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귀를 기울이라(Listen).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서로 귀를 기울이라(Listen).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274회 작성일 09-12-27 15:49

본문

서로 귀를 기울이라(Listen).

눅10:38~42

2009. 12/27 11:00

패밀리(Family) 법칙

말이 통(通)하면 만사가 통한다는 말이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 말이 통하기 위한 첫 단계는 잘 듣는 것이다. 이것을 ‘경청’(傾聽)이라 한다. 효과적인 경청을 위한 ‘Family 법칙’이 있다.

 

(Friendly): 상대방에 대해 친절한 감정을 갖는 것이다. 선입견이나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공감을 표시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

(Attention): 상대방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 이 점이다. 일대일이라면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듣는 것이 상대방의 말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들으면 권위주의적이고 거만하게 보일 수 있다. 되도록이면 하던 동작을 멈추고, 메모하며 들어야 한다.

(Me too):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듣는 것이다.

(Interest): 듣는 도중 질문이나 상대방이 말한 중요한 문장의 단어를 복창하여 관심과 흥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입으로 듣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상대방에게 내가 공감하고 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아무런 반응 없이 들기만 하면 딴생각을 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가 있다.

(Look): 상대방을 바라보며 듣는 것이다. 눈을 감거나 다른 곳을 보고 듣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흔히 누군가에게 외면당했을 때 ‘쳐다보지도 않더라.’고 말한다.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가 있다.

(You are centered):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하는 자신이 중심인물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위에 말한 내용을 모든 포함한다. 상대방을 중심에 두고 그의 입장에서 들어주면 이미 완벽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것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들음의 중요성

성경에 귀를 기울임, 곧 ‘들으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1천 번 이상, 그리고 신약에서는 4백 번 이상 사용되고 있다. 잘 듣는 것이 일상은 물론 신앙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들음’은 인간의 훌륭한 성품 중 하나다. 부모의 말을 잘 들으면 효자라 하고, 자녀의 말을 잘 들어주면 자애로운 부모라 한다. 남편의 말을 잘 들으면 좋은 아내라 하고,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좋은 남편이라 한다. 국민의 소리를 잘 들으면 좋은 지도자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하나님의 사람이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은 신자의 ‘삶 시리즈’ 열두 번째, ‘서로 귀를 기울임’(Listen)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본문은 들음의 중요성에 대한 예수님의 많은 교훈 중 하나다. 표면상으론 마르다의 불평에 대하여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지만 실제적 의미는 살아가면서(신앙생활을 포함하여)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마르다의 불평이 틀린 것은 아니나 주님을 섬기는 것이 단지 물질적인 공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소중한 섬김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마르다를 책망하고 마리아를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섬김에 대한 생각의 변화, 특히 들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러면 왜 들음이 중요한가?

 

1. 以聽得心, 들음은 마음을 얻는 지혜다(들음은 관계의 기초다).

건강한 관계는 소통에 있고, 소통의 기본은 들음이다. 「모모」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다. 독일 작가 미카엘 엔데(M. Ende)의 작품인데, 성공과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허겁지겁 살다가 시간을 도둑맞은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과 삶의 행복을 되찾아 주는 이야기다. 모모(Momo)는 키가 작고 삐쩍 마른 소녀다.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떠돌이다. 그녀가 사는 곳은 어느 도시의 변두리, 잡초가 무성한 옛날 원형극장 터였다. 그 극장 주변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친절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극장 한 구석에서 외롭게 살기 시작한 모모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잠자리도 새롭게 마련해주고 먹을 것도 갖다 주었다. 그런데 모모에게는 사람을 끄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좋아했고, 신기하게도 모모를 찾아가면 삶의 고민들이 해결되었다. 그래서 이런 유행어가 생겼다. ‘아무튼 모모에게 가보게!’ 모모에게 무슨 초능력이나 비범함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딱 한 가지 재주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따뜻한 관심을 갖고 바라보며 온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以聽得心) 비결이다. 한자에 들을 청(聽)와 같은 의미인 들을 ‘문’(聞)자가 있다. 이는 門(문)+耳(이)로 된 형성문자다. 들음은 귀로써 다른 사람의 문(마음)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즉 들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得解), 그 마음을 얻을(得心) 수 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그를 존중하는 표다.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를 존중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람은 누군가에게 존중을 받고 있다고 생각될 때 존재가치와 자긍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들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하게 하고, 자신을 긍정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 넓은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호소한다. 인간의 정신적 방황과 고통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 원인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데 있다. 그래서 외로운 것이다.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고독한 것이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듣는 것’이다. 그냥 들어주는 것이다.

 

모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는데,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스스로 자존감과 자긍심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들음의 중요성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어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과 관심을 갖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존감과 자긍심을 주기 때문이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사울을 향하여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책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시와 무관심을 뜻한다. 나아가서 자신의 자존감과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들음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비결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비결이기도 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비결이다.

 

2. 以聽得信, 들음은 영성의 기초이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들음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영적 생활에도 중요한 요소다. 성경이 들음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요6:29)고 하셨다. 믿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최선의 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비롯된다(롬10:17). 그러므로 들음이 하나님을 섬기는 최선의 길이란 뜻이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비결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심도 말씀을 듣는 섬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아마 이것은 설교를 해보거나 강의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잘 듣는 사람이다.

 

영화「The Passion of Christ」에 빌라도가 고민에 빠진 장면이 나온다. 주님께서 빌라도에게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셨다. 그 때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자 빌라도의 아내가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진리가 들릴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빌라도는 끝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민중들의 분개하고 떠드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진리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고 만다. 그의 듣지 않음이 진리를 알 수도 없게 만들었고, 진리에 대한 영원한 반역자가 되게 했다. 듣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해주는 소중한 장면이다.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마13:3~9)에서 네 종류의 밭이 있다고 하셨다. 여기서 밭은 말씀을 듣는 태도에 따른 네 종류의 마음(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결국 열매를 맺은 밭과 열매를 맺지 못한 밭, 두 종류로 구분된다. 그런데 이를 결정짓는 것이 무엇인가? ‘들음’이다. 잘 들은 사람은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었지만 듣지 않은 사람은 씨만 버리고 아무런 결실도 맺지를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귀 있는 자는 들으라.”(9)는 말씀으로 마치고 있다. 이는 깨달음이 있는 들음을 뜻한다. 그래야 영혼이 살게 되고(사55:3), 알게 되고(눅24:31), 믿게 되고(롬10:17), 행하게 되고(마7:24), 또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마13:8)이다. 이런 모든 믿음의 과정을 결정하는 것이 ‘들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의 첫 걸음 또한 들음에서 시작이 된다. 아무리 여호와의 집(성전)에서 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그는 사람의 종이지 하나님의 종은 아니다(삼상3:7).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종이 된다(삼상3:9). 누구의 말을 듣느냐가 그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사람의 말을 들으면 사람의 종이 되고, 마귀의 말을 들으면 마귀의 종이 된다(요8:47). 그러므로 우리는 귀를 기울여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사람이 되고(요10:3), 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고,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잘 듣는 사람(A good listener).

세계 최대 제약회사 화이저(Pfizer)의 제프 킨들러(J. Kindler)회장은 매일 동전 10개를 왼쪽 주머니에 넣고 출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 명의 직원과 대화를 하고 그의 고민이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들면 왼쪽 주머니에 있는 동전 하나를 오른쪽 주머니로 옮긴다. 그렇게 해서 동전을 모두 옮기면 자신에게 ‘100점의 점수’를 준다고 한다. 그가 매일 스스로에게 이런 숙제를 내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고 경영자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또한 이를 실천하고 있으니 그 회사가 잘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다.

 

한자 들을 ‘청’(聽)자를 풀이해보면 들음의 중요성과 태도를 확인할 수가 있다. 청(聽)=이(耳)+왕(王)+덕(悳). 이는 ①인간의 몸에서 듣는 귀(耳)가 으뜸(王)가는 보배라는 뜻이다(관상학에서 눈은 이지적인 면, 코와 입은 성격, 귀는 인덕과 복의 상징). 그러므로 듣는 것은 귀로 덕(德)을 쌓는 것이다. ②덕(悳)=직(直)+심(心). 듣는다는 것은 바른(直) 마음(心)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같은 사람에게서 같은 내용을 들었는데, 잘 못 들은 사람이 있고, 이해나 해석을 달리 하는 사람이 있다. 듣되 바른 마음으로 듣지 않은 까닭이다.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바르게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성인이란 듣는 귀(耳)를 말하는 입(口)보다 으뜸(王)으로 여기는 사람(聖=耳+口+王)이다. 잘 듣고, 바른 마음으로 듣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큰 사람이고,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덕을 쌓는 소중한 일이다. 또한 주님의 뜻을 가득히 품은 깊은 영성의 소유자이다. 신자란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가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서로의 말도 귀담아 듣는 좋은 경청자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서로에게도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될 수가 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복이 되게 하는 사랑과 행복 비타민 ‘L’은 ‘서로 귀를 기울임’(Listen)이다.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36 / 28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