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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귀하게 여기라(Re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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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291회 작성일 10-02-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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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귀하게 여기라(Respect).

살전5:12~13

2010. 2. 21 08:00/11:00

존중하면 미인을 얻는다.

미국 테네시대학 맥널티(J. McNulty)교수팀이 〈가족 심리학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예쁜 아내가 남편에게 더 존중받는다고 한다. 연구팀은 20대 부부 82쌍을 ①아내가 남편보다 외모가 예쁜 그룹, ②서로 비슷한 그룹, ③남편이 아내보다 나은 그룹으로 나누어 아내가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남편들이 보인 반응을 조사했다. 아내가 남편보다 나은 그룹의 남편들은 ‘좋아, 내가 도와줄께. 내가 뭘 하면 될까?’라고 반응했고, 남편이 아내보다 나은 그룹의 남편들은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라고 반응했다. 연구팀은 아내보다 못한 그룹의 남편들은 자기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한 것이고, 아내보다 나은 그룹의 남편들은 얼마든지 더 나은 배우자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책임감이 덜 할 수 있다고 결론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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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결론을 존중하지만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관계가, 특히 부부관계가 이렇게 타산에 의해 유지된다면 불행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제 생각엔 자신보다 나은 배우자를 얻었기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람이었기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존중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관계에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점이다. 존중하면 존중을 받는다(백정출신 정육점 주인 박상길). 장사도 손님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이 시간은 신자의 ‘삶 시리즈’ 열여덟 번째, 서로 귀하게 여김’(Respect)에 대하여 은혜를 받고자 한다.

 

따뜻한 난로와 같은 사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너무도 존귀한 존재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을 권리, 소중한 존재로 대우받을 천부적인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의 문제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서 생긴다. 부모를 존경하면 노인문제 발생하지 않는다. 아내를 소중히 여기면 상처받지 않고 병들지 않는다. 자녀를 귀하게 여기면 빗나가지 않는다. 이웃을 귀하게 여기면 살인이나 강도, 성범죄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직원들을 귀하게 여기면 사기가 올라가 매출이 올라간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도 귀하게 여기면 태도가 달라진다. 사람은 인정받길 원하고, 존중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만남을 그리워하고, 그런 사람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저는 언제부턴가 ‘따뜻한 난로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날씨가 추우면 사람들이 불 가까이로 모이듯 인생살이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 온 갖 세파에 시달린 사람들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 그 어깨에 기대고 싶은 사람, 그래서 사랑을 받고,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고,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빅토리아 여왕시대 때, 네 번 수상을 역임한 디즈레일리(B. Disraeli)와 두 번 수상을 역임한 글래드스턴(W.E. Gladstone)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서로 번갈아가며 수상 직을 맡아 대영제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는데, 한 귀부인이 이 둘을 모두 만난 후 이렇게 평가했다. 글래드스턴에게선 ‘그가 정말 똑똑한 사람이구나!’라는 인상을 받았고, 디즈레일리에게선 ‘내가 정말 소중한 존재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 재상 중에 유성룡과 이원익을 비교해 놓은 것을 보았다.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없는 사람’(欲欺而不可欺)이고, 이원익은 ‘속일 수 있으나 차마 속일 수없는 사람’(可欺而不忍欺)이라고 하였다. 유성룡은 글래드스턴 같이 탁월한 지혜의 사람이었고, 이원익은 디즈레일리 같이 탁월한 덕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도 좋지만 덕이 있는 사람이 더 좋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德不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반드시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必有隣). 덕이 있는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뜻이다. 그 사람 곁에 있으면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뜻한 난로와 같은 사람이 이런 사람이다. 교회도 신자도 이와 같아야 한다. 왠지 그 교회를 가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따뜻해지고, 뜨거운 감동이 있고, 그 교회 신자를 만나면 즐겁고 기쁘고 나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찾아가고 싶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서로를 존중히 여길 때 가능하다.

 

서로 귀하게 여긴다는 것.

본문은 교회생활(12~15)에 대한 권면의 일부로, 특히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일꾼들을 대하는 자세와 관련된 말씀이다. 그것은 섬기는 이들을 가장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이를 일반화시키면 서로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다(본 설교는 이를 일반화시킨 것임). 모든 신자는 섬기는 사람들로서 서로를 귀하게 여길 이유가 된다. 이렇게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이어지는 신자 상호간에 요구되는 덕목들을 실천할 수가 있다(13~15). 그렇다면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삶이란 무엇인가?

 

알아주는 것이다(12).

주급 1달러 50센트의 직공에서 미국의 강철 왕까지 오른 앤드류 카네기(A. Carnegie)는 철강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그의 성공비결은 전문지식을 가진 수백 명의 직원이 자기 일처럼 헌신했다는데 있다. 바꿔 말하면 그는 사람 쓰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능을 그는 열 살 때 터득했다. 그가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하게 지냈던 어린 시절 집에서 토끼를 길렀다. 토끼는 새끼를 많이 낳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토끼장이 차버렸다. 그리고 가축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스코틀랜드의 풍습이었다. 카네기는 늘어나는 토끼가족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도 벅찼다. 그래서 한 마을에서 같이 노는 친구들 이름을 부쳐나갔다. 메리, 죠지, 잭, 앤 등. 그래서 토끼장이 마치 동네 아이들을 한데 모아둔 기숙사 같았다. 그 많은 토끼들에게 먹이를 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먹이를 넣어준 적이 없는 토끼장에 먹이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숨어서 누가 먹이를 넣어주나 지켜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친구들이 풀을 뜯어다 몰래 제 이름과 같은 토끼장에 넣어주고 가는 것이었다. 여기서 카네기는 사업(인생)의 중요한 원리를 깨달았다. 그것은 이름을 알아주면 희생을 무릅쓰고 남의 일도 자기 일처럼 한다는 사실이다.

 

후에 철강업을 시작했을 때, 가장 큰 고객은 철도사업의 선구자 펜실바니아 철도회사였다. 많은 레일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피츠버그에 제철소를 신축하고 그 이름을 에드거 톰슨(E. Thomson)제철소로 등록을 했다. 에드거 톰슨은 바로 펜실바니아 철도회사의 주인이자 사장 이름이었다. 이 철도회사가 필요로 한 많은 레일을 바로 자신의 이름이 붙은 제철소에서 사들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카네기는 관련업체 관계자 이름을 존중했을 뿐 아니라 종업원 이름을 외우는데 천재였고, 그가 기업의 진두에 있을 때 파업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름을 알아주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욕구(W. James)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수고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줄 때 자신을 가치있고 의미있는 존재로 느끼게 되고, 또한 존중받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때문에 나를 알아준 그 사람을 위해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병사들은 나라가 아니라 자기를 알아주는 소대장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바울의 사역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도 동역자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바울 서신들, 특히 로마서 16장과 고린도 전서 16장을 보면, 여러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모두가 바울의 사역과 관계가 깊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바울이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수고를 기억하고 있고, 교회도 이들의 수고를 기억하며 인정해 달라는 당부다. 생각해 보자. 편지에 언급된 당사자나 이 편지를 읽은 독자가 이와 같은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바울은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고 가치를 인정해 주고,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많은 협력을 이끌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존중이란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주고, 존재를 알아주고, 수고를 알아주고, 아픔을 알아주는 것이 존중해 주는 것이다. 명절에 시댁에서 스트레스 몽땅 받고 온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성적이 떨어진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나, 당신 맘 알아.’ ‘나, 네 맘 안다.’는 말이라고 한다. 본문도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섬기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방법이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방법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모든 신자는 한 몸의 지체와 같다고 하였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6~27). 교회는 유기적 공동체이고, 신자는 서로 고락을 함께 해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동시에 서로를 귀하게 여기야 할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다른 지체를 무시한 것은 몸을 무시한 것이고, 다른 지체를 욕되게 하는 것은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을 무시하고 욕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지체를 즐겁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몸을 즐겁게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자신을 즐겁게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자신 역시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다. 서로를 알아주고 인정해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되자. 우리 기뻐하는교회를 이런 교회가 되도록 만들자. 그래서 서로를 대접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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