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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복팔단(眞福八端)Ⅴ, ‘긍휼’①

마5:1~12

2011. 5/1 08:00, 11:00

옥수수떡 한 조각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무엇이 사람 사는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행복하고 아름답게 해줄까? 어느 가난한 의대생 이야기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아껴보던 책 몇 권을 들고 헌 책방을 찾아갔다. 그런데 헌 책방은 문이 닫혀 있었고, 여행을 떠난다는 쪽지만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학생은 허기진 배를 안고 힘없이 돌아오다 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눈에 보이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집을 지키고 있던 소녀가 학생의 사정을 듣고서 부엌에서 우유 한 컵과 노란 떡 한 조각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나와 말했다.

 

‘어머니가 계시면 뭔가 먹을 것을 만들어 드릴텐데 죄송해요. 지금 당장 먹을 거라고는 이 우유 한 컵과 옥수수떡 한 조각뿐이랍니다.’

 

학생은 소녀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여 소녀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가지고 돌아왔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 소녀의 어머니가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였다. 수술은 잘 되었으나 가난해서 수술비를 지불할 수가 없었다. 소녀가 퇴원수속을 위해 떨리는 손으로 병원비 계산서를 받았을 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입원비와 수술비를 합해서 우유 한 컵과 옥수수떡 한 조각, 이미 지불되었음.’

 

남을 사랑하는 마음, 특히 궁지에 몰린 사람을 돌보는 마음은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어떤 향기보다 향기롭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유 한 컵과 옥수수떡 한 조각이지만 누군가의 필요를 위해 내어놓는다면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큰 가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고통을 껴안아야 행복도 껴안을 수 있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긍휼의 마음이라야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모닥불이 된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섬김의 밀알이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긍휼이란 무엇인가?

탈무드에 이런 말이 나온다. 상대방이 내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고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은 ‘복수’이고, 상대방의 잘못을 확인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은 ‘증오’다. 그러나 상대방의 행동과 관계없이 필요를 따라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이것이 ‘긍휼’이다. 긍휼이란 역동적인 사랑이다. 심지어는 자기에게 피해를 준 사람까지도 단호하고 엄격하게 대우하지 않는 사랑이다. 그래서 긍휼을 ‘행동화된 은총’이라고 한다. 주님은 이 긍휼을 다섯 번째 복으로 말씀하셨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7).

 

토마스 왓슨(T. Watson)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의좋은 세 자매’라고 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조건 없이 주는 것이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호의다. 우리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그리고 긍휼은 무시해도 될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 버림받아야 할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 저주해도 좋을 사람을 저주하지 않는 것이다. 이 긍휼(דסח, ἔλεος)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로 약 500번 이상 나온다. 그리고 사용된 경우의 90% 이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긍휼은 하나님의 가장 대표적인 성품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이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2:4~5).

 

긍휼은 영어로 ‘sympathy’라고 한다. ‘sym’(같이, 함께)과 ‘pathy’(경험, 고통)의 합성어다. ‘고통을 함께 한다.’ ‘고통을 함께 경험한다.’는 뜻이다. 또한 ‘compassion’(=com+passion)이란 단어도 있다. 같은 뜻이다. 한자로 동병상련(同病相憐)과 같은 뜻이다. 자식의 아픔이 내게 느껴지는 것, 부모의 고민이 내게 느껴지는 것, 아내의 고통이 내게 느껴지고, 남편의 슬픔이 내게 느껴지는 것, 바로 그것이 ‘긍휼’이다. 상대방의 고통, 슬픔, 고민이 내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긍휼이다. 즉 ‘공감능력’(共感能力)이 긍휼이다. 그래서 긍휼은 건강한 인격, 건강한 관계의 척도다.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주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비참한 생애, 고통스러운 죽음을 경험하신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아픔과 고통, 비참함을 친히 경험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긍휼은 주님의 마음이고, 우리 신자들이 본받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긍휼을 실천할까?

그러면 어떻게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주님이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눅10:30~37)에서 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 내용은 긍휼의 성격과 방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이 비유 말씀에 대한 내용설명은 생략). 이 시간에는 긍휼의 성격이자 방법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 긍휼은 그를 나귀에서 뛰어내리게 한다(34).

누군가에게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되고, 그의 고통, 슬픔, 고민이 느껴지면 그 사람은 자신이 타고 있는 나귀에서 뛰어내린다. 안전한 울타리, 누리고 있는 기득권, 쾌적한 환경에서 자기도 모르게 뛰어내린다. 강도만난 사람을 제사장(31), 레위인(32), 사마리아인(33) 모두가 보았다. 그렇지만 제사장과 레위인은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하여’ 지나갔다. 자신의 나귀에서 뛰어내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안전한 울타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가까이’ 다가갔고(34), 돕기 위해서 자기 나귀에서 내렸다.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위험지역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렇게 사마리아인이 앞의 두 사람과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33)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이것이 긍휼이다. 강도를 만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낀 것이다. 그러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도우려고 자기 나귀에서 내린 것이다.

 

무엇이든 마음이 없으면 핑계가 먼저 생긴다. 그러나 마음이 있으면 어떤 한계나 환경도 극복하게 된다. 오히려 이런 한계나 환경이 의지에 불을 지피게 된다. 사마리아인을 보라! 자기민족을 개처럼 생각하는 유대인을, 그것도 영혼을 돌보는 자신의 종교지도자들도 외면한 그 사람을, 그리고 언제 강도들이 다시 나타나 자기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르는 그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를 돕고자 자기 나귀에서 내렸다. 죽어가는 그 사람에게 마음이 있으니까 이런 한계나 상황이 문제가 되지를 않은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기의 안락한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떤 일이나 어떤 상황, 어떤 사람에게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타고 있던 나귀에서 뛰어내리게 된다. 자기 나귀에서 뛰어내리게 하는 것, 이것이 긍휼의 성격이면서 또한 긍휼을 베푸는 방법이다.

 

2. 긍휼은 자신의 나귀에 낯선 사람을 태우게 한다.

긍휼의 사람은 나귀에서 뛰어내린 다음, 자신이 타고 있던 나귀에 그 이웃을 태운다(34). 사마리아인은 나귀에서 내려 강도만난 사람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붙고 싸매어 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응급처지를 한 것이다. 그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이 탔던 나귀에 그 사람을 태워서 주막까지 데리고 갔다. 그런데 나귀는 작아서 누군가를 태우면 자신은 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를 태운 채 자신은 걸어가야 한다. 나귀에서 내리는 것도 어려운데, 자신의 나귀에 낯선 사람을 태우고 자신은 걸어가야 하는 것은 더욱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긍휼을 베푸는 것이 힘든 것, 그리고 긍휼을 베푸는 일이 소중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권리를 포기하고 기꺼이 섬김의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손해 보지 않고, 수고하지 않고, 어려움을 참지 않고 어떻게 섬길 수가 있겠는가?

 

긍휼은 자기의 자리에서 기꺼이 뛰어내리는 것이고,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며 묵묵히 섬기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본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하늘보좌에서 내려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와 같이 되셨다. 종의 멍에를 메고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셨다. 우리를 향한 그의 긍휼하심 때문이다. 긍휼은 기꺼이 그를 위해 섬기는 종이 되게 하고, 섬기는 종이 되어야 긍휼을 베풀 수가 있다.

 

3. 긍휼은 상처 입은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게 한다.

긍휼의 사람은 나귀에서 내릴 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을 자신의 나귀에 태우는 데까지 나간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책임을 진다.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자기 나귀에 태우고 여관으로 데려가서 밤새 돌보아 주었다. 다음 날 그는 자기가 치료비를 부담하며 여관 주인에게 그 사람을 부탁했고, 추가경비가 발생하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했다(35). 그는 대충 하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될 때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끝까지 책임을 진 것이다. 여기서 두 데나리온은 한 달 정도의 숙박비에 해당되는 큰돈이다(당시 하루 여관비는 대략 1/12 데나리온이었음). 여행자가 수중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겠는가? 그런데 그는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그 많은 돈을 선뜻 내놓았고, 추가로 비용이 발생하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했다.

 

자기 부모에게도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자식도 내버리는 잔인하고 무도한 세상이다. 이런 곳에서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이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는가? 하지만 죄인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던 주님의 마음을 품으면 우리 역시 이런 삶이 가능해진다. 주님의 심장을 가지면 가능하다. 긍휼은 주님의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그 마음 가지고 사람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것이다. 내 마음 가지고는 못한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끝까지 책임을 다할 수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긍휼의 성격이고 방법이다.

 

긍휼을 실천한 아름다운 사람들

앞에서 토마스 왓슨 이야기를 했다. 그는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관계를 재미있게 설명하였다. 사랑이 애인을 방문하는 친구와 같은 것이라면, 긍휼은 병자를 방문하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은혜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애정이라면, 긍휼은 죄의 결과로 비참한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한 애정이다. 한 마디로 긍휼은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라는 뜻이다. 사랑은 마음으로 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로 표현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은 손과 발로 나타나야 한다. 나귀에서 뛰어 내려야 하고, 그 위에 이웃을 태우고 자신이 그 고삐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참 사랑의 실천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실천이 긍휼이다. 이런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테레사(Mother Teresa) 수녀는 먹지도 입지도 누리지 못하는 인도 사람들의 가난에 깊이 공감했다. 그들을 마음 깊이 불쌍히 여겼다. 그래서 나귀에서 내렸고, 자기 삶이라고 하는 나귀에 그들을 태웠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 살았다. 장 바니에(Jean Vanier)는 프랑스 아동병원에서 처참하게 버려진 아이들의 외로움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다. 그는 캐나다의 수상 아들이고, 철학교수라는 나귀에서 즉시 내렸고, 전 재산을 팔아서 라르쉬(LA'rche, 방주라는 뜻) 공동체를 세우고 그 작은 나귀에 그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 살았다. 후에 라르쉬에서 그와 같은 똑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헨리 나우웬이다. 주님의 마음으로 자신의 나귀에서 내려와 그곳에 이웃을 태우고 끝까지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긍휼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자. 신자는 공감능력이 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신앙생활은 이 공감능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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