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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761회 작성일 11-01-0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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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가정

삼하3:1

2011. 1/9 08:00, 11:00(예수님 수세주일)

말부터 바꾸자!

말이란 상황에 맞으면 보석(寶石)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독(毒)이 될 수가 있다. 말은 사람을 빛나게 하지만 또한 추하게도 한다. 직업별로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치과 의사가 싫어하는 말은 이(齒)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산부인과 의사나 유아용품 사장이 싫어하는 말은 무자식이 상팔자다.

변호사가 싫어하는 말은 법(法) 없이도 살 사람이다.

한의사가 싫어하는 말은 밥이 보약이다.

성형외과 의사가 싫어하는 말은 생긴 대로 살겠다.

약사가 싫어하는 말은 앓느니 죽겠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하실까? 이건 제 생각인데, 그것은 ‘안 됩니다. 못하겠습니다. 포기하겠습니다. 이건 불가능해요......’ 이런 말이 아닐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내 수준에서 내 생각과 마음대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믿음의 말을 원하시고, 믿음의 말을 기뻐하신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이루어주신다. 어느 집사님이 뇌경색 초기증세로 약간의 마비증세가 있어서 입원을 했는데, 그의 아내가 ‘주님이 3일만 불편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며 격려를 한 것을 들었다. 그런데 정말 3일 만에 마비증세가 풀렸다. 주님께서 믿음의 말에 책임을 지신 것이다. 지난 주일에 ‘되는 교회’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되는 가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되는 가정이 되기 위해선 먼저 우리의 말부터 바뀌어야 한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신앙적이지 못한 말을 제거해야 한다. 대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말을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했던 인사말로 서로를 격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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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은 주님의 희망입니다.

2. 당신은 우리 교회의 희망입니다.

3. 당신은 세상의 희망입니다.

 

사울과 다윗의 가문

본문에 두 가문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왕 사울의 가문과 베들레헴 목동 다윗의 가문이다. 사실 두 가문은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될 수가 없지만 삼상18장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이 두 가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은 사울의 가문이 다윗의 가문을 핍박하는 내용이고, 그 핍박 속에서도 다윗의 가문은 점점 강해졌지만 사울의 가문은 점점 약해졌다(1). 본문은 지금까지 내용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삼상18장 이후의 내용은 ‘되는 가정’과 ‘안되는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되는 가정의 특징

삼하3:2~21은 ‘되는 가정’의 특징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다윗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이고(2~5), 다른 하나는 흔들리고 있는 사울 왕가의 모습이다(6~21). 당시 이스라엘 왕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군대장관 아브넬 사이에 불화가 생겨 아브넬이 다윗에게 투항을 결심하였다. 되는 가문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녀가 많아 가문이 번창하고 주변에 사람이 모이게 된다. 반면에 안되는 가문은 가계를 이어갈 손(孫)이 줄어들고 사람이 떠난다. 여기서 이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다윗의 가문이 잘되는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5:10). 이는 다윗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되는 인생이 되고, 하나님이 그 가정에 함께 하시면 되는 가정이 된다. 비결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시43:5), 힘써 하나님을 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울의 가문이 왕가(王家)이면서도 점점 힘을 잃어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그 가문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당시 왕이었던 사울과 함께 하시지 않았을까? 왜 그 가문을 버렸는가?

 

1. 불신앙

사울은 가문도 좋고(삼상9: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성품이나 외모도 출중했다(삼상9:2 “기스의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그런데 문제는 믿음이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 하나님이 소중히 보시는 믿음이 문제였다. 믿음은 ‘순종과 회개’라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울의 생애에서 이 두 가지를 발견할 수가 없다.

 

사울이 왕이 된 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을 명하셨다(삼상15:1~2). 이 전쟁은 사울의 믿음 여부(與否)를 알아보는 중요한 사건이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그 전쟁에서 짐승이든 사람이든 남김없이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셨다(3). 그런데 사울은 이 전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①아멜렉 왕 아각을 살려두었고(8), ②가축들 중에서도 좋은 것들은 남겨두었다(9). 그리고 ③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12).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명백한 불순종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불순종에 대하여 회개는커녕 ①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함이었다고(15), ②백성들의 강력한 요구가 두려웠기 때문(24)이라고 변명으로 일관했다. 비록 그가 왕이었고, 입술로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으나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23).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고, 불순종은 회개로 극복이 된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것은 다윗의 삶과 확연히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다윗은 무슨 일이든 먼저 하나님께 물었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였다(삼상23:1~5). 물론 다윗도 많은 실수를 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는 변명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시편에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붙은 것이 74편이나 된다. 150편 중에 74편이 다윗의 시라는 뜻이다. 이들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이 그의 ‘7대 회개의 시’(6,32,38,51,102,130,143)이다. 다윗은 순종의 사람이면서 또한 회개의 사람이었다. 이는 그가 깊은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증거다. 이것이 다윗과 그의 가문이 나날이 잘된 이유이다.

 

2. 시기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

시기와 질투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정이다. 시기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의 결핍에서 온다. 시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시기는 악마적이다. 시기하는 마음은 악한 영에게 쉽게 점령을 당한다. 삼상 18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자 환영하는 사람들 중에 여자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18:7)라고 노래하였다. 이 말을 듣고 사울이 불쾌하여 심히 노하였다(8). 그리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다.”(9). 이 말씀은 그 날부터 사울이 다윗을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뜻이다(NASB: Saul looked at David with suspicion from that day on). 그러자 그 다음 구절(10)에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시기의 마음을 품자 악령이 그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의미 있는 표현의 말씀이다. 누군가를 시기하는 사람은 반드시 악한 영에게 점령을 당하게 된다. 악한 영에게 붙잡힌 사람은 잘될 수가 없다. 사울의 가문이 점점 기울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자기와 자기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한 것, 그래서 그를 죽이고자 혈안이 된 것이다. 도저히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하였다.

 

다른 하나는, 이 감정은 상대방을 비참하게 무너뜨릴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은 그곳이 자기 무덤이 되고 만다. 미얀마에 전래되는 한 이야기이다. 어떤 토기장이가 날로 번창하는 세탁업자를 시기했다. 그래서 그는 황제를 충동하여 왕실의 검은 코끼리를 희게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다. 그러자 세탁업자가 황제에게 코끼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황제는 토기장이에게 큰 그릇을 만들도록 명령했고, 토기장이는 황급히 커다란 그릇을 만들어 세탁업자에게 배달했다. 그러나 코끼리가 들어서자 그릇은 곧 산산조각이 났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토기장이는 망하게 되었다. 남을 망치려고 한 계략 때문에 결국 자신이 망하게 되었다. 이렇듯 시기는 남을 쏘려다 자신을 쏜다.

 

이 또한 사울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다윗을 시기한 사울은 다윗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온갖 시도를 하게 된다. 창을 던져 자신 직접 죽이려고 4번이나 시도를 했고, 모두가 실패로 돌아가자 혼인을 빙자해서, 혹은 자객을 보내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이마져도 안되니까 다윗에게 협조한 사람들을 철저히 응징하였고,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추격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다윗을 무너뜨리기 전에 자신이 비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삼상31:). 함정을 파는 자는 그 함정에 자기가 빠지고 돌을 굴리는 자는 그 돌에 자기가 치이는 법이다(잠26:27).

 

남을 잘되게 해야 나도 잘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약속하신 ‘형통의 법칙’이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풍족하게, 심히 만족스럽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다윗은 피난 중에 있으면서도 이것을 성실하게 지켰다. 시편 35편은 그가 사울을 피하여 다닐 때 쓴 시이다. 그는 여기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시35:12~13). 선으로 악을 갚고,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 병들었을 때 그 고통에 동참하여 그들을 위하여 금식하고 슬퍼하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이 한 구절로 다윗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할 수가 있다. 그의 신앙과 인격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여기서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라는 말씀은, 이웃이 기도에 합당치 않으면 그 기도의 효과가 기도자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뜻과, ②이웃을 위한 기도는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도뿐만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 사울의 가문이 점점 약해지고, 다윗의 가문이 점점 강해진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울은 자기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무너뜨리는데 혈안이었고,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까지도 품고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결국 남을 무너뜨리고자했던 사람은 자신도 무너지게 되었으나 남을 세우고자했던 사람은 자신도 든든히 서게 된 것이다. 신자는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신앙 안에서 든든히 서도록,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도록(삼상23:16) 격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결국 이것은 내가 든든히 서고, 주님 안에서 잘되는 비결이다. 아무튼 남을 헐고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해서 잘되는 사람은 절대로 절대로 없다!

 

두 친구 이야기

한 고아원에 두 친구가 있었다. 두 친구는 고아원에서 나와 서로 헤어져 살았다.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는데, 한 친구는 큰 부자가 되었고, 다른 친구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하루는 가난한 친구가 부자 친구를 찾아가 신세타령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부자 친구가 가난한 친구에게 부자가 되는 비법을 가르쳐줬다. 부자 친구는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해도 10년 안에 부자가 안 되면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그가 알려준 비법은 신자들의 일상적인 삶이었다.

 

첫째, 주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서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려라.

둘째, 수입이 많든 적든 반드시 십일조를 계산해서 온전하게 주님께 드려라.

셋째, 감사 조건을 찾아서 늘 감사하라.

넷째, 열심히 일하라.

 

가난한 친구는 주님의 복이 아니라 친구의 재산 절반을 기대하고 그 날 이후 친구의 충고대로 철저하게 그 규칙을 지켰다. 그런데 10년 후, 그 친구는 정말 부자가 되었다. 이유인즉, 그가 조그마한 회사에 취직하여 성실히 일하였는데, 마침 후계자를 찾던 그 회사 사장의 눈에 들었다. 사장은 성실한 직원에게 물려주어야 회사가 성공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 친구에게 회사를 물려주었다. 사장이 된 후에도 그는 그 규칙들에 충실했고, 회사는 크게 성장하여 그는 사장에서 회장이 되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주일성수와 십일조),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감사하는 생활),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면 주님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욥8:5~7). 주님이 복(福)주시면 잘될 수밖에 없다. 주님의 복을 받아 다윗의 가문처럼 날로 잘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하는 믿음과 잘못에 대한 철저한 회개, 시기가 넘볼 수없는 깊은 사랑과 감사, 그리고 이웃을 잘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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