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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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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가라!

8:26~40

2019. 8/25. 11:00

성령의 능력으로

한 부자가 농사를 짓는 친구에게 일에 보탬이 되라고 트럭을 한 대 선물했다. 친구에게 귀한 선물을 받은 농부는 신이 나서 소 네 마리에 멍에를 채워 트럭을 끌고 다녔다. 어느 날 이 차를 선물한 친구가 이 광경을 보고는 소들의 멍에를 풀고 차에 기름을 넣고 시동을 걸어 시범을 보이면서 차는 소로 끄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이 운전하여 사용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지만 성령과 사역의 관계를 설명하는 좋은 예다. 자신의 힘이나 능력, 지혜, 경험, 재능으로 섬기는 것은 마치 트럭을 소로 끄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해서는 소는 물론 차의 가치를 충분히 활용할 수가 없다. 반면에 트럭에 기름을 넣고 시동을 걸어 운전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섬기는 것이다. 어느 편이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일 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아무튼 섬기는 일에 있어서 성령이 절대적 조건인 것을 이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도 자신의 사역이 성령의 능력에 기초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에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 하여”(고전2:3,4). 성령으로 충만하여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섬겼다는 것이다.

 

지난주일 설교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구약시대에는 섬기는 일군을 주로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섬기게 하셨다. 예외적이지만 나실인처럼 자발적으로 섬기겠다는 헌신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성령과 섬김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약시대에는 섬기는 일군을 선출하는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직접 지명하여 부르시지 않고 이 일을 교회 공동체에 위임했다. 대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세우도록 조건만 제시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알 수 없으니까 예배생활, 기도생활, 물질적인 헌신생활, 봉사생활 등 잘 섬기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선출을 한다. 결국 이와 같은 생활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약시대 역시 성령과 섬김이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섬기거나(구약시대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에게 사역을 맡겨 섬기게 한 것이다(신약시대처럼). 여기서 충만하여 섬기고 섬기면 충만하여 지는 것은 차서’(次序)관계가 아니라 순환’(巡還)관계다. 성령충만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하면 성령충만을 받지만 성령으로 충만해야 기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른 경건생활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은 이것의 끊임없는 순환을 통해 충만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성령에 이끌린 사람

이 시간에도 지난 주일에 이어 성령과 섬김의 관계를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이 시간에는 그 범위를 좁혀서 성령과 전도(혹은 선교), 성령충만을 위한 전도(선교)의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본문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이었던 빌립의 전도에 대한 말씀이다. 본문을 보면 빌립의 영적 상태를 가늠하게 해주는 구절이 몇 개 나온다. 26,29,40절 바로 그것이다. 이 구절들은 빌립이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았던 사람’(40)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무엇에, 누구에게 이끌려 살고 있는가? 바로 이것에 의하여 삶의 질과 가치와 의미가 결정된다. 빌립처럼 성령에 이끌리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여기서 성령에 이끌린 사람이란 성령의 지배를 받은 사람, 성령에 매여서 사는 사람, 성령에 민감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표현을 하나로 묶으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구제하는 일을 섬기도록 예루살렘교회 초대집사로 피택이 되었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복음 전도생활을 통하여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복음전도자 빌립

빌립이 이렇게 복음 전도자가 된 데는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함께 집사로 피택 되었던 스데반의 순교 때문이다(7:). 스데반의 순교사건은 빌립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교회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루살렘교회의 체질이 완전히 바뀌었다. 6장의 상황과 8장의 상황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6장에서 그들은 구제의 불공평 때문에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 사이에 갈등이 생겨 원망했고(1),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집사제도를 만들었다(3,6). 그런데 스데반의 사건 이후 8장에서는 그렇게 원망하던 사람들이 흩어져 전도하는 복음 전도자로 바뀐 것이다(1,4). 그래서 예루살렘 중심으로만 모였던 초대교회가 유대를 넘어서 사마리아와 이웃나라 수리아까지 크게 확장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빌립 역시 더 이상 교회에 남아 구제사역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복음 전도자가 된 것이고, 그의 사역지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꺼리는 사마리아였다. 그리고 사마리아 지역에서 그의 사역은 큰 성공이었다(5~8). 그가 이렇게 사마리아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성령님께서 일어나서 유대광야(‘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가라고 하셨다(26). 전도를 하려면 사람이 모인 곳이어야 하는데 사람이 없는 광야로 내몬 것이다. 선뜻 이해가 안 되는 당황스러운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즉시 성령님의 지시에 순종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내려갔더니,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마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마차 가까이 가라고 말씀하셨다(29). 그 마차의 주인은 에티오피아의 고위관료였다.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27), 그는 덜커덩거리는 마차에서 성경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고 있었다(30). 거칠고 불편한 여행길에 이해하지도 못한 말씀을 읽고 있는 이 사람의 열정이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누구에게로 향하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 수 있다.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간절히 사모하며 찾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8:17).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에서 성공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빌립을 그에게로 급파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미 간절함이 성령충만의 방법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지난 84일 주일),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성령의 주도적은 역사하심을 통해 에티오피아 고위관료가 빌립을 통해 주님을 믿고 세례까지 받게 되었다. 물론 본문에서 성령충만이란 단어를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빌립의 행적을 통해 빌립이 성령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다. 아울러 그의 성령충만이 전도와 깊은 연관이 있음도 알 수가 있다.

 

전도의 중요성

전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지난해에 거의 5개월을 설교했기에) 강조하는 의미에서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렇다. 우선 전도는 주님께서 배고픔도 잊고 실천했던 하나님의 뜻이다(4:34). 잃어버린 영혼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고, 주님의 비밀 양식이었다(4:32). 이것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또한 전도는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유언명령이다(28:18~20). 사도행전에서는 이를 성공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이를 통해 전도자에게 성령충만이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음). 뿐만 아니라 전도는 주님의 몸을 채우고, 주님의 몸을 세우는 일이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다. 교회는 전도로 채워지고, 전도를 통해 세워져간다. 마지막으로 전도는 한 영혼의 진정한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본문을 보라! 빌립에게 복음을 듣고 믿고 세례를 받은 에티오피아 고위관료가 그 증인이다. 물론 본문의 사건이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더 이상 성경이 그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복음을 접한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추론은 할 수 있다. 그것은 에티오피아가 세계최초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유일의 유대교 국가였다. 그런데 이 영향력 있는 사람이 주님을 믿고 고국으로 돌아가 민족복음화에 헌신하여 이런 경이로운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것이 전도의 능력이고 중요성이고 가치다. 전도를 통해 변화된 한 영혼을 통해 한 나라, 한 민족의 운명이 뒤바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전도가 성령충만의 비결이다!

우린 여기서 두 가지 결론을 추론할 수 있다. 이렇게 막중한 일을 내 힘, 내 능력, 내 지혜, 내 재능으로 감당하기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소중한 일을 하는데 주님께서 손 놓고, 구경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막중한 일은, 특히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주님의 유언명령을 실천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주님의 몸을 채우고 세우는 일은 반드시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주님께서 복음 전도자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인 결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니,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익히 아셨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약속하셨고(1:5), 성령이 임하고 능력을 받아야 복음의 증인이 된다고 하셨다(1:8). 전도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도자는 이미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고, 계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빌립처럼). 주님은 복음 전도자에게 반드시 성령충만의 은혜를 부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도가 성령충만의 비결인 것은 당연하다.

 

전도는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다. 적당한 때를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있는 대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전도다. 그런데 이 전도의 주도권은 성령님께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란 뜻이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은 성령충만의 결과다. 주님은 지금도 이런 은혜를 복음 전도자에게 주신다. 저와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주인공이 되는 비결은 복음이신 주님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 모두 분연히 일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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