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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손Ⅳ, “제자들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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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860회 작성일 10-08-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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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손Ⅳ, “제자들의 손”

요6:1~15

2010 8/22 11:00(신앙수련회 파송설교)

두 손 없는 동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의 한 마을에 진입한 미군이 황폐해진 그곳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식량이나 돈, 농기구나 씨앗이 아닌 동상을 복원해 달라고 했다. 오랜 세월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광장에 세워진 아름다운 동상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런데 그 동상이 전쟁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미군은 마을 사람들을 도와 어렵게 동상을 복원했으나 두 손은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조각가를 고용해서 새로운 손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전쟁의 비극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군인들은 완전히 복원되지 못한 동상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개막식을 갖기 위해 동상을 천으로 가려놓았다. 이윽고 마을 대표가 줄을 잡아당기자 천이 아래도 흘러내리면서 그 모습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손이 없는 예수님 상(像)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동상 발치에 군인들이 써놓은 글씨에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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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손이 없다. 그대의 손을 빌려주지 않겠는가?’

 

신자의 존재와 사명을 생각하게 하는 정말 가슴 뭉클하고 충격적인 말이다. 신자는 주님의 거룩한 몸의 지체인 손이고, 신자의 사명은 주님의 손이 되는 것이다. 손은 권능(능력)의 상징이고, 행위의 주체이다. 주님은 그 손으로 수많은 능력을 행하셨고, 아름다운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우리에게 바로 그 손이 되라는 것이다. 주님의 손으로서 그 능력을 드러내고, 주님의 손으로서 그 삶의 자취를 따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우리처럼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부르신 것이다. 주님의 손이 되라고, 그 손의 사명을 다하라고 말이다. 본문에 주님의 손이 되어 섬기는 제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제자들의 아름다운 손 이야기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오병이어의 특징

오병이어 기적은 다른 기적들과 그 내용이 조금 다르다. 이제까지 주님의 기적은 주님께서 홀로 행하셨다. 그래서 ‘주님이 누구신가? 왜 오셨는가? 무엇을 하시는가?’에 그 초점이 있었다. 즉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통해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복과 생명을 주실 구원자심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는 이러한 주님보다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더 초점이 있다. 예를 들면, 제자들이 날이 저물었으니 사람들을 돌려보내 요기를 하게 하자고 했을 때 이제까지 식으로 하면 주님은 기적을 베푸셨을 텐데, 이번에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님의 이 말씀에 제자들이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라고 했고,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그것을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나눠주어 다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차도록 남은 것을 거두었다(이상은 같은 내용의 마태복음에서). 이와 같이 오병이어 사건은 주님이 홀로 기적을 이루시지 않고, 그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 속에 제자들이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여태까지의 기적들과 초점과 내용이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이 오병이어 기적은 제자들(구원받은 주님의 자녀들)이 이제 그 존재와 가치와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어떻게 주님의 뒤를 잇는 복된 신분과 지위와 특권과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시사하는 소중한 내용이다. 그 비결은

 

1. 나누어 주는 손

주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시고는 제자들에게 나눠주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고 무리에게 나누라고 하셨다. 이것이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요구이다. ‘나누어 주는 손’이 되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축복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고, 생명을 나누는 손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주님의 뒤를 잇는 복된 신분과 지위와 특권과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이다.

 

오병이어 기적은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 갑자기 하늘에서 떡과 고기가 비처럼 내리거나 바위처럼 커진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고,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나누어주는 동안 끊임없이 ‘나누어지는’ 기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도록 계속해서 나누어진 기적이다(왕하4:1~7). 이 기적은 주님의 손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제자들의 손에서도 계속되었다. 결국 한 아이의 한 끼 식사가 장정만 오천 명이 먹고 남는 풍성한 식탁이 되었다. 여기서 나눔의 특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나눔은 기적의 통로라는 사실이다. 나눔을 통해 기적이 일어났고, 나눔을 통해 그 기적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나눔을 통해 기적을 경험하고, 나눔을 통해 기적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나눔은 나눌수록 풍성해진다는 사실이다. 한 아이에게서 시작된 작은 나눔이 주님과 제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모두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비롯해서 주변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나눔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것은 그 손을 접고 있기 때문이다. 사단의 궤계로 손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거나 썩는다. 그 기능이 사라진다. 진화론에 의하면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고, 그 결정적인 증거가 꼬리뼈라고 한다. 그것이 원래는 꼬리였는데, 사용하지 않다보니 퇴화(退化)하여 지금과 같이 되었다는 것이다. 영적 은사도 마찬가지다.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가 아니라 주님이 거둬 가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손을 주신 것은 나누어 주는 손, 즉 축복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고, 생명을 나누라고 주신 것이다. 그 축복과 은혜와 생명으로 일하는 손, 섬기는 손, 봉사하는 손이 되라고 주신 것이다. 이런 주님의 요구에 순종할 때 우리의 손은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주님이 역사하시는 능력의 손이 될 수 있다. 주변을 풍성하게 만드는 손이 될 수 있다. 우리 장로교의 본산지인 스코틀랜드 가정들의 표어는 ‘saved to serve’(섬기기 위해 구원받았다)라고 한다. 이는 장로교 정신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그냥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보냄을 받은 존재이다. 사명적인 존재이다. 우리가 주님의 손이라 함은 바로 이런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나누어 주는 손이 되자. 일하는 손, 섬기는 손, 봉사하는 손이 되자. 그래서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그 기적에 동참하는 삶, 자신과 주변을 풍성하게 하는 삶이 되자.

 

2. 거두는 손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모두가 배불리 먹은 다음, 제자들에게 매우 귀한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남은 조작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12)는 말씀이다. 이것이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또 하나의 요구이다. ‘거두는 손’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는 주님의 복을 기억하여 소중히 여기는 손,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는 환경과 생명을 아끼고 가꾸는 손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주님의 뒤를 잇는 복된 신분과 지위와 특권과 인생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

 

여기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부스러기를 거두게 하심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배부름에 대한 경고로, 초심(初心)을 유지하라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배고플 때는 보잘 것 없는 것에도 감지덕지하면서 배가 부르면 그런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부스러기쯤은 안중에도 없다. 아마 당시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먹고 남은 음식을 소홀이 취급했고, 이것을 보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스러기를 거두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어려운 때를 늘 기억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배고플 때)도우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유지하고, (배부를 때)교만을 막는 형통의 비결이다.

 

둘째는,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의 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먹고 남은 부스러기라도 주님께서 주신 기적의 떡이고, 기적의 고기이다. 주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고, 복이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부스러기를 거두게 하심은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이런 선물의식, 축복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흔히 사람들은 ‘많고 적음’, ‘크고 작음’,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음’ 등으로 가치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치의 절대기준은 ‘주님’이다. 주님께로 온 것이면 무엇이든 귀한 것이다. 그것이 작은 부스러기라도 마찬가지다. 먹고 남은 것일지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주님이 주신 복과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고, 그것을 주신 주님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래서 성경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큰 은혜와 복으로 더하시고(마15:21~28),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신다(마25:21,23)고 하였다. 특히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지극히 작은 선행도 기억하신다(마25:34~40)고 하였다. 이것은 주님이 작은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는, 환경과 생명에 대한 도전이다. 21c의 화두는 환경이다. 늦게나마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생명과 환경은 밀접한 관계이다. 지금 우리는 환경파괴와 오염이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신자는 생명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존중하고, 언제나 생명이 존중되는 세상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현재 닥친 생명의 위협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위험과 악의 요소까지도 찾아내어 극복하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신자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야 한다. 이천년 전, 부스러기를 거두게 하신 주님은 벌써 환경운동가셨고, 생명운동가셨다. 신자와 교회는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진지하게 응답해야 하고, 또한 실천해야 한다. 거둠은 회복시키고 가꾸는 것이다. 환경을 가꾸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의 손은 환경을 파괴하는 손이 아니라 가꾸는 손, 생명을 죽이는 손이 아니라 회복시키고 살리는 손이 되어야한다.

 

생명 가꿈이

청파교회 동영상을 보고 작은 쌀 한 톨도 주님이 주신 귀한 선물로 알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경건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것이 주님이 주신 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환경사랑, 이웃사랑의 실천이고, 생명회복운동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금번 수련회에서 이 한 가지만 실천을 결심해도 주님의 손으로서 가치있는 결단이라 생각한다. 나눔이 주변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라면 거둠은 이것을 소중하게 가꾸는 일이다. 주변을 풍성하게 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일은 주님의 손인 신자와 교회의 사명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 손을 주셨다. 하나는 나누어 주는(나눔) 손이고, 다른 하나는 거두는(거둠) 손이다. 나눔과 거둠을 실천한 제자들의 손처럼 실천이 가능한 일에서부터 나눔과 거둠을 실천하는 주님의 손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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