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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키워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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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7,326회 작성일 09-03-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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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키워가기
갈5:22~23, 시1:1~3.

2009. 3/29 11:00

인생 광박
인터넷 블로그에서 ‘고스톱을 통해 본 인생 10훈’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저야 고스톱을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이 생소한 용어들이었지만 그 중에서 고, 스톱, 광박, 피박이란 말들은 알만 했다. 피박은 쓸데없는 피(被)지만 고스톱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사소한 것이라도 소홀히 보지 말고 소중히 여기라는 교훈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박은 광(光)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그래도 고스톱에서 유리한 것처럼,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적어도 광 하나는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는 있어야 남들보다 유리한 인생을 살 수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행복을 인생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많은 돈을 벌고, 출세하여 성공하려는 것도 결국은 행복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행복한 인생을 위한 광박(?)은 무엇일까? 물론 무엇이 행복이냐를 먼저 물어야겠지만, 저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기쁨이 되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먼저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다음으로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인생,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고(고전10:31), 이웃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은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인생이다(고전10:33). 그리고 자신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자족함이 있는 인생이다(빌4:12). 이와 같은 삶을 위해선 지난 주 말씀처럼 믿음 안에서 기뻐하는 관점을 가지고 기쁨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뻐하는 관점을 가지고 기쁨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을 위한 ‘광박’이라고 생각한다.

충만한 기쁨의 삶을 위하여
오늘도 성령의 두 번째 열매인 희락(기쁨)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지난 주 믿음 안에서 기뻐하는 관점을 가지고 기쁨 선택하기는 주로 ‘기쁨 발견하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시간에는 발견된 기쁨을 잘 키워가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여기서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두 가지로 말씀하신다. 하나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즉 구원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들이 더욱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그 구원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것을 원하신다. 기쁨도 마찬가지다.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로서 기쁨을 주셨다. 또한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다(요15:11). 주님은 우리가 충만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이 기쁨을 충만히 누리기 위해선 ‘기쁨을 키워가야’ 한다.

기쁨은 근육과 같다. 단련할수록 더 강해진다. 이 기쁨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발견한 이 기쁨을 소멸시키는 것과 이를 대처하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을 소멸시키는 것은 ‘3C’(Crime, Complaint, Cupidity)이고, 이를 대처할 수 있는 것은 ‘3G’(Greedy for words, Gratitude, Give)이다. 이것들을 잘 알고 실천하면 그 어느 때보다 더 충만한 기쁨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1. 말씀에 대한 갈망(Crime Vs Greedy for words).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말씀이다. 1절은 복 있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에 대한 말씀이고, 2절은 복 있는 사람이 갈망해야 할 것에 대한 말씀이다. 먼저 복 있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은 ‘죄’다. 죄는 우리를 축복의 길에서 벗어나 파멸로 인도한다. 마찬가지로 기쁨을 소멸시키는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것이 죄이다. 성경은 범죄한 인간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준다. 쫓는 사람이 없지만 쫓기는 삶을 살게 되고, 심리적으로 두려움의 포로가 된다(창3:7~10, 4:14). 그래서 그의 삶에는 평안과 기쁨이 없다. 이 사실을 아주 사무치게 경험한 사람이 있다. 다윗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범죄한 영혼의 심리적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32:3,4).

그러므로 기쁨을 회복하고, 또한 기쁨을 키워가는 방법은 죄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죄를 극복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Greedy for words)에 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2)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악을 깨뜨리는 방망이고 태우는 불이다(렘23:29). 죄악을 도려내는 칼이고(히4:12), 죄의 세력을 무찌르는 검(엡6:17)이다. 또한 모든 것을 살리고, 회복시키고, 치료하고, 그래서 풍성하게 하는 생명수이다(겔47:6~12). 이 말씀에 대한 갈망이 기쁨을 키워가는 비결이다. 또한 인생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저는 이번 야구 WBC 결승전 소식을 듣고 우리 인생의 감독이신 주님께 민감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왕자」에 나온 내용이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별에서 매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신의 별을 가꾸고 지키는 일인데, 장미와 비슷하게 생긴 바오밥나무(dead rat tree)의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뽑는 일이다. 이 바오밥나무는 생식력이 좋아서 하루만 두어도 크게 자라고, 그대로 두면 별 전체를 칭칭 동여매서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매일 아침 바오밥나무의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뽑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죄가 바로 이 바오밥나무와 같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가꾸고 있는 별은 우리 자신, 가정, 교회를 상징한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자르고 뽑지 않으면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는 황폐해진다. 그래서 우리 삶과 가정과 교회 안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만다.

2. 감사의 태도(Complaint Vs Gratitude).
우리의 삶에서 기쁨을 소멸시키는 또 하나의 주범은 불평과 원망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한 여정 가운데 종종 불거져 나왔던 문제가 바로 불평이었다. 그들이 터뜨린 악한 것들,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고, 자신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준 것들, 공동체의 뒷문을 열어 주고 악이 들어오도록 했던 죄의 원인은 곧 원망이었다. 불평은 악한 것이다.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불평은 악하다. 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될지라도 우리의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순간 우리 마음에서 기쁨은 사라지고 삶은 비참해진다. 행복은 항상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불평과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그분의 길을 보는 것 사이에는 상호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불평이 시작되는 순간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원망이 있으면 하나님의 길도 보이지 않는다. 불평과 원망이 그쳐야 하나님의 길이 보이고, 그분의 임재도 느끼기 시작한다. 바로 이 불평과 원망을 잠재우는 것이 감사(Gratitude)이다. 감사는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로 모셔드리는 통로이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고 말하고 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했던 미국인 선교사 헨리 프로스트(H. Prost)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다가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했지만 고향에서는 슬픈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내 영혼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아무리 기도해도 그 그림자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교본부에 들렀다가 본부 벽에 쓰여 있는 ‘감사를 시도해보라’(Try Gratitude)는 글이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이런 간증을 했다. ‘그 시각부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흑암은 물러가고 내 영혼에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사는 마귀를 몰아내고, 우리 인생의 흑암을 거두고 빛을 비춰주는 큰 원동력이다.

심리학자들은 감사가 가장 건강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스위스의 철학자 칼 힐티는 그의 책 「행복론」에서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감사’를 꼽았다. 그리고 ‘감사하라, 그러면 젊어진다. 감사하라, 그러면 발전이 있다. 감사하라, 그러면 기쁨이 있다.’고 하였다. 감사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다. 감사는 기쁨을 회복하고, 키워가는 방법이다. 감사 충만은 기쁨 충만이다.

3. 나눔의 생활(Cupidity Vs Give).
계영배(戒盈)라는 술잔이 있다. 도공 우명옥이란 사람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유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요에서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유명해진 그는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었다. 이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란 뜻으로 술이 70% 이상 차면 잔 밑에 있는 구멍을 통해 흘러내리도록 설계된 술잔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일명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린다. 계영배는 TV드라마 ‘상도’에서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신비의 잔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거상 임상옥은 항상 계영배를 옆에 두고 과욕을 다스리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큰 재산을 모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사람의 욕심이다. 욕심은 가질수록 커지고, 채울수록 더 채울 공간이 커진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어리석은 사람은 욕심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 망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전체를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고, 소크라테스(Socrates)는 ‘가장 작은 욕심을 가진 사람이 가장 신에 가깝다.’고 말했다. 욕심을 버려야 불완전한 인간에서 탈피하게 된다는 것이고, 욕심에 사로잡히면 자신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성경 역시 탐욕을 우상숭배라(골3:5)고 하였고,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약1:15)고 하였다. 욕심이 죄의 관문이고, 사망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이런 욕심이 있는 곳엔 감사도 평안도 기쁨도 없다. 행복도 없다(행복방정식 Happiness=Achievement/Cupidity).

욕심을 극복하는 비결은 나눔(Give)에 있다. 지식을 나누고, 경험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꿈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여기에 행복이 있고,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다. 나눔이 곧 기쁨이다. 나눌수록 욕심이 줄어들기 때문에 작은 성취에도 만족하며 기뻐할 수가 있다(행복방정식 참조). 왜 나누면 욕심이 줄어드는가? 욕심은 원래 이기심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나눔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필요보다는 남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또 그것을 채워주는데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삶에는 욕심이 자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기쁨이 충만한 것이다. 그리고 이 충만한 기쁨은 그들의 나눔의 삶에서 비롯되었다.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하셨다. 주는 사람에게 더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 안에서 기쁨을 키워가는 또 하나의 비결이 주는 것이다.

피리
     -이규경 글

돌이 아빠는
피리를 잘 분다.

피리를 불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

돌이 아빠는 말한다.
피리는 하모니카와 달리
숨을 내쉴 때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그리고 인생도 피리와 같다.
자기 것을 내놓을 때
비로소 아름다워 지는 것이라고.

마라스무스(marasmus).
신체발육이 부진해지고 시름시름 앓다가 힘없이 죽고 마는 소아병(小兒病)이 있다. 애정이 결핍된 사생아나 전쟁고아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마라스무스’라는 병이다. 1962년 미국 캔자스 주립병원의 칼과 밀링거 박사에 의해 이 병에 대한 치료법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조제해 주신 ‘TLC’라는 약”이라고 했다. T는 ‘Tender’(부드러운 접촉), L은 ‘Love’(사랑), C는 ‘Care’(따뜻하게 가슴으로 안아줌)이다. 사랑을 가진 따뜻한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이 치료약이었다. 세상은 이 마라스무스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작은 사랑의 나눔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의 작은 나눔이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큰 보람, 이 보다 더한 행복, 이 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을 주셨다. 우리는 매일 생활 속에서 이 기쁨을 발견하고, 발견한 이 기쁨을 키워가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을 비롯하여 내가 속한 공동체인 가정과 목장, 교회, 일터가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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