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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솔선하라(Pion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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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615회 작성일 10-02-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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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솔선하라(Pioneer).

삿1:1~10

2010. 2/7 08:00, 11:00

손님과 주인

오늘날 폭발적으로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이 공산화가 되자 사람들은 중국교회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모택동은 모든 선교사를 추방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교회의 지도자와 신자들을 잡아들여 숙청했다. 그래서 중국 땅에서 교회와 신자가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다. 그렇지만 교회는 각 가정이나 비밀장소에서 은밀하게 모였고, 엄청나게 부흥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모이다가 당국에 발각이 되면 지도자를 비롯한 핵심 인물들이 잡혀갔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신자들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잡혀가더라도 ‘내가 지도자가 될 거야’하는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를 잡아가면 다른 사람이 나서고, 그 사람을 잡아가면 또 다른 사람이 나섰다. 누가 잡혀가도 누구든지 그 자리를 대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순서를 정해놓고 ‘이 사람이 잡혀가면 저 사람, 저 사람이 잡혀가면 누구.......’ 이런 식으로 모든 신자가 주인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모진 핍박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중국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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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든 교회든 회사든 어디든지 강한 주인의식으로 무장된 곳은 망할 수가 없다. 관객은 일이 끝나면 외투와 가방을 챙기고, 주인은 일이 끝나면 빗자루와 걸레를 챙긴다는 말이 있다. 관객은 정시에 와서 일이 끝나면 외투와 가방을 챙겨서 가지만 주인은 1~2시간 전에, 혹은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빗자루와 걸레를 들게 된다. 손님과 주인은 기본적으로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 손님은 머물다 가는 입장이지만 주인은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손님은 오늘을 기억하지만 주인은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손님은 더 나은 서비스를 요구하지만 주인은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손님은 마지못해 일을 하지만 주인은 기쁨으로 일을 한다. 주님은 우리가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주인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몸된 교회의 주역이 되고, 민족과 역사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하신다.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예배에 있어서도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시간 신자의 ‘삶 시리즈’ 열여섯 번째로 서로 솔선함’(Pioneer)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여호수아의 죽음

본문은 지도자 여호수아의 죽음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1). 이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으로 가나안 정복시대가 끝나고 가나안 정착시대의 도래를 뜻한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정신적 지주이자 역사의 주역이 사라진 것, 그래서 지도력의 공백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에게 여호수아의 존재는 대단한 의미가 있다. 그는 출애굽의 영웅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점령했던 용장이었고,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도 백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제까지 그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가 죽은 것이다. 아직도 주변에 싸워야 할 적이 많은데, 그가 죽은 것이다. 당장에 아도니 베섹이라고 하는 강적(7)과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죽은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두려웠겠는가?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옛 사람을 데려가신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 사람이 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막2:22). 이는 모세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세가 죽자 이스라엘은 두려워했다(수1:1).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세워서 그 일을 잘 감당하게 하셨다. 그러니 과거의 지도자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이제는 우리가 주역이다.’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앉아서 탄식하는 것보다 일어나 앞장서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결과를 보장할 것이니 ‘유다가 앞장서라’고 말씀하셨다(2). 과거의 지도자에게 연연하지 말고 네가 지도자가 되라는 것이다.

 

당신이 주역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당신이 주역이다’는 말에 ‘내가 어떻게’라고 반응한다. 맞는 말이다. 어떻게 나같이 부족하고, 어리석고, 무능하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앞장을 설 수 있겠는가? 하지만 유다지파를 알면 우리의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유다는 도덕성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진 지파였다(창38: ①유다 자신은 가나안 여인과 결혼, ②자식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저주를 받음, ③며느리와 불륜, 그 자식이 대를 이음). 그렇지만 유다는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뛰어났다(창43:9, 창44:31~34). 특히 가나안 정복시대에 땅을 나눌 때, 지파마다 더 유리한 곳에 한 뼘이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유다지파는 평지보다는 산지를 원했고, 아직 개척되지 않는 곳을 요구했다(수14:6~15). 이렇게 유다는 희생적이고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지파였다. 하나님은 유다의 이런 저돌성, 적극성을 사랑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광야에서 행진을 할 때 유다지파를 전체의 선봉에 세웠고(민10:14), 본문에서도 유다가 선봉에 설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모두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베드로는 더욱 그랬다. 그는 생각이 깊지 못한데다 성격도 급했다. 그래서 실수가 많았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다. 그것은 실수를 할지언정 무슨 일에든지 적극적으로 희생을 감수하며 앞장서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주님은 베드로의 이런 장점을 사용하신 것이다. 주님은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시고,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희생을 감수하며 나선 사람을 사용하신다. 사실 주님이 우리를 사용하는데 우리의 약점이 걸림돌이 될 수가 없다. 주님은 약점도 장점으로 바꾸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앞장서고자 하는 태도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다. 작은 능력으로 큰 역사를 이루는 비결이다. 무슨 일에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앞장설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축복하신다.

손님은 쉽고 편하다. 그저 따라만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쉽고 편한 대신 손님에겐 장차 거둘 것이 없다. 그러나 주인은 힘들다. 모든 일에 솔선해서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희생이 따르고 헌신이 요구된다. 그 대신 풍성한 수확이 보장되어 있다. 유다지파가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유다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출발한 지파였다. 하지만 무슨 일에든지 희생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솔선했더니 결국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가 되었다. 유다지파에서 다윗이 나왔고, 다윗의 자손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 곧 예수님이 탄생하시게 되었다. 지금은 유다가 단순한 일개 지파의 이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본문내용은 생략). 이런 복이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희생을 감수하며 앞장선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복이다. 주님은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시다(갈6:7). 본문에서도 베섹 왕 아도니 베섹의 입을 통해서 이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6,7).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서, 주님께서 구원하신 지체들을 위해서 흘린 땀과 희생,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주님은 그것의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값아 주신다.

 

교회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한 교회의 건강도를 체크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예배드리러 오는 신자의 모습,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건강한 교회는 예배시작 전에 이미 주자창이 차버리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는 예배가 시작된 후에도 주차장이 비어 있다. 건강한 교회는 예배당에 들어와서 들어오는 순서대로 앞자리부터 앉지만 안되는 교회는 들어오는 순서대로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그런데 묘한 것은 뒷자리에 와 앉는 수만큼만 교인이 찬다는 것이다. 앞자리는 텅텅 비어도 뒷자리가 차면 교회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자라면 교회의 부흥을 열망할 것이고, 어떻게든 교회부흥에 기여하고 싶을 것이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솔선해서 일찍 교회에 나오고, 솔선해서 앞자리부터 앉는 것이다. 우습게 보여도 일찍 나오는 것, 그래서 앞자리에 앉는 것이 부흥의 선봉이다. 이런 사소한 일부터 솔선해서 선봉에 서는 사람이라야 무슨 일에든지 솔선할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이런 사람이 주님의 복을 부르는 축복의 레인 메이커(rain-maker)가 되는 것이다.

 

길을 닦는 교회

앞장선다는 것, 곧 솔선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자발적인’ 태도다. 주님을 섬기는 중요한 태도가 즐거운 마음인데(출25:2, 고후9:7), 이 즐거운 마음은 자발성에서 비롯된다. 스스로 자원하는 일이라야 즐겁고 기쁘게 감당할 수가 있다. 다른 하나는 ‘헌신적인’ 태도다. 아직 아무도 해보지 않는 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먼저 도전하는 것은 많은 위험부담과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런 것을 모두 감수해야 하기에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실 오늘의 평안하고 안정된 삶은 우리보다 앞서간 이들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한 헌신과 희생의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다음 세대가 또한 든든하게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선하는 태도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고, 나아가서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서게 되는 것이다.

 

힘들다,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저하는 일에 가장 먼저 나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좋은 교회는 길을 닦는 교회다.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길, 일꾼을 양성하는 교육의 길, 세계선교의 길, 축복의 길, 은혜의 길을 닦는 교회가 건강하고 좋은 교회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길을 닦기 위해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앞장서야 길이 닦이는 것이다. 기러기들이 이동할 때 맨 앞을 나는 기러기가 바람은 맞지만 전체 떼의 방향을 좌우한다. 우리도 솔선하여 교회와 속한 공동체의 앞날을 이끌어갈 수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주님, 솔선하여 앞장서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하는 이 소원을 붙들고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원한다.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주님은 기억하시고 갚아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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