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평화의 주님

2:11~19

2018. 12/9. 11:00(대강절 둘째 주일)

평안(평화와 안전)한 삶에 목마른 사람들

흔히 사람들은 미국이 풍요롭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어떤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로스엔젤로스 지역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 지진으로 순식간에 집이 무너지고 살림살이가 엉망이 되었다. 간신히 목숨만 건진 그는 당장 짐을 싸들고 플로리다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평화가 보장된 안전한 지역을 찾아서 간 것이다. 그는 플로리다 지역에서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안경계선 언덕 위에 있는 멋진 집을 구입했다. 그런데 이사를 간 그 해에, 그 지역에 대형 허리케인이 불어 닥쳤다. 이번에는 허리케인이 그 멋진 집을 흔적도 없이 쓸어가고 말았다. 집과 재산은 피해를 입었어도 다행이 목숨은 건졌다. 아무튼 크게 낙담한 그는 더 안전한 지역이 없나 찾다가 오클라호마 지역을 생각했다. 오클라호마는 지진도 거의 없고, 또한 바다를 끼고 있지 않으니 허리케인과 같은 강풍으로부터도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클라호마로 가서 몇 년 동안은 그토록 갈망했던 안전과 평화를 만끽하며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 해 갑자기 불어 닥친 토네이도(거대한 회오리바람) 때문에 집이 또 한 차례 파괴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람은 평안(안전과 평화)한 삶이 담보되지 않은 유일한 분단국가 모국을 뒤로 하고 나름 안전한 곳을 찾아 잘 살아보려고 미국까지 이민을 갔다. 그렇지만 그곳도 그에게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한 번은 지진으로, 또 한 번은 허리케인으로, 그리고 세 번째는 토네이도로 그토록 소원했던 평안한 삶이 순식간에 깨어지고 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네 삶이라 생각한다. 현대인이 많은 시간, 물질, 관심, 그리고 많은 열정과 기술을 쏟고 있는 것이 안전이고, 또한 평화다. 이런 노력에도 우리는 매일 먹는 먹거리, 마시는 물, 매순간 숨 쉬는 공기와 같은 아주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문제에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문명과 기술이 발달하고, 생활이 편리하고, 지식이 넘치니까 불안거리가 줄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안식이 없나이다.라고 한 어거스틴의 고백이 실감이 난다. 아울러 몰이꾼에게 쫓기는 사냥감과 같은 처지였던 다윗이 하나님이 힘의 근원이라고 선언하며 하나님을 반석, 바위, 방패, 요새, 산성, 구원의 뿔이라고 노래한 이유를 알 것 같다(18:1,2). 평안의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 주님의 선물이고, 또한 주님 안에서만 보장받을 수 있다.

 

평화의 빛으로 오신 주님

지난 주일에 성탄절을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축하하는 빛의 축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첫 번째 촛불이 상징하는 소망의 빛으로 오신 주님에 대하여 은혜를 나눴다. 이 시간에는 대강절 두 번째 촛불이 상징하는 평화의 빛으로 오신 주님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주님께서 탄생하시기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주님을 평강()의 왕’(9:8)으로 소개했고, 그로부터 300년 뒤에 활동했던 선지자 스가랴는 평화의 상징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것’(9:9)을 예언했다. 주님께서 탄생하시던 날 베들레헴 근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주님의 탄생소식을 알렸던 천사들의 찬양에서도 주님을 이 땅에 평화를 주실 분으로 소개하였다(2:14). 게다가 주님께서 친히 자신이 평안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14:27). 본문에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4). 그래서 성도라면 누구도 의심치 않고 주님을 평화의 주, 혹 평화의 왕이라고 부른다. 주님은 평화롭지 못한 심령, 평화롭지 못한 세상에 평화의 빛으로 오셨다. 평화의 빛으로 오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자!




평화의 레가토

음악에서 초승달(,)처럼 생긴 레가토’(legato)라는 부호가 있다. 높이가 다른 두 음표를 서로 이어주는 것인데, 이 부호가 있으면 두 개 이상의 음을 끊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러야 한다. 우리 주님의 삶을 꼭 닮은 음악부호라고 생각한다.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기 위해 오셨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끊어진 것들을 이어주고 회복하기 위해서 오셨다. 오셔서 죽기까지 이 일을 하셨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떠나셨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와 같은 주님의 삶을 사랑의 레가토’(3:24)라고 했다. 자신을 제물삼아 죄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셨고,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셨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주님을 평화의 레가토라고 소개하고 있다. 먼저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버리셨다(14). 그래서 진노의 대상이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16).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 사람과 사람 사이,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높은 담을 헐고 하나가 되게 하셨다. 이렇게 주님께서 친히 평화의 이음줄(레가토)이 되셔서 끊어진 것들을 이어주시고, 막힌 것들을 뚫어주시고, 높은 장벽()을 허물어주셔서 화목하게 하시고 화평하게 하시고, 평화롭게 하셨다. 친히 당신의 몸을 던져서 이 일을 만들어 내셨다.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4). 무속(巫俗)에 나온 이야기다. 사람이 저승에 가면 여러 질문을 받는 데, 그 중 하나가 이런 질문이라고 한다. ‘다리를 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물을 건너도록 해주었는가?’(越人功德).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분노와 미움과 다툼과 갈등과 차별을 얼마나 사라지게 하여 화목하게 만들고 화평하게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우리 성도도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님의 삶이 그랬듯이 성도는 모든 담과 장벽을 허물어 길을 만들고, 끊긴 곳에 다리를 놓아 서로 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또한 주님처럼 세상의 막히고, 나뉜 것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평화의 레가토가 되어야 한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을 생각할 때마다 고민이 있다. 그것은 성경은 분명히 주님이 평화의 왕이시고, 화평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는데, 우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이 오신이후 지난 2천 년 동안 전쟁이 그친 적이 없고, 곳곳에서 온갖 폭력과 갈취와 학대가 난무하고, 가장 화목해야 할 가정들조차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주님이 평화를 주신 분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것은 주님을 모르는 세상뿐만 아니다. 내 자신과 교회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의 평안과 심령의 평화를 누리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교회마다 칡넝쿨처럼 분노로 얽혀 손금처럼 갈라져있고, 또한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의 말씀을 믿으면서도 교회의 분파는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비친 교회는 다투는이 된지 오래다. 오죽했으면 싸우려면 교회나 가서 싸워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이러고도 주님을 평화의 주님이라, 평화의 빛이라, 복음을 평화의 복음이라 말할 수 있을까? 평화라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지하게 따져보았더니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한 내 자신과 교회가 문제였다. 사실 주님은 평화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 세상으로 가져오셨고, 평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레시피(recipe)를 모두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평화의 원리, 화목의 원리, 화평의 원리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쪽 뺨을 친 사람에게 다른 뺨마저 내놓고, 솔선해서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하고, 잘못을 용서하고, 욕심을 버리고, 서로의 약점이나 결점에 대하여 관대하고, 자신을 낮춰 섬기고, 손해를 보더라도 먼저 양보하는 것이다. 좀 더 참아주고, 좀 더 이해해주고, 좀 더 기다려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평화를 만드는 방법이다. 주님께서는 평화를 위한 모범을 친히 보이셨을 뿐만 아니라 그 레시피를 이렇게 상세하게 알려주셨는데도 우리가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올 성탄절에는 주님이 주신 평화의 레시피를 잘 활용하여 평화의 선물을 주변에 줌으로 우리의 삶이 평화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나타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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