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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안아주라(Emb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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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7,356회 작성일 09-10-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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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안아주라(Embrace).

신1:30~33

2009. 10/25  11:00

사랑의 포옹(抱擁)

미국 어느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쌍둥이 중 한 아이가 심장에 큰 결함을 안고 태어났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그 아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며칠 동안 그 아기는 병세가 계속 악화되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때 한 간호사가 쌍둥이를 같은 인큐베이터에 넣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는 병원의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담당의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안에 나란히 눕히기로 했다. 그런데 건강한 아이가 팔을 뻗어 아픈 아이를 감싸 안았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픈 아이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에는 체온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고, 현재 두 아이는 정상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래서 어느 기자가 이를 보고 ‘생명을 구하는 포옹’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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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9년경에, 로마의 베스비우스(Vesuvius) 화산폭발이 있었다. 근처 한 마을에 용암이 밀려와 주민들이 모두 희생당했다. 위의 사진은 그로부터 2,000년이 흐른 후 그 발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서로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다. 용암이 마을을 덮쳐 죽음을 맞는 상황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광경이다. 실로 감동적인 모습이다. 한자로 포옹할 때 ‘포’(抱)자가 ‘안을 포자’다. 이 포(抱)는 이 사진을 연상케 해준다. 抱(포)=手(손 수)+包(쌀 포)자로 되어 있다. 包=勹(쌀 포)+巳(태아 사)로, 勹(포)는 人(인)자로 무엇인가를 싸고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본 모습이고, 巳(사)는 태아의 모습이다. 그래서 包(포)는 어머니의 배 안에 아이가 있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抱(포)는 어머니가 두 손으로 태아를 꼭 감싼 모습이다.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어머니는 아이를 꼭 감싸 안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서로 껴안아 힘과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의 안아주심

오늘은 신자의 ‘삶 시리즈’ 다섯 번째로, 서로 ‘안아줌’(Embrace)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신명기는 율법을 재(再)강론한 책이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에게 행한 모세의 설교다. 모세는 본문에서 광야 40년을 하나님의 품에 안겨온 세월이었다고 회고한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고백이다. 우리 역시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삶에 대하여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안아줌의 의미를 살펴보면, 


1. 안아주는 것은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이는 것(包容)이다.

요즈음 어느 항공사 광고 중에,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河海不擇細流)는 멋진 말이 나오고 있다. 이는 「사기」의 〈이사열전〉에 나온 말이다. 이 문장 앞에 나온 말도 멋지다. ‘큰 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는다.’(泰山不辭土壤)는 말이다. 물줄기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큰 강과 바다가 된 것이고, 이 산 저 산의 모든 흙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주기 때문에 큰 산이 된 것이라는 뜻이다. 논어에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이 있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항상 배움의 자세, 수용적인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 이것이 큰 인물의 특징이고,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수용의 폭이 큰 사람이 큰 인물이고, 건강한 공동체이다. 안아주는 것(포옹)은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이는 것, 곧 포용(包容)이다. 그러면 포용(包溶)이 된다. 여기서 용(溶)자는 ‘질펀히 흐를 용’자다. 열을 가하면 마치 얼음이 녹듯이 너그럽게 감싸 안으면 상처로, 분노로, 슬픔으로 굳게 닫힌 마음이 열리게 되고, 돌처럼 굳은 마음이 녹아나는 것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에 사랑의 열기로 뜨겁게 된다. 그래서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고,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 용서가 되고 받아들여진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여겨질 때 자신 또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런 감정이 서로 안아줌을 통해 경험되는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은 불평과 원망, 배반과 반역의 역사였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화나게 했다. 만약 이스라엘의 행위대로 하나님께서 갚으셨다면 그들은 단 한 사람도 광야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실수나 실패, 반역에도 불구하고 너그럽게 감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문에서 모세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31)고 한 것은 너그럽게 감싸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안아주시는 분이시다. 내가 누구이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크신 팔로 안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악인과 불의한 자에게 햇빛과 비를 고루 주시는 분이고 하셨다(마5:45). 이렇게 악인과 불의한 자에게 햇빛과 비를 고루 주시는 하나님은 암탉과 같은 분이시기도하다(마23:37). 암탉은 자기 품안에 다른 새의 알이 있어도 그것을 품는다. 알의 생명을 보호하고 보듬고 키워준다. 하나님은 온갖 다른 알들을 품어주는 포용의 하나님이다. 원수의 알도, 불의의 알도 품어서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종교적 악과 세속적 불의를 보고 탄식하고 눈물 흘리셨다. 당신 스스로가 암탉이 되어 그들을 병아리처럼 품어 그 생명을 보듬어주시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못해 눈물 흘리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고 말씀하셨다. 모두를 기꺼이 안아줄 수 있는 너그럽고 수용의 폭이 큰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를 맞거나 햇볕을 쬐일 때마다 악인까지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넓고 큰 사랑을 생각할 수 있기 바라며, 또한 주변에서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 누구든지 다 품어 안을 수 있는 성숙한 사람, 성숙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2. 안아주는 것은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날개가 하나뿐인 천사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안아야만 날 수 있다.’고 했다. 날개와 눈이 하나뿐인 전설의 새 비익조(比翼鳥)에 대해서 들어 보았을 것이다. 눈과 날개가 하나만 있는 새이기에 혼자서는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두 마리가 서로 기대어 함께 하나가 되어 날갯짓을 할 때 비로소 하늘로 날아오를 수가 있다. 흔히 금실이 좋은 부부를 이 새에 비유하곤 한다. 날개가 하나뿐인 천사나 비익조가 상징한 것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 그래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낙담하고 절망하다가도 나를 사랑하고, 나를 돕고,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힘을 얻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함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 ‘안아주는 것’이다. 안아주는 것은 당신 곁에 내가 있다는, 내가 당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되고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겠는가?


위로는 라틴어로 ‘컨솔라리’(consolari)로, ‘혼자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란 뜻이다. 혼자인 사람은 자칫 상실의 고통 때문에 흔들리기 쉽다. 그런데 그 혼자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위로다. 또한 독일어로 위로는 ‘견고성’과 관련이 있다. 독일어로 위로는 ‘트로스트’(trost)인데, 이는 ‘충실, 신의’의 뜻을 가진 ‘트로이에’(treue)와 어간이 같다. 즉 위로를 받으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안아줄 때 이런 위로를 경험하게 된다. 안아줌을 영어에서는 일반적으로 ‘hug’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고대 노르웨이어의 ‘편안하게 하다. 위안을 주다.’는 뜻의 ‘hugga’에서 왔다. 안아줌과 위로가 같은 뿌리인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안아줄 때 위로가 넘치게 되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또한 ‘hug’와 같은 뜻으로 ‘embrace’란 단어가 있다. 이는 ①em(~안에)+brace(헬, 팔)=팔 안에 있는 것, 즉 팔로 껴안는다는 뜻과, ②em(~가 되다)+brace(버팀목, 지주)=‘버팀목이 되다’는 뜻이다. 안아주는 것은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다. 견고하게 서도록 붙들어주고 지지해주는 것, 또한 지키고 보호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주변에서 버팀목의 용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공중에 솔개가 나타나면 어미닭은 병아리들을 자기 품안으로 모아서 보호해준다. 저녁에 잘 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불속에서 자기를 희생하며 병아리들을 보호하는 것을 보았다. 어미닭이 병아리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다. 이것이 안아주는 것이다. 본문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면서 그의 넓은 품으로 안아(31) 보호하고 인도하셨기에(33)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는 곳, 곳곳에 많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광야를 안전하게 건널 수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매일, 매순간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인정하고 경험하는 것이 신앙이다. 이를 인정하고 경험할 때 감사와 감격이 있고, 찬양이 있고, 확신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이다(롬8:38,39, 사43:2).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은 갈대처럼 연약하다. 그래서 사소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쉽게 무너질 수가 있다. 그런데 누군가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면 견고하게 서게 된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을 보라. 그들 곁에는 수많은 버팀목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성경에 ‘서로’라는 상호부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서로를 붙들어주고, 지지해주고,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버팀목이 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함께 성장하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주님의 안아주심을 경험한 신자의 사명이다. 신자는 연리지(連理枝)와 같은 존재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주님의 몸인 교회의 같은 지체이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서로 안고 가야할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붙들어주고, 지지해주고,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좋은 버팀목이 되기를 바란다.


안아줌의 힘(Hug Therapy)

부속품도 필요 없고, 건전지도 필요 없다.
다달이 돈 낼 필요도 없고,
소모품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은행 금리와도 상관없으며, 세금 부담도 없다.
도둑맞을 염려도 없고,
시간이 지나 퇴색할 염려도 없다.

한 가지 사이즈에 모두가 맞으며, 질리지도 않는다.
가장 적은 에너지를 사용해
가장 감동적인 결과를 낳는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행복감을 키워준다.
절망을 물리쳐 주며
당신의 눈을 빛나게 하고
스스로 당신 자신을 존중하게 해준다.

감기, 얼굴에 난 종기,
골절상에도 효과가 있으며,
불치병까지도 극적으로 낫게 한다.
이 약은 특히 가슴에 난 상처에 특효약이다.

이 약은 전혀 부작용이 없으며,
오히려 혈액순환까지도 바로 잡아준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약이다.

처방은 이것이다.
최소한 하루에 한번씩
식후 30분이든 식전 30분이든
서로 껴안으라는 것이다.

-헨리 매튜 워드


우리의 손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안아줄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안아주는 것은 ‘가슴에 사람을 품는 것, 즉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다. 위 시는 이와 같은 안아줌의 힘을 노래하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품에 안겨 있을 때 기분이 좋아 지고, 면역력이 높아진다. 사랑한다고 백 마디 외치는 것보다 그저 가만히 껴안는 행동 하나가 더 감동적이고 진한 감정으로 전달된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무언가에 화가나 비뚤어진 행동을 한다면, 말로 혼내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일단 안아주라.’고 충고하고 있다. 심리치료 전문가 버지니아 사타이어(V. Satire)는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하루에 네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선 하루에 여덟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장을 위해선 열 두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고 했다. 행복한 날을 더욱 행복하게, 견딜 수 없는 날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이 안아줌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변을 행복하게 하는 사랑과 행복 비타민 ‘E’는 서로 ‘안아줌’(Embra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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