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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인이로소이다!

18:9~14

2019. 9/1. 11:00

머리를 많이 숙이라! 그러면.......

어느 왕이 민심(民心)을 살피러 밖으로 나왔다가 길가에서 비바람에 깎이고 사람에게 시달려 볼품없는 초라한 돌부처를 보게 되었다. 왕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돌부처를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신하가 어찌하여 전하께서는 이런 하찮은 돌부처에게 머리를 숙이십니까?하고 물었다. 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고 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왕은 그 신하를 불러 아홉 개의 짐승 목과 한 개의 사람 목을 주면서 그것들을 시장에 내다팔고 오라고 하였다. 저녁이 되어 그 신하는 짐승 목은 다 팔았는데, 사람 목은 팔지 못했다며 다시 가져왔다. 그러자 왕은 그 신하에게 말했다.

 

죽어서도 잘 팔리는 짐승의 목보다 한 번 죽으면 어느 누구도 찾지 않는 쓸모없는 그 목, 살아있을 때 그 목으로 머리를 많이 숙이라. 그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베들레헴에 예수님탄생 기념교회가 있다. 넓은 구유광장을 지나면 예배당 입구가 나오는데, 겨우 한 사람정도 그것도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건물에 비해서 문이 작고 낮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야만 한다. 이 예배당의 문을 이렇게 특별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가장 낮은 곳 구유로 오셨으니 그 주님을 만나고 섬기기 위해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몇 해 전, 성지순례에서 겸손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그 문을 서 너 번 왕복하며 겸손한 예배, 겸손한 기도, 겸손한 찬양, 겸손한 섬김, 겸손한 목회, 겸손한 신앙을 스스로 다짐했다. 앞서 어느 왕의 말처럼 머리를 많이 숙이고 자주 숙이면, 곧 겸손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겸손은 태도다.

본문은 앞 사건(과부와 재판관)과 함께 응답받는 기도의 자세에 대한 말씀이다. 교만은 경건생활의 핵심인 기도도 왜곡시키지만 겸손은 기도에 대한 응답을 보장한다. 특히 본문은 겸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흔히 사람들은 겸손을 미덕(美德)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겸손은 미덕이라기보다 삶의 태도(혹은 자세). 구약성경(잠언과 시편)에서는 물론 수많은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 그리고 일반 사람들까지도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겸손이 그토록 중요한 미덕이라면 성도가 반드시 갖춰야 할 성령의 열매’(5:22,23)지혜의 열매’(3:15~18),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덕목’(벧후1:4~7)에도 언급이 되어야 하는데, 그 어느 곳에도 겸손이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겸손을 성도가 갖추어야 할 미덕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보기 때문이다. 이 태도에 성령의 열매, 지혜의 열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덕목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겸손은 나무이고 성령의 열매나 지혜의 열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덕목은 그 열매인 셈이다. 본문 역시 겸손을 기도응답의 결과(열매)가 아니라 비결(방법)로 강조하고 있다. 겸손을 삶의 태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겸손이 무엇이냐?

그렇다면 어떠한 삶의 태도가 겸손이냐? 본문은 세 가지 관계의 측면에서 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겸손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your first, me second). 교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이 먼저이고 자신만 생각한다. 하지만 겸손은 타인(他人)중심적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먼저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배려도 용서도 사랑도 인내도 충성도 헌신도 섬김도 모두 여기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 나온 바리새인의 태도에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바리새인은 한 마디로 자기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가 드린 기도에 이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11,12). 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은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11). 그에게서 동료 기도자(세리)에 대한 생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다음으로, (자신과의 관계에서)겸손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하고 절망적인 죄인인가를 아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리새인과 세리가 다른 점이 이것이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랑하듯 따로 서서 하나님께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나열했고, 함께 기도하고 있는 사람까지 들먹이며 자신을 추켜세웠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가슴만 치면서 죄인이니 불쌍히 여겨달라고만 흐느꼈다. 겸손은 세리처럼 자기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하고 절망적인 죄인인지를 아는 것이다. 부끄러워서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을 향해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자기 가슴만 치는 것이 겸손한 태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겸손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의존하는 것이다. 그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만 기대하는 태도다. 이것은 두 번째와 관련이 깊다. 적어도 자기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부르게 된다. 자기에 대하여 절망한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이것이 영적 원리다.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처럼 된다. 바리새인은 기도를 하지만 그것은 자기자랑이지 기도가 아니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찬양이나 예배도 자기과시에 지나지 않아 결국 자의적 숭배에 빠지게 된다. 한 때 은혜를 깊이 경험했던 사람들이 이단의 괴수가 되어 자기숭배에 빠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한계를 모르는 교만 때문이다. 교만은 이렇게 경건생활도 왜곡시켜버린다. 그렇지만 세리처럼 자기한계(연약함과 부족함, 절망적인 죄인임)를 인정한 사람은 가슴을 치면서 주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고, 구원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다. 철저하게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주님과의 관계에서 겸손한 사람의 태도다. 세 가지 관계에서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 곧 겸손한 사람이고, 이렇게 겸손한 사람이 주님께 인정을 받고, 응답을 받고, 은혜를 받는다. 그래서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가 의롭다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14a).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본문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b).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높여주신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지혜롭게 하시고, 겸손한 사람이 영광을 얻도록 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명예를 얻도록 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이다. 다윗은 정말 별 볼 일 없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을 받았고, 자신은 물론 자자손손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가는 복을 받았고, 게다가 역대 이스라엘 왕들 중에 가장 존경받는 영예로운 왕이 되었다. 그 비결은 그의 겸손에 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중에 첫 번째는 확인이 어렵지만 적어도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성경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다윗은 평생 이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이새는 베들레헴의 촌부(村夫)였고, 다윗은 그의 말째(הכתין)였다. 여기서 말째는 순서의 의미(막내)보다 오히려 수사적 의미가 더 강하다. 수사적으로는 등급의 의미로 쓰이는데, 질이 떨어진 가장 아래 등급을 뜻하는 말이다.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하찮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윗이 그의 부모와 형제에게 이런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새의 아들이란 표현은 다윗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말이다. 다시 말하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별 볼 일 없는 자식이라는 것인데, 다윗은 죽는 순간까지 이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이는 그가 자신의 본래성’(originality)을 잊지 않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항상 기억하며 살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시편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대로 그는 하나님을 절대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인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목자로 자신을 양에 비유한 시23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양의 생명이 목자에게 전적으로 의존된 것처럼 자신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다윗의 겸손한 태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평생 그 은혜 속에 머물도록 하신 것이다.

 

성령도 겸손한 사람에게 충만하게 임하신다.

성령도 마찬가지다. 성령도 겸손한 사람에게 충만하게 임하신다. 성령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평생 그 은혜 안에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님은 스스로 겸손의 모델이 되신 예수님(2:6)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령님 역시 겸손한 사람에게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겸손은 성령충만의 방법이면서 동시에 성령충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이다. 성령님은 폭포와 같다. 항상 높은 곳에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그 밑에 깊은 웅덩이나 연못을 만들고, 그것을 채워서 넘쳐흘러가게 만든다. 성령님도 겸손한 사람에게 임하시고, 충만하게 하여 흘러넘치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려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많이 생각하는 태도(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죄에 깊이 절망하는 태도(자신과의 관계에서),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만을 구하는 겸손한 태도(주님과의 관계에서)를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은 겸손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다. “여호와께서는 자기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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