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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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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960회 작성일 10-01-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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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행9:31

2010. 1/3 08:00, 11:00(신년/개당기념주일)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

건강과 행복은 관계의 선물이다.

흔히 인간을 관계적 존재라 한다. 그 관계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쥐를 통해 연구한 사례가 있다.

 

첫째, 한 마리의 쥐만 따로 살게 했다. 그랬더니 그 쥐가 600일 만에 죽었다.

둘째, 여러 마리의 쥐들이 서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게 했다. 이 쥐들은 700일을 살았다.

셋째, 여러 마리의 쥐들을 함께 살게 하고, 때때로 실험자(사람)가 그 쥐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즉 쥐들끼리는 수평적인 관계를 맺게 하면서, 동시에 쥐와 사람의 수직적인 관계를 맺고 살게 한 것이다. 이 쥐들은 앞의 쥐들보다는 훨씬 오래 950일을 살았다.

 

혼자 사는 것보다는 더불어 사는 것이 좋고, 더 좋은 것은 다른 존재의 보살핌을 받고 사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즉 우리의 삶에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하고, 나아가서 초월적인 관계인 종교적인 삶이 얼마나 유익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기관에서 금년도 소망에 대하여 조사했는데, 그 1위가 ‘건강과 행복’이었다. 요즈음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행복은 건강이란 나무에서 피는 꽃이란 말처럼 건강과 행복은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 건강과 행복은 관계의 선물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누릴 수 있는 복이다(눅2:52). 이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금년도 우리교회 목표를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라고 정했다. 물론 이것은 1년으로 끝낼 일이 아니고 우리가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본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1. 평안한 교회

중세기 이탈리아 산중 높은 곳에 위치한 어느 수도원에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사제가 나가보니 무척 피곤에 지쳐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아마 밤새 산을 오른 것 같아 문을 열어주며 물었다.

 

‘누구를 찾아 오셨나요?’

‘예, 저는 평화를 찾습니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신곡」의 저자 단테(Dante Allighieri)였다. 그의 책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내 인생의 한 중간 눈을 떠보니 나는 바른 길을 벗어나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이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며 마음의 평화를 구하고 있었던 때가 정확하게 그의 나이 40에 접어드는 때였고, 그의 인생은 중년기의 방황을 경험하던 때였다. 마치 어두운 숲속에 던져진 외로운 참새와 같은 영혼이 된 것이다. 20대에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고, 30대에 자기 고향 피렌체에서 정치에 입문했다가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향에서 쫓겨난 그는 이제 40대에 갈데없는 영혼의 방랑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나이 43세가 되던 해 붓을 들어 무려 13년간에 걸쳐 써내려간 책이 신곡(Divine Comedy)이다. 그가 책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은, 인생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니라 위대한 희극, 기쁨과 평화의 서사시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로 시작한 그의 책은 ‘나는 행복하다. 나는 자유하다. 나는 참으로 완벽하게 고요한 평화를 맛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한 평화의 시작이었다.’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신곡이란 책의 시작과 마지막을 수식한 표현이 아니라 단테 자신의 고백이다. 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평안함에 있다.

 

평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중요한 조건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평안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의 절대적인 조건이다. 평안이 깨지면 건강도 행복도 깨진다(피카소 「어항 속의 비둘기」). 그런데 이 평안은 인간의 기술이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평안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모신 곳에 평안이 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심령,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는 평안하다. 어떤 시련과 환란 속에서도 평안함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평안한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다. 본문은 환란 속에서도 계속 부흥하고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다. 비록 핍박으로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그 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세워진 교회마다 큰 부흥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신자와 교회가 ‘평안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안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의 절대적인 조건이면서 동시에 교회 부흥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것은 건강과 행복이 부흥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 교회가 평화의 주님이 주인된 교회, 그래서 주님이 주신 평안함 속에 부흥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자.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2. 든든히 서 가는 교회

신앙도 공부도 사업도 건물도 무엇이든 기초가 중요하다. 부실한 인생, 부실한 공사의 특징은 기초에 문제가 있다. 편안할 때는 모르지만 시련의 밤을 지나고 나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미국 맨하턴의 엠파이어 빌딩은 150층인데 바람이 불면 3미터씩 움직이고, 우리나라 63빌딩은 1미터씩 움직인다. 그런데 넘어지지 않는다. 기초가 든든한 암반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결정하는 것도 기초에 있다. 인생의 기초, 교회의 기초를 어디에 두느냐에 건강과 행복이 결정된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도 그 기초가 잘못되면 무너지고 만다.

 

헤밍웨이(Ernest M. Hemingway)는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알코올 중독자로 4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결국은 엽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감동을 주었던 그가 그토록 비참하게 무너진 이유가 무엇일까? 인생의 기초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지게 되고, 그것들이 무너지면 그 인생 또한 무너진다. 그래서 베드로는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의 말씀은 영원하다”(벧전1:24)고 했다. 아무리 꽃이 화려하고 풀이 무성해도 금방 사라지듯 지금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들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즉 이와 같은 것들에 인생의 기초를 두지 말라는 것이다.

 

본문의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는 평안하기만 한 교회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든든히 서 가는 교회였다. 여기 “든든히 서 가고”는 헬라어로 “집을 건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를 “터전을 든든히 잡고”라고 번역을 한 성경도 있다. 집을 건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터전을 든든히 잡는 것이다. 그래야 그 집이 든든히 세워져 가는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집을 건축하는 것과 같고,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바울은 예수님을 ‘모퉁이 돌’(corner-stone)에 비유를 하였다(엡2:20). 이것은 집을 세울 때 기준이 되는 돌이다. 이것이 집의 기초이고 시작이고 연결고리이다. 이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는다. 그래서 주춧돌, 혹은 초석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인생의 기초로 삼은 사람이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다. 때문에 어떤 가뭄도 그에겐 위협이 될 수가 없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이라는 모퉁이 돌 위에 내 인생을 올려놓는 것이다. 내 가정, 직장, 자녀, 아내(남편), 부모 등 인생 전부를 올려놓는 것이다. 그래야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온 세상이 다 무너져도 예수님은 나의 만세반석이기 때문이다. 흔들림이 없다. 예수님이 나의 모퉁이 돌이 되면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축복이 연결되고, 은혜가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형통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의 모임이고, 이런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이다. 예수님은 처음과 나중이요, 알파(α)와 오메가(ω)이다. 건축용어로 표현하면, ‘cornerstone’(초석)이면서 또한 ‘capstone’(종석)이다. 교회의 기초이면서 교회의 주인(머리)이시다. 즉 예수님이 전부라는 뜻이다. 내 인생의 전부이고, 교회의 전부가 되신 분이시다. 이 예수님께 기초를 두고 그 안에서 든든히 서 갈 때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된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주님께 기초를 두고 주님 안에서 든든히 세워져 가는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3. 정진하는 교회

사단 왕국에서 우두머리 선거가 있었다. 3명이 입후보를 했는데, 각자 정견발표를 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신자들에게 물질적인 인색한 마음을 줘서 헌신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고, 두 번째는 갈등을 조장하여 신자들 간의 화평을 깨겠다고 했다. 그런데 세 번째 후보자가 보이지 않았다. 찾아보니 구석에서 자고 있었다. ‘정견 발표 안 하고 뭐하냐.’고 했더니, 모든 신자를 자기처럼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사단 왕국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는 영적 게으름을 경고하는 우화다. 가장 무서운 적은 항상 자기 내부에 있다. 그것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영적 게으름이다. 이 영적 게으름은 신자를 무너뜨리기 위한 사단의 위장된 전술로 거룩한 삶의 치명적인 대적이다(마3:11~12). 잠언에 나온 게으른 자의 특징을 보면 이를 알 수가 있다. ①핑계와 변명에 능하고(잠26:13), ②육체적 편안만 추구하고(잠26:14,15), ③교만하다(잠26:16).

 

유명한 아프리카의 선교사 리빙스톤(D. Livingstone)의 일화다. 그가 노년에 잠시 안식년을 얻어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이제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매우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갈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멈추지 않고 미래를 향하여 자기의 삶을 계속 던지겠다는 뜻이다. 역사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새벽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주님이 모범으로 보여주신 삶이었고, 또한 우리 신자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신자들에게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두 가지로 고백하고 있다. 자신은 아직 미완성의 존재라는 것, 그래서 완성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주님 안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신자의 아름다운 모습이고, 또한 교회의 모습이다. 건강과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즉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심각한 핍박 속에 있었으나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였던 것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핍박이 두려워 뒤로 물러서거나 현실을 떠나서 숨지않고 계속 정진했다. 그렇다면 저들로 하여금 무엇이 이런 삶을 가능케 했을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믿음과 성령의 위로였다.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는 영적 정진의 기초다. 이것이 없이는 영적 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반대도 진리다. 영적 정진을 위해 힘쓰면 강한 믿음과 성령의 위로가 넘치게 된다. 그래서 건강하고 행복한 신자나 교회는 주를 경외하는 믿음과 성령의 위로하심 속에서 지속적인 영적 성장이 있고, 영적 진보를 향해 정진하기 때문에 커다란 믿음의 역사와 성령의 위로로 충만하게 된다. 저는 이것이 2010년도 저와 여러분의 모습, 그리고 우리 교회의 모습이기를 소원한다.

 

세 종류의 신자

신자가 가는대로 교회가 간다는 말이 있다. 이는 신자가 교회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신자에게 달렸다. 그런데 사람의 얼굴만큼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의 모습과 신앙의 빛깔이 다양하다. 흔히 신자를 세 종류로 분류한다.

 

첫째는 언더 크리스천(under-christian)이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고 그래서 들은 것도 많은데, 삶의 변화는 없고, 헌신은 회피하면서 직함은 추구하고, 비판은 강력하나 건설적인 대안이 없는 사람이다.

둘째는 오버 크리스천(over christian)이다. 세상과 교회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교회 안과 사회에서의 삶이 확연이 다른 사람이다.

셋째는 저스트 크리스천(just christian)이다. 지속적인 영성 생활에 힘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교회도 사랑하고, 동시에 가정과 직장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분별하여 실천하기에 힘쓴다. 자신의 직업이나 일을 성직처럼 여기며,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 문화에 오염되지는 않는 사람이다.

 

당신은 어떤 부류에 속한 신자인가? 물론 건강한 신자는 ‘저스트 크리스천’이다. 이런 신자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평화를 누리고, 주님께 인생의 기초를 두고 든든히 세워져 가며, 날마다 신앙의 경주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신자이고, 이런 사람을 통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런 신자가 되어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교회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세워가자. 2010년이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위한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되고, 금번 기념성회가 결정적인 그 계기가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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