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삶, ‘상급

11:24~26

2017. 12/31. 11:00

신앙은 동사다.

재임시절보다 퇴임을 한 다음 더욱 존경을 받았던 대통령이 있다.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Habitat)으로도 유명해졌지만 퇴임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한 일은 그를 존경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교사로서 종종 설교를 할 때 그것을 보기 위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증거의 삶이다. 한 기자가 은퇴 후까지도 교회학교 교사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앙은 동사입니다.

 

그렇다. 신앙은 진행형(과정)이지 완료형(정지상태)이 아니다. 신앙을 가지는것이 아니라 신앙하는 사람으로 되어가는것이다. 신앙은 항상 이미아직 아니의 긴장관계에 있다. 주님을 믿음으로 이미(already)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직 아니다(not yet).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이라 믿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신앙에 완성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신앙의 과정성, 혹은 동사성을 잘 보여준 사람이 바울이다. 바울은 신앙인으로 자신의 실존적인 모습을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2,14). 한 마디로 자신은 달려가고 있는 도상(途上)의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신앙의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앞에서 언급한 동사신앙(動詞信仰)이고, 다른 하나는 상급신앙(賞給信仰)이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는 고백이 그것이다. 폭주 기관차처럼 멈추지 않고 숱한 박해를 뚫고 그를 계속 달리게 했던 것이 신앙의 완성과 함께 이 상급신앙이었다. 이 시간에는 확신의 삶 여덟 번째로 이 상급(보상)의 확신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윤리적 인간과 신앙적 인간

자신은 어떤 상급(보상)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며 상급신앙을 유치한 유아적 신앙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훌륭한 휴머니스트는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좋은 신앙인은 아니다. 아름다운 윤리적 인간이지 경건한 성도는 아니다. 사실 상급을 바라지 않는 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이다. 과격하게 표현하면 상급에 대한 기대가 없고, 상급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그는 자기 의()로 가득한 종교인이지 믿음을 지닌 성도가 아니다. 물론 여기엔 잘못된 상급신앙(현세적인 기복주의 신앙, 번영신학과 같은)에 대한 저항적인 의미도 작용하고 있다.

 

신앙에는 윤리에 전혀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이 보상’(報償)이다. 윤리에는 엄격한 요구와 의무만 있다. 일방적인 희생만 있을 뿐 이에 상응하는 보상(상급)이 없다. 보상을 약속하는 이도 없다. 윤리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스스로의 의지로 지켜야할 그 어떤 것이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수치나 비난과 같은 불명예가 따르지만, 그것을 지켰다고 해서 주어지는 보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신앙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맹세하신 약속이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부단히 그 약속의 실현에 참여하고 계신다. 즉 그 약속에 대해 책임을 지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신앙의 내용으로서 약속에는 반드시 상급이 보장되어 있다(십일조나 주일성수룰 보라!). 아울러 이 사실을 굳게 믿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성도는 하나님께서 상주시는 분이심을 반드시 믿어야한다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는 강한 동기는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보상에 대한 믿음에 있다. 이것이 윤리적 인간과 신앙적 인간의 차이다.

 

상급신앙은 거룩한 삶의 동기를 부여한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도 상급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셨다는 점이다. 특히 산상수훈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5:11~12, 46, 6:1~2, 5, 16, 18 ).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장 요한계시록 22장에서도 다시 오실 주님께서 친히 이 상급을 언급하고 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행위에 따라 주리라.”(:12). 어떤 사람은 이 상급이 영적인 것이라며 구원(구원의 완성)과 일치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과 상급을 분리하고 있다(22:12 참고). 구원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지만 상급은 주님을 위해 사는 삶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보상이다(25:14~30). 그래서 바울은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고전9:25)고 권하면서 자신도 상을 위하여 달음질한다(3:14)고 했다. 구원과 상급이 동일하다면 이런 표현을 했겠는가? 그것도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러면 왜 우리가 상급신앙을 가져야 할까? 그것은 상급신앙이 거룩한 삶, 경건한 삶의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보답하는 보은신앙’(報恩信仰)이 거룩(경건)한 삶의 직접적인 동기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주님께 무엇으로 보답할까?’(116:12) 하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 보은신앙이다. 예배도 찬양도 헌금도 섬김도 헌신도 이 보은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공로주의, 곧 행위신앙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 정도면 앞에서 상급신앙이 거룩한 삶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말에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사실 상급신앙 또한 보은신앙의 다른 측면이다. 상급신앙은 보은신앙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은혜에서 비롯한 보은이 상급을 부르고, 그래서 보은과 상급의 반복이 신앙생활이고, 지속적인 확장을 통해 신앙성숙에 이른다. 그래서 성경은, 특히 주님은 상급신앙을 통해 우리의 경건생활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10:41~42). 반드시 행한 대로 보상할 것이니까 경건한 생활에 힘쓰라는 뜻이다.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본문은 모세의 선택에 대한 말씀인데, 모세는 상급을 위해 거룩한 삶을 선택했다(26b). 사실 히브리서 11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님이 평가하실 미래의 목표로 현재의 삶을 조절해 나갔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기대하면서 불편하고 힘든 끔찍한 현실을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았다. 모세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모세는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가 보장된 애굽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24)이 되는 것을 거절했다. 이 공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바로의 무남독녀였다. 모세는 이 공주의 양아들이었다. 이변이 없는 한 애굽의 왕위는 모세의 것이었다. ‘애굽의 모든 보화’(26a)가 그의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많은 사람이 그토록 꿈꾼 것들을 모두 갖게 되는데, 모세는 이를 죄악의 낙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택했다. 모세는 왜 애굽의 모든 보화를 죄악의 낙으로 규정하고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했을까? 세속적인 영화라면 영혼까지 팔아먹는 사람도 있는데, 모세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가 있었을까? 본문은 간단하게 대답한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26b). 상급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다. 상급신앙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주실 상급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 것을 쉽게 내려놓을 수가 있다.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초연할 수가 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네로 황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약 250년 동안 계속 되었다. 그래서 초대교회 역사를 순교의 역사라 하고, 기독교를 순교자의 피로 자랐다고 한다. 미치광이 황제 네로가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로마시내에 불을 질러놓고 사건이 커지자 그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떠넘겼다. 그래서 수많은 기독교인을 붙잡아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에게 찢겨 죽게 하거나 길가에다 묶어놓고 화형을 시켜 거리를 밝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놀라운 것은 이런 박해에도 기독교인의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황제는 신하들과 날로 왕성해지는 기독교를 막을 방법을 강구했다. 황제가 먼저 법률을 강화시켜 기독교인을 무조건 죽이자고 제의했다. 그랬더니 한 신하가 반대했다. 그들을 죽여 순교자로 만들면 그들은 순교자를 추앙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인을 잔인하게 고문하여 예수를 부인하도록 만들어 다시는 신앙생활을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다른 신하가 반대하며 나섰다. ‘그들은 고문을 받으면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고 좋아합니다. 또한 육신의 고난이 하늘에서는 상급으로 쌓인다고 믿어서 오히려 기뻐하며 고문의 흔적을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 방법으로는 그들을 없앨 수 없습니다.황제와 신하들은 오랜 시간 논의를 했지만, 결국 기독교인을 없앨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고문도, 맹수도, 불도, 황제의 권력도, 심지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게 한 것이 바로 상급에 대한 소망이다. 상급신앙이다. 주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였고, 주님 나라에서 누릴 영화를 생각하면서 이 세상의 고난을 참고 이겨냈다. 주님과 함께 누릴 영생을 생각하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의 보화를 생각하면서 이 세상의 것 다 빼앗겨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런 삶을 보여준 사람이 본문의 모세이고, 또한 초대교회시절 성도들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금년 한 해도 이 상급신앙으로 여기까지 주님을 섬기며 달려온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어진 새 해도,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신앙여정도 상급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뜨겁게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경건생활에 더욱 매진합시다. 오늘까지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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