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1 17:54

오직 예수 외에는

(*.0.40.41) 조회 수 8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직 예수 외에는

17:1~8

2019. 9/8. 11:00

예수만 보고 교회 다닙니다.

전에 법관과 대법관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의 인터뷰가 어느 기독교 잡지에 실렸다. 그분은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는데, 줄곧 그 교회를 출석하며 총리직을 마친 다음엔 그 교회에서 구역을 맡아 구역장으로 구역예배도 인도하고 있었다. 기자가 그를 찾아가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계속 그 조그마한 상가교회를 다니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수준에 맞춰 사람도 사귀고 교회도 찾고, 특히 정치하는 사람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교회, 목회자도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교회를 선호하는데, 사뭇 다른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이러한 기자의 질문에 마치 선문답처럼 그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예수님만 보고 교회 다닙니다.

 

나는 이 인터뷰 기사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동이 되었다. 사실 신앙생활의 본질이 교회의 외양이나 시설, 성도의 수와 교회의 규모, 목회자의 인지도나 영향력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은 상식이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수준도 없는 것 같은데)교회가 자기수준에 맞지 않는다며 떠난 사람을 본 나로선 이 대답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바로 이 짧은 대답 속에서 다시 한 번 신앙생활의 본질에 대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본질이고 핵심이다. 다른 것은 들러리에 지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들러리만 보고 본질을 놓친 경우가 많다. 이것은 예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배의 초점, 예배자의 초점도 예수 그리스도께만 두어야 한다. 예수님만 보여야 하고, 예수님만 보아야 한다.

 

예배의 본질

본문은 변화산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는데, 갑자기 주님께서 변모(變貌)하신 사건이다. 여기서 변모란 주님께서 본래의 상태(모습)로 돌아가신 것을 의미한다. 본래의 상태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의 모습(신성의 회복)을 의미한다(2:6). 이는 얼마 후에 있을 주님의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변모하신 주님 곁에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상징하는 엘리야가 나타나 주님과 이야기를 나눴다(누가는 주님의 죽으심을 의논했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내용을 소개하고 있음). 이런 놀라운 광경을 본 베드로가 주님께 초막 셋을 지어 그곳에 눌러 살았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그러자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면서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5)는 음성이 들렸고, 놀란 제자들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6).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7)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보니 오직 주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8).

 

이 사건은 신앙의 본질, 특히 예배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우선, 신구약시대를 통틀어 경배의 대상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한다. 율법과 예언이 구약성경을 대표한 것처럼 율법의 상징 모세와 선지자의 상징 엘리야는 구약시대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열두 제자를 대표하고, 나아가서 신약시대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그런데 그 중심에 신적인 모습을 회복하신 주님이 계셨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확증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5).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경외함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예배자의 자세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구름이 걷히면서 모세도 엘리야도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보였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는 말씀은 단순히 당시 상황을 설명한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올바른 예배는 예배의 대상이신 주님만 보이도록 해야 하고, 주님만 보이고, 주님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배의 초점, 예배자의 초점이 오직 예수님께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예배의 모습이고, 또한 예배자의 태도다. 천국의 영원한 기쁨과 영광을 경험하는 예배, 십자가의 능력이 드러나는 예배다. 이것은 예배를 집례하는 목회자를 비롯하여 예배를 섬기는 찬양대나 찬양팀, 반주자, 기도 인도자, 봉헌, 안내를 맡은 사람 등 예배에 참여한 모든 회중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점검해야 할 문제다. 심지어는 예배실의 장식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성령이 아니고는 예배가 안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또한 범죄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예배에 있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교회라고 하는 영적 기관을 허락하심도 예배를 위해서다. 그러므로 성도와 교회의 존재이유는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데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올바른 예배는 성령님의 주도(主導)로 가능하다. 예배뿐만 아니라 성령이 없는 신앙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사실을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4: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 본문은 여러 주제를 담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본문으로 만남이란 주제로 설교를 하기도 하고, 혹자는 교제(대화), 전도, 생수, 치유 등 다양한 주제로 설교를 한다. 하지만 이 본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예배다. 주님과 여인의 대화가 예배문제에서 절정에 이르기 때문이다(23,24). 이와 같이 예배라는 핵심주제 배후에 이런 다양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주님은 여기서 예배문제와 관련하여 세 가지를 강조하셨다.

 

먼저,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는 것이다(23).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학식이 많은 학자도,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도,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은 영웅도, 사람을 잘 이끄는 유능한 지도자도, 많은 재물을 소유한 부자도, 존경받는 종교가도 아니고 예배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 곧 주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음은,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이다(24a).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을 모르고는 그 대상을 잘 섬길 수 없다. 성경이 꼼꼼하게 제사규정을 정하여 주면서 임의로’(자기 마음대로) 제사하지 못하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에 적합하게 예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배하는 방법이다(24b). 그 방법은 영과 진리로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이시니까 영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영과 진리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강조한 것이다. 주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14:17)이라고 했다. 물론 진리의 영이란 참 진리이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참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고, 믿고, 바라고, 순종할 수 있다. 예배도 마찬가지다. 성령님의 주도 하에 성령님 안에서 예배할 때 진리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는 예배, 예수님만 보이는 예배, 예수님만 보이도록 하는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그런데 전에도 말했듯이 성령님과 예배는 순환관계. 성령님이 주도하는 성령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야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우리가 올바른 예배를 드릴 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선순환으로 작동하면 성령충만과 더불어 예배의 영광과 복이 경험되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게 되고, 역순환으로 작동하면 예배를 드릴수록 주님의 마음을 불편하고 역겹게 만드는 형식적인 예배로 전락하게 된다(1). 그러므로 올바른 예배는 성령님께 달렸고, 올바른 예배자에게는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신다.

 

예배가 성령충만의 최고비결이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주()에 거쳐 성령충만의 방법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다. 순종에서 시작하여 기도, 간절함, 찬양, 감사, 섬김, 헌신, 전도, 말씀 들음, 겸손 . 그런데 이 모든 주제를 예배로 묶을 수가 있다. 예배는 마치 영적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예배 안이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른 예배자에게는 앞에서 열거한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즉 올바른 예배자는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순종하게 되고, 섬기고, 헌신하고 등등. 그리고 이 모두가 성령충만의 방법(비결)이니 예배는 당연히 성령충만의 최고 비결(방법)이다.

 

그러므로 성령님 안에서 주님만 보이도록 하는 예배, 주님만 보이는 예배, 주님만 보는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올바른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타협 없는 예배,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예배, 십자가 능력이 드러나는 예배, 피 묻은 복음으로 세상의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는 불타는 예배, 천국의 영원한 기쁨과 영광이 경험되어지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배와 예배자에게 성령충만은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예배가 살아야 영이 살고, 신앙이 살고, 삶이 산다. 예배에 성공해야 성공적인 신앙생활, 성공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가 있다. 성도의 모든 것은 예배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 모두 성령님께 이끌려 초점을 주님께만 둔 올바른 예배자,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자가 됩시다. 바로 여기에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 주변을 복되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1. 망치와 같은 말씀

    망치와 같은 말씀 렘23:29, 막4:1~20 2019. 9/22. 11:00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봉부필파(鳳復必破)라는 말이 있다. 봉황이 알에서 나오려면 반드시 껍질을 깨뜨려야 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을 얻으려면 먼저 껍질을 깨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제학 용어가 있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는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조세프 쉼페터(J. Schumpeter)가 경제발전을 설명하게 위해 만들어낸 용어다. 혁신을 통하여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을 말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으로서 창조적 파괴...
    Date2019.09.27 By장양식 Views51
    Read More
  2. 회개하라 그리하면

    회개하라 그리하면 행2:37~42 2019. 9/15. 11:00 通卽不痛 不通卽痛 몇 년 전 여름,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갑자기 3층 천장 곳곳에서 물이 쏟아져 바닥이 한 강이 되었다. 급기야 천정 한 곳이 훅 내려앉기까지 했다. 급히 천정으로 올라가보니 빗물이 밖에서 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물이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어 그저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며 천정에 고여 있는 물을 퍼내고 천정 몇 곳에 구멍을 뚫어 빗물을 받아냈다. 여러 번 업자를 불러서 해결책을 간구했지만 지붕을 모두 걷어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또 발을 동동구루며 지붕으로...
    Date2019.09.20 By장양식 Views49
    Read More
  3. 오직 예수 외에는

    오직 예수 외에는 마17:1~8 2019. 9/8. 11:00 예수만 보고 교회 다닙니다. 전에 법관과 대법관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의 인터뷰가 어느 기독교 잡지에 실렸다. 그분은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교회를 출석하고 있었는데, 줄곧 그 교회를 출석하며 총리직을 마친 다음엔 그 교회에서 구역을 맡아 구역장으로 구역예배도 인도하고 있었다. 기자가 그를 찾아가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계속 그 조그마한 상가교회를 다니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수준에 맞춰 사람도 사귀고 교회도 찾고, 특히 정치하는 사람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교회, 목회자도 유명...
    Date2019.09.11 By장양식 Views83
    Read More
  4.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18:9~14 2019. 9/1. 11:00 머리를 많이 숙이라! 그러면....... 어느 왕이 민심(民心)을 살피러 밖으로 나왔다가 길가에서 비바람에 깎이고 사람에게 시달려 볼품없는 초라한 돌부처를 보게 되었다. 왕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돌부처를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신하가 ‘어찌하여 전하께서는 이런 하찮은 돌부처에게 머리를 숙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고 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왕은 그 신하를 불러 아홉 개의 짐승 목과 한 개의 사람 목을 주면서 그것들을 시장에 내다팔고 오라고 하였다. 저녁이 되어 그 ...
    Date2019.09.09 By장양식 Views52
    Read More
  5. 일어나서 가라!

    일어나서 가라! 행8:26~40 2019. 8/25. 11:00 성령의 능력으로 한 부자가 농사를 짓는 친구에게 일에 보탬이 되라고 트럭을 한 대 선물했다. 친구에게 귀한 선물을 받은 농부는 신이 나서 소 네 마리에 멍에를 채워 트럭을 끌고 다녔다. 어느 날 이 차를 선물한 친구가 이 광경을 보고는 소들의 멍에를 풀고 차에 기름을 넣고 시동을 걸어 시범을 보이면서 차는 소로 끄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이 운전하여 사용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지만 성령과 사역의 관계를 설명하는 좋은 예다. 자신의 힘이나 능력, 지혜, 경험, 재능으로 섬기는 것은 마치 트럭을 소...
    Date2019.08.29 By장양식 Views80
    Read More
  6. 일하게 하심

    일하게 하심 출35:30~36:1 2019. 8/18. 11:00 너희 중에 메시야가 있다. 중세시대 어느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때 잘 나가던 수도원이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폐쇄위기까지 이르게 되었다. 원장과 몇 명의 수도사가 남아있긴 해도 서로에 대한 반목이 심하고 원망과 불평뿐이었다. 수도원만큼 수도사들의 마음도 메말라 있었다. 그래도 수도원을 다시 일으켜보려는 원장이 훌륭한 랍비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랍비를 찾아가서 현재 자기 수도원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도움을 청했다. 랍비 역시 원장의 하소연을 듣고 안타까워하면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그 방법은 수...
    Date2019.08.22 By장양식 Views82
    Read More
  7. 성령에 민감한 바울

    성령에 민감한 바울 행16:6~10 2019. 8/11. 10:30(전교우 번개 나들이) 두 종류의 성도 신앙인의 입장에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과 아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다. 전자를 성도라고 부르고, 후자를 자연인이라 부른다. 그런데 성도 중에도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은 했으나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지 못하여 삶에 대한 주도력과 지배력을 자신이 행사하고 있는 성도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사람이다. 전자를 육적인 성도(혹은 육...
    Date2019.08.14 By장양식 Views7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95 Next
/ 9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