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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생활(0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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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082회 작성일 06-07-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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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생활
수8:10~29                                                            
                                                                
요즈음 ‘연개소문’이라는 역사 드라마가 주말에 모 방송사에서 방영되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고구려 영양왕과 수나라 문제의 다섯째아들 양량 간의 요하에서 벌어진 전투장면이었습니다. 고구려 군이 매복전술과 유인전술을 반복하면서 수나라 군을 요하로 끌어들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과 아이 성의 전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에게 펼친 전술 또한 매복과 유인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매복전술과 유인전술을 세웠습니다. 그는 3만 5천명의 군사를 매복시키고,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군사를 이끌고 아이 성을 쳐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아이 왕이 이스라엘 군사들을 공격하였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패한 척 하면서 광야 길로 도망했습니다. 이에 아이 성의 모든 백성이 성문을 열어 놓은 채로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16,17). 그렇게 도망가는 척 하다가 여호수아가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자 매복해있던 병사들이 성읍으로 들어가서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양쪽에서 공격하여 아이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성공적인 삶을 소망하고, 교회마다 부흥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나 여러분, 그리고 우리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이스라엘의 이 완벽한 승리를 기록하고 있는 본문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승리하는 인생, 교회적으로 부흥하는 교회의 비결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승리하는 인생, 부흥하는 교회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새벽 시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10).
10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여호수아서에서 여호수아가 비전을 향해 나갈 때, ‘일찍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3:1에서도,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려고 요단강으로 갈 때에 일찍이 일어나서 갔습니다. 여리고 성을 돌 때에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고(수6:12,15), 오늘 본문에서 아이 성과의 전투를 할 때에도 일찍이 일어나서 출정한 것을 봅니다.

비전을 이루어 승리하는 인생, 부흥하는 교회를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벽 시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하루의 첫 시간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것처럼 위대한 삶은 없습니다. 저는 새벽예배를 시간의 십일조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의 십일조로 재물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시간의 십일조로 풍성한 인생을 보장받습니다.

10이라고 하는 수는 인간이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수인 것 같습니다. 군에서 고공낙하 훈련을 할 때 지상 10미터의 높이에서 합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0미터라고 합니다. 이 높이에서 훈련을 마치면 다른 어떤 높이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자들이 물질적으로 가장을 부담을 느끼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만 극복하면 신앙생활에서 물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새벽예배도 마찬가집니다. 신자들이 시간에 있어서는 새벽예배가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새벽예배만 성공하면 신앙생활에서 시간을 드리는 일에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첫 시간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새벽예배를 인생 축복의 기초라고 확신합니다. 그 기초만 확실하면 다른 수많은 꿈과 소원이 그 기초 위에 잘 세워질 것입니다.

종종 한국 기독교에는 문화가 없다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는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기독교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벽예배문화요, 그리고 금연과 금주의 문화입니다. 그런데 많은 우리 신자들이 이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없고, 오히려 이를 폄하하여 율법주의로 치부하며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새벽예배는 농경사회에서나 가능한 정보화시대에는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금주 금연 또한 마찬가지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는 새벽예배로 부흥한 교회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각인된 우리 기독교 신자들의 정체성과 이미지 중 하나가 ‘기독교 신자는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가면 당연히 금연 금주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문화입니까? 특히 새벽예배는 세계교회가 부러워하는 우리 한국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기독교 문화입니다. 그런데 이 새벽예배는 단순히 한국교회만의 전통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의 전통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이 새벽을 깨웠던 분들입니다. 예수님도 새벽 시간에 한적한 곳에서 자주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찾는다는 것은 새벽에 찾는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새벽부터 찾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잠8:17). 그렇습니다. 새벽부흥에 민족부흥, 교회부흥이 있습니다. 우리 심령의 부흥도 마찬가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심령의 부흥과 승리하는 삶을 위하여, 그리고 자녀와 가정의 부흥,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새벽 시간의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저희 아버진 교회는 다니지 않으셨지만 교회 부흥회할 때 씨암탉을 잡아서 부흥강사 대접을 했습니다. 부흥강사 잘 대접하면 제가 복 받는다니까, 저를 위해 씨암탉을 아낌없이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 잠 조금 줄여서 새벽예배를 드리면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자녀와 가정, 교회와 사회가 잘되고 부흥합니다. 내가 새벽을 깨워서 내 자신이 잘 되고. 내가 새벽을 깨워서 내 자녀와 가족, 그리고 하는 일, 교회와 사회가 잘되고 부흥한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이집트의 수도사 팜보가 어느 날 사막을 떠나 알렉산드리아로 가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 갔을 때, 그는 길거리에서 술꾼들을 위해 춤추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우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웁니다. 하나는 저 여인의 영혼 때문에 울고, 다른 하나는 저 여인이 술에 취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저렇게 애쓰는데 나는 선하신 하나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쓰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이 슬퍼서 웁니다.’ 새벽을 깨워서 죽어가는 영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울고, 하나님께 영광된 삶이되기 위해 우시는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한 마음으로 협력해야 합니다(10,11).
10절에,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점고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점고했다’는 말은 군사용어로, ‘점호를 했다. 불러 모아서 인원 파악을 했다’는 뜻입니다. 점호는 군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군에서는 이탈자 등 유고사항을 파악하고 군기를 강화하기 위해서 수시로 점호를 합니다. 군대는 사기가 중요합니다. 사기가 없는 군대는 전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전쟁을 앞두고 이탈자와 같은 유고사항이 생기면 군대의 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총사령관 여호수아는 이른 아침에 친히 군대를 점고한 것입니다. 병사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 군대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점호한 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백성 앞에서 아이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도자가 앞장을 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좇는 군사들도 다 아이 성으로 올라갔습니다(11). 이 구절을 보면 한 사람의 군사도 뒤에서 안일하게 있지 않고 다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목숨을 건 전장이지만 물러서는 사람없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전쟁에 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 성의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한 마음으로 협력한데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지체들이 한 마음으로 협력하는데 있습니다. 한 마음으로 함께 예배하고,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섬기고, 함께 헌신해야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빠지면 나 한 사람의 힘이 빠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도미노현상처럼 다른 사람의 힘도 빠지게 만듭니다. 결국은 나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포기하고 만 것입니다. 반대로 나 하나가 더한다고 특별한 일이 있겠나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시너지 효과). 결코 나 하나가 아닙니다. 나는 참으로 중요한 사람입니다. 우리 기뻐하는 공동체를 흥하게도 할 수 있고, 쇄하게도 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조각 맞추기 게임에서 한 조각만 모자라도 그 그림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조막 맞추기 게임의 그 마지막 조각이 바로 ‘나’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가든지 항상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의 협력이 나 한 사람에 그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력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받고 사랑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됩니다. 승리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로 통하여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셋째. 한번의 성공으로 방심(放心)하지 말아야 합니다(16,17).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아이 성과 전투는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 성이 작다고 방심한데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는 거대한 성 여리고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혀 힘들이지 않고 그 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그 여세를 몰아 이스라엘은 여리고 근처에 있는 아이라고 하는 작은 성을 쳐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아이 성을 쉽게 정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도하지도 않고, 군사 삼천 명만 선발하여 보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스라엘의 패배였습니다. 여리고 성 전투의 승리에 도취되어 순간적인 방심이 이와 같은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중요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집중하는 것, 마음과 뜻과 정성을 쏟아 붙는 것, 올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다고 하여 방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아이 성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 패하여 광야 길로 도망가자 아이 성 군사들은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을 멀리 떠나기까지(16)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모든 군사들이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17)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처럼 1차 전투에서 승리가 문제였습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방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너무 얕잡아 본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 군대가 도망가니까 정말 패하여 도망가는 줄로 착각한 것입니다. 매복은 생각지도 않고 성문을 열어둔 채 모두가 이스라엘을 쫓아가다가 성이 함락되고 만 것입니다. 저들의 방심이 문제였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가장 무서운 것은 방심입니다.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면 적은 능력으로 큰 일을 성취할 수가 있고, 크고 많은 능력을 가지고도 방심하면 작은 일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10만의 수나라 대군이 1만의 고구려 군에게 참패를 당한 원인도 여기에 있었습니다(연개소문 드라마에 나온 요하 전투에서). 군사 수가 많다고, 자기들이 대국이라고 1만의 고구려 군을 얕잡아 보고 방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입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일도 신중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깨어라, 근신하라, 기도하라, 경계하라,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일이 잘 풀린다고 방심하여 사단에서 허점을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자는 토끼와 사슴 한 마리를 잡는 데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처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고,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과감하게 맡길 때 하나님은 그의 꿈과 비전을 더욱 아름답게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앞세워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비전을 꼭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새벽 시간의 승리, 한 마음으로 협력, 방심하지 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전력하는 것이 승리하는 삶, 부흥하는 교회를 이루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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