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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공동체로서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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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337회 작성일 09-03-0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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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공동체로서 목장
요9:1~7

2009. 3/1 11:00

영향력을 상실한 교회.
철학자 키엘케고르(S. Kierkegaard)의 비유이다. 어느 극장에 많은 관객들이 모여서 연극을 보고 있었다. 그 때 극장 한 구석에서 불이 났다. 갑작스럽게 '불이야!' 외치면 사람들이 당황할까봐 극장 측은 연극의 주인공을 내세워 질서있게 대피할 것을 당부하였다. 배우는 연극을 중단하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 극장 한 구석에서 불이 났습니다. 지금부터 제 말에 따라 침착하게 대피하면 모두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배우가 코미디를 하는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배우는 긴장이 되고 걱정이 되어 다시 호소했다.

‘여러분 이건 코미디가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지금 손뼉 칠 때가 아닙니다.’

배우의 긴장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더욱 크게 웃으면서 더 많은 박수를 쳤다. 그런 사이 불은 극장 안을 덮쳤고 극장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누구도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 예기치 못한 것이다. 하지만 주연배우의 말에 잘못 반응한 비극적인 결과이다.

키엘케고르는 이 예화를 통해 당시 교회와 사람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상실하여 웃음거리로 전락한 교회의 모습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신의 종말에 대하여, 즉 영혼의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교회와 신자들은 맛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사실 ‘개독교’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신자와 교회에 대한 사회의 거부감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신자들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선교’(전도)이다.

교회의 본질로서 선교.
선교(전도)는 교회와 신자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전도(선교)는 교회의 사역 중 하나가 아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이다. 조지 피터스(G. Peters)라는 신학자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εκ) 하나님의 부름을 입었고(καλεω), 또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으며, 그 사명을 위하여 세상을 향하여 보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정의에 따라 교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교회는 ➀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공동체이고, ➁사명 공동체이며, ➂보냄을 받은 공동체이다. 여기서 말한 ‘특별한 사명’이란 선교를 의미하고, 이 선교를 위해 보냄을 받은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missional)이어야함을 알 수가 있다. 선교(전도)는 목장모임의 네 번째 핵심가치이다. 목장은 전도(선교) 지향적인 공동체(mission oriented community)이다. 목장모임의 특징으로 ‘빈자리(방석)’운동이 있다. ‘빈자리’는 목장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동체이고, 동시에 항상 전도(선교) 지향적인 공동체인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셀(세포)은 생명을 이루는 가장 기초 단위이다. 셀, 곧 세포의 존재이유는 성장이 아니라 분열을 통한 증식(multiplication)에 있다. 세포의 존재이유가 증식인 것처럼 목장의 존재이유도 증식, 곧 전도에 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이유가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제자를 부르시고자 함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마28:19)고 유언하셨고, “내가 너희를 택한 이유가 너희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요15:16)고 말씀하셨다.

1. 선교의 출발(3).
선교(전도)는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가치’를 알고,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이 선교의 강력한 동기이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본문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길가의 인생(1),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소경이 되었다며 멸시를 받으며 살고 있는 한 사람이 나온다(2).

특히 2절은 병에 대한 당시 유대인의 생각을 반영해 주는 말씀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내게 될 사람’(3)이라고 하셨다. 병에 대한, 환자에 대한 유대인과 예수님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병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나 주님은 긍정적으로 보셨다. 유대인들은 병과 환자를 동일시했으나 주님은 구분하셨다(죄와 죄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래서 유대인들은 병자를 죄인 취급하며 멸시했지만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치료해주셨다. 본문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타고난 병으로 인하여 병든 인생,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인생, 남에게 구걸이나 하며 사는 불쌍한 인생이라고 여기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태어난 인생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치료해주셨다(6,7). 한 사람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의 차이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 한 영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 모든 신자가 품어야 할 마음이다. 우리가 목장모임을 통해 키워가야 할 소중한 마음이다.

2. 선교의 주체(4).
20세기 탁월한 기독교 사상가이자 목사인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선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의했다.

‘최초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선지자들과 자기 아들과 자기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선교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들 되신 예수께서는 자신이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를 보내십니다."

여기에 선교의 주체가 잘 드러나 있다. 선교의 주체는 사람이나 어떤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예수님 역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고 말씀하셨다. 본문에서도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4)고 하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말씀이다. 이 하나님의 일이, 곧 선교이다(요4:34). 예수님도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라 하심은 하나님께서 선교를 시작하시고, 진행시키시고, 종결하신다는 뜻이다. 즉 선교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사람을 통해 선교를 시작하시고, 진행시키시고, 완성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 선교를 위해 부름받은 일군(고전3:5)이요, 동역자(고전3:9)이다. 그리고 목장은 이 하나님의 선교를 실현하는 장이다.

3. 선교의 당위성(4).
우리가 믿는 예수님, 곧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한다. 이 복음은 몇 가지 특징(성격)이 있다.

첫째, 복음은 인간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이다.
둘째, 복음은 사람이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째, 복음을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파해야만 하는 것이다.
넷째, 복음 전파는 사람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위탁한 것이다.
다섯째, 복음은 사람이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선교(전도)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복음전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위 3번 참조). 이것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마4:19)이고, 또한 주님의 마지막 명령(마28:18~20)이다. 본문 4절에서도 주님은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We must).”고 하셨다. 이는 선교에 대한 주님 자신의 강한 소명의식을 다짐하는 표현이면서 동시에 제자들에게 소명의식을 촉구하시는 표현이다. 선교는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신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사명, 목숨을 걸어야 할 사명이다. 그래서 바울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도 그것이 자신의 자랑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를 있을 것이라는 영적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고전9:16).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

행복의 비결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실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세상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성공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다. 미숙한 사람과 성숙한 사람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성숙한 신자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 이런 불신의 시대에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다. 때때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은 좋아서 하는 것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에 우리가 해야만 한다(We must). 신앙생활은 기쁘고 즐거워야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여기에만 머무르면 신앙성숙은 기대할 수 없다. 해야 할 일이기에, 가야할 길이기에 힘들고 어렵더라도, 때로는 피를 쏟는 고통이 따를지라도 그 길을 가야한다.

밤이 오리니.
4절에 “때가 아직 낮이매.......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여기서 ‘낮’은 주님의 공생애를, 그리고 ‘밤’은 주님의 죽으심을 의미하는 말씀이지만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이다. 항상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것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며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이며,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 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둘째,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고는 그 건강을 위해서 번 돈을 다 써버리는 것이다.
셋째,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고는 미래도, 현재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결국 무의미하게 죽는 것이다.

때를 놓쳐버리고 후회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다.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잘 사용하는 것이 지혜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 건강이 있을 때, 재물이 있을 때, 능력이 있을 때, 젊음이 있을 때, 내 생명이 살아있을 때 잘해야 한다. 지금은 일할 수 있는 낮이다. 그러나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다가온다. ‘밤이 오리니’를 기억하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보내셨다(요20:21). 우리 역시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보냄 받은 사명자이다. 최선을 다하여 보냄을 받은 사명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결코 부끄럽지 않는 인생, 주님께 ‘잘 하였도다’라고 칭찬받는 인생이 되자.


※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1. 당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2. 전도의 중요성을 알면서 전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3. 효과적인 전도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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