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이 약속된 말씀, ‘십일조

3:7~12

2019. 2/10. 11:00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 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

요즈음 미국의 몇 대형교회에서 십일조 반환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올바른 십일조를 드렸는데도 복을 받지 못하면 십일조를 다시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올바른 십일조 생활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지 주시지 않는지 시험해보라는 것이다. 나름 이유야 있겠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헌금이란 본인의 신앙적인 결단으로 하는 것이지 운동으로 선동할 일은 아니고, 마땅히 드려야 할 예물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게다가 헌금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지 축복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지라도 우리가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십일조와 복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도 많다. 그 중 한 사람을 소개하면 윌리엄 콜게이트. 이 사람은 유명한 콜게이트 치약을 만든 구강전문회사 콜게이트사의 창립자다. 그는 영국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콜게이트사를 세웠다. 그가 십일조와 관련하여 이런 고백을 했다.

 

저의 성공비결은 십일조 생활에 있습니다. 저는 수입 중 십분의 일(1/10)은 구별하여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두었고, 나머지 십분의 구(9/10)는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래도 사업은 더욱 번창했습니다. 한 때, 하루수입이 네 사람이 겨우 옮길만한 무게의 큰 금덩어리만 했을 때도 십일조 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십일조가 제 복의 근원이었으니까요!

 

콜게이트의 말처럼,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 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이것은 콜게이트사의 상징이 되었다. 십일조만 계산하는 직원이 30명이 되었다고 하니 그 회사가 얼마나 번창했는지는 짐작할 수가 있다. 그의 고백처럼 그가 이렇게 거부가 된 것은 십일조와 관련이 깊다. 그의 아버지는 중풍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어머니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그는 동네 어른을 찾아가 가난하고 배운 것도 없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다. 그 사람은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만약에 네가 내 말을 따른다면 너는 반드시 복의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섬기며, 주일을 꼭 거룩하게 지켜라. 또한 네 소득의 십일조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려라. 혹시 네가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오른다 해도 항상 겸손히 섬기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그는 동네 어른의 이 가르침대로 신실하게 주일성수를 하며 주님을 섬기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 그래서 그는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경험하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말라기서와 십일조

나는 지지난 주일에 말라기서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구약성경에서 드물게 말라기서는 무너진 예배의 회복’(올바른 예배)이 주요내용이다. 본문은 십일조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인용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십일조를 말할 때만 주로 말라기서를 언급하다보니 말라기서=십일조라는 불편한 등식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다. 물론 말라기서에서 분량은 많지 않아도 십일조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말라기서가 십일조 자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회복의 중요한 방법으로서 올바른 십일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라기서에 따르면 하나님은 말라기 시대 예배자에게서 큰 모멸감을 느끼셨는데, 그들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모멸감을 느낄 만큼 무너진 원인의 중심에 십일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말라기 시대의 예배자들은 예배자의 중요한 태도인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 증거가 부정한 예물’(1:13)이다. 그들이 이런 예물을 드리게 된 데는 제사장의 책임이 크다. 생계의 위협을 느낀 제사장들이 양식을 얻기 위해 부정한 제물을 예물로 드려도 방관한 것이다. 그러면 왜 제사장들이 생계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을까? 바로 여기에 십일조가 있다. 잘 아는 대로 제사장에게는 토지를 나눠주지 않았다. 성전이 그들의 업()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성이 드리는 십일조와 각종 제사에서 드리는 제물(봉헌물)로 생계를 유지했다(8). 그런데 백성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제사장직을 버리기도 하고, 제사의 규정대로 제물을 요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결국 예배를 무너지게 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예배를 무너지게 만든 중요한 원인으로 십일조를 꼽은 것이고, 십일조를 거칠고 강경한 어조로 강조하게 된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나의 것을 도적질 한 것’(8)이고, 십일조로 나를 시험해 보라’(10)고 말씀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올바른 십일조를 드려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오늘날 설교자들에 의해 십일조에 대한 채찍’(협박)당근’(회유)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십일조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예배에 있어서 십일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튼 올바른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예배의 실패를 가져왔고, 예배의 실패는 생활의 실패로 이어졌다. 본문은 올바른 십일조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자는 것이다(8). 그러니 십일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올바른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고 꾸짖는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십일조로 나를 시험해 보라는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어야겠다. 이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이다.

 

십일조는 축복의 마중물이다.

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백성이 말씀의 요구대로 십일조를 잘 드릴 때는 예배부흥과 신앙부흥이 일어났고,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가고 백성의 삶 또한 풍성했다. 히스기야 시대가 좋은 본보기다(대하29:~32:).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유다역사에서 보기 드문 악한 왕이었다. 나라를 총체적인 위기로 몰아넣었던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죽어서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도 못했다. 왕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다. 히스기야는 이런 사람을 이어 왕이 되었다. 그러니 백성의 신뢰를 얻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가 더럽힌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성전예배를 회복하고, 그의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우상을 깨끗이 제거하였다. 대대적으로 유월절 절기를 기키는 등 일대 신앙회복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그가 했던 중요한 일이 제자장의 지위와 생활을 보장한 것이다. 백성으로 하여금 십일조를 드리도록 명령하여(31:5~) 제사장의 생활을 보장하고, 그래서 제사장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에만 힘쓰도록’(:4) 했다. 이때 상황을 성경은 당대 대제사장 아사랴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 우리가 만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10). 백성의 십일조로 제사장의 생활이 보장되었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백성을 축복하셨다는 것이다. 그러자 모든 것이 형통했다(:21). 그 증거로서 한 사건을 소개한다(32:). 당시 중동지역을 통일하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앗수르가 아람과 다메섹, 심지어 북왕조 이스라엘까지 멸망시키고 유다를 침략해왔다. 그런데 왕과 백성이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 앗수르를 물리치고 다윗이후 가장 강력한 독립국가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신앙부흥에 있고, 신앙부흥은 백성의 온전한 십일조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십일조가 축복의 마중물이 된 것이다.

 

본문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십일조로 나를 시험해 보라’(8)는 말씀이 예배회복에 있어서 십일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에만 머문 것도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 말씀은 예배회복에 있어서 십일조의 중요성과 함께 올바른 십일조를 드린 사람에 대한 축복의 약속이기도 하다. 올바른 십일조를 통해 무너진 예배가 회복되면 반드시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표현이다. 본문을 보면 적어도 세 가지를 약속하고 있다. 첫째는 물질의 복이고(10), 둘째는 불필요한 지출(메뚜기, 먹어치우는 자)을 막아주시며(11), 셋째는 땅이 아름다워(חפץ, 이는 무엇이든지 소원대로 잘 되어 기쁨이 넘친 것을 뜻하는 단어로 풍성한 수확을 상징)지는 복으로 이방인이 부러워하도록 복을 주신다(12)는 약속이다. 우리가 항상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하는 한 누구나 축복의 주인공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면서도 성경에는 굳이 축복을 약속하며 순종을 요구하는 말씀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주제들이 여기에 속한 말씀이다. 이런 말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더욱 집중하라는 것이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와 같은 십일조에 약속된 복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며, 금년에도 여기에 약속된 복을 꼭 경험하기 바란다.

 

     

 

세 가지 십일조

 

십일조란 소득의 1/10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다. 십일조만큼은 우리 한국교회가 세계 어느 나라 교회보다 열심히 드리고 있다. 일반헌금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작은 표현이라면 십일조는 모든 것, 특히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는 표현이다. 이렇게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대속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마땅히 다 하나님께 드려야하는데, 1/10로 대신하는 것이 십일조다. 그러니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나머지(9/10)를 임의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십일조는 강한 제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주의깊게 읽거나 공부한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구약성경에는 십일조의 종류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와 있다.

 

첫째 십일조는 레위인과 제사장을 위한 십일조(생계의 십일조). 레위인과 제사장의 십일조는 레27:30-33에서 언급된 후 민18:21-32에서 좀 더 확장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땅과 거기 속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며, 그 모든 소산이 여호와의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그 고백을 레위인에게 십일조를 주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을 스스로 취하시는 십일조다. 또한 이것은 구별되어 성전을 섬긴 직분을 맡음으로 땅 분배에서 제외된 레위인을 위한 생계대책이기도 했다. 그리고 레위인 역시 자신이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 제사장에게 주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십일조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 십일조는 축제에서 가족과 함께 나눠먹는 십일조’(12:5-19, 14:22-27)(축제의 십일조). 이 십일조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12:5,11, 14:23)으로 가지고 나와 온 가족’(12:7,12, 14:26)이 함께 먹고 즐기라는 명령이 주어져 있다. 이것은 구약제사의 큰 주제인 여호와 앞에서의 음식나눔에 내포되어 있는 거룩한 식사와 축제라는 신학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공동체가 함께 축제하며 함께 나눠먹는 정신은 신약의 애찬과 성찬으로도 이어지고 있어서 언약공동체 내에서 영속적 가치와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십일조는 유월절 등 절기축제에 참여하는 경비와 또 함께 음식나눔을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셋째 십일조로 이웃과 나누는 십일조’(14:28-29, 26:12-15)(나눔의 십일조). 이 십일조는 매 3년마다 한 번씩 행하는 철저하게 나눔에 목적이 있는 십일조였는데, 수혜대상은 레위인과 나그네(이방인, 개종자)와 고아와 과부였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는 구약에서 늘 언급되는 나눔과 구제의 대상이었기에 이 십일조는 특히 약자를 보호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한 용도로 실시되었던 십일조다.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의 십일조에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14:29)는 축복의 약속이 강조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십일조가 구약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아무튼 성경이 레위인과 제사장의 생계문제와 축제, 그리고 나눔을 십일조를 통해 제의적인 차원에서 실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이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둘째 십일조(축제의 십일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뚜렷한 사례를 찾을 수가 없고, 셋째 십일조(나눔의 십일조)는 첫째 십일조(생계의 십일조)와 함께 적극적으로 시행되었다. 랍비(탈무드)시대 이후엔 사회적 정의(공의)실현의 차원에서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인 셋째 십일조를 첫째 십일조와 함께 적극 실천하도록 강조했다. 단순한 권면사항이 아니라 첫째 십일조처럼 예외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으로 여겼다. 그런데 십일조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한국교회는 성경에 세 가지 십일조가 있는데, 둘째와 셋째는 가르치지 않고 첫째만 강조하여 목회자가 자기 배 불리기에만 급급하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견해에 따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교회도 십일조를 오롯이 목회자에게 주지도 않거니와 줄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십일조가 교회재정 70~80%(우리교회의 경우)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십일조를 모두 목회자에게 주고 나면 교회운영 및 사역(교육, 선교, 봉사, 나눔)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재정 100%로도 목회자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한 미자립교회가 허다한데, 이런 경우엔 십일조가 모두 목회자에게 지급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한국교회는 첫째 십일조로 목회자 생활비를 포함한 교회운영과 사역 등 둘째와 셋째 정신까지 포함하여 포괄적으로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구설수에 자주 오르고 있는 십일조가 우리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또한 미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십일조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십일조를 드리도록 하는 것만큼 잘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십일조를 비롯하여 피와 같은 헌금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면 이는 마땅히 비난을 받아야한다. 사람들의 비난보다도 하나님 앞에 심각한 범죄행위다. 말라기서에서 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3:8)는 말씀은 올바른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한 말씀이지만 동시에 십일조를 잘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후자에 더 역점을 두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여 소중한 헌금이 제대로 사용되도록 살펴야겠다. 그래서 우리의 선한 일이 외인에게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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