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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공동체로서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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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006회 작성일 09-02-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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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공동체로서 목장
벧전2:9.

2009. 2/15 11:00

롱테일 법칙(Long Tail law)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파레토의 법칙’(Pareto's law)이라고 한다. 또는 ‘2:8법칙’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20%의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에 해당되는 쇼핑을 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다양한 경제 통계자료를 분석하면 이것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20%의 인구가 80%의 돈을 가지고 있고, 20%의 근로자가 80%의 일을 하며, 20%의 소비자가 매출액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용어를 경영학에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조셉 M. 주란(J. M. Juran)이다.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이탈리아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 Pareto)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와 같은 파레토 법칙에 따라 전통적인 시장에서는 한정된 공간과 자원 때문에 매장에서 잘 팔리는 물건에 보다 집중하여 전시를 하고, 기업은 특정 상품을 집중적으로 광고를 하고, 특정 고객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법칙을 깨고 20%의 핵심고객이 아닌, 나머지 80%의 ‘사소한’ 고객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즉, 지금까지 버림받던 고객이 매출의 중심축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의 발달 때문이다. 인터넷이 유통구조의 혁신을 가져온 결과, 인터넷상에서는 제품의 전시나 물류비용이 매우 저렴해지고, 심지어는 제로에 육박하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들은 스스로 ‘검색’을 통해 원하는 제품의 정보를 찾고, 다른 소비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제품을 평가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구매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는 비용 대비 효율이 극히 적어 외면당하던 틈새제품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시장을 흔들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서 전통적인 파레토 법칙에 반대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를 ‘롱테일 법칙’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무시당하던 80%가 점차 중요하게 부각되는 현상이다. 이는 미국의 인터넷 비즈니스 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C. Anderson)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즉 시장의 중심이 20%의 소수에서 80%의 다수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그 동안 교회도 이 파레토 법칙에 충실했다. 목회자와 당회 중심,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제자훈련을 통한 소수의 신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면서 다수의 신자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켜 왔다. 요즈음 여러 교회들에서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 사역의 중심을 20%의 소수에서 80%의 다수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가 시행코자 하는 목장모임 역시 이러한 시도이다. 구경꾼으로 전락하여 잠자고 있는 80%를 깨워 모두가 사역자로 섬기는 만인 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 정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목장모임의 두 번째 핵심가치이다. 어떻게 목장을 모두가 사역하는 사역공동체로 만들 수 있을까?

이는 신자로서 분명한 정체성, 그리고 소명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이 이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준다. 본문은 신자인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과 무엇을 위해 주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셨는가하는 ‘소명’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 신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회용어 중에 ‘평신도’란 말을 싫어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평신도란 말은 역사적 산물로 성경적인 용어가 아니다(물론 전통을 무시한다는 말은 아님). 기독교 역사에서 처음 300년간은 평신도란 말이 없었다. 그런데 4세기에 들어와 로마 콘스탄틴(Constantine)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성직자의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이 생기면서 성직자와 일반신자의 구별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성직주의(사역의 사제화)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런 현상은 주님 안에서 평등 공동체를 지향하던 교회 안에 계급을 탄생시켰다. 거룩한 영적인 일을 하는 상층계급으로서 ‘성직자’와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는 하층계급으로서 ‘평신도’가 그것이다. 이때부터 성직자와 구별하여 ‘평신도’(laikos; 문외한, 국외자란 뜻)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신분적 차별은 신자들을 사역으로부터 소외시키고, 그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사역의 주체가 아니라 사역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거룩한(?) 소비자로, 거룩한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는 더 이상 사역공동체가 아닌 거룩한 백수(?)공동체가 되고 말았다.

흔히 ‘평신도’란 말은 전문가가 아닌 보통신자, 특별하지 않는 일반신자를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이 평신도를 가리키는 영어 ‘레이’(Lay)는 헬라어 ‘라오스’(Lao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백성’이란 뜻인데, 성경에서는 믿는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 성경은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Laos of God)이라고 부른다. 이는 특별한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개념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다. 여기에는 어떤 차별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공동체가 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신자는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사역의 주체이다.
어느 초등학생이 미술시간에 손이 없고 머리와 몸만 있는 모습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것이 ‘나의 모습’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 입고, 밥 먹고, 양치질하고, 가방 챙기는 것까지, 무엇이든 말만하면 모두 다 해주기 때문에 자기는 손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요즈음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례라고 본다. 아이를 한두 명만 낳아 너무 귀해서 애지중지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아이가 자라서 어떻게 되겠는가? 성인되어서도 정신적으로 엄마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마마보이’가 되고 만다. 신앙세계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한 중세의 성직주의는 신자를 성직자에게 의존하게 만들어 ‘영적 마마보이’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것이 중세교회의 모습이었고, 종교개혁은 이와 같은 잘못된 교회의 모습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고 부르짖게 된 것이다. 성직자나 평신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고 여기에는 어떤 차별이 존재할 수 없고,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역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부르짖었다. 무엇보다도 신자는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사역의 주체이고,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거룩한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이며,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귀한 정신을 교회가 제대로 실천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안에서 이런 ‘영적 마마보이’ 현상이 심각한 병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목회자 의존적이다. 소위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목회자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주님께 의존되어야지 사람이어서는 안된다. 물론 주님을 의지하다보니 우리의 신앙을 돕도록 주님이 세우신 목회자를 의존하는 것을 잘못이라 할 수 없으나 신앙은 어디까지나 ‘나와 주님과의 관계’이다. 그 사이에 누구도, 그 무엇도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주님 앞에 홀로 서야하고, 스스로 서야 한다. 그리고 사역의 주체로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지체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사역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모든 신자가 스스로 서고, 사역의 주체로서 섬긴다면 목회자의 역할은 무엇이냐? 그 답이 엡4:11~12절 말씀이다.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회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표준새번역).

이 말씀은 당시 교회의 지도적 직분들(목회자)과 사역에 대한 말씀이다. 성경학자 레이 스테드만은 이것을 인체의 네 가지 체계에 비교했다. 사도는 골격체계(skeleton system), 선지자는 신경체계(nervous system), 복음 전하는 자는 소화기관(digestive system), 목사와 교사는 순환기관(circulation system)에 비유했다. 이들이 대표적인 몸의 체계지만 몸의 전부는 아니며, 각자 고유한 역할이 있지만 서로 도와야 몸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목회자는 몸의 내부 장기이고 신자는 외부 지체, 그런데 이 모두가 한 몸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들의 주된 역할은 몸의 외부 지체들이 건강하게 역할을 하도록 세워주는(equipping) 것이다. 이것이 곧 목회자의 역할인 것이다.

성경은 교회를 우리의 몸에 비유를 하고 있다(고전12:12~, 롬12:4,5). 건강한 몸은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다. 건강한 몸은 (신체의 내/외부의)모든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 도우면서 지체의 고유한 역할을 감당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 여러 직분이 있고 다양한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있다. 모든 지체들이 서로 도우면서 직분과 은사를 따라서 사역을 할 때 건강한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체들이 사역을 잘 하도록, 그래서 건강한 몸(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을 세우도록 그 지체들을 올바로 세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일반신자가 사역의 주체이고, 목회자는 이를 돕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3. 신자는 사역자로 부름받은 사람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이 맹목적으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음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즉 사역자로 부르신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부름받은 사역자들이다.

바울은 우리 모두가 사역을 위해 창조되었다(엡2:10)고 하였다. 그리고 본문은 우리를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를,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셨고(마25:14~15), 그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은사를 주셨고(고전12:7, 벧전4:10), 사역을 위한 권세도 주셨다(막16:17,18). 그리고 종국에는 각자에게 맡기신 그것을 셈하신다고 하셨다(마25:19).

옛글에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하고, ‘지불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에서 미물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신자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이다. 사역자로 보냄을 받은 사명자란 뜻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을 사명의식이라고 한다. 이 사명의식을 가질 때 주님께 쓰임받는 인생, 주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많은 신자들이 이런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그 사명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또한 그 분을 닮아간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고 하셨다. ‘섬김과 드림’이 주님의 삶이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이것이 주님의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섬김과 드림’을 우리의 사명으로 알고 살아야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작은 믿음의 공동체 목장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고, 사역의 대상이 아닌 사역의 주체로서 우뚝 서서, 주님처럼 ‘드림과 섬김’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역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작은 목장에서 온전한 사역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야기해 봅시다.

1.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실이 당신 자신에게 준 의미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2. 교회 안의 ‘영적 마마보이’ 현상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 당신의 신앙생활 모습은 어떠 한지 이야기해 봅시다.

3. 오늘 말씀 중에 당신에게 가장 도전이 되었던 부분은 무엇이며, 이 말씀을 생활에 어떻 게 적용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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