!와 같은 명령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시간적으로 긴급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길을 가는데 강도가 칼로 다리를 찌르고 가방을 뺏어 달아날 때, ‘강도야, 저놈 잡아라!와 같은 것이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도 이렇게 위기에 처한 사람이 긴급하게 외칠 때 부정과거명령형을 사용한다. 본문은 베드로의 이 외침을 부정과거명령형을 사용하여 그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즉 베드로가 지금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베드로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베드로가 단말마적으로 외치니까 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31)주셨다. ‘즉시그를 건져주셨다. 이것은 우리의 태도와 주님의 반응이 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튼 주님은 물속으로 빠지고 있는 우리도 붙잡아주신다. 우리도 건져주신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베드로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부르짖어야 한다. 사람마다 위기를 말한다. 사회도 위기고, 경제도 위기고, 정치도 위기라고 한다. 교회도 위기고, 신앙도 위기라고 한다. 총체적으로 위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위기를 말하면서 주님께 부르짖지를 않는 것이다. 나는 어떤 현상이 위기가 아니라 주님께 부르짖지 않는 이것이 위기라고 생각한다. 주님을 찾아야 한다. 간절히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그래야 풍랑을 뚫고 우뚝 설 수 있다.

 

주님의 팔이 되고, 손이 되자!

어느 교회 교회학교에서 예수님 그리기를 했다. 아이들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흔히 성화에서 보는 금발의 백인남성 모습, 십자가에서 가시면류관을 쓰고 피 흘리는 모습, 양을 안고 있는 모습, 혹은 양을 먹이는 모습 등을 그렸다. 그런데 한 아이는 좀 특이하게 그렸다. 땅에 끌릴 만큼 긴 팔에 손가락이 굵직한 큰 손을 가지신 모습이었다. 그의 그림을 본 아이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키득거렸다. 선생님이 보기에도 이상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이렇게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이유를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품어주시고, 붙잡아 주신다기에 그러려면 팔이 길고, 손이 튼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아이의 설명에 깜짝 놀란 선생님은 그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렇다. 우리 주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을 다 품고도 남은 긴 팔과 튼튼한 손을 가지셨다. 그 팔과 손으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안아주시고, 붙잡아주시고, 붙들어주신다.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 마르코스키르케라는 교회가 있었다. 그 교회의 뜰에는 성도들이 정성을 모아 세운 예수님 동상이 있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보니 다른 곳은 괜찮은데 동상의 두 팔이 없었다. 두 팔이 잘려나간 예수님 동상을 놓고 성도들이 모여 의논을 했다. 새로운 동상을 만들 것인지, 떨어져나간 팔만 만들어 새로 붙일 것인지, 이번 참에 동상을 철거할 것인지 등등. 깊은 논의 끝에 내린 결론은 팔이 없는 모습 그대로 두는 것이었다. 대신 팔이 없는 예수님 동상 앞에 이런 팻말을 붙이기로 했다. ‘주님! 이제 우리가 당신의 팔이 되겠습니다.참으로 멋지고 감동적인 결정이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가 가져야할 태도이고, 사명이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팔이 되고, 손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인생이란 바다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이들을 향해 팔을 뻗어 그들을 붙잡아주고 붙들어주고 구출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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