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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0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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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940회 작성일 06-06-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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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민14:1~10

옛날, 포르투칼의 항구도시 리스본 해안 끝에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There is nothing behind" ‘이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는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둥근 게 아니라 평평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다 너머는 낭떠러지라고 여겼고, 사람들은 바다 밖으로 나가질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492년 콜롬부스가 배에 오르면서, “이 바위에 새겨진 글은 사실이 아니다. 여기는 끝이 아니다. 이 너머에는 위대한 희망의 새 세계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은 오랜 환상을 깨고 바다로 바다로 나갔습니다. 사실 그들로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은 그 바위의 글이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공포였습니다. 실제는 허상임에도 두려움 때문에 전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감정을 패배주의라 부르고, 그 반대가 자신감입니다. 사무엘 존슨은 “큰일을 해나가는 첫 번째 조건은 자신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자신감으로 합니다. 자신감이 있을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장애를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서양의 전래 동화에 나온 단골 메뉴가 요정이라면, 우리나라 전래 동화에 나온 단골 메뉴는 도깨비라고 생각합니다. 전 어려서 도깨비 이야기를 참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처럼 이 도깨비들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존재만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도깨비 이야기들을 보면 친근하고 앙증맞은 장난꾸러기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도깨비는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였고, 오늘날처럼 단지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범주 속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도깨비를 보았다거나 만났다는 이야기가 흔했고, 또한 도깨비에게 봉변당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 때 저의 아버지가 도깨비를 만났을 때, 그 대처방법을 제게 가르쳐 준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도깨비를 만나거든 절대로 도깨비를 올려보지 말고, 밑으로 내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도깨비는 올려보면 한없이 커져서 나중엔 하늘에까지 그 키가 닿아서 사람이 기가 눌려버린다고 합니다. 반면에 밑으로 내려다보면 점점 그 키가 작아져서 땅속으로 사라져버린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대항하면 도깨비가 꼼짝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가 인생에 대한 큰 통찰력을 줍니다. 사실 인생은 도깨비와 씨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인생은 명예라는 도깨비, 물질이라는 도깨비, 허영이라고 하는 도깨비, 성공이라고 하는 도깨비, 수많은 도깨비들과의 씨름입니다. 그리고 싸움에서 피투성이가 된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실상이 아니라 허상입니다. 우리는 이 허상을 붙들고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허상에 매이지 않는 비결은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면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감의 종류
1. 심리적 자신감입니다.
자기 암시를 통해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한다!’는 자기 암시를 통해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1960년대 미국은 에베레스트 산 정복에 거듭 실패했습니다. 그때 5명의 젊은이들이 도전했는데, 기자가 그들과 인터뷰하면서 “이 산을 정복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각각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첫 번째),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두 번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세 번째), 한번 해보겠습니다(네 번째), 할 수 있습니다(다섯 번째).” 1963년 5월 1일, 마침내 네 명이 죽고 한 청년이 8,880m의 정상에 성조기를 꽂았습니다. 그가 바로 '할 수 있다‘고 한 짐 위트카였습니다. 그는 내려와 이렇게 외쳤습니다. “I can do. You can do. Everybody can do."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심리적으로 힘이 집중되어 생각 밖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이 분산되어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심리적 자신감이라 합니다. 이 심리적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칭찬과 격려입니다. 칭찬과 격려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하고, 여기에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2. 합리적(계산적) 자신감입니다.
따져보고 가능성이 있으면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미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은 자마이카 출신의 이민자 아들로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역사상 흑인 최초의 합참의장이 된 인물로 걸프만 전쟁 영웅이요, 그 여세로 미 국무장관까지 되었습니다. 그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자신감을 피력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게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 P=40~70이다. 어느 것이든 확률이 40~70%에 들면 직감적으로 추진한다. 40% 미만이면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100% 확실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그때는 너무 늦기에 때문이다.” 40~70%의 가능성이 있으면 추진하는 자신감, 바로 계산적(합리적) 자신감입니다. 이 합리적 자신감은 풍부한 경험, 폭넓은 지식, 숙련된 기술, 재력 등에서 나옵니다.

3. 신앙적 자신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기에 갖는 자신감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신앙적 자신감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여리고 맞은 편 가데스 바네아 도착한 이스라엘은 지파에서 한 명씩 대표를 뽑아 12명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도록 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가나안 땅에 대하여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감에 찬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당장 건너가서 거민을 쫓아내고 그 땅을 취하자고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감이 펄펄 넘치는 모습입니다. 이 자신감은 심리나 계산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심리나 합리적인 자신감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도 가능한 자신감이다. 그러나 신앙적 자신감은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입니다. 그래서 신앙인 입장에서 신앙적 자신감을 ‘건강한 자신감’이라 표현합니다.

인생을 사는데 심리적 자신감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계산적 자신감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앙인들이 가져야 되는 것은 신앙적 자신감입니다. 신앙을 떠난 자신감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고무풍선에 바람을 넣는 것과 같습니다. 풍선이 한계에 도달하면 바람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립니다. 심리적, 합리적 자신감은 자칫 자만으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세상은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한 사람들로 인하여 어렵고, 고통을 당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나의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고 한 나폴레옹은 심리적, 합리적 자신감의 화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러시아 원정을 계획하고 있을 때의 일화입니다. 그의 측근 중 한 사람이 러시아 원정을 간곡히 만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고 오히려 ‘계획도 내가 세우고, 성취도 내가 한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이 때 그 측근이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일을 성취하시는 이는 하나님입니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나폴레옹은 이 원정에서 참패하여 황위에서 폐위되어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의 무모한 자심감이 그를 패망으로 이끈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신앙적 자신감입니다. 이 자신은 클수록 좋고, 클수록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적 자심감은 신앙과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적 자신감을 갖는 법
1.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7)
신앙적 자신감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 곧 목표의식에서 나옵니다. 목표없이 자신감 없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와 갈렙이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다른 10명과 다른 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이란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민족에게 주신 땅이요, 가나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10명의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이 비전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과 동시에 애굽도 생각했습니다(2,3). 가나안이 아니면 애굽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여의치 않으면 애굽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이런 저들에게 신앙적 자신감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가나안 거민을 보고, 저들의 성을 보고 영적 메뚜기 의식, 즉 패배의식을 떨어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가능성을 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 안에서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반면 10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저들의 입에서 나온 말에서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통하여 세상을 보고, 환경을 보고, 사건을 보고, 가나안을 보았습니다(8~9). 그런데 너머지 10명은 환경만 보고 문제만 보았습니다. 문제만 보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자,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적 자신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이 확신,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확신과 믿음이 영적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이 확신과 믿음으로 세상을 보고, 환경을 보고, 사건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적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나, 약하지만 강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적, 강하지만 약합니다.

3.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클수록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그 차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학자 틸리케는 말합니다. “겨자씨에서 새소리를 듣는 것이 믿음이다”(히11;1). 믿음이 없는 자는 ‘메뚜기 의식’(33절)에 빠지나, 믿음이 있는 자는 ‘밥 의식’(9)을 갖습니다. 동일한 사건 상황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해석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에서 옵니다. 그리고 생각의 차이는 신앙의 차이입니다. 또한 이 신앙의 근거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 안에서 신앙적 자신감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는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데 있습니다. 내가 그 땅을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한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질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지고 보여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본능에 끌리어 사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행동 없이 생각만 하는 사람입니다. 생각은 많은데 행동의지가 없습니다. 셋째는 생각 있는 행동의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겐 알고 있는 지식과 생각이 행동의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움직이게 되지요. 말로 고백하고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전화를 하고, 만나고, 데려다 주고,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은 함께 슬퍼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집니다. 살아있는 참 믿음은 행동하게 합니다.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야 믿음의 증거가 따릅니다. 그 증거를 보고 사람들이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자기 자신 역시 그 증거를 보고 믿음의 확신, 신앙적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훌륭한 신앙들의 공통점, 신앙적 자신감이 강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바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는 이야기지만 그들이 만일 믿음으로 부딪쳤더라면 가나안 거민을 쫓아내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믿음의 행동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신앙적 자신감 대신 영적 메뚜기 의식,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광야에서 40년을 허송세월하다 약속의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라. 그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경험하고 내게 날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고, 신앙적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데이빗 시몬즈는 말했습니다. “사탄이 인간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좋은 무기는 열등감이다. 그는 그것으로 사람의 잠재력을 마비시키고, 대인 관계를 마비시키며, 하나님의 비전을 방해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건강한 자신감을 갖고 인생을 승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선 신앙적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이 신앙적 자신감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비전, 곧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하나님 안에서 보며,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는 대로 실천할 때 생기게 됩니다. 신앙적 자신감이 충일하여 주님이 쓰시기에 합한, 그리고 주님께 쓰임받는 축복된 삶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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