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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향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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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407회 작성일 09-04-0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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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향해 가라.
갈5:22~23, 삼상17:41~49

2009. 4/5 11:00

가장 소중한 것.
어떤 청년이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것들을 종이에 적어 보았다. 건강, 지식, 명예, 사랑, 권력, 아름다움, 재물. 그리고 자신이 적은 이 목록을 자기가 존경하는 스승을 찾아가 보여 드렸다. 스승은 청년이 적어 온 목록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청년을 향하여 말했다.

‘여보게, 자네가 여기 적어 온 것은 참으로 훌륭해. 그리고 일리가 있는 목록이라 생각하네. 그런데 자네는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네. 그것이 없으면 자네의 성취는 오히려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 될거야.’

그러면서 이 스승은 연필로 청년이 써온 목록을 쓱 그어 버렸다. 그리고 그 밑에다가 다음과 같이 썼다.

‘마음의 평화!’

청년은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부와 명성을 얻었다. 이 청년의 이름은 랍비(보스톤 유대인 회당) 죠수아 리브만(J. Liebman)이다.

마음의 평화는 참으로 중요하다. 재물이 있고 건강이 있고 권력이 있다고 해도 화평이 없으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없다. 마음이 평안하면 어느 장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면 좋은 환경,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도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다. 화평이 깨진 것은 건강, 사랑, 재물, 재능, 명예 이 모두를 담는 그릇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H. Ford)는 84세의 일기로 죽기 직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한다. 그는 건강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항상 ‘적당한 운동, 적당한 음식, 신선한 공기, 그리고 평안한 마음인데, 그 중에 제일은 평안한 마음’이라 했다. 성경 역시 마음의 평안을 강조한다. 특히 평생 부귀영화를 다 누려보았던 솔로몬은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헛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헛된 일들 중에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 마음의 즐거움(전2:24)이라고 했다. 이는 마음의 평안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이다. 평안한 마음에서 즐거움이 나오기 때문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the spirit is broken.”(잠15:13).


세 종류의 평안.

이 시간은 성령의 세 번째 열매인 ‘화평’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성경은 화평의 종류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그 첫째가 영적인 화평이다. 영적인 화평은 하나님과의 화목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셔서 행복한 곳 에덴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셨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그 행복한 관계가 깨지고 동산에 쫓겨나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화목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롬5:1). 둘째는 정서적인 평안이다(골3:15). 마음의 평화이다. 이것은 영적인 화평을 이룬 다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이다. 주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내적인 즐거움이다. 그리고 셋째는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누리는 관계적인 평안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화평을 이루고, 마음의 평안을 경험한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사명이다(롬12:18). 이 시간은 정서적인 평안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려 한다.


평안한 마음 누리기.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이 종려주일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 주일에 평화의 상징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환영하였데, 이를 기념하는 주일이 오늘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평화의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즉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맞아들이는 것이 참 평화(평안, 화목)의 길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화평을 주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요14:27, 20:21).

오늘 구약본문은 불과 10대 소년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사건이다. 이는 왕도, 군대 장관도, 군사들도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일이다. 지위보다, 경험보다, 지식이나 지혜보다, 나이나 힘보다 믿음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리고 사람의 차이는 믿음의 차이임을 보여준다. 본문은 다윗이라고 하는 한 개인을 부각시키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왕과 같은 권력자나 군대의 힘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 즉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47). 본문에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의 왕 사울도, 군대장관 아브넬도, 그리고 군사들도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 골리앗이라는 거인이 두려워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11,24,32). 하지만 다윗은 두려움 없이 골리앗을 맞서 싸웠고, 또한 승리하였다.

이 사건은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도전을 준다. 왜 주님을 믿으면서도 골리앗이라는 시련이나 문제 앞에서 그토록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낙심하는가? 어떻게 하면 다윗처럼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문제를 직면하여 해결할 수가 있을까? 본문에 나온 소년 다윗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승리하는 삶을 위해 ‘3C’(Confidence, Courage, Concentration)를 가져야한다고 했다.


1. 강한 신뢰와 확신(Confidence).

신앙생활의 승리,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주님께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에 있다. 본문에 다윗의 믿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이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자기 민족을 골리앗에게서 구원하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37,47). 그리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다(36,46,47).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다(45). 이 모두는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다(34,35,37). 다윗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이 있었기에 골리앗이라는 문제 앞에서도 평안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맞설 수가 있었다.

똑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뢰와 확신이 없었다. 37절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사울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고 다윗을 격려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입 서비스일 뿐이다. 그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에 대한 신뢰와 확신은 없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믿음은 문제 앞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죽은 믿음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무늬만 신자일 뿐이다. 믿음이란 지식이나 어떤 사실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태도의 문제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이 주실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의 태도. 이것이 참 믿음이고 살아 있는 믿음이다. 바로 이런 믿음의 확신과 신뢰를 가진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가 있고, 평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2. 믿음의 용기(Courage).

사자의 수염을 뽑은 장사가 있었다. 한 사내가 그 장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사내: 당신이 사자의 수염을 뽑았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혹시 잠자는 사자가 아 니었나요?
장사: 아니오. 죽은 사자였소.
사내: 에이,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소!
장사: 물론이요, 하지만 사자가 잠자고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것 이 중요하지요.

이는 지식이 없는 용기를 경계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지식이 없는 용기는 만용이고, 무모함이다. 신앙에서 맹목적인 자기 확신이 문제인 것처럼 맹목적인 용기도 문제다. 본문에서도 다윗의 태도를 다윗의 형 엘리압과 사울 왕이 이런 시각으로 보고 있다. 다윗의 형은 다윗의 태도를 개인적인 영웅심에 도취된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꾸짖었고(28), 사울 왕은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의 행동 정도로 여겼다(33). 하지만 다윗의 행동은 그의 신앙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아가서 하나님께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코 영웅심이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의 행동이 아니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신앙적 용기’라고 한다. 신앙적 용기는 강한 신뢰와 확신에서 나온다. 본문이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믿음의 역사는 이런 신앙적 용기의 산물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골리앗이라는 문제 앞에, 무거운 현실 앞에 두려워서 숨는 자가 아니라 떨치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고 하였다. 지금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엘라 골짜기는 우리 인생을 상징한다. 두려워 숨을수록 골리앗은 더욱 기세등등하여 우리를 덤벼들고, 우리의 삶에 평안은 없다. 다윗처럼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나아갈 때 골리앗은 무너지고, 마귀는 물러간다. 참 평안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신앙적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용기, 주님의 뜻을 따르는 용기, 의를 위하여 희생하는 용기, 주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헌신하는 용기! 이런 용기에서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참 평안을 경험하고 누리고, 그리고 이것이 평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비결이다.


3. 집중력(Concentration).

이것은 초점과 방향의 문제이다. 다윗이 불안을 떨치고 일어나 골리앗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이 이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골리앗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큰 키, 그의 힘,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엄청난 무기, 엘라 골짜기를 울리는 그의 목소리, 잔인하고 살기등등한 거인 골리앗에게 마음이 빼앗겨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었다. 하지만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평가는 전혀 달랐다. 그는 골리앗을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26,36)이라 했다. 이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라는 의미이다.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이런 평가는 다윗의 형 엘리압의 표현대로 다윗이 교만해서, 혹은 사울 왕의 표현대로 다윗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부지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울 왕을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을 보고 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을 보았다. 때문에 그에게 골리앗은 두려움의 대상도,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찬송가 204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1절).

(후렴생략)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잠잠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3절).

(후렴생략)

주님을 주인 삼은 삶은 천국의 삶이고, 수많은 인생의 풍랑 속에서 평안과 기쁨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님만 바라보고 사니 무섭고 사나운 골리앗은 물론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신까지도 사라지고 주님만 보이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이 얼마나 멋진 고백인가? 당시 다윗의 심경이 이랬을 것이다.

본문에서 골리앗을 향해 한 다윗의 말은 그대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고백이다(45~47). 바로 여기에 싸움의 핵심이 있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 이 싸움은 ‘다윗 대 골리앗’의 대결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느냐 문제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느냐, 거인 골리앗에게 초점을 맞추느냐’의 문제였다. 골리앗에게 초점을 맞추면 그 싸움은 나와 골리앗의 싸움이 되고, 나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그 싸움은 하나님과 골리앗의 싸움이 되고, 나는 싸우지 않고 승리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삶의 방향과 초점을 무엇에, 누구에게 두고 사느냐가 중요하다(마14:22~33).

주님은 믿는 우리 모두에게 평안을 선물로 주셨다. 그런데 조석(朝夕)으로 출몰(出沒)하여 위협하는 골리앗 때문에 마음의 평안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우리에게 다윗은 좋은 본보기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이 주실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의 태도를 갖자.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주님께 삶의 초점과 방향을 맞추고 살자.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우리 영혼이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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