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예배를 시작하며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목장예배를 시작하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023회 작성일 09-02-01 17:51

본문

목장예배를 시작하며
몬1:1-7

2009. 2/1 11:00

1966년 이후, 중국에서 모택동이 소위 ‘문화혁명’을 시작하면서 모든 교회는 폐쇄되었고 모든 선교사는 중국을 떠났다. 사람들은 이것을 중국 기독교의 종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이 개방되었을 때, 중국에는 문화혁명이전보다 더 많은 신자들이 있었고(약5천만), 오히려 교회는 더 순수한 모습으로 개혁되어 있었다. 선교신학자들은 그 중요한 원인이 문화혁명이전부터 중국교회 내에 존재했던 ‘작은 무리운동’과 같은 소그룹운동의 영향이었고, 이런 운동이 자연스럽게 지하교회, 혹은 처소교회를 탄생시킨 배경이라는 데에 견해를 일치했다.

우린 이런 운동의 원형을 신약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문 2절에서 바울은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면서,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표현은 비단 본문뿐만 아닌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초대교회는 일종의 가정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회가 2월부터 시작하려고 하는 이 ‘목장예배’는 이와 같은 초대교회가 모델이다. 목장예배를 통해 교회부흥은 물론 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목장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1. 목장예배는 ‘확장된 가족’ 모임이다.
오늘 우리는 소위 ‘핵가족(核家族)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핵가족시대에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바로 ‘확장된 가족’(Extended family)이다. 교회는 바로 확장된 가족 공동체인 것이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바로 가족임을 역설한다. 갈6:10에 “착한 일을 하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먼저 해야 한다.”고 했는데, 믿음의 ‘가정’이란 말이 ‘가족’(family)이란 단어로 되어 있다. 엡2:19에는 “너희가 더 이상 외인도 아니고 손도 아니라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한다. 이 권속 역시 가족이란 뜻이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5)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말씀들과 우리가 교회에 와서 신자를 만날 때 서로가 가족임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어쩌면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오늘날 교회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가족임을 느낄 수 있는 목장모임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1세기의 신자 빌레몬의 집에서 모인 교회가 바로 이런 확장된 가족의 구조라고 생각한다. 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은 물론 빌레몬의 가족이었다. 자매 압비아는 그의 아내였고, 아킵보는 그의 아들이었다(1~2). 그런데 이 아킵보가 다시 골4:17에 등장하는데, 그가 골로새교회의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암시되어 있다. 이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는 에바브라라는 사람이었다(골1:7). 학자들 중에는 골로새교회가 바로 이 빌레몬의 가정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면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 빌레몬 등의 몇 가족이 모여 빌레몬의 집에서 시작된 교회였던 것이다. 이렇게 4~5가정이 모여 이루어진 확장된 가족이 바로 목장이다. 그리고 이 목장모임을 통해 핵가족을 넘어서서 영적인 엄마, 아빠, 형님, 누나, 할아버지, 할머니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소중한 모임을 우리 교회가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가 집에서 정기적으로 몇 가족이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삶을 나눈다면 가족의 연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친 가족 이상의 연대감을 나누게 될 것이다.

2. 목장예배는 ‘만인제사장’을 실현하는 모임이다.
종교개혁이 남긴 큰 기여 중 하나가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사실이다. 구약시대나 천주교처럼 사제와 같은 영적 지도자만이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의 발견이다. 그렇지만 이는 제대로 실천되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이는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라고 생각한다. 주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신자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말했다.


"첫 종교개혁이 사제의 손에만 있던 성경을 신자의 손에 넘긴 사건이었다면, 둘째 종교개혁의 과제는 아직도 사제의 손에만 있는 사역을 신자의 손에 넘겨 모든 신자로 하여금 사역자가 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 가운데 구경꾼이 아닌 일꾼으로 복음의 사역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20%미만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교회출석자 80%는 구경꾼으로 다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어느 공동체나 비슷한 현상이다(이는 경제학에서 전체 결과의 80%가 20%에서 비롯된다는 소위 ‘파레토의 법칙’으로 증명됨).

그런데 목장모임에서는 이 파레토 법칙을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목장모임은 구조적으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서로를 섬길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총무와 회계를 비롯하여 중보기도 도우미, 찬양 도우미, 간식 도우미, 봉사 도우미, 광고 도우미, 축하 도우미, 새가족 도우미 등을 의무적으로 두어 일하다보면 모두가 사역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일은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은사를 따라 모든 신자가 사역하는 만인 제사장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초대교회가 그랬다. 본문의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가 이를 증거한다. 바울은 빌레몬은 동역자로, 압비아는 자매, 아킵보는 군사로 칭한다. 각자가 사역자임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3. 목장예배는 ‘코이노니아’ 모임이다.
목장에는 예배도 있고, 목장에는 성경공부도 있고, 목장에는 기도도 있고, 목장에는 찬양도 있다. 그러나 목장의 본질은 아니다. 목장의 본질은 ‘코이노니아’이다. 헬라어 ‘코이노니아’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교제, 친교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코이노니아는 교제이상이다. 코이노니아는 삶의 나눔, 삶의 참여를 뜻한다. 그러므로 목장모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기의 삶을 열어 나눌 준비를 갖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자기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이런 나눔의 교제가 우리에게 치유와 위로, 격려, 더 나아가 변화를 체험하게 한다. 스코틀랜드교회에서 셀(cell)운동을 주도한 톰 알렌(T. Allen)은 이런 말을 남겼다.


"메마른 교회 안에서 오아시스처럼 물을 내뿜는 신자 공동체의 살아있는 셀들, 이 밀접한 공동체 그룹들만이 모든 슬픔과 문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으로 삶의 처방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참되고 역동적인 신자 공동체의 생활, 즉 성경적 교제를 드러내 보일 때에만 비로소 온전히 그 교회된 기능을 발휘하고 교회로 하여금 세속적인 세상에 성공적으로 침투하게 할 것이다."


초대교회의 힘이 바로 이 교제의 힘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하는데서 얻었다. 빌레몬의 집에서 모인 교회에도 이런 살아있는 교제가 생동하고 있었다(5~7). 특히 7절에서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refreshed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이것이 교제의 결과인데, 목장모임의 가장 큰 유익이 바로 이점이다.

4. 목장예배는 ‘전도 지향적’ 모임이다.
목장을 영어로 셀(cell), 곧 세포라고 한다. 셀은 생명의 기본단위다. 그런데 셀(세포)의 존재이유는 성장이 아닌 증식에 있다. 세포는 분열을 통해 자신을 재생산한다. 목장모임도 일정한 숫자가 되면 반드시 분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나눔의 이유가 전도를 통한 나눔일 때 교회는 건강한 방법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세포의 존재이유가 증식인 것처럼 목장모임의 존재이유도 증식, 곧 전도에 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이유가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제자를 부르시고자 함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마28:19)고 유언하셨고, “내가 너희를 택한 이유가 너희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요15:16)고 말씀하셨다. 빌레몬이 속해 있었던 골로새교회는 이런 열매 맺기에 순종을 보였다(6). 증식하지 못한 세포는 병든 세포인 것처럼 재생산하지 못하는 목장은 병든 목장이다. 그래서 우리교회 목장모임에서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상징으로 빈 의자, 혹은 빈 방석을 사용할 것이다. 이는 목장모임이 철저히 전도 지향적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사실 이웃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고, 또 자연스러운 만남의 환경에서 작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곳으로 목장처럼 좋은 곳이 없다. 그래서 목장은 전도에 가장 효과적이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6-47).


마이클 그린(M. Green)은 그의 책 「초대교회의 복음전도」에서 “가정의 완전한 비형식성, 긴장을 풀고 쉬는 분위기, 또한 이와 함께 병행되는 손님접대야말로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의 성공적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데살로니가의 야손의 집, 고린도 회당 건너편 디도 유스도의 집, 가이사랴의 빌립의 집, 빌립보의 루디아의 집, 간수장의 집. 이런 가정들이 바로 1세기의 세상을 변화시킨 복음전도의 중심이었다.”고 말한다. 저는 우리교회 목장예배 출범선언과 더불어 여러분의 가정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쓰임받게 되시기를 축복한다. 그 중심으로 쓰임받기를 기대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34 / 29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