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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할 복음Ⅳ, ‘변화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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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021회 작성일 09-08-1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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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할 복음Ⅳ, ‘변화된 삶’

요2:1~11

2009. 8/16 11:00

자네, 신자 맞나?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어떤 신자가 어느 날 길에서 믿지 않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가 신자가 된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자네, 신자가 되었다지?’

‘그렇다네.’

‘그럼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겠군.’

‘나는 그런 것 잘 몰라.’

‘아니 신자가 되었다면서 어떻게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나!’

 

신자가 된 친구가 그의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자네 말이 맞네. 사실 나는 아는 게 없어서 부끄럽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만은 내가 알고 있네. 그것은 3년 전에 나는 주정뱅이었고, 빚도 많았고,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되어 있었네. 그리고 저녁마다 가족은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네. 그런데 3년이 지난 오늘, 나는 술도 끊고, 빚도 다 갚고, 우리 가정은 매우 화목해졌네. 저녁마다 아이들은 나를 매우 기다리고 있다네. 이 모든 것이 다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되었네.’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여러분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변화된 모습이 있는가? 신앙생활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삶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변화되었느냐가 중요하다. 신앙은 생명의 문제이고, 생명은 반드시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 지적 만족에만 그치지 말고 참된 신앙을 목표로 변화된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나 교회에서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가족의 성화 때문에 억지로, 혹은 그냥 취미 삼아 교회에 나온 사람들을 본다. 섬기는 것도 자기만족에 빠져 그 자체가 좋아서 섬기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신앙적인 결실도 변화된 삶도 기대하기 힘들다. 시간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는 일이 이렇게 무위(無爲)로 끝나면 되겠는가? 그러지 않으려면 참된 신앙을 목표로 변화된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생명의 역사를 통한 변화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변화된 삶의 특징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첫 번째 이적이다. 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그런데 잔치의 절정에 떨어져버린 포도주를 물로 만들어 공급해주신 기적이다. 인생의 즐거움이란 끝이 있다는 것과 예수님은 인생의 기쁨을 이어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준 사건이다. 즉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인생, 열매가 풍성한 풍요로운 인생이 될 수 있다(요15:5,11)는 사실이다. 인생의 비극은 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란’(3) 것처럼, 무언가에 대한 ‘결정적인 결핍’에 있다. 살면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데, 그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가 부족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이 부족하고, 어떤 사람에겐 힘이 부족하고, 어떤 사람에겐 건강이 부족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적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선포하는 복음이 곧 이 예수님이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 사건은 복음을 통해, 혹은 복음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의 특징을 보여준다.

 

 

1. 복음은 존재의 변화를 가져온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질적인 변화이고, 또한 화학적인 변화다. 물(H2O)과 포도주(C2H5OH)는 화학식이 다르다. 그러므로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단순히 2급수가 1급수로, 혹은 공업용수나 농업용수가 식수로 개선된 정도가 아니다. 전혀 다른 존재로 존재 자체가 변한 것이다. 지난주까지 말씀드렸던 죄 사함,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자녀됨이 모두 존재의 변화를 뜻한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마귀의 자녀 진노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 축복의 자녀가 된 것은 물이 포도주가 된 것처럼 본질적인 존재의 변화를 뜻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복음 안에서 변화된 사람을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 “새 것”(고후5:17)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복음을 통해 변화된 삶의 특징이다.

 

 

2. 복음은 총체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존재가 변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변했다는 뜻이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색깔, 맛, 용도, 가치, 향 등 모든 것이 변한 것이다. 그렇다. 복음은 우리의 모든 면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삶의 목적과 방향, 삶의 태도와 가치관, 심지어는 말이나 표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모든 영역에 변화가 일어난다. 나아가서 이런 변화는 그가 생활하고 있는 가정을 비롯하여, 직장과 만나는 사람들, 교회, 주변 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그 변화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포도주의 색, 맛, 향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첫째는 삶의 ‘색깔’이 변한다. 색깔은 삶의 모습이고, 태도를 의미한다. 물은 색이 없으나 포도주는 여러 가지 색이 있고, 사람들을 매료시킬 만큼 매력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흔히 포도주를 마실 때 먼저 눈으로 그 색깔을 즐기고, 코로 향기를 즐기고, 혀로 맛을 즐긴다고 한다. 복음으로 변화된 신자의 삶도 또한 아름다운 색깔을 드러내게 된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게 된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행동 하나 하나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나고, 모습은 인자하고 경건하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삶에서 어두운 그림자는 볼 수가 없고 항상 밝게 웃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을 한다. 이것을 색으로 표현하면 ‘풀 칼라’다. 이것이 복음으로 변화된 삶의 모습이다.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에 있는 깡통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있었던 한 청년이야기다. 교회에 출석한 지 몇 주일이 지나서 그가 다닌 교회 목사님이 공장사장을 찾아갔다. 목사님은 그가 전에 매우 방탕했던 사실을 기억하며 교회에 다닌 후로 어떤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지 사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사장은 벽에 걸린 쇠사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그 녀석을 묶어 놓고 일을 시키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가 없을 만큼 고약한 놈이었지요. 정말이지 전혀 가망성이 없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견습공 중 제일 신뢰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답니다. 그의 변한 모습은 아주 감동적입니다.’

 

묶어 놓아야 할 만큼 난폭하고 고약한 사람, 전혀 가망성이 없는 사람이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변한 것이야말로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 안에서 그의 잘못된 삶의 색깔들이 다 지워지고 새로운 삶의 색깔을 갖게 된 것이다. 복음은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롬13:12).

 

둘째는 삶의 ‘맛’이 변한다. 맛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뜻한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뜻한다. 맛이 없는 것을 ‘물맛’이라 하고, 주변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한 것을 ‘맹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포도주는 맛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맛을 주고, 기쁨을 준다. 이렇게 맛이 없는 삶을 맛이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복음이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삶의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위해 전력하게 만든 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가치를 분명하게 해준다. 그래서 무익하고 무가치한 사람을 유익하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바울의 편지 중 빌레몬서가 있다. 여기에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라는 도망친 종이 나온다. 바울이 이 사람의 용서를 위해 빌레몬에게 개인적으로 쓴 편지가 빌레몬서다. 여기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전에는 ‘무익한 자’였으나 지금은 ‘유익한 자’라(1:11)고 말한다. 또한 복음으로 자신이 옥중에서 낳은 아들이라(1:10)고 한다. 오네시모는 무익한 자였는데, 복음 안에서 다시 태어나 유익한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오네시모란 이름의 뜻이 ‘유익하다’이다. 아마도 주인에게 유익한 자가 되라는 의미에서 주인이 이런 이름을 지어준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삶은 반대였다. 오히려 주인 빌레몬에게 유익은커녕 해를 주고 도망을 쳤다가 붙들려 로마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 그의 삶이 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의 이름대로 유익한 자가 되었다.

 

모든 부모는 자녀가 누구에게나 유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자신 역시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설령 현재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심각한 해를 주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일지라도 처음부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삶이란 부모가 원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질 않는다. 로마서 7장을 보면 바울도 이런 고민을 털어 놓으면서 탄식을 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1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24). 그러나 복음 안에 있으면 오네시모처럼 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가 되고, 주님을 핍박하던 사울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되고,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고, 게바가 베드로로 변하게 된다. 삶의 맛이 변하고, 맛을 내고, 맛을 주는 삶으로 변하게 된다.

 

셋째는 삶의 ‘향’이 변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두 종류의 냄새에 대하여 말하였다(2:16). 하나는 사망의 냄새요, 다른 하나는 생명의 냄새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자는 “그리스도의 향기”(2:15)라고 하였다. 서두에서 소개했던 사람처럼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 고통이 되는 사람이 있다. 그가 있는 곳은 다툼과 고통이 있고, 눈물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신음과 탄식이 있다. 주변에 악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반면에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고, 행복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항상 기다려지고, 만나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하면 나 역시 행복해지고, 밝아지고, 기쁨과 즐거움, 생명으로 충만해 진다. 주변에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향기는 영향력이다. 이렇게 주변에 악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있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있다. 복음 안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된다. 그래서 주변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생명으로 가득찬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3. 복음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온다.

변화에는 좋은 변화와 나쁜 변화가 있다. 사단은 우리를 나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존재다.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의 삶은 나쁜 방향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타락’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선한 방향,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오네시모의 이야기에서처럼 사단은 유익한 자를 무익한 자로 타락시켰지만 복음은 무익한 자를 유익한 자로 변화시켰다. 악인을 선인으로, 죄인을 의인으로, 원수를 친구로 변화시킨다.

 

천국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사단의 일이라면, 복음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들이 더불어 살도록 변화시킨다. 그래서 그곳을 천국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어느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알면 나의 삶이 누구에게 조종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어제나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을 제외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변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변하고 있다. 단지 그 방향이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은 나쁜 방향으로, 어떤 사람은 선하고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 삶이 어떻게 변하여 왔는지, 지금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물로 만든 포도주의 맛을 본 연회장의 이야기다(9~10). 그가 신랑에게 대개 사람들은 처음엔 좋은 술을 내놓았다가 사람들이 취하면 질이 낮은 것을 내놓는데, 오히려 처음보다 더 좋은 술을 내놓았다며 칭찬을 하였다. 이는 예수님이 만드신 포도주의 질을 증명해준다. 예수님은 물로 최상의 포도주를 만드셨다. 이것은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 최상의 것을 주시는 분(눅11:13)이심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 복음 안에 있으면 최상의 존재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존재 자체가 변하고, 또한 모든 것이 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색과 맛과 향에 있어서 최상의 존재로 변하고 있다. 아름다운 변화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모든 선한 일에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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