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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어야 할 핵심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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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085회 작성일 08-09-0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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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어야 할 핵심가치

골1:24-29

2008. 9/7 11:00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Warren E. Buffett)의 일화다. 그가 어떤 사장과 함께 골프를 치게 되었는데, 사장이 내기골프를 치자고 했다. 당신이 홀인원(hole in one)을 하면 내가 당신에게 1만 달러를 주고, 홀인원을 하지 못하면 나에게 2달러만 주라.고 했다. 대개의 경우는 홀인원하면 횡재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2불이니까 하면서 내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버핏은 단돈 2불이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그 2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는 희박한 확률에는 인생을 걸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 때문이다. 중요한 이야기이다. 대부분 실패하는 사람은 희박한 확률을 가지고 싸운다. 안되는 것, 되지도 않는 확률을 가지고 싸운다. 거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열정과 물질을 낭비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기는 확률, 유리한 확률을 가지고 싸운다. 아무렇게나 자신의 시간과 열정, 물질을 낭비하지 않는다.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붙든다.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Steve P. Jobs)가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지난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그래도 할 것인가?를 물었다.......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할 때, 외부의 기대, 모든 자부심, 수치스러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은 다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 남게 된다. 항상 핵심가치들(Core Values)만 생각하고, 그 가치들을 붙들고 살아왔더니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는 고백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지금껏 살아온 나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고, 그리고 삶이란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둔 참으로 치열한 싸움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역시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신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가? 즉 붙들어야 할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바울을 통해 이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바울의 핵심가치(Core Value)

본문 29절에서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여정을 이렇게 말한다. 이를 위하여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지금까지 살아온 바울의 인생을 잘 표현해주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열정(힘을 다하여)과 수고(수고하노라)는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단어다. 그런데 그것이 끝난 것이 아니고 아직도 진행 중(~하노라.)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렇게 힘을 다하여 수고한 일은 바로 28절의 내용이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바로 여기에 바울이 힘을 다하여 수고한 핵심가치들이 나온다.


첫째는 전파하는 것이다.

지난 설교에서 자주 강조했듯이 바울의 사명은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27)를 전파하는 것, 즉 영혼구원이다. 그는 로마서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받은 목적을 그 이름을 위하여(1:5)라고 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진 자(1:14)라고 고백하였다. 그는 복음전파(영혼구원)를 위하여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하는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유대인의 태형 중에 최고로 중한 형벌),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에 맞고, 세 번의 파선으로 일주일 동안 난파를 당하였고, 그 외 여러 번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등 수많은 위험을 당하였고,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는 수고와 괴로움(고후11:24~27)을 당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이 일을 부득불해야 할 것으로, 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것(고전9:16)으로 알고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를 자기 인생의 핵심가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우는 것이다.

바울은 단순히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여 믿게 된 사람들을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도 전력했다. 낳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르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여기서 권하고(admonishing) 가르치는(teaching) 것은 중요한 양육의 방법이다. 현재 우리가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는 13권의 바울의 편지들 모두가 그의 복음을 듣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람들을 권하고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책들이다. 또한 교회를 세우고 교회 안에 여러 지도자들을 세운 것도 같은 이유이다(엡4:11~12). 그래서 복음이 전파된 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 안에 여러 조직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각 사람을 그리스도의 안에서 양육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양육의 목표는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데(28) 있다. 즉 각 사람을 충분히 자라 성숙된 자, 자기 역할과 기능을 다할 수 있는 자로 세우는데 있다.


이것이 영혼구원과 함께 바울이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던 그의 핵심가치였다. 그는 자신의 핵심가치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했다. 하나님이 위에서 주시는 능력을 따라,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역량과 에너지를 쏟았다(29). 비록 괴로움을 당해도 기뻐하면서,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남을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한다(24).


전도된 가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영혼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바울의 이 두 가지 핵심가치는 결국은 하나다. 그것은 영혼이다. 영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다. 이는 바울의 인생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다. 우리와 교회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일이고,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할 일이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재림직전에 주신 지상명령(至上命令, The Great Commandment)이다(마28:18~20).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역량을 쏟아야한다. 타지 않으면 불이 아니고 울리지 않으면 종이 아닌 것처럼 영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고 정상적인 신자가 아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타락은 사랑할 것을 이용하고, 이용할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이용하고, 이용해야 할 물질을 사랑하는 것, 본질적인 것을 뒤로하고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에 힘을 쏟는데서 타락이 생겨난다. 한마디로 가치가 뒤바뀐 것이 타락이란 말이다. 중세교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중세교회는 막강한 권력과 부를 누렸다. 교회 창고는 보화들로 가득했고, 종교지도자들의 힘은 세속 권력을 능가했다. 하지만 영적인 힘을 잃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것은 교회가 붙들어야 할 본질적인 가치를 놓쳤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사랑할 것을 이용하고, 이용할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중세교회는 영혼구원보다 세상에서 군림하기 위해 교세와 교권확장에 몰두했다. 현대교회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회칠한 무덤처럼 물량주의 세속주의에 편승하여 외적인 치장과 교세팽창에만 열을 올리고 있지 정작 돌보아야 할 영혼에는 무관심하다.


우리나라가 세계선교를 많이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 파송), 어느 통계에 의하면 선교비가 강단 장식용 꽃꽂이 값의 절반도 안된다(1997년 통계/ 꽃꽂이 2,000억 선교비 800억). 교회가 참으로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할 핵심가치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겉사람 단장에는 관심이 있으나 속사람 단장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못 입고 못 먹고 못 가진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면서도 영혼의 곤고함 때문에 가슴을 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소중히 여기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때문에 주변에, 세상에 대하여 영향력을 상실하고 맛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많고 신자는 많지만 골다공증(骨多孔症)에 걸린 사람처럼 속이 텅 빈 실속 없는 신자, 실속 없는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의 관심

사도바울은 개인적으로 굉장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것들이 복음에 장애가 된다고 하여 배설물처럼 여겼다(빌3:4~8). 영혼을 위해 스스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헐벗고, 배고프고, 주린 생활을 선택했다. 용기란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덜 가치 있는 것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폴 틸리히). 그의 관심은 조직이나 건물, 돈이나 명예, 세속적인 안락함이나 평안이 아니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야 할 영혼(어떻게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까?), 구원받은 영혼(어떻게 이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울까?)이었다. 그는 여기에만 집중하고, 여기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그래서 그의 일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무서운 병기로 쓰임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 역시 바울처럼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드는 사역, 그리고 그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사역을 힘쓰고 수고해야 할 핵심가치로 여기자.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관심이자 사명임을 기억하자. 교회도 마찬가지다. 건물이나 조직이나 행정이 핵심가치가 아니다. 이것들은 핵심가치를 이루는 수단일 뿐이다. 무엇이든 초점을 상실하면 안 된다. 성공하는 자와 실패하는 자의 차이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것은 핵심가치가 있는가? 그것을 제대로 지켜가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다시 말하면 삶의 초점이 분명한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진정한 성공자로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바울처럼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무서운 병기로 쓰임 받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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