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책임져주심

13:1

2018. 11/25. 11:00

책임지는 삶이 아름답다!

어느 선생님이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어떤 부부가 유람선 여행을 하다가 해상재난을 당했데요. 이 부부는 아직 구조에 타지 못했는데 구조선에는 자리가 하나 밖에 없었어요. 잠시 망설이던 남편이 아내를 침몰하는 배에 남겨두고 혼자 구조선에 올라탔어요. 이 때 그 아내가 침몰하는 배 위에서 남편을 향해 소리를 쳤어요. 이 아내가 남편에게 뭐라고 소리쳤을까요?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모두 격분하여 한 마디씩 했다.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같은 의미로 말을 했다. 남편을 저주하는 말을 했을 것이라고, 당신과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을 것이라 말했다. 아마 여러분의 답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이때 선생님은 한 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우리 아이를 잘 부탁해요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너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니?아이는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제 엄마가 돌아가실 때 아빠한테 그렇게 말했어요.선생님은 너의 말이 맞다.고 하면서 그 이야기를 다 들려주었다. 이렇게 살아서 돌아온 남편은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잘 키웠다. 그런데 남편도 몇 년 후 병으로 죽었다. 딸이 아빠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일기장을 발견하였다. 이 일기장에는 아빠와 엄마가 유람선 여행을 갔을 때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엄마는 이미 여행을 갈 때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까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아이를 키워야 되지 않겠느냐며 아빠를 설득하여 구조선을 타게 한 것이다. 아빠는 일기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록을 해놓았다. ‘그 때 나도 당신과 함께 죽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지. 우리 딸 때문에......당신만 깊고 깊은 바다 속에 잠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아내, 딸을 위해 아내를 죽음의 바다에 두고 돌아서야 하는 남편, 책임에는 이처럼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자기를 희생해야 책임을 질 수가 있기에 책임지는 삶이 아름답다. 이 시간에는 온갖 희생을 감수하며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주신주님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원래 이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셨다. 하늘에게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 죄로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잠시 이 세상에 오셨다(3:16). 이것이 성육신 사건이고, 이를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이다. 때문에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을 다하시면 원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셔야 했다. 본문은 주님께서 죽음을 하루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매우 긴 설교(13:~17:)의 아주 짧은 서론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동시에 요한복음 저자의 주님에 대한 한 줄 평()이다. 본서 저자는 이제까지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자신이 지켜본 주님의 삶을 한 마디로 이렇게 평가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한 마디로 주님은 끝까지 책임지시는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지금까지의 삶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삶도 암시한다. 이 짧은 구절이 주님이 누구신지, 왜 주님이 이 세상에 계셨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13:~17:까지는 주님께서 원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시기 전 날 저녁에 3년 동안 함께 했던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교훈이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주님께서 유언처럼 주신 마지막 교훈이라 하여 고별설교라고 부른다. 또한 이 설교를 하신 장소가 (마가의)다락방이라 하여 다락방 설교라고도 부른다. 이 내용은 서로사랑’(13:), ‘위로와 평강’(14:), ‘주님 안에 거함’(15:), ‘세상에 대한 승리확신’(16:), 그리고 기도’(17:)로 되어 있다. 주님께서 떠나신 다음 세상에 남게 될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전체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본서 저자는 이 설교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치 서론처럼 주님에 대한 자신의 평가로 시작을 한 것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흔히 이 시대를 나쁜 놈 전성시대, 비열하고 비정한 야만의 시대, 배신의 시대, 배반의 시대, 절망의 시대 등 온갖 부정적인 말을 동원하여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누가 이 시대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다.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고, 또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우리와 우리가 만든 이런 세상의 치유자(Healer)는 주님뿐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였다. 특히 그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 자신에게 유익 하냐 유익하지 않냐로 결정짓는 세상에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은 큰 울림을 준다.

 

여기서 끝까지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이 말을 헬라어로 에이스 텔로스’(ες τέλος)라고 한다. 영어성경은 이를 to the very end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최후의 바로 그(the very) 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온갖 수모와 저주, 고통을 당하며 죽으신 순간까지를 뜻한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끝까지못한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상황이 악화되면 내 코가 석잔데 나부터 살고 봐야하지 않겠냐고 항변하고, 나도 할 만큼 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런데 주님은 끝까지, 최후의 바로 그 끝, 곧 죽는 순간까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이는 주님 사랑의 무한성완전성을 의미한다. 또한 이 말씀은 주님은 우리 인생 전체를 책임지시며, 그 책임의 한계는 영원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끝까지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다.

 

주인의식은 책임의식이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신뢰다. 신뢰가 깨지면 관계도 깨진다. 무신불입(無信不立)이란 말이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이 있다. 책임이다. 어디서든 무슨 일이든 책임을 다하는 사람, 책임을 져주는 사람은 신뢰를 받는다. 책임이 리더십에서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를 책임자라고 한다. 흔히 우리가 주인의식을 갖자고 말하는데,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을 하자는 것이다. 이 주인의식이란 곧 책임의식이다. ‘손님은 일이 끝나면 외투와 가방을 챙기고, 주인은 일이 끝나면 빗자루와 걸레를 챙긴다.는 말이 있다. 손님은 아무 때나 와서 일이 끝나면 외투와 가방을 챙겨서 가지만 주인은 1~2시간 전에, 혹은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빗자루와 걸레를 들게 된다(First in, Last out). 불이 났을 때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한 사람은 구경꾼이고, 말없이 물을 퍼 와서 불을 끄는 사람은 주인이다. 성도는 어디에서든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결정짓는 것이 책임이다. 아무튼 책임감이 있어야 신뢰를 받고, 신뢰를 받아야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라야 사랑받고, 존중받고,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불확실성 때문에 흔들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주님을 믿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보장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님의 이 책임져주심 때문이다. ‘끝까지책임져주심, 무한책임, 완전책임 때문이다. 본문은 요한의 말이지만 요14:18절에서는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반드시 책임지신다는 말씀이다. 로마서에 바울의 위대한 고백이 나온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바울의 이와 같은 확고한 확신의 근거, 확신에 찬 고백의 근거는 주님께서 끝까지 책임져주심에 있다. 주님의 사랑일지라도 흔들리는 사랑, 상황에 따라는 변하는 사랑, 책임을 담보하지 않는 사랑이라면 이런 확신과 고백을 가질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져주시기에 이런 확신과 고백을 드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울처럼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그러면 삶의 모든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복음이 주는 참 자유, 기쁨,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돌격 앞으로와 나를 따르라

지금 우리 시대를 4’(四無)시대라고 한다. 무감동, 무관심, 무목적, 그리고 무책임이다. 이 무책임은 도덕적 질병이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인데도 남에게 떠 넘겨버린다. 모든 책임을 회피하며 남에게 전가한다. 이것이 병든 사회의 특징이다. 일은 있는데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전쟁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격 앞으로와 같은 명령구호가 범람하게 된 것이다. 반면 건강한 사회, 성숙한 사람은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자신이 솔선수범하면서 나를 따르라’(fallow me)고 외친다. 자신이 책임을 다하면서, 자신이 모범을 보이면서 따르라고 한다. 일방적으로 돌격 앞으로만 외치지 않고 친히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면서 따르도록 요구한 것이 주님의 리더십이다(13:14). 우리 또한 성도로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책임을 다하고, 교회에서는 성도로서 직분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사회에서는 조직의 리더로서 혹은 구성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본받은 성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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