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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웃어라(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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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508회 작성일 10-03-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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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웃어라(Smile).

창21:1~12

2010. 3/7 08:00, 11:00

웃음 내시

왕정시대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위와 힘을 가진 유일한 자유인이 왕이지만 왕처럼 부자유스럽고 고독하고 힘든 자리도 없었다. 온갖 호사를 누렸던 왕들의 수명이 길지 못했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은 44세, 이에 비하여 열악한 환경에 있던 평민들의 수명은 40세, 청백리로 불리는 관료들의 수명은 68세였다고 함). 그래서 조선시대에 왕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특별한 직책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웃음 내시’다. 이들의 역할은 왕에게 우스운 이야기를 해주거나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어 스트레스와 근심을 날려버리도록 돕는 일이었다. 소위 왕을 위한 전속 개그맨(gagman)인 셈이다. 제한된 공간인 궁궐에서 지내면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하는 왕에게 웃음 내시를 통한 웃음은 최고의 운동법이자 하나의 생존전략이었던 것 같다. 그 웃음 내시가 변천해서 오늘날 개그맨이란 말로 바뀌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이와 같이 왕조차도 웃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이야기는 웃음이 우리의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웃음의 효과

웃음의 육체적 정신적 효과는 이제 거의 상식이 되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15초 동안 웃는 것을 운동과 비교하면 5분 동안 에어로빅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고, 쾌활하게 웃을 때 우리 몸에 있는 650개 근육 중에서 231개가 움직인다고 한다. 웃음은 아무리 주어도 줄어들지 않고, 받는 쪽도 즐거워하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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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발행되는 〈토요리뷰〉의 편집장 노만 카슨(N. Cousins)이 난치병에 걸렸다. 모든 관절이 약해져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무서운 병(류마티스 관절염 일종의 강직성 척추염)이었는데, 완치율은 0.2%였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몬트리올대학 한스 셀리(H. Selye)교수가 지은 「삶의 스트레스」라는 책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는 말씀에 근거한 ‘부정적인 정서는 신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나 긍정적인 생각은 살균작용을 한다.’는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날부터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만한 책과 TV프로는 전혀 보지 않았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것들만 읽고 보았다. 그리고 누구도 자신에게 부정적이거나 비극적인 말을 하지 않도록 당부하였다. 그의 병실에는 늘 즐거운 음악이 흘렀고, 희망적인 책들이 가득 쌓였다. 날마다 재미있고 웃긴 영화를 보고, 재미있는 농담이나 몸짓으로 웃으려고 노력했다. 어느 순간 그는 웃음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10분 정도 웃고 나면 고통을 잊은 채 2시간 이상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는 웃음을 통해 이 난치병을 극복하고 1년 후에 퇴원하였다. 그는 이 사실이 너무 신기해서 하버드 대학을 찾아가 웃음으로 병을 이겨낸 자신을 연구해볼 것을 제안했고, 연구결과 크게 한 번 웃을 때 막혔던 혈관이 뚫린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혈액 순환이 잘되면 건강해지기 때문에 모든 병에서 나을 확률이 커지는 것이다. 웃음치료가 의학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 자신도 의대에 가서 공부하며 웃음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의대교수가 되었다. 75세까지 대학에서 강의하며 웃음치료를 위해 일생을 바친 그는 ‘웃음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 몸에는 완전한 약국이 있습니다. 바로 웃음입니다. 혼자 웃는 것보다 여럿이 웃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단, 비웃음은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이 웃음은 경영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펀 경영’(Fun management)이라는 새로운 경영전략이 유행하고 있다. 동기부여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B. Tracy)는 성공의 85%는 인간관계에 달렸고, 훌륭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핵심은 바로 ‘웃음’이라고 했다. 심리학자 로버트 프로빈(Robert R. Provine)은 웃음이 많은 그룹이 웃지 않는 그룹에 비해 평균 40%에서 300%까지 생산성이 증대되었다고 했다. 웃음이 업무에 대한 적응력과 실적에서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세일즈의 신화 조 지라드(J. Girad; 기네스북에 오른 12년 연속 자동차 판매 왕)는 ‘웃음의 위력을 알지 못하는 세일즈맨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사람에게 얼굴이 있는 것은 ‘먹기 위해서나 세수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면도하기 위해서도 아닌 오직 웃기 위해서’라고 말한 탁월한 웃음예찬론자다. 아무튼 웃음은 개인 생활은 물론 인간관계, 그리고 일에까지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래서 이 시간은 신자의 ‘삶 시리즈’ 열아홉 번째, 서로 웃어줌’(Smile)에 대하여 은혜를 받고자 한다.

 

웃게 하시는 하나님

성경은 ‘자녀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애3:33)고 말씀하고 있다. 대신 하나님은 자녀로 웃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본문이다. 하나님은 백 살 된 할아버지와 아흔 살 된 할머니가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케 하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 주인공이다. 이는 생각할수록 사람들로 하여금 웃게 하는 사건이다. 사라는 늙은 자신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이가 없고 믿기지 않아 웃었다(창18:13).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다(창17:17). 늙은 사라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젖을 먹이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워서 보는 사람마다 웃었고, 이삭이 탄생하자 그토록 소원이던 아들(25년을 기다려 얻은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들 부부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기쁘고 즐거워서 웃었다(6). 이삭의 탄생은 아브라함의 가정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는 위대한 사건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 우리 인생에 웃음을 주시는 분이시다. 7절에서 사라는 말했다. “사라가 자식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무슨 뜻인가? 백 살 된 할아버지, 아흔 살 된 할머니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면 세상에 소가 다 웃을 일이라는 것, 그런데 그런 일이 자신에게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바로 이와 같이 소가 웃고, 하늘이 웃고, 땅이 웃을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저는 우리 민족을 생각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6.25전쟁으로 잿더미였다. 최근에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아이티, 세계 최빈국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에게도 원조를 받았던 나라였다. 이런 나라가 올림픽을 치루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선교사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하고, 경제규모는 세계 12위가 되었다. 아마 50년 전에 누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웃긴 웃되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케 되었을까? 여건이 좋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가 좋고, 성품이 좋아서?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6).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사는 백성들이 기특해서, 그 순수함과 진심이 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로 웃게 하신 것이다. 몇 년 전에 시내 큰 교회를 다니던 한 자매가 우리 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교회가 너무 작아서’, 그래서 ‘이상하고 우스워서’ 웃기만 하다 갔다. 그 자매를 데리고 왔던 자매가 이것을 보고 몹시 속상해했다. 지금도 외모만 보는 사람들은 우리의 작고 초라한 모습을 보고 웃겠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변화에 놀라서 웃을 날이 있을 것이다. 어이가 없고 못마땅해서 비웃던 사람들이 신기하고 놀라서, 기쁘고 즐거워서 웃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저는 이 날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우리도 우리의 변화를 보고 웃고, 주변도 웃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교회 가운데, 우리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삶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소원한다.

 

웃음을 주는 사람, 이삭

세상일에는 항상 명암(明暗)이 있다. 웃음도 마찬가지다. 웃음의 효과가 증명이 되고, 이것이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활동에 응용이 되면서 그 부작용이 없지 않다. 이것은 인간의 감정이 상업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소위 ‘감정 노동자’들이 그 피해자다. 감정노동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규제하는 행위로, 고객을 중시하는 직종(판매나 서비스업)에 근무하는 사람은 개인의 감정보다 고객의 감정을 존중한다고 해서 ‘감정 노동자’라고 부른다. 고객만족이 기업생존의 화두가 되면서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늘 미소와 친절로 일관하다보니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이다. 심해지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개그맨이 정작 자기 가정에서는 잘 웃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신도 기쁘게 웃으면서 다른 사람도 웃게 할 수 있을까? 본문이 그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이삭’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이 ‘웃음’이다. 웃음을 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삭의 탄생은 그 부모와 가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웃음을 주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으로 인하여 웃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이는 이삭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웃게 되고,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얼마 못 가서 근심이 생겼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낳은 자녀 이스마엘 때문이다.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괴롭혔다(9). 이를 본 순간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음을 잃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스마엘을 추방하는 것이다(11,12). 이것이 행복한 웃음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 이스마엘은 나의 옛 사람, 옛 생활, 옛 습관의 상징이다. 신자는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늘 밝게 웃을 수 있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은 이스마엘 때문이다. 이스마엘이 이삭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여 기쁨을 빼앗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스마엘을 추방하고 이삭에게 집중하는 것이 참된 기쁨, 영원한 웃음을 회복하는 비결이고 유지하는 비결이다. 더불어 주변을 환하게 웃게 하는 비결이다.

 

세상을 웃게 하라.

한 가난한 장로님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수저로 국그릇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부인이 깜짝 놀라며 다 큰 아이들 앞에서 이게 무슨 망측한 일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장로님이 웃으며 답했다. ‘분명히 고깃국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배추 잎과 양파만 가득해서 국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고기를 찾아보려고!’ 그래서 가족이 모두 한 바탕 웃으며 저녁을 마치게 되었다. 가난은 분명히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기쁨과 웃음을 잃지 않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그 가정과 공동체는 달라진다. 그 어려움을 잊게 되고, 나아가서 그것을 극복하게 된다. 신자는 웃음을 주는 사람, 세상을 웃게 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에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타인에게로 확장되는 것이다. 웃음은 전염이 되기 때문이다. 기쁨이 가득한 웃음과 미소, 건강하고 밝은 표정과 말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과 주변을 풍요롭게 한다. 신자는 세상에 웃음을 주는 또 하나의 이삭이다.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웃게 하는 삶 되기를 소원한다.

 

쥐 한 마리가 고양이에게 쫓기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되었다. 막다른 곳에서 쥐가 생각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에라 모르겠다. 고양이 흉내나 한번 내보자.’ 그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야~옹’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쫓아가던 고양이가 그만 껄껄 웃고 말았다. 그리고 이 정도로 재치 있는 쥐라면 살려 둘 만도 하다 싶은 생각이 들어 그냥 살려주기로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쥐는 집에 들어서면서 한숨을 푹 내 쉬고는 가족을 불러 모았다. 가족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어미 쥐는 오늘 있었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다음 이렇게 충고했다.

 

‘애들아, 아무리 못해도 외국어 한 마디 쯤은 할 줄 알아야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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