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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공동체로서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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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864회 작성일 09-02-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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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 공동체로서 목장
엡2:11~19

2009. 2/22 11:00

우리가 꿈꾸는 교회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H. Keller)의 스승 앤 설리번(A. Sullivan)을 기억하리라 생각한다. 어린 소녀 헬렌이 마침내 좌절을 이기고 교육의 놀라운 진보를 보이자 헬렌의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학교 교장선생님 앞에서 설리번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때 설리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실 행복한 것은 저 자신입니다. 제가 헬렌에게 도움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이 저의 보람이고, 저의 행복이며, 저를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설리번은 헬렌을 돕는 것을 자기 자랑이 아닌 자기 인생의 가치로 생각한 것이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은 영적 법칙이다(행20:35). 1888년 4월 16일은 8살 된 헬렌 켈러가 처음으로 교회 나가던 날이었다. 설리번 선생의 특별한 부탁으로 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은 처음 교회 나오는 헬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 주었고, 반 아이들 모두는 일일이 헬렌에게 키스를 해주고 안아주었다. 헬렌은 신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 날 교회의 인상을 묻는 설리번 선생에게 ‘교회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곳.’ 이것이 바로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라 생각한다. 교회를 이런 곳으로 만드는 것이 목장모임의 세 번째 핵심가치인 ‘교제’이다. 교제는 교회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사랑으로 뜨겁게 한다. 그래서 모든 지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교제를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친교’로 번역되고 있으나 진정한 교제는 친교 이상이다. 교제의 성경적 의미는 삶의 나눔, 삶의 참여를 통해 삶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공유된 경험을 교제(fellowship)라고 부른다. 기쁨이나 즐거움을 비롯한 상처, 실패, 의심, 두려움, 약점 등을 나누면서 함께 삶을 공유하는 것이 교제이다. 이러한 교제의 삶을 통하여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신앙공동체를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교제를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장소가 목장이다.

교제의 기초
교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교제(수직적인 교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교제(수평적인 교제)이다. 본 설교는 후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교제의 기초는 ‘주님의 십자가’이다. 본문은 진정한 교제의 기초에 대한 말씀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2,13).

이 말씀은 주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우리 모습이다.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이 되고, 이웃과도 관계가 단절이 되어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것이 주님의 십자가 이전의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14), 원수된 것을 다 소멸하셨다(16). 그리하여 하나님과 교제의 길이 열리게 되고, 또한 사람들과 교제의 길도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십자가의 모형 자체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십자가의 세로축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제의 길이 열린 것을 의미하고, 가로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의 길이 열린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제의 출발은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데서부터(은혜의식) 진정한 교제가 시작된다(세속적인 교제와 영적 교제의 차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이는 세속적인 교제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이다. 그러나 영적인 교제는 이것을 초월한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만나서 사귀고 하나가 되게 한다. 은혜의식이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생각해보라. 은혜의식 없이 어떻게 주인과 종, 자유인과 노예, 유대인과 이방인,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가 형제/자매로 함께 교제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는가?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재산을 선뜻 내놓을 수가 있으며, 그저 예수의 이름 하나로 모두가 꺼리는 사람을 자기 집으로 기쁘게 맞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모두가 은혜의식 때문이다. 교회가 진정한 교제로 충만한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이 은혜의식이 충만해야 한다.

교제의 유익
1. 교제를 통해 서로를 공감(共感)하게 된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이다(롬12:5). 몸은 다양한 지체들의 연합이다. 따라서 지체 없는 몸이 있을 수 없고, 몸 없는 지체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각 지체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건강한 몸을 이루기 위해선 지체들의 간의 공감이 요구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고 하셨다. 즉 서로 공감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심지어 죄로 인한 인생의 모든 짐도 서로 공감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5:16).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이것이 행복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이다. 그런데 이 공감은 진정한 교제의 결과이다. 교제를 통해서 서로를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교제는 삶의 나눔과 삶의 참여를 통해 삶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와 같은 정서적인 것뿐만 아니라 삶도)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민감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인정받고, 지지받기를 원한다. 이와 같은 마음에 진지하게 반응해 주는 것이 공감이다. 사실 인간관계의 충돌이란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고, 또한 공감이 어려운 이유는 서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신자라도 사람마다 은사가 다르고, 신앙의 정도가 다르고, 성격이나 기질이 다르고, 성장배경이 다르다. 이런 차이들이 극복되지 않으면 서로를 공감하는 것이 어렵다. 매주 수요일 공부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점이다. 그들은 열정도 있고, 은사도 깊었다. 문제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파벌이 생기고, 서로 다투는 부끄러움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가 자칫 분열의 위기를 맞을 번 한 것도 마찬가지다(행6:1).

진정한 교제는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게 해준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나아가서는 그것을 지지해준다. 그래서 지체들 간의 진정한 공감을 경험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공감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고, 치료와 회복, 용서를 경험하고, 삶의 용기와 소망을 갖게 된다. 현실적인 고통이나 아픔, 벽들 앞에 좌절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의지와 믿음을 갖게 된다. 더불어 강한 지체의식을 가지고 속한 공동체를 헌신적으로 섬기게 된다.

2. 교제는 서로의 존재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약간 엉뚱한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어두움이 지나가고 새 날이 밝아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한 학생이 대답했다.
        ‘해가 뜨는 것을 보면 새 날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학생이 또 대답했다.
        ‘창문을 열어보면 날이 밝아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시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의견을 말했지만 교수는 듣고 그저 아니라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답답한 학생들이 교수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교수가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로 보이면 그 때 비로소 새 날이 밝아온 것이다.’

마틴 부버(M. Buber)는 그의 책 「나와 너」에서, “‘’ 그 자체란 없고, 오직 ‘나와 그것’ 사이의 ‘’ 아니면, ‘나와 너’ 사이의 ‘’가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인간은 관계로서 존재하는 ‘관계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그는 관계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나와 그것’이다(비인격적 관계).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소유의 대상, 즉 물건으로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와 너’이다(인격적 관계).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한 인격체로, 천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영혼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 이야기의 ‘어둠과 밝음’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다. 사람을 인격체가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천하보다 귀한 영혼으로 바라보는 것은 진정한 밝음 속에 사는 것이다. 이 둘 중에 본질적인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이고, 이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다.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나와 너’의 존재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사랑이 곧 빛이고, 빛이 내 마음에 있어 내 마음을 밝히니 온 세상과 사람들이 밝게 보인 것이다. 모든 관계가 빛나게 된다. 내 마음을 밝히는 이 사랑을 촉진시켜주는 것이 교제이다.

요즈음 연쇄 살인범 강호순으로 인해 ‘싸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전문용어를 자주 듣는다. 이는 ‘성격 탓으로 인해 타인이나 자기가 속한 사회를 괴롭히는 정신병질’(精神病質)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혹은 ‘공감할 줄 모르는 병’이라고도 한다. 생각해보자. 문명과 기술, 지식은 발달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는데, 폭력이 난무하여 사람들의 인심은 사나워지고 삶이 더 각박해지고 있다. 싸이코패스와 같은 반사회적인 성격장애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활은 편리해지고, 물질은 풍요로워졌어도 정신적 영적인 어둠의 세력에게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롬13:13,14). 다시 말하면 인간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비인격적인 관계, 사람을 인격이 아닌 소유의 대상(물건)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필요’의 관계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높여줄 수 있는 교제를 경험할 수 있겠는가?

교제는 은혜의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우리의 실수와 허물이 드러나지 않고 덮어진다. 그래서 진정한 교제 속에는 고백은 있어도 정죄는 없다. 우리의 모든 죄악이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교제는 사랑의 통로이다. 교제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흘러넘치게 되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교제가 더욱 풍성해진다. 그리고 이 사랑의 교제 안에서 ‘나와 너’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하고, 보게 하고, 경험하게 한다. 나의 존재가치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이 나를 가치있게 만든 것이다(이웃도 마찬가지다). 주님 안에서 갖는 진정한 교제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차별없이 만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교제가 중요한 것이다. 교제가 회복이 되면 관계도 회복이 되고, 나의 존재감은 물론 이웃의 존재감도 커진다. 반면 교제가 깨지면 관계도 깨지게 되고, 존재감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교제는 마찰을 최소화시켜서 기계가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와 같고, 횃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기름’과 같다. 또한 구약시대에 곡물제사의 떡을 반죽할 때 사용한 ‘향’과 같다. 향은 반죽을 잘되게 할뿐만 아니라 좋은 향기를 선사한다. 진정한 교제가 이와 같다. 공동체를 평화롭게 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는 것이 교제이다. 교제는 많은 사람보다는 소수가 좋다. 주님께서도 열 두 명의 제자들을 택하셔서 그들과 교제하며 그들에게 당신의 삶을 보여주셨다. 이런 의미에서 목장은 거룩한 교제를 위한 최적의 장소이다. 목장모임을 통해 진정한 교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섬기는 목장이 교제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서로를 진정으로 공감하여 받아들이고, 그 존재가치를 발견하여 아름다운 섬김이 있는 참으로 행복한 곳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1. 당신이 생각하는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 교제의 유익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3. 목장모임에서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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