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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민감한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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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민감한 바울

16:6~10

2019. 8/11. 10:30(전교우 번개 나들이)

두 종류의 성도

신앙인의 입장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과 아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다. 전자를 성도라고 부르고, 후자를 자연인이라 부른다. 그런데 성도 중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은 했으나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지 못하여 삶에 대한 주도력과 지배력을 자신이 행사하고 있는 성도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사람이다. 전자를 육적인 성도(혹은 육에 속한 성도)라고 하고, 후자를 영적인 성도(혹은 영에 속한 성도)라고 부른다. 영적인 성도의 특징은 주님의 영이신 성령에 민감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항상 상령의 지배를 받고 살기 때문에 성령에 매여서 산다. 분명히 자신의 계획과 뜻이 있고, 소원이나 야망이 있지만 성령께서 원하시면 언제든 그것을 포기하고 성령님의 뜻에 순종한다. 성경에 나온 대부분의 인물이 이러한 삶을 살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본문은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성령에 민감한 사람의 특징

사도행전의 전반부가 주로 베드로의 사역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는 바울의 회심과 복음전도 사역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바울의 복음전도 사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분이 성령님이시다. 그를 이방인을 위한 복음전도자로 부르신 이도 성령님이시고,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하신 이도 성령님이시고, 선교지에서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이도 성령님이셨다. 이와 같이 성령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이다. 본문도 그 중에 한 사건이다.

 

바나바와 함께 1차 선교여행을 마친 바울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공식적인 이방인 선교를 허락을 받아(15:) 2차 선교여행을 시작했다(15:36). 2차 선교여행은 1차 선교지를 역으로 방문하며 교회와 성도를 격려한(16:1~5) 다음, 흑해연안에 있는 현재의 터키 북부지역에서 선교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비두니아 지역). 그런데 성령께서 그곳에서의 선교를 허락하지 않으셨다(6). 그러다가 급기야 환상까지 보게 되었는데, 한 마케도니아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며 손짓을 하였다(9). 그래서 갑작스럽게 선교방향을 마케도니아, 곧 유럽으로 바꾸게 되었다(10). 본문은 바울이 성령에 민감한 사람이었다는 것과 함께 유럽선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본문의 바울을 통해 성령에 민감한 사람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주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이란 종교를 통해 자기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은 하지만 자기의 뜻을 내려놓은 것이 쉽지 않다. 내가 드리고 있는 기도를 스스로 분석해보니 주님의 뜻을 묻기보다 내 뜻만 내세우고, 그 뜻을 이뤄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지금은 기도를 마칠 때,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를 흉내를 낸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 기도가 기복에 머물지 않을 것 같아서다. 사실 의지가 없는 존재라면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것이 문제가 되지도 않겠지만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그것을 내려놓는 것은 때로는 목숨을 거는 일만큼 힘들고 어렵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민감하면 가능해진다. 본문이 좋은 예다. 앞서 말했듯이 바울과 그 일행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비두니아 지역(지금의 터키북부 흑해연안)에서 선교를 하려고 했으나 성령께서 막았다. 그때 그들은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곳(마케도니아)으로 선교의 방향을 돌렸다. 얼핏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표현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어려운 결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기를 해도 가치의 차이가 분명한 것은 비교적 쉽다. ‘계모임이냐! 예배냐!하는 문제에서 내 뜻과 주님의 뜻이 충돌했을 때 성도라면 계모임이라는 내 뜻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인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가치가 비등(比等)할 때다. 본문에서 바울일행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그들의 뜻이 흑해연안의 아름다운 휴양지로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마케도니아 지역의 영혼이 더 귀한 것도 아니다. 아시아에 있는 영혼이나 유럽에 있는 영혼이나 영혼은 다 소중하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어디서 전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성령님은 굳이 비두니아(아시아지역)로 가지 말고 마케도니아(유럽지역)로 가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자신의 뜻을 꺾기가 쉽지 않다. 주님을 위한 일인데 그것을 막아서면서 엉뚱한 곳으로 가라니 납득이 되겠나? 그것도 선교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도 아니고 선교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렇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민감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라도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다. 성령은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따르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바울과 그 일행이 쉽게 자신들의 계획과 뜻을 포기하고 주님을 뜻에 순종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뜻에 즉시순종한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몰라서 주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알면서도 못하는 경우가 대분이다. 기도가 주님의 뜻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라는 것을 모르는 성도는 없다. 그런데도 기도생활에 실패한 성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 성도, 서로 사랑으로 섬기지 못한 성도가 태반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즉시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 중요성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더 나아가 필요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패한 것은 자꾸 다음으로 미루면서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자기의 뜻을 꺾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사용되고 있는 사단의 전략무기다. 사단은 우리에게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하되 다음에 하라고 속삭인다. 전도를 못하게 하지 않는다. 역시 다음에 하라고 한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모든 것을 자꾸 다음에 하라고 속삭이며 미루게 만든다. 이렇게 미루다보면 당위성도 중요성도 시급성도 다 잃게 되고 만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아무 것도 순종하지 못한 영적 낙오자가 되고 만다. 사단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에서 바울과 그 일행을 보라! 그들이 주님의 뜻을 발견한 순간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두 개의 단어가 나온다(10). ‘이란 부사와 힘쓰다는 동사다. 여기서 이란 부사는 자신의 뜻을 속히 내려놓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고, ‘힘쓰다는 동사는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전념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튼 그들이 얼마나 신속하게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실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이 또 하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민감한 사람의 특징이다. 그리고 주님의 역사는 이와 같이 성령에 민감하여 주님의 뜻을 신속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작은 시작 위대한 결말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란 말이 있다.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에서 나온 말인데, 일반적으로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 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처음에는 과학이론에서 발전했으나 점차 경제학, 일반 사회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본문의 사건 또한 영적 나비효과라고 불릴만하다. 이 사소한 사건이 장차 유럽선교의 발판이 되었고, 기독교 세계화의 첫걸음이 되었다. 역사가 토인비는 바울일행을 싣고 마케도니아로 향한 배를 가리켜 유럽의 운명을 실은 배라고 했다. 유럽의 기독교화, 서양문명의 한 축이 되고 있는 기독교 문명이 바로 이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바울 이전까지 인류문명의 중심지는 동방이었다(인류 4대 문명발생지가 모두 동방).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문명의 중심이 동방에서 서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사소한 날갯짓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니 여기서 다시 한 번 성령충만의 중요성과 함께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님 안에서 주님을 뜻에 순종하는 성령의 사람이 하는 일은 작은 시작에 불과해도 큰 결과 위대한 결말을 만들어낸다.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역사의 주역이 된다.

 

어떤 분은 이름 앞에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린 사람이 사도 바울이라고 했다. 나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바울은 정말 위대한 사도였고, 위대한 복음전도자(선교사)였고, 위대한 성도였고, 위대한 목회자였고, 위대한 신학자(교사)였다. 바울을 이렇게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도록 만들어주신 분이 성령님이시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민감하게 살았더니 주님께서 그를 이렇게 만들어주신 것이다. 내가 기도할 때마다 드리는 중요한 기도제목이 하나있다. 그것은 우리교회 어린이부나 청소년부에서 바울과 같은 사람, 디모데와 같은 사람이 나오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이루는 일이라면 요원하겠지만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요원하지 않다. 누구든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에 민감하면 바울처럼 디모데처럼 될 수 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 우리 교회학교 어린이부와 청소년부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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