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이어받는 삶

벧전3:8~9

2016. 7/24. 11:00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말과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거울은 절대 내가 짓는 표정, 내가 하는 행동의 이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웃으면 웃고, 찡그리면 찡그리고, 눈물을 흘리면 눈물을 흘린다. 내가 손을 내밀면 손을 내밀고, 내가 춤을 추면 춤을 춘다. 반대로 내가 웃지 않는데 거울이 먼저 웃는 법은 절대로 없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람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물론 간혹 막무가내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하는 행동에 따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내가 상냥하고 친절하면 상대방도 상냥하고 친절하고, 내가 진지하고 예의바르면 상대방도 진지하고 예의바르게 반응한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준비가 잘되지 않아 토요일 저녁까지 설교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때 그의 어린 아들이 들어와 놀아달라고 졸랐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는 놀아달라는 아들에게 큰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이놈아, 아빠가 힘들게 설교준비하고 있는 것이 네 눈에는 안보이냐? 이 방에서 당장 나가!’ 하고 소리를 쳤다. 이 아이 역시 고이 나가지 않고 문을 꽝하고 닫으면서 문에다 대고 한 마디 했다. ‘설교도 더럽게 못하면서 소리만 지르네!’ 거울의 법칙이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만약 이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얘야, 미안하지만 지금은 곤란하구나. 보다시피 지금 아빠는 설교준비를 끝내지 못했단다. 대신 다음에 놀아주마!’ 이랬다면 틀림없이 아이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괜찮아요! 아빠. 설교 열심히 준비하세요. 화이팅!’ 거칠게 대하니까 거친 반응이 돌아온 것이다. 거울은 결코 먼저 웃지 않는다.

 

박해를 만났을 때

지금까지 본서의 저자 베드로는 성도로서 국가권력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고, 조직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도자에게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그리고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어떻게 사는 것이 합당한지 구체적으로 교훈했다. 본문에서부터 본서 저술의 주목적인 박해에 대한 격려(3:8~4:19)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본문은 이에 대한 서론으로, 박해에 대처하는 성도의 태도에 대한 일반적인 교훈이다. 박해를 직면했을 때, 8절은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고, 9절은 박해자에 대한 태도의 말씀이다.

 

마음을 같이 하라!

우선 저자는 박해를 만났을 때 교회와 성도가 내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는 것이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8).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부의 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은 분열과 분쟁이다. 그러니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서로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내부적으로 결속력이 강하면 어떤 외부의 적도 막아낼 수가 있고, 어떤 시련의 폭풍우도 막아낼 수가 있다. 물은 부드러움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 물로 가벼운 옷감에서부터 나무, 돌, 유리, 심지어 쇠까지 자른다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첨단과학은 이런 것들을 자를 수 있는 소위 ‘물칼’을 만들어냈다. 원리는 간단하다. 물의 압력을 높여 작은 구멍으로 물을 뿜어내는 것이다. 세차장에서 차량내부를 청소할 때 물이 아니라 공기압을 이용하여 세차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여러분도 많이 이용해 보았을 것이다. 이 모두는 부드럽고,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것도 하나가 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저자는 박해에 대한 대처법으로 교회의 하나됨, 성도의 하나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쉬운 일이라면 저자가 이렇게 당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고 힘드니까 이것을 먼저 강조한 것이다. 이는 베드로뿐만이 아니다. 주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직전까지 제자들에게 이것을 간곡하게 당부하셨던 말씀이다(행1:4, 참고 요17:).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자주 언급했던 내용이다. 아무튼 사람은 10인(人) 10색(色)이라는 말처럼 똑 같은 사람이 없다. 이것은 교회나 성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무리 교회라 하고, 성도라 해도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분쟁과 분열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실 교회와 성도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건물처럼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서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을까? 본문은 그 비결로 명쾌하게 다음 네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동정하는 것, 형제를 사랑하는 것, 불쌍히 여기는 것, 겸손한 것이다. 이 모두는 자기중심이 아니라 타인중심, 주님중심의 삶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이는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마음이 하나가 된다. 내부적인 결속이 일어나게 된다. 아무튼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지체들을 하나 되게 하는 사람이 주님의 복을 이어받게 된다.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 지체들을 하나 되게 하여 주님의 복을 이어받는 사람이 되자!

 

도리어 축복하라!

본문은 내부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한 권면에 이어 이제 외부적으로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박해자들에 대한 태도를 간단하게 언급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9a).

 

이 권면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고(마5:10~12, 44), 친히 모범을 보이셨던 내용이다(눅23:34). 바울도 로마서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다(롬12:14~21).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것’은 주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오랜 세월 널리 통용되었던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었다. 고대사회는 백성의 사적인 생활에 관여할 만한 공권력이 준비되지 못했다. 때문에 사적인 보복을 허락하여 사회정의를 구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악을 억제하고, 무분별한 보복의 악순환을 막으려고 했다(지금도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이것이 통용되고 있음). 하지만 인간의 연약성과 악마성을 잘 아신 주님은 보복을 금지하는 사랑의 법을 제시하셨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심판자가 아니기 때문이고, 어떤 경우든 복수는 복수를 낳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가복수(等價復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께서 친히 보복해주실 것이니까 보복은 주님께 맡기고, 그(혹은 그들)를 위해 기도하고, 나아가서 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은 이와 같은 주님의 교훈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주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불이익을 당하고, 심지어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더라도 ‘맞서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는 것이다. 칼을 칼로 총을 총으로 맞서지 말고 사랑으로 품으라는 말씀이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힘이 아니라 은혜로 이기라는 것이다. 사실 숱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복음이 더욱 확장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당하기 힘든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참고, 더 나아가서는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축복하는 모습에 세상이 감동을 받은 것이다. 도대체 예수라는 분이 어떤 분이기에 저런 끔찍한 일을 당하면서도 원망하고 불평하기는커녕 찬송을 부르고, 자신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기는커녕 용서를 선언하고 축복을 할 수 있을까? 보는 사람들이 충격과 감동을 받고, 심지어는 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조차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형을 집행하는 것을 그만두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을 하고 죽임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약 15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토마스 목사와 박춘권).

 

특히 본문은 박해하는 사람들과 맞서지 않고 도리어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이 우리가 부름 받은 이유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렇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로 부름 받았다. 어떤 경우든 모든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를 미워하고, 그래서 핍박하는 사람도 포함이 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복을 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복을 받을 만해야 받는다. 만약 그 사람이 그 복에 합당하지 않으면 우리가 빌었던 복은 우리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눅10:5-6). 아무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주자. 우린 이를 위해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라야 주님의 복을 이어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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