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세우라(Build up)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서로 세우라(Build up)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223회 작성일 09-10-04 12:24

본문

서로 세우라(Build up).

행11:19~26

2009. 10/4 11:00

페이지 터너(page turner)

최고의 선수와 최고의 스포츠 팀에는 코치가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코치없이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는 없다. 가장 뛰어난 골퍼 타이거 우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피겨 여왕 김연아, 최고의 실력을 가진 그들에게도 코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다. 이 사람을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고 한다. 악보는 넘겨주는 사람이다. 호르비츠(Vladimir Horowitz)가 ‘악보를 넘기는 사람이 연주 전체를 망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연주회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 중에 하나가 페이지 터너다. 그런데 이 페이지 터너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이 있다고 한다. 화려한 옷을 입거나 악세사리를 해서도 안되고, 연주자를 건드려서도 안되고, 악보를 넘길 때 소리를 내서도 안되고, 또한 악보를 너무 빨리 넘기거나 너무 늦게 넘겨서도 안된다. 항상 연주자 다음에 등단해야 하고, 연주자가 청중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때도 앉아서 연주자를 쳐다보아야만 한다. 「페이지 터너」란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의 감독 드니 데르쿠르는 ‘페이지 터너의 역할을 일종의 자기소멸’이라고 하였다. 무대 위의 또 다른 연주자로, 드러나지 않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 페이지 터너다.

 

산소같은 사람 바나바

오늘 본문에 이 페이지 터너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 나온다. 바로 ‘바나바’라는 사람이다. 성경은 그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24)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구브로에서 태어난 부유한 레위인이었다. 그의 본명은 요셉인데, 사도들이 ‘바나바’(격려의 아들이라는 뜻)라는 새로운 이름을 그에게 주었다(행4:36). 이는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시사해준다. 믿음의 본을 보인 산소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그에게 이런 이름을 붙여 준 것이다. 예루살렘교회가 탁월한 나눔의 삶이 가능했던 것은 바나바와 같은 부자들이 솔선했기 때문이다(행4:37).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 이후 핍박으로 흩어진 신자들이 수리아 안디옥 지역으로 가서 안디옥교회(이방 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를 세웠는데, 바나바가 그 교회 초대 목회자로 파송되었다(22). 그의 안디옥교회 목회는 아주 성공적이었다(24). 그가 예루살렘교회를 잘 섬기고, 안디옥교회를 부흥시킨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욱 크고 위대한 일은 ‘사람을 세운 것’이다.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사도바울이다. 그는 성경을 13권이나 저술했고, 기독교 복음의 세계화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바울을 세워준 사람이 바나바다. 바나바는 사울을 바울이라는 스타로 키워낸 사람이다. 바나바라는 코치가 있었기에 위대한 사도바울이 탄생한 것이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좋은 코치이자 멘토였다. 스타는 코치가 키운다. 바나바는 스타는 아니었지만 스타를 키워낸 사람이다.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신자의 ‘삶 시리즈’ 두 번째로, 바나바의 삶을 통해서 ‘세워 줌’(Build up)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그러면 바나바가 바울을 어떻게 세워주었는지 알아보자.

 

1. 신뢰를 통해서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 믿음을 가진 바울은 다메섹에서 곧 바로 복음을 전한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하자 밤에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 성을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찾아다녔지만 누구도 그를 만나주질 않았다. 그의 회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를 유일하게 믿어주는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하며 그의 회심사건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행9:22~27). 그 후 바울은 자기 고향 다소로 가서 10여 년을 보내게 되는데, 이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고선 서로 잊어버릴 수 있는 긴 시간이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바나바는 바울을 기억하고 있었고, 섬기는 교회가 부흥하자 그의 고향까지 찾아가 그를 데리고 와서 함께 교회를 섬겼다(25~26). 이는 바울에 대한 바나바의 깊은 신뢰를 엿볼 수가 있다. 신뢰가 없이 어떻게 인정하고 받아주며, 자신의 사역을 나눌 수 있었겠는가? 이런 바나바의 신뢰로 바울이 교회에 정착할 수가 있었고, 또한 훌륭한 복음사역자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뢰는 사람을 세우는 소중한 덕목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관계를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는 소중한 덕목이다.

 

21세기는 이 신뢰가 도덕적인 덕목을 넘어 경제적 자산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는 ‘사람이 서로 신뢰할 때 성장지수가 빨라진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서로 신뢰하지 못해 생기는 갈등의 비용이 줄어들어 조직의 생산성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노사가 서로 신뢰하지 못해서 파업이 일어나면 파업으로 인한 갈등비용이 엄청나다. 지난 번 쌍용자동차파업손실액이 약 3천억 원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한 것까지 생각하면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지만 서로 신뢰하면 이런 갈등비용이 생산성으로 이어져 엄청난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서로 신뢰할 때 성장지수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마찬가지다.

 

탁월한 사람도 신뢰를 얻지 못하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주변의 든든한 후원과 신뢰를 받는 사람은 날로 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사실 성경에 나온 대부분의 인물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고 배신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끝까지 신뢰하셨다(요21:). 결국 이들이 세움을 받아 기둥처럼 쓰임을 받게 되었다. 서로 신뢰하는 것이 서로를 세워주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신뢰할 때 아내가 세워지고, 아내가 남편을 신뢰할 때 남편이 세워진다. 부모가 자식을 신뢰할 때 자식이 세워지고, 자식이 부모를 신뢰할 때 부모가 세워진다. 그래서 가정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세워진다. 교회도, 회사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와 신자는 무너뜨리는 존재가 아니라 세우는 존재이다. 복음의 사역은 세우는 사역이다. 우리를 통하여 우리 자녀, 이웃, 가정, 교회를 비롯한 속한 모든 공동체와 만나는 사람들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설 때가 있다. 그 때 우리가 주님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나로 인하여 세워진 사람들이다. 나를 통해 세워진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가장 큰 나의 자랑이다. 우리 모두 자랑거리가 많은 삶이 되자. 그러기 위해선 바나바와 같은 변함없는 신뢰가 필요하다.

 

2. 겸손한 자기 비움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죽은 여자보다 더 비참한 여자는 잊혀 진 여자’라고 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것도 한참 잘 나가던 사람이 누군가에 의해 그 조명에서 멀어진 것은 더욱 참기 힘든 일이다. 대부분 자기가 더 박수를 받고, 앞서고 있다고 여길 때는 지지를 보내지만 그 상황이 역전이 되면 지지가 시기로 변하고, 질투로 변한다. 이런 사람이나 환경에서는 사람도 공동체도 세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복음서 첫머리에 예수님의 선구자로 세례요한이란 사람이 나온다. 그는 사람을 세워주는 좋은 모델이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 30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특히 그가 광야에 살면서 약대의 털로 옷을 만들어 입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을 하면서 회개를 외치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예수님도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등장으로 그의 입지가 급속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제자들이 이에 불편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보였다.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3:27). 그 때 요한이 대답하기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0)고 했다. 오히려 예수님의 ‘드러남’을 기쁘게 생각하고, 자신의 ‘사라짐’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런 자세와 태도를 ‘겸손한 자기 비움’이라고 한다. 겸손한 자기 비움이 있어야 상대방의 드러남에 올바른 반응을 보일 수 있고,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이 세워지는 것이다.

 

사실 초대교회는 사람을 키울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바울과 같은 인물이 받아들여지지 못함이 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곳에 바나바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점이다. 세례요한처럼 바나바는 자기를 비운 겸손한 사람이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①바나바는 제자들 누구도 신뢰하지 못해 받아주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바울을 신뢰하고 받아주었고, 자신이 직접 사도들을 찾아다니며 바울을 변호를 해주었다(행9:26). ②10여년의 세월에 묻혀 모두들 바울을 잊고 있었지만, 바나바는 바울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를 자신의 목회지로 데리고 와서 함께 동역을 했다(26). 여기 ①②번을 통해 바나바의 인물됨과 함께,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세우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사람을 세우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람이 세워지면 교회도 세워진다. 물론 궁극적인 관심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지만 교회 역시 사람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세워져야 교회도 세워진다. 바나바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안디옥 교회를 세우기 위해 바울을 세워주었고, 바울을 세워주었더니 바울을 통해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③사도행전 13장에서는 안디옥교회에서 두 사람이 함께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는데, 그는 기꺼이 바울의 조력자가 되었다(행13:46). 선배인 그가 후배를 앞세운 것이다. 자기를 온전히 비운 겸손한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15장 이후부터는 아예 그의 이름은 사라지고 바울의 이름만 기록되게 된다.

 

결국 바울의 드러남이 그의 사라짐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는 그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누구보다 바울의 인물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을 가까이하면 자신의 결국이 이렇게 되리란 것도 알고 있었다. 이것을 알면서도 바울을 변호해 주고, 함께 동역을 하고, 기꺼이 그의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이는 겸손한 자기 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바로 이 마음이 우리가 품어야 할 ‘예수님의 마음’이다(빌2:5~).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바나바 때문에 사도바울이라는 복음의 스타가 탄생된 것이다. 또한 바울을 바울 되게 한 사람이 된 것이다. 헬렌 켈러를 말할 때 앤 설리번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바울의 일생에서 바나바를 빼놓을 수가 없다. 스스로 한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하도록 세워주는 것은 더 중요하다. 겸손한 자기 비움을 통해 사람이 세워지고, 공동체가 세워짐을 기억하자. 내가 겸손하게 낮아지고 깨지고 부서져서 온전히 비워질 때 자녀가 세워지고, 아내가 남편이 세워지고, 내 주변이 세워지고, 가정과 직장이 세워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세워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진다.

 

형통(亨通)의 비결

저의 기도제목 중 하나가,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잘되게 해주십시오.’이다. 왜냐하면 주변이 좋아야 나도 좋고, 주변이 잘되어야 나도 잘되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며, 자기가 달성코자 하면 남도 달성케 해준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는 말이 있다. 어진 사람은 소위 ‘윈윈(win-win)의 삶’(상생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신자의 삶도 더불어 잘되는 삶이어야 한다. 남을 잘 되게 하고, 성공하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성숙한 신자다. 이렇게 남을 잘되게 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도 잘된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잠11:24~25). 이것이 형통의 비결이다. 그러므로 더불어 잘되는 형통한 삶의 첫 걸음이 되는 사랑과 행복 비타민 ‘B’는 서로 ‘세워 줌’(Build up)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36 / 22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