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삶, ‘승리

13:30~14:3

2017. 12/24. 11:00

알렉산더와 동전

알렉산더는 10배나 더 많은 적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병사들 역시 적의 수에 압도되어 겁을 먹고 있었다. 이대로 전쟁을 했다간 질게 뻔했다. 그렇다고 적 앞에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어려움이 처한 알렉산더는 병사들을 두고 인근에 있는 신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돌아와서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신께 기도 했더니 신께서 내게 계시를 주셨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싸울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퇴각한다. , 동전을 던져서 신의 계시대로 결정하자!

 

그리고 알렉산더가 동전을 높이 던졌다. 어느 면이 나왔을까? 물론 앞면이 나왔다. 그러자 병사들이 승리를 확신하고 일제히 환호를 지르면서 전장으로 나가 용감히 싸웠다. 그래서 10배나 더 많은 적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뒀다. 전쟁 후에 한 장수가 알렉산더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신의 계시가 참으로 무섭습니다. 정말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까?그러자 알렉산더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던지든 동전은 앞면만 나오게 되어있었네. 동전 뒷면은 없었으니까. 내가 동전 앞면만 만들어서 던진 거야! 병사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고 잠시 속임수를 쓴 것이네.

 

그렇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적의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클수록 승리할 수는 있는 확률도 커진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확신이 중요한다. 확신이 있으면 실수나 실패를 현저하게 줄일 수가 있다. 아라비아 속담이다. ‘자신이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잠자고 있는 사람이니 그를 깨워라.’ 나는 이와 같은 성도가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확신의 삶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사람이 많고, 죄 사함을 받고도 여전히 죄의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고, 주님이 동행중에 계시고, 꾸준히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을 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확신의 삶 시리즈 설교를 준비했다. 오늘은 일곱 번째 승리의 확신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영적 메뚜기 의식

선지자 엘리사 때 일이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보니 아람 군사가 엘리사를 잡겠다고 엘리사의 집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기겁한 그가 엘리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많으니 두려워말라고 하면서 사환의 눈을 열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때 그의 눈이 열렸고, 그는 아람 군사를 포위하고 있는 또 다른 군사를 보게 되었다. 엘리사를 돕도록 하나님께서 보낸 하늘의 군사였다. 하늘의 군사를 보고나니까 아람 군사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엘리사의 사환처럼 누구라도 배후에서 돕고 있는 손길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버티고 있는 문제만 보고, 위협하는 적만 보면 놀라서 낙담할 수밖에 없다. 본문이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거의 1년 만에 가나안의 접경지역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다. 지난 일 년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 그들이 새삼스럽게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먼저 알아보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무턱대고 들어가지 말고 알아보고 가자! 얼마나 합리적이고 좋은 생각인가? 하지만 이것이 시험이다. 마태복음 2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사람의 생각을 앞세우면 하나님의 인도가 멈추게 되고, 이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내용생략). 본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의 요구대로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열두 명을 선발해서 가나안 땅을 탐지하도록 했다. 그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알아보고 돌아왔는데, 가나안 땅에 대한 그들의 보고는 긍정적이었다. 두 사람이 작대기에 꿰어 메고 온 포도송이를 비롯하여 여러 과일을 보여주며 젖과 꿀이 흐르는기름진 땅이라고 했다(13:27). 하지만 들어가서 취하자는 데는 둘로 갈렸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이었고, 나머지는 부정적이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차려놓은 밥상이니 당장 들어가서 취하자고 했다. 그렇지만 나머지는 달랐다. 그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13:32)이라고 악평하면서 자신들은 그 땅 거주민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다고 했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13:33). 이와 같은 영적 메뚜기 의식, 곧 패배의식은 온 백성에게 전염이 되었다. 급기야 백성은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죽이려고 하는가?’(14:3)고 원망하며,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울부짖었다. 그래서 결국 애굽에서 태어났던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해야 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사건이다. 이미 지휘관을 잃은 오합지졸 패잔병에게 겁먹고 주저앉아 이렇게 된 것이다(14:9). 승리를 보장해 놓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이렇게 하찮은 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바라봄의 법칙

결국 인생의 문제 바라봄의 문제다. 바라봄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감정이 달라진다. 언어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평가가 달라진다. 열 두 명의 정탐꾼이 같은 기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성읍과 같은 사람을 보고 왔지만 전혀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바라봄의 차이 때문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14:8,9). 때문에 비록 가나안 땅의 거주민이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컸지만’(13:28)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차려놓으신 밥상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14:8). 아무리 대단해도 그들은 지휘관을 잃은 패잔병, 보호자를 잃은 미아이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승리를 확신하며 당장 들어가서 취하자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열 명은 문제만 보았다. 크고 견고한 성읍만 보고, 키가 장대한 사람만 보았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악평하고, 영적 메뚜기 의식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들어가지 말자, 절대 상대할 수 없다,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13:31).




이것이 마귀의 계략이다우리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하고, 패배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그러나 절대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신이 날 정도로 넉넉히 이기는승리자다. 바울의 고백을 한 번 들어보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7~39). 어떻게 이와 같은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바라봄에 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를 여기까지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또한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로 하여금 이기고 또 이기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주님에 대한 이런 확신을 가질 때 우리 자신이 신이 날 정도로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인 것을 확신할 수가 있다. 세상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내 경험이나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소한 적도 내 힘과 내 경험과 내 지식으로 물리칠 수 없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고, 주님께서 공급하신 능력으로 이길 수가 있다. 그래서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잘 된다고, 잘되고 있다고, 잘될 수밖에 없다고 선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승리의 열쇠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는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 옆에 실내화를 챙겨놓고, 그 안에 열쇠를 넣어둔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실내화를 신을 때 열쇠를 발견하면 그는 열쇠를 꺼내들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오늘도 내 앞에 잠긴 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이 나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내게는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그리고 주님께 이렇게 기도한다고 한다. ‘주님, 제가 오늘 하루를 살면서 앞길이 막힌 것처럼 보일지라도 좌절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난관을 헤치고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십시오.본받고 싶은 참으로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인 것 같다. 우리 역시 모든 난관을 헤치고 닫힌 문을 여는 열쇠를 소유하고 있다. 그 열쇠는 곧 주님이시다. 주님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승리의 열쇠다. 축복의 열쇠, 행복의 열쇠, 은혜의 열쇠다. 우리가 살면서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열지 못할 문이 없을 것이다.

 

 

조회 수 :
760
등록일 :
2017.12.24
13:07:28 (*.0.40.41)
엮인글 :
http://www.joypc.or.kr/49334/cfb/trackback
게시글 주소 :
http://www.joypc.or.kr/4933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sort 추천 수 비추천 수 날짜 최근 수정일
598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장양식 23059     2008-07-13 2008-07-27 16:21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출14:10~14 2008. 7/13 11:00 캐리어의 법칙(Carrier's rule)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 좋은 방법으로 ‘캐리어의 법칙’이 있다. 이는 공기조절장치를 개발한 기사이고 캐리어사의 사장인 윌리스 캐리어(Willis H. Carrier)가 고민이 많고 힘든 상황에서 의사 결정하는 데 사용했던 인생법칙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캐리어의 법칙’이라 부르게 되었다. 캐리어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힘들게 성공한 사람인데, 힘들고 어려운 사건에 직면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첫째, 걱정이 되는 사건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를...  
597 구하기 전에 아신다. 장양식 20772     2011-12-04 2011-12-04 14:55
구하기 전에 아신다. 마6:7~8 2011. 12/4 08:00, 11:00 집사님 앵무새와 목사님 앵무새 어떤 집사님이 앵무새 한 마리를 키웠는데 그 앵무새가 배운 말은 ‘뽀뽀합시다.’였다. 문제는 이 앵무새가 사람만 보면 누구에게나 ‘뽀뽀합시다. 뽀뽀합시다.’고 말했다. 그래서 집사님을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목사님도 앵무새를 키우게 되었는데 목사님의 앵무새는 거룩하게도(?) ‘기도합시다.’라는 말만 했다. 집사님은 목사님의 앵무새가 너무 부러웠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앵무새를 목사님의 앵무새와 함께 두면 자기 앵무새도 ‘뽀뽀’ 대신 ‘기도’를 말하겠구나 하는 ...  
596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07-07-15) 장양식 18852 30   2007-07-16 2007-10-20 22:17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 딤후1:15~18 목사에게 있어 '설교’란 면류관이면서 십자가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면에서 영광이고 면류관이지만,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여 이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모든 과정은 피를 말리는 일이기에 십자가인 셈입니다. 그러기에 애를 써서 준비한 설교가 잘 전달이 안 되는 날은 말 그대로 고통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일주일 내내 준비한 설교를 힘있게 외쳤지만 왠지 사람들에게서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죽 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예배를 마치고 힘없이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이 때 주책이 없는 교인...  
595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삶 장양식 17083     2011-09-04 2014-03-16 15:16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삶 마5:17~(18,19)~20 2011, 9/4 08:00, 11:00 몸만 나가라. 현대사회를 ‘몸의 문제에 잠식당한 사회’(Susie Orbach)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몸의 주인이 아니라 몸이 나의 주인이 되어버린 가치전도시대다. 이런 가차전도시대의 우울한 상징인 다이어트는 말 그대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건강한 삶이 아닌 날씬하고 예쁜 몸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던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거래로 알려진 3가지가 있다. 첫째는, 남아...  
594 복의 통로28, ‘상처의 지우개’ [1] 장양식 16095     2012-08-19 2012-08-19 13:12
복의 통로28, ‘상처의 지우개’ 마18:21~35 2012. 8/19. 08:00 11:00 붙잡지 말고 놓아줘라. 한 제자가 스승에게 인생의 고뇌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방법은 없느냐고 물었다. 스승은 제자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니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숲에서 갑자기 나무를 껴안더니 ‘놔란 말이야, 이놈의 나무야. 나를 놓으란 말이다.’고 소리쳤다. 스승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제자는 나무를 붙잡고 계시면서 왜 나무에게 놔달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 때 스승이 웃으며 나무에서 팔을 풀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사실 세상의 고통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593 불편한 용서, 그렇지만 용서 장양식 15584     2016-04-17 2016-04-17 15:52
불편한 용서, 그렇지만 용서 마18:21~35 2016. 4/16. 11:00 불편한 용서 목사님들이 불편해 하는 설교가 세 가지 있다. 헌금에 대한 설교와 전도에 대한 설교, 그리고 용서에 대한 설교다. 나 같은 경우는 그 중에서도 용서에 대한 설교가 가장 불편하다. 용서에 대해서는 나 역시 실천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부분이고,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설교를 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사람들 앞에서 용서에 대한 설교를 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뿌리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용...  
592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07-06-10) 장양식 13933 35   2007-06-11 2007-10-20 22:21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요4:23~24 나폴레옹이 워터루(Waterloo) 전쟁에서 패한 후 세인트 헤레나(Saint Helena) 섬에 유배되었습니다. 그 때 어떤 기자가 나폴레옹을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폐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나폴레옹이 대답을 했습니다. “전투가 치열했던 어떤 주일이요. 그땐 졸병이었지만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던 때요. 그리고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예배에 빠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쟁에 패하여 이처럼 유배되어 있소.” 나폴레옹은 자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