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들어주심

18:35~43

2018. 10/21. 10:00(산상예배)

그저 들어주었을 뿐인데

어느 동네 성당에 신부가 새로 부임했다그런데  동네에는 성당과 신부에 대해 항상 욕을 하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성당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었다새로 부임한 신부는 그 소문을 듣고 할아버지를 찾아갔다그리고 자신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그만 치 3시간 동안 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래요그렇군요. .......이 일 있고난 다음부터 할아버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성당에 새로 온 신부님은 사람이 됐어괜찮더라구!

 

그저 들어만 주었을 뿐인데 그동안 그렇게 성당과 신부를 욕하던 할아버지가 새로 부임한 신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로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잘 들어주는 (경청)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잘 들어주는 것, 곧 경청(傾聽)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태도이자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고, 존중의 표시다. 상대방의 깊은 내면을 탐험하는 여행이기도 하고,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인격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청만으로도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이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어떤 이는 혼란이 정리되고, 어떤 이는 관점이 바뀌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문제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단지 잘 들어주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성으로 대충 듣는 소위 배우자 경청’, 상대방의 말을 분석하면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논리적 경청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대화가 대놓고 화내는 것이 되고 만다. 진정한 경청은 상대의 생각과 느낌과 열망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공감적 경청이다. 이와 같은 진정한 경청을 통해 관계가 깊어지고, 성장과 성숙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들음의 중요성

본문은 들음들어줌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우선, ‘들음의 중요성이다. 바울은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된다고 했다(10:17). 본문은 바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좋은 예다. 소경 거지가 있었다. 그날도 사람들의 출입이 많은 여리고성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무리가 지나가는 듯 많은 사람 소리가 났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고 물었고, 누군가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고 있다.’(37)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 소경은 마치 비명처럼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 그러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다. 그렇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9). 여기서 크게 외쳤다는 단어가 미완료형이다. 미완료형에는 반복의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자 더 크게, 계속해서 외쳤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사람들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큰 소리로 외친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외친 내용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구원자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리라고 했는데, 그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뜻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맞먹는 놀라운 고백이다. 어떻게 주님을 만난 적이 없는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고쳐서 외친 것일까? 비록 그가 주님을 만난 적은 없지만 주님에 대한 소문은 들었을 것이다. 당시 주님에 대한 소문이 온 갈릴리와 유다지역에 두루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소문을 듣고 주님이 메시야라고 확신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주님께서 하신 사역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 사역과 정확히 일치한다(61:1,2). 아무튼 소경은 소문을 듣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왔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 물었고, 어떤 사람으로부터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이런 멋진 고백으로 주님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주님은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 소경은 들을 수 있는 복된 귀로 주님을 만나 영/육의 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데려오라!

아울러 본문은 주님의 들어주시는 은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 주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이 소경의 간절한 외침을 단지 구걸하는 소리, 귀찮은 소음 정도로 생각했다. 그의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과 절박한 소원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셨다. 특히 그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에 가시던 발길을 멈추셨다(40a).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마치 새끼를 잃은 짐승처럼 절박하게 외쳐대는 그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40b). 주님께서 들으시고, 주님께서 보시고, 주님께서 부르시면 이제 그의 문제는 해결되는 일만 남은 샘이다. 그렇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고 다 들으신다. 그것도 믿음을 담은 간절한 호소는 주님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주님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삶에 주님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내 문제에 주님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 비결은 부르짖음이다.

 

주님은 그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주님이 부르신다.고 했다. 아마 그와 접촉을 꺼려 말로 전한 것 같다. 암암리에 저자는 이 소경을 대하는 주님과 주변 사람들을 대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외쳤을 때도 그랬고, 그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랬다. 사실 이런 사소함이 큰 차이를 만든다.

 

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전해들은 그의 태도가 다시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본문 앞부분에서 부자 청년은 주님의 부르심에 심히 근심하며’(23) 떠났는데, 소경은 자신의 겉옷을 버려두고’(10:51) 주님 앞으로 나아왔다. 그에게 있어서 겉옷은 그가 가진 것 전부다. 자신의 전부를 버리고 주님께로 온 것이다. 주님은 그에게 물으셨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41). 이와 같은 주님의 질문을 두고 어떤 사람은 실망할지도, 혹은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애써 불러놓고,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려왔는데,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물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히 소경에게 그의 소원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가 주님을 누구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 다윗의 자손이여!하고 외쳤던 그 외침이 그의 마음에서 나온 고백인지를 확인하는 질문이다.

 

같은 질문이라도 묻는 사람을 누구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만약 내가 그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가 어떻게 대답할까? 그런데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보기를 원합니다.’(41).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주님께만 드릴 수 있는 대답이다. 이것은 그가 주님께서 자신을 보게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었다는 뜻이다. 동시에 앞에서 그가 주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친 것이 진실한 믿음의 고백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주님은 이 소경의 소원을 즉시 들어주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라.’(42). 이렇게 주님께서 그에게 선포하시자 그가 즉시 보게 되었다(42). 소경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발길을 멈추신 주님은 그를 데려오게 하여 그의 소원까지 들어주셨다. 들어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가슴의 언어를 들으신다.

지난 주일에 제자들이 풍랑으로 인하여 힘겹게 노 젓는 보시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물위로 걸어서 찾아오신 주님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배에 올라 바람과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다. 그렇다. 주님은 들으시는 분이다. 특히 입술의 언어보다 가슴의 언어를 들으신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목이 말라 숨넘어가듯 !하고 외치는 외마디 비명과 같은 가슴의 언어를 들으시는 분이시다. 가슴으로부터 피처럼 쏟아내는 간절한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 또한 아름다운 믿음을 담은 고백의 언어를 들으신다. 본문의 소경이 좋은 본보기다. 그는 가슴의 언어로 주님께 부르짖었고, 믿음을 담은 고백의 언어로 외쳤다. 그리고 주님께 그것을 들으셨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듯이 주님은 우리 삶의 현장으로 항상 찾아오신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주님을 모셔 들여야 한다. 그 비결이 부르짖음이다. 간절한 가슴의 언어로, 아름다운 믿음을 담은 고백의 언어로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즉시 반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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