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복음전도

14:19~28

2018. 6/3. 11:00

행복한 사람

어느 설문조사기관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나잇대 별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10대는 날마다 놀고먹는 사람이라 대답했고,

20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 했고,

30대는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 했다.

40대는 공부를 잘하는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 했고,

50대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는 사람,

60대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사람,

70대는 밥을 함께 먹어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

80대는 잠자다가 죽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위 설문조사 결과는 각 세대의 행복관이라기보다는 가치관(혹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성경을 보면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다. 성경이 말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붙들려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주 한 말이지만 인간의 존재(정체성)를 결정짓는 것이 소속감이다. 이는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 소속이 되어 있느냐의 문제인데, 이것은 단순히 소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서(혹은 그에게서) 무엇을 하느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 소속되어(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사명으로 알고 충성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미 주님 안에 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도 알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 충성하기만 하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

 

복음으로 도시를 충격에 빠뜨린 바울

본문에 행복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다. 바울이다. 바울만큼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바울도 주님을 믿기 전에는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흩어진 성도를 붙잡아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오히려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께 붙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주님의 복음으로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복음전도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목숨을 걸고 복음전도에 헌신했다. 주님의 사랑에 강권되어 미치도록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행복한 복음전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본문은 복음전도에 목숨을 걸었던 바울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본문은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막바지에 있었던 사건이다. 바울의 루스드라 전도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 바울의 설교를 듣는 사람 중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그에게 말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10). 그러자 그 사람이 곧 바로 일어나 걷게 되었다.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에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 복음으로 온 도시를 거룩한 충격에 빠뜨렸다. 우리와 우리 교회를 통해서도 이 도성을 충격에 빠뜨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왔다면서 바나바는 제우스이고, 바울은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라고 말했다. 그래서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제우스가 좋아하는 소를 끌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며 이런 헛된 일을 하지 않도록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면서 그들의 행동을 겨우 멈추게 하였다. 이렇게 복음의 역사가 크게 일어난 반면 사단의 역사 또한 극렬했다. 루스드라의 이웃 도시 이고니온에서부터 온 유대인이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돌로 치도록 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이라며 제사를 드리려고 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하여 바울을 돌로 쳤다. 이것이 바로 사역자가 걸어야 할 길이고, 사역의 길이 험난한 이유다. 그래서 사람 의지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복음전도에 전부를 걸었던 바울

그런데 정말 감동적인 것은 이제부터다. 무리의 돌에 맞아 바울이 쓰러졌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를 성 밖으로 내다버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그곳엔 바울의 제자들만 남아 있었다. 아마도 바울의 장례를 계획했는지 모르겠다. 놀랍게도 죽었다고 생각했던 바울이 깨어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조금 전에 그 큰 봉변을 당했던 성 안으로 들어갔다(20). 나는 이곳을 읽을 때마다 숨이 멎을 것 같다. 또 다시 봉변을 당하면 어쩌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미쳤다고 했는데(고후5:13), 미치지 않고야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말 그대로 복음전도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주님의 복음을 위한,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바울의 심정이다. 훗날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20:24)고 고백했는데, 그는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일본어에 잇쇼겐메이’(いっしょうけんめい)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의 무사(사무라이)정신의 근간이고, 일본인의 성향을 잘 대변하는 단어로 평생 한 곳에 목숨을 건다.(一所懸命)는 뜻이라고 한다. 무사계급이 정치와 사회를 이끌던 시절에 목숨을 바친다는 비장함이 배어있는 이 단어가 지금은 열심히 한다는 뜻의 보통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하여간 일본인은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밥을 할 때도 잇쇼겐메이, 심지어 식사도 잇쇼겐메이한다고 한다. 이 단어가 이렇게 일상적으로 사용되다보니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일본에 가업을 잊는 장인(匠人)이 유난히 많고, 제품에 있어서 불량률이 현저히 낮은 이유가 이 단어에 배어있는 정신과 관련 있다고 한다. 평생 한 곳에 목숨을 걸고 열심히 하니까 그 분야에 장인이 되고, 맡겨진 일에 목숨을 거니까 실수 없이 잘하는 달인이 되는 것이다. 성도야말로 이 일소현명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주님과 주님의 복음, 이 한 곳에 평생 목숨을 걸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거저 받은 은혜가 아니다!

양화진(楊花津)에 선교사 묘역이 있는데, 그 중에 루비 캔드릭(Ruby R. Kendrik)이란 선교사의 묘가 있다. 1907,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처녀 몸으로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까지 왔다. 오직 우리나라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일념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와서 한글을 배우다가 1년도 안 되어 급성 맹장염으로 죽었다. 제대로 선교도 못해보고 급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자기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공개되어 큰 감동을 주었다(주보 글 참조). 그녀의 묘비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내게 천개의 생명이 주어질지라도 나는 그 모든 생명을 조선을 위해 비치겠습니다.일천 번을 산다 해도 조선을 위해, 조선 복음화를 위해 살겠다는 뜻이다. 비록 이 선교사가 구체적인 선교활동도 못하고 숨을 거뒀지만 주님을 향한, 우리나라를 향한 복음전도의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가 있다. 천개의 생명이라도 아끼지 않겠다는 복음전도에 대한 이와 같은 열망이 이미 주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물이 되어 우리나라 온 강산을 복음으로 물들게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복음풍년을 맞은 것이다. 그 결과 우리도 믿게 되어 주님을 섬기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좋은 생각이나 열망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내가 하지 못하면 누군가 대신 하도록 만든다.

 

구원을 우리 편에서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받은 것이기에 거저 받은 것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그리고 우리 주님 편에서 생각하면 전혀 달라진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목숨을 주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고, 주님 편에서는 천하보다 귀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님의 희생을 통해 이뤄진 값비싼 은혜. 본문에서 바울을 비롯하여 앞에서 소개한 캔드릭 선교사와 같은 이들이 복음전도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은혜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복음전도에 자신의 목숨을 건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말 할 수 없다. 또한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은혜를 깨달은 만큼 반응하기를 촉구한다. 지금까지 전도에 대한 설교를 책 한권 분량이나 했다. 중요한 것은 설교의 횟수나 양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구원의 은혜를 얼마나 깊이, 얼마나 많이, 또한 얼마나 뜨겁게 깨달았느냐에 따라 복음에 대한 태도와 반응이 결정된다. 나날이 내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깊이, 많이, 뜨겁게 깨닫기를 바라고, 또한 깨달은 만큼 복음전도에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울처럼, 캔드릭처럼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드린 행복한 삶의 비결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주님의 복음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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