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기 전에 아신다.

마6:7~8

2011. 12/4   08:00, 11:00

집사님 앵무새와 목사님 앵무새

어떤 집사님이 앵무새 한 마리를 키웠는데 그 앵무새가 배운 말은 ‘뽀뽀합시다.’였다. 문제는 이 앵무새가 사람만 보면 누구에게나 ‘뽀뽀합시다. 뽀뽀합시다.’고 말했다. 그래서 집사님을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목사님도 앵무새를 키우게 되었는데 목사님의 앵무새는 거룩하게도(?) ‘기도합시다.’라는 말만 했다. 집사님은 목사님의 앵무새가 너무 부러웠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앵무새를 목사님의 앵무새와 함께 두면 자기 앵무새도 ‘뽀뽀’ 대신 ‘기도’를 말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목사님께 양해를 구한 뒤, 자기 앵무새를 목사님 앵무새 우리에 집어넣었다. 두 앵무새는 한참을 푸드득 거리며 서로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고 하더니 드디어 집사님의 앵무새가 말했다. ‘뽀뽀합시다. 뽀뽀합시다.’ 그러자 목사님의 앵무새가 전에 하지 않았던 느닷없는 말을 한 마디 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는 ①환경의 중요성과 ②아무리 좋은 표현도 상황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난 주 설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③비우지 못하고, 집착을 끊지 못하면 신앙까지 자신의 편의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새삼 자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기도에 있어서도 자세가 중요하다. 기도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었다면 주님은 회당이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한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5). 어디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기도하든 중요한 것은 기도의 내용이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금하셨다. 대신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6)고 하셨다. 그리고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8)는 말씀 또한 기도의 자세와 관련이 깊다. 이 말씀은 성경 곳곳에 나온 기도하라는 말씀들과 정면으로 배치가 된다. 이미 알고 계시면서 기도하라니 이상하지 않는가? 이것은 결국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이다. 나아가서 기도의 궁극적인 관심에 대한 말씀이다. 물론 기도는 단순한 간구로 시작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아무튼 본문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기도의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

 

중언부언(重言復言)하지 말라.

본문을 과시적 욕구에서 비롯된 외식적인 기도에 대한 연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광장기도는 기도의 자세에 대한 것이고, 본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기도의 내용에 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는 광장기도와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독립적인 것으로 보고, 기도의 자세에 대한 또 다른 교훈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저는 후자를 택한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7).

 

여기에 나온 중언부언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말이 정확하지도 않고, 명쾌하지도 않은 일종의 ‘의성어’(擬聲語)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이를 ‘babbling’(재잘 거리는, 수다를 떠는, 졸졸 흐르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헬라어 ‘바탈로게오’(βατταλογεω)에서 왔다. 바탈로게오는 ‘말을 더듬다, 지루하게 재잘거리다, 공연히 반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음과 정성을 쏟지 않고 그저 입만 놀리는 것을 말한다. 즉 마음과 정성이 결여된 기도를 뜻한다(성령이 아닌 자기도취적인 기도). 그러므로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첫째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다. 의미 없는 말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며 길게 기도해야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기도다.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오래 기도하고 많이 기도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기도다. (그렇다고 기도는 짧고 간단해야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공중기도는 짧고 간단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기도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내용이 많아 오래 기도할 수 있다.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위해선 오래 기도해야 한다. 깊은 묵상의 세계로 들어갈 때도 오래해야 한다.) 당시 이방종교에서는 기도 속에 죄를 속하는 공효(功效)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불교에도 기도‘공덕’사상이 있음). 그래서 기도를 오래 할수록 공효가 더 커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유대인들이 기도에 있어서 이런 이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둘째로,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이방인들의 기도’다. 이는 이교도의 영향을 받은 기도라는 뜻도 되지만 이방인들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마6:31,32) 이런 세속적인 것만을 구하는 기도를 뜻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니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1요2:16)에만 집중되어 있는 기도다. 그러므로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세속적인 것에 초점을 둔, 마음과 정성이 결여된 장황한 입술의 기도다. 그렇다면 기도에 왜 이런 왜곡이 일어난 것일까?

 

1.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다.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문제점은 ‘하나님은 수다쟁이를 좋아하신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7). 이는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아주 잘못된 이해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중언부언하는 기도생활을 낳은 것이다. 잘못된 기도뿐만 아니라 기도하지 않는 이유 또한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관련이 있다(약1:5).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자세와 태도를 중요하게 보신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신데 무슨 많은 말이 필요하겠는가? 기도할 때 몸과 마음과 영혼이 다 관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입술의 기도보다는 마음의 기도를 들으신다. 말의 기도보다 중심의 기도를 들으신다. 기도의 장소로 골방을 택하라고 하심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한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문제점은 ‘하나님을 자신의 필요나 채워주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기도가 세속적인 간구에 매몰되고 만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를 채워주시고, 채워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때문에 필요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의 교제’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교제를 원하시고 기뻐하시며, 기도는 교제의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8절을 두고 ‘구하기 전에 이미 다 아시니까’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나 채워주시는 분이시고, 기도가 그 도구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우리와의 교제를 원하시고, 기도는 교제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8절은 필요를 위한 기도를 멈추고(이미 아버지께서 아시니까!) 하나님과의 교제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기도의 대상을 바로 이해하여 바른 목적을 위해서 기도를 사용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다른 필요들은 자연히 다 채워지게 된다(마6:33).

 

2. 믿음 때문이다.

웰스(H. G. Wells)의 단편 「대주교의 죽음」에 나온 이야기다. 대주교는 습관처럼 매일 저녁 성당에서 기도했다. 그는 그날도 전날과 똑같이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가 저녁마다 하나님을 부르니까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소리를 들은 그는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다. 이는 그동안 그의 기도가 ‘형식적인 입놀림’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는 평생 기도했지만 그 기도를 정말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리라는 믿음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응답이 오자 놀라서 쓰러진 것이다. 형식적인 기도와 그 위험성에 대한 이야기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형식적이 되고, 형식적인 기도는 도리어 기도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 기도는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적인 동기와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이 마음의 자세를 결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기도의 역동성과 생명력은 믿음에 있다.

 

유대인들이 기도의 장소로 골방이 아닌 광장이나 거리를 택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보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보다 세속적인 문제에 집착해서 무의미한 말들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은 믿음 때문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들으시고, 갚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름 없는 들풀 하나까지도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구하기 전에 모든 필요를 다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18:1~8)를 통하여 기도의 자세를 이야기하면서 그 결론에 믿음을 강조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8).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도전이다. 이를 ‘선언적’으로 해석하면 반드시 믿음을 보시겠다는 주님의 강한 의지이고, ‘반의적’으로 해석하면 끝 날이 되면 믿음의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는 주님의 탄식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선언과 탄식에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는 믿음의 의한, 믿음을 통한 사건이다. 주님이 들으신다는 믿음,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믿음이다. 바로 이 믿음이 올바른 기도의 자세를 결정한다. 믿음은 기도뿐만 아니라 신자의 영적인 삶의 모든 태도를 결정한다. 우리의 기도가 위선과 형식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믿음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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