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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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초, 2월에 목회자 부부를 대상으로 성지순례(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계획이 잡혀있다고 해서 기왕이면 학년말 방학 동안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결국 개학일이 겹쳐 좀 신경이 쓰였다. 우리 학교는 다행히 12월에 학년말 업무가 모두 끝나고 난 담임이 없는데다 올해 2월엔 개학식, 졸업식, 종업식 3일만 근무를 하면 되었기에 비교적 부담은 덜하였으나 근무일이 겹치는 건 어쨌거나 불편하고 미안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셔서 몸이 좀 활발하지 못한 것만 제외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었다.

 

2월 6일 새벽 6시, 우리 일행 33명은 순천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 출국수속을 마치고 오후 1시 반 출발 이집트 카이로행 비행기에 올랐다. 방학 동안에도 엇갈리는 일정으로 3월 초에 입대하게 되는 아들과 뽀땃한 시간을 보낼 틈도 없이 다녀오자마자 시차적응하랴, 새학기 준비하랴 정신없이 보낼 것을 생각하니 떠나면서 특히 아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교회 개척을 시작한 지 7년, 우리 형편에 성지순례는 엄두도 못내고 바쁘다는 이유로 가까운 데 여행조차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터라 마침 좋은(?) 기회가 된 이번 성지순례는 안식년 여행이자 우리에겐 나름대로 크나큰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7시간 반)를 경유하여 현지시간 밤 11시(우리 시간으로 오후 네시)에 카이로(다시 6시간, 총 13시간 반 비행) 공항에 도착하니 순천을 출발해서 카이로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즈벡에 선교사로 나가 있는 막내 여동생 부부가 타쉬켄트에 살고 있었지만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떠나야했다. 그런데 비행 중 남편이 갑자기 두통을 호소했고, 나도 평소에 없던 두통이 심하게 왔다. 마침 일행 중 치유 은사가 있는 목사님이 계셔서 안수를 받고 치유가 되자 나도 덩달아 불편한 몸 이곳저곳 안수를 받고 놀라울 정도의 회복을 경험했다. 여행 중간 중간 그 분의 도움을 받았는데 지금도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다.

 

카이로의 저녁은 약간의 바람이 일었으나 맑고 상쾌했다(우리나라 초가을 날씨 정도). 공항에서 만난 이집트 안내인이 숙소로 이동 중에 우리에게 가르쳐 준 아랍어 첫 단어가 ‘인샬라!’였다. ‘신(알라)의 뜻대로!’란 뜻인데, 아랍인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모든 경우에 이 말을 사용한다고 했다. 심지어 도난이나 분실, 강도, 폭행, 사고에도 ‘인샬라’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난단다. 그러니 모든 소지품은 본인이 철저히 잘 간수하라는 것이다. 신성하고 경건한 단어가 신에게로 모든 탓을 돌리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자기변명의 언어,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지배자들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악용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지난 해 여름에 있었던 이집트의 민주화운동을 인샬라에 대한 거부로 평가했다.

 

 egt1.jpg

카이로에서의 첫 숙소 피라미드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식당 앞에 있는 호텔 조감도가 인상적이어서 한 장

(좌우로 이 화면 만큼이 더 이어짐)

 

아무튼 카이로에서 설레는 첫날밤(피라미드가 바로 보이는 피라미드 호텔에서)을 보냈으나 불행히도 남편이 코를 고는 바람에 잠을 한 숨도 못 잤다(출발 전부터 우려했던 일이 첫날밤 현실로 드러남). 피곤이 풀리지 않은 채 몽롱한 상태에서 다음날 일정을 시작했으나 호기심과 설렘 때문인지 일정을 소화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아침 날씨는 전날 저녁과는 전혀 달랐다. 아침부터 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모래바람이 심하게 불어 기온이 뚝 떨어졌다(우리나라 삼한사온처럼 여기서는 모래바람이 주기적으로 분다고 함). 그래서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다가 다시 두툼한 옷을 꺼내 입고 일정을 시작했다. 명색이 성지순례인데, 우리의 일정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이집트국립박물관 관광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는 우리 숙소가 이들 곁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성지순례지만 이와 같은 세계문화유산을 쉽게 접할 수 없는 기회라 여겨 우리의 여정에 넣은 것 같다. 문화재 보호에 소극적인 이집트 정부가 다소 유감스럽긴 했으나 아무튼 거대한 역사와 문명 현장의 목격은 큰 감격이었다.

 

 egt2.jpg

       전망대에서 바라본 피라미드. 모래바람 때문에 모습은 분명하지 않지만 오히려 운치가 있는 듯

 

 

 

성지순례는 오후부터 구 카이로(이집트 내에 있는 기독교 집단 거주 지역)에 있는 예수님 피난교회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그 곁에 있는 모세 기념교회를 방문한 다음 이집트 동부사막을 지나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가 시작되었던 고센 땅으로 이동했다. 고센지역은 지금도 이집트에서 가장 비옥한 곳으로 이집트 농산물 8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이동 중 간식으로 이 지역에서 나는 오렌지를 사먹었는데 과즙이 많고 당도가 높아 맛이 참 좋았다. 고센 지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나가기 전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살았던 집터가 약간 남아 있었고, 람세스 2세에 의해 세워진 신전 터와 몇 점의 유물이 있었다. 다시 사막을 가로질러 비터호수(수에즈 운하; 나일강과 홍해가 나뉜 곳) 근처에 있는 두 번째 숙소로 향했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분명하게는 볼 수 없었지만 이집트 역시 수로를 이용한 사막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터호수 근처 팔마호텔에서 이집트에서의 두 번째 밤을 보냈다. 일행 중에 회갑을 맞이한 분이 있어 간단한 축하행사를 하고 식사 후 내일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코골이 때문에 또 잠을 설치게 될까봐 남편에게 일기 좀 쓰다가 내가 잠들면 나중에 자라고 부탁을 하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egt3.jpg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출발지 고센,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살았던 집터

 

이집트 순례의 핵심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시내산 등정이다. 그리고 다음 일정에 영향을 줄 만큼 순례에서 가장 고단한 일정이기도 하다. 우리 일정에는 오늘 시내산 중턱까지 이동하여 내일 새벽 2시 경에 일어나 시내산을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비터호수를 잠시 산책하고 차에 올라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터널(수에즈운하 해저터널)을 통과하여 시나이 반도 서편 수르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후 가장 먼저 도착했던 마라의 샘을 방문했다. 마라를 보고 왕의 대로(고대 왕들의 정복로이자 대상들의 무역로)를 따라 시나이 반도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이동했다. 시내산으로 가는 지름길은 르비딤을 거쳐 가는 길인데, 그 길이 막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경 타바까지 가서 다시 홍해의 해변을 따라 돌아가야 했다. 그 때문에 길은 멀었지만 홍해의 아름다움으로 끝없는 사막 길에서의 피로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egt4.jpg

     흙광야, 시나이 반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 중 차 안에서 찍은 모습으로

        아가 엉덩살같이 뽀얗고 예뻐서 여러번 눌렀다가 겨우 건진 사진

 


 

 모래광야. 가는 모래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광야의 모습도 사람 얼굴 만큼이나 다양하고 특징이 있다.

 

 


    바위광야. 기암괴석이 끝없이 펼쳐져 오후 내내 달렸는데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나중엔 무릎이 펴지지 않아 고생을 좀 했지만......

 

 


 사막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홍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로회복이 되었다.

높은 파도가 없기에 해변에 방갈로를 설치할 수가 있다고 한다.

 


풀 한포기 없는 삭막한 땅, 그 긴긴 여정에서 마치 사막의 파수꾼처럼 서 있는 유일한 나무 몇 그루를 보았다. 성경에 나온 성막과 법궤의 재료로 사용되었던 ‘싯딤’ 나무라고 한다. 이 나무는 짧게는 2~3백 미터, 깊게는 5~6백 미터까지 수원을 찾아 뿌리를 땅 속으로 뻗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사막에서 생존한 유일한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래광야 흙광야 바위광야 등 광야의 종류도 많았는데, 장면 장면이 한 편의 그림이었다. 광야의 다양한 모습에 반해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가 곧 쏟아질듯 한 높은 돌산 사이를 통과하면서는 갑자기 아찔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저 돌산이 무너져 여기에 고립되면 어떻게 될까......그런데 이 끝없는 길을 지금부터 약 3천 5백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40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며 통과하였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광야의 파수꾼 싯딤나무 군락지(아카시아 과에 속한 나무)

 

차로 이동 중에 논의가 있어 일정에 변화가 생겼다. 내일 새벽으로 잡혀있던 시내산 등정을 오늘 오후에 하고, 내일 오전엔 ‘칼라드 캐년’이라는 사막체험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후 3시 경에 시내산 중턱 세 번째 숙소가 있는 캐서린 수도원(모세가 광야에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보러갔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장소로, 이를 기념하여 5세기경에 세워진 수도원)에 도착했다. 낙타를 타고 중간까지만이라도 산을 오르려고 했으나 안내원이 겁(?)을 몽땅 준 데다(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금물, 낙타는 낭떠러지 길을 좋아하므로 낭떠러지를 지날 때는 벽 쪽이나 위를 쳐다볼 것, 낙타 몰이꾼이 갑자기 사라져도 절대 겁먹지 말 것, 내려올 때 많이 추우니 최대한 따뜻하게 입을 것)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무리해서 다음 일정에 영향을 줄까 하는 염려, 그리고 남겠다는 다른 두 사람이 있어 나 역시 숙소에 남기로 했다. 낙타를 타고, 혹은 걸어서 시내산을 오르는 일행들을 뒤로 하고 숙소에 남자니 아쉬움이 많았다. 대신 숙소에 남은 사람들끼리 산책도 하고 서로의 사역을 나누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두세시간 정도를 푹 쉬었다. 그리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산에 갔던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가지 못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남편은 ‘길이 생각보다 험하진 않았으나 기를 쓰고 갈 필요는 없겠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약과 신약의 차이, 율법과 은혜의 차이를 절감했다’고 한다. 사실 의미 때문에 오르는 것이지 누가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의 경관을 보려고 오르겠는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지만 어쨌든 시내산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낙타를 타고 시내산을 오르고 있는 일행들(남편은 걸어서 올라감)  

            

 

                                         사막의 그랜저 낙타

 

 

                                                              시내산 중턱 800개의 돌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는 일행들

 

 


                                  시내산 맞은 편 봉우리들

 

 

 

        시내산 정상(해발 2285미터)에서 바라본 구름에 잠긴 봉우리들 (멀리 지평선 너머가 지중해다)

 

 

어두워지고 있는 시내산 정상에서 모세 기념교회를 바라보며......

 

이집트에서 묵은 호텔들의 특징은 겉모양은 깔끔하고 잘 갖춰진 듯해도 뭔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꼭 한 가지씩 있었다. 시내산 숙소에서는 샤워기가 말썽이었다. 때문에 샤워는 못하고 머리만 겨우 감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날에 비해 비교적 여유롭게 사막체험을 준비하고 차에 올랐다. 베두인 안내인이 준비한 짚차 5대에 우리 일행이 나눠 타고 사막으로 들어가 모래사막 가운데 형성된 계곡과 베두인 마을,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를 차례로 방문하고 홍해근처 휴양도시 누웨바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타바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로 입국하는 것으로 이집트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베두인의 짚차로 광야체험을 위해 모래사막을 달리는 차 안에서

 

 


           칼라드 캐년 입구에서 한 장면(햇볕이 강하고 모래바람이 심해 안경, 마스크, 모자 등 있는 도구들을 다

  동원해 얼굴을 가리고 나니 도둑놈이 따로 없다. 장갑도 끼고 있었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잠시 벗음)

 


 

발자국이 그대로 찍힐 만큼 고운 모래 

 

 

붉은 사암으로 된 여러 모양의 바위들

 

 

좁고 가파른 바위틈 사이를 부축해서 내려주는 현지 가이드 베두인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한국식당, 빵이건 햄이건 아무리 생소한 음식도 거뜬히 소화해내는 남편에 비해 난 된장 고추장

밖에 모르는 토종인지라 식사 때마다 장아찌며 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비행기에서부터 먹기 시작한 느끼한 음식이 이곳에

와서 조금 해소가 되었다. 어떤 분이 양념해온 초고추장과 깻잎장아찌를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사람들이

반가워해도 이 사람은 묵묵히 맛있게 현지 음식을 즐긴다. 얄미울 정도다.

 

사실 국경이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국경을 사이로 이집트 지역과 이스라엘 지역이 너무 달랐다. 이집트 지역은 버려진 곳처럼 황량하기만 했는데 이스라엘 지역은 활기가 넘쳤고, 척박한 사막에도 야자수 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문제는 사람이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인 것 같다. 똑같은 땅에서 자란 야자수인데 이집트 땅에 있는 것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고, 이스라엘 땅에 있는 것은 단정하고 깔끔하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사람은 누구에게 어디에 속해 있느냐, 곧 소속감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타바 국경에 있는 이스라엘의 종려나무,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 비교할 수 있도록 이집트의 것도 찍어두는 건데......

홍해는 어딜 가나 우릴 따라다녔다.

 


그날그날의 여정을 까먹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고 싶었으나 첫날 잠을 못잔데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기력이 다해 둘째 날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식사 후 그대로 쓰러졌다.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부터 쓰자고 한 게 결국 집에 와서야 이렇게 일정을 되짚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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