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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499회 작성일 08-07-2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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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

눅11:33-36

2008. 7/27 11:00

핑크대왕 퍼시(Percy the Pink)라는 동화가 있다. 퍼시 왕은 핑크색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핑크 대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핑크 색 옷을 입고, 핑크색 음식을 먹고, 왕궁의 모든 물건을 핑크로 칠하여 핑크색 궁전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왕궁 밖에는 아직도 핑크색이 아닌 다른 색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명령을 내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핑크색으로 칠하게 했다. 군대가 동원되어 모든 것을 다 핑크로 바꾸었다. 그래도 왕은 만족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늘이 핑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전전긍긍하며 하늘을 핑크로 바꿀 궁리를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스승을 찾아가서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꿀 묘책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스승은 왕의 명령을 받고 묘책을 찾았다. 스승은 왕에게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이 안경을 쓰고 하늘을 보라고 했다. 왕은 반신반의하면서 스승이 준 안경을 끼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말 하늘이 핑크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스승은 핑크색 렌즈를 끼운 안경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 후로 그 나라 사람들은 핑크색을 칠하거나 염색할 필요가 없었다. 왕은 핑크색 렌즈의 안경을 끼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다.


핑크대왕이 핑크빛 렌즈의 안경을 끼고 온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사람에게는 이처럼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있다. 그것을 심리학적인 용어로는 프레임(frame)이라고 한다. 원래 프레임은 어떤 틀을 의미한다. 창틀, 사진틀, 안경테 등. 심리학에서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한다. 마음의 창에 따라서 사물이 보인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사람마다 달리 본다. 그것은 보는 창(frame)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 그림을 한번 보라.

         


어떻게 보이는가? 똑같은 그림인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또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그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프레임, 마음의 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림 프레임이 작동하면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가는 것으로 보이게 되고, 기호 프레임이 작동하면 화살표로 읽게 된다.


본문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에 대한 말씀이다. 주님은 눈이 우리 주변을 바라보는 육신의 창이라(34)고 하셨다. 전도서에 노인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적 표현이 있다.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전12:3), 여기서 창들로 내다보는 자란 눈을 가리킨다. 눈이 어두워질 것이란 말씀인데, 눈이 곧 육신의 창이다. 그러므로 눈이 성하지 않으면 세상도 그렇게 보인다. 성한 눈이란 건강한 눈, 즉 밝게 보고, 멀리 보고, 바로 보고, 집중적으로 보는 눈이다.


그러나 본문은 단순히 육신의 눈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마음의 눈에 대한 말씀이고, 마음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진정한 창이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35~36절에서 육신의 창인 이 눈을 밝히는 빛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그 빛은 마음이고, 마음이 밝고 깨끗해야 눈이 온전해진다는 것이다. 즉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이다. 마음이 곧 세상을 바라보는 진정한 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아담의 타락이후 죄로 인해서 더러워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에 여러 가지 죄로 코팅이 되었다(마15:19, 롬1:21~31).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밝고 바르지 못하여 언제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한다. 멀리 보지 못하여 눈 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다투고 분을 낸다. 마음이 순전하지 못하여 속이고 속으면서 산다. 그러다보니 불행과 불평, 무의함의 노예가 되어 기쁨도, 행복도, 보람도 없이 암울하고 고통스럽게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올바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마음을 밝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선 최소한 다음 두 가지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1. 자기중심의 마음.

어떤 분은 죄의 본질을 자기중심성이라고 했다. 영어로 죄를 ‘SIN’이라 하는데, 여기에 영어로 나를 뜻하는 ‘I’가 문자의 중심에 있는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보면(창3:), 더욱 분명해 진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유를 성경은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마음(5)이라고 말씀한다.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자기중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범죄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행위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변명(11~13)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죄는 자기중심, 더 나아가서 자기 미화(美化)다. 예를 들어, 자기가 하는 사랑은 로맨스지만 다른 사람이 하는 사랑은 불륜. 자기가 주는 것(받은 것)은 선물이지만 남이 주는 것(받은 것)은 뇌물. 자기 딸이 개가하면 몇 번이라도 좋으니 잘만 살라고 격려하면서도 며느리가 개가하면 음탕한 계집이라고 욕을 한다....... 이는 자기중심성, 자기 미화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도 않고 쉽게 정죄하게 된다. 때문에 세상은 날로 살벌해지고 삶이 힘든 것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이라는 것도 자기중심성이다. 상대방이 고려되지 않는 자기 입장에서만 바라볼 때 편견이 생기고, 자기생각이나 경험, 판단을 절대화시킬 때 선입견이 생긴다.


나를 중심에 세워두면 주님도 이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끝없이 나만 확대된다. 이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자기중심성이라는 마음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병들게 하여 파괴시키기 위한 사단의 무서운 전략이다. 


2. 비교하는 마음.

미국 코넬 대학교 연구팀이 1992년 스페인의 바로셀로나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받은 선수들과 동메달을 받은 선수들이 게임종료순간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연구했다. 또한 시상식에서 보이는 선수들의 감정을 같은 방법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동메달리스트의 행복지수가 은메달리스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이들을 인터뷰했는데, 은메달리스트들은 아쉬움을 많이 드러낸 반면, 동메달리스트들은 만족감을 나타냈다.


객관적으로 은메달이 금메달보다 훨씬 좋은데, 왜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만족감이 적었을까? 은메달리스트는 금메달리스트와 비교하고, 동메달리스트는 메달을 받지 못한 사람과 비교해서 그렇다고 한다. 은메달리스트는 조금만 더 잘했으면 금메달 땄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동메달리스트는 메달을 못 딸 수도 있었는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간단한 생각의 차이가 선수들의 모습과 반응을 결정지은 것이다. 날마다 행복한 삶을 사느냐, 늘 불평과 원망 가득한 삶을 사느냐도 여기서 결정된다. 물론 동메달리스트의 약한 성취감에 대하여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동메달리스트밖에 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인생의 행복은 메달의 색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못 입고 못 먹고 못 살아서 불행한 사람보다 배가 아파서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남이 나보다 잘 된 것이 배가 아프고, 성공한 것이 배가 아프고, 나보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잘 먹고 잘 입고 사는 것이 배가 아픈 것이다. 이것을 소위 선진국형 병이라고 한다. 이 병은 비교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은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비교하는 마음은 자기 행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도 빼앗아간다. 아내의 외모를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여직원과 비교하고, 남편의 능력을 승승장구하는 이웃집 남편과 비교하고, 자녀의 성적을 이웃집 수재와 비교한다면 그 가정의 불행은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이런 마음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방법은 우리 마음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자기중심적이고, 비교하는 프레임을 제거해야한다. 이것은 컴퓨터에 새로운 디스켓을 갈아 넣는 것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된 새로운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을 바꾸는 것은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다. 마음은 노력으로 수련으로 사상이나 제도로 바꿀 수가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해야 한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다. 주인이 바뀌면 마음도 바뀐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표현대로)우리 마음의 빛을 밝히는 비결이고, 그동안 우리 마음을 지배해온 잘못된 마음의 프레임을 바꾸는 일이다.


물론 우리가 주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한다고 하여 우리 마음에서 자기중심성과 비교하는 프레임이 당장에 작동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영적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매일 주님중심, 말씀중심의 삶을 추구하면서 내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고정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님중심이 될 때 자기중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은혜의식이 우리 마음에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속에 감사의 빛, 기쁨의 빛, 소망의 빛이 가득하게 된다. 이런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 또한 밝고 아름답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어둡다고 말한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아우성이다. 그보다 앞서 내 마음의 빛을 점검해야 한다. 문제는 내 마음의 빛이 어둡기 때문이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이고,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앞서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프레임을 바꿔야한다. 빛되신 주님 중심의 프레임! 그래서 우리 주님의 빛으로 우리 마음을 밝혀야한다. 그러면 감사의 빛, 기쁨의 빛, 소망의 빛이 가득한 은혜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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