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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람들(0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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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186회 작성일 06-06-05 12:09

본문

기다리는 사람들
행1:12~14

정호승 시인의 ‘기다리는 마음’이란 시가 있습니다.
        
기다림 때문에 눈이 내리게 하소서.
기다림 때문에 꽃이 피게 하소서.
푸른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꽃은 꺾여 찬 거리에 흩어졌으나
오직 기다림 때문에 눈이 내리게 하소서.
오직 기다림 때문에 새벽이 오게 하소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
야윈 어깨 위의 눈을 떨며 쓸쓸히 가는
그대의 마지막 뒷모습은 사라져가도
산과 산은 이어지고 강과 강은 흘러 흘러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믿고 기다리나니
기다리는 자의 새벽이 밝아오게 하소서
기다리는 자의 마음마다 새벽이슬이 되게 하소서.
추운 바람 속에서 별들은 흐느끼고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 또 외로우나니
어둠 속에서도 신뢰를 나눔으로써
어둠의 그림자로 빛이 되게 하시고
오직 기다림 때문에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사랑 때문에 기다리게 하소서.
기다리는 자의 새벽마다 눈이 내리게 하소서

이 시에서 시인은 우리 민족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직 우리 민족의 역사를 희망의 푸른 새들이 날고, 영광의 꽃이 피는 봄날의 역사가 아닌 삭풍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의 역사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운 바람 속에서 별들은 흐느끼고,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 또 외로우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지나온 역사만이 아니라 앞으로 갈 길도 멀고 외롭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운 겨울 속에서나마 하얀 눈이 내리기를, 새벽마다 하얀 눈이 내리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그 겨울의 희망인 눈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꽃이 피는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척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소개해 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기다림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기다림이든 기다림이 있기에 삶의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기다림 자체가 행복입니다. 아직 무엇인가에 대한 기다림이 있다고 하는 것은 소망이 있다는 것이고,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의 어려움을 참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참는 것입니다. 새벽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현실의 밤과 현재의 추위를 참아야함을 의미합니다. 참지 못하고는 기다림도 없습니다. 또한 기다림은 소망입니다. 우리는 기대와 소망이 있을 때 참고 기다립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믿음입니다. 믿는 바를 소망하게 되고, 소망하는 것을 기다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여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주인공들이 나무 밑에서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며 서있습니다. 물론 이 ‘고도’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무작정 고도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작품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이 희망이고, 기다림에 존재의 이유가 있고, 삶이 가치가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탁에 따라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주님이 부탁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당신의 부활을 직접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모아놓고 부탁하셨습니다. 행1:4~5절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십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요, 둘째는 주님께 들은 바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부탁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을 포함한 120여 명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시작이고,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는 모여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교회는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의 은총과 은혜를 기다리고, 주님의 위로와 축복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삶이고, 교회 공동체의 삶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과 권능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 모임 중에, 우리 심령 속에, 우리 가정과 우리 민족 가운데 임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 기다림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이 기다림에 대한 자세입니다. 특히 우리 신앙 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자세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자세
본문 14절,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바로 이 한 구절의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1. ‘더불어’- 함께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은 공동체적입니다. 이는 일찍이 주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마18:20下)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들 중에’라는 말씀은 개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그들 사이(among you), 곧 공동체 안에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공동체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포도나무와 가지, 몸의 지체, 목자와 양)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엘로힘)이 항상 복수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 신관 역시 공동체적인 신관(三位一體)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서 신자가 함께 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1:4)는 예수님의 부탁 역시 각각 흩어지지 말고 함께 하라는 말씀입니다. 함께 모여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중요한 자세는 함께 모여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기다린 그곳에 주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모여서 기다린 곳에 역사가 일어납니다(2:1, 2:44~47, 4:24,31, 10:).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말세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고, 자기 밖에 모릅니다. 그리고 거룩한 모임을 싫어합니다. 신자는 이런 세류에 편승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서로 권하여 열심히 모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력 넘치는 공동체의 모습이고, 성령을 기다리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2. ‘마음을 같이 하여’ - 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는 함께 함의 조건입니다. 한 마음이 되지 않고는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일시적으론 가능하겠지요. 그렇지만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면 반드시 분열하게 됩니다. 어떻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을 품고 나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라보는 비전이 같고, 추구하는 목적과 뜻이 같을 때 가능합니다. 군자유어의(君子兪於義) 소인유어이(小人兪於利)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인데, 군자는 '의를 따라 행동하고 소인은 이익을 따라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이익이 같으면 나뉘게(분열) 되고, 뜻이 같으면 합하게(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논어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소인은 동인불화(同而不和)라는 말이 나옵니다. 군자는 서로 다르면서도 화합하고, 소인은 서로 같으면서도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군자는 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서로 다르면서도 화합하지만 소인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면서 분열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120명의 신자들이 함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마음을 같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비전, 같은 목적, 같은 뜻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부탁에 따라 성령의 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는 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의 자세입니다.

3. ‘전혀’ -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전혀’라고 하는 부사는 ‘오로지’ 혹은 ‘간절히’라는 뜻입니다. 이는 어떤 것에 마음을 온전히 쏟아 부은 것을 의미합니다. 몰입하고 몰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무언가에 대한 목마름, 갈급함, 사모함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목마름, 갈급함, 사모함이 있어야 몰입하고 몰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서양격언처럼 무언가에 대한 필요를 느껴야 분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은 공부에 몰두합니다. 돈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사람은 돈을 모으는데 마음을 쏟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공적인 삶의 중요한 자산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성공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간절함이 삶의 열정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교사가 학생들에게, 목회자가 신자들에게, 즉 모든 리더가 따르는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할 일은 그들로 목마름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는데 자꾸 강요만 하니 효과도 없고,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부인이 알콜 중독인 남편을 데리고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남편은 부인에게 끌려 왔지만 자기는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때 의사가 이 부인에게 말합니다. “부인, 아직은 남편의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보니 중증인데, 본인에게 고쳐야겠다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낳고자 하는 의지, 고쳐야겠다는 간절함이 없으면 어떤 처방을 내려도 소용없습니다.”

본문에서는 성령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속에 드리는 기도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간절함은 성령을 기다리는 중요한 자세입니다. 성령에 대한 목마름, 성령에 대한 갈급함, 성령에 대한 사모함으로 성령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로 이 간절함이 120명의 신자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했고, 한 마음으로 오로지 기도에만 집중하게 했던 것입니다. ‘전혀’라고 하는 이 부사와 관련된 단어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수식해 주는데, 그리고 신앙인의 자세를 말하는데 꼭 필요한 단어들입니다.  예를 들면, ‘전혀 기도에 힘쓰다.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갈망함. 예배에 대한 목마름. 주님을 재림을 사모함 등.......’신앙인은 바로 이와 같은 자세를 견지해야 하고, 성령에 대한 기다림 또한 이와 같아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4. ‘기도에 힘쓰니라.’ -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는 기다림의 가장 아름답고, 적극적인 자세이면서 마음을 같이 하는 비결입니다. 원래 기도라는 게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 자기를 비우는 훈련입니다. 나아가서 주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는 것입니다. 분열의 원인은 자기 뜻을 주장하는데서 비롯됩니다. 반면에 화평의 원인은 자기 뜻을 포기하는데 있습니다. 바로 이 기도를 통하여 자기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모두가 이렇게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맞추고 보니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이런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기다림과 기도가 함께 나오는 곳이 많습니다. 이는 기다리는 것이 곧 기도하는 것이요, 기도하는 것이 곧 기다리는 것이란 뜻입니다.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기다림과 기도는 비례합니다. 기다림이 간절할수록 기도 또한 간절해집니다. 초대교회 120명의 신자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들은 일단 접어두고 오로지 기도에만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먹고 마시는 것까지 중단하고 기도에만 열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최소한 10일 동안 목숨을 걸고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성령에 대한 기다림이 너무 간절했기에 오로지 기도에만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졸지에 주님을 보내고 나니 그들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간절함이 그들로 기도에 집중하게 했고, 이 기도가 그들의 마음으로 하나로 모아 함께 기다리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린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들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렇다면 저들이 그토록 성령의 임하심을 간절히 기다린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께서 저들에게 성령의 임하심을 기다리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1:8). 신자는 세상에 거저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복음전파라고 하는 사명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존재들이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다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선 능력을 받아야 하고, 이 능력의 원천은 성령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증인의 삶을 위해서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하고, 성령의 권능을 받기 위해 성령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신 성령의 권능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과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복음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능력(순교의 능력)입니다. 이런 삶의 절대조건이 성령의 임하심입니다. 바로 이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감림주일입니다. 세상에서 신자가 신자답게 거룩한 삶,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그래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신자로 살 수 있는 비결은 성령의 능력에 있습니다. 이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임 중에, 우리 심령 속에, 우리 가정과 우리 민족 가운데 임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함께, 한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함으로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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