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복팔단(眞福八端)Ⅵ, ‘청결한 마음’①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진복팔단(眞福八端)Ⅵ, ‘청결한 마음’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1건 조회 15,061회 작성일 11-06-05 15:43

본문

진복팔단(眞福八端)Ⅵ, ‘청결한 마음’①

마5:1~12

2011. 6/5 08:00, 11:00

무엇보다 중요한 마음

엘리스 그레이(E. Grey)가 편집한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지혜로운 노인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노인이 손녀와 함께 마을입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낯선 여행객이 찾아와서 마을 곳곳을 살펴본 다음 노인에게 ‘이 마을이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노인이 역으로 ‘당신이 살고 있는 마을은 어떤 곳이냐?’고 물었고,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은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형편없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곳이 싫어 살기 좋은 곳을 찾고 있는 중이라 했다. 노인은 ‘우리 마을도 마찬가지다.’고 했다. 노인의 말을 들은 그는 조용히 다른 마을로 향했다. 그가 떠난 후, 또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 역시 이 노인에게 이 마을에 대하여 물었고, 이 노인은 그에게도 그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하여 되물었다. 그는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고 서로 돕고 사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인데,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어 새로운 마을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때 노인은 ‘우리 마을도 그런 곳’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이 마을에 정착하기로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손녀가 ‘할아버지는 왜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 마을이 좋은 곳이라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않는 곳이라 하냐.’고 따졌다. 그러자 이 노인이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것은 사람이 어디를 가든 자기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 법이란다. 그 마음이 그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도 하고, 나쁜 곳으로 만들기도 하지.’

 

무엇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足而不足常不足). 비록 가진 게 없고 나쁜 환경일지라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不足之足每有餘). 이런 사람에게 일의 능률과 보람이 있다. TV 프로그램 중에 〈생활의 달인〉을 자주 보고 있는데, 달인으로 나온 사람들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긍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편집된 부분도 있겠지만 좋은 마음의 자세와 태도가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사는 것이 즐겁고, 마음이 슬프고 힘들면 항상 울적하고 사소한 것도 힘들다. 마음이 지겹고 따분하면 사는 것이 지겹고 따분하다. 마음의 근심은 만병의 원인이지만 즐거운 마음은 최고의 보약이다(잠17:22). 그래서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하였다. 마음경영을 잘하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까?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8).

 

청결한 마음

기독교 철학자 달라스 윌라드(D. Willard)는 ‘인생은 마음으로 사는 존재’라고 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보다 나은 세상,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선한 노력의 역사이고, 지금도 사람들의 이와 같은 선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 더욱 창궐한 이유가 무엇일까? 천국보다는 지옥에 더 가까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마음으로 사는 존재인데, 그 마음이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였기’(렘17:9) 때문이다. 한마디로 마음을 간과하고 외적인 청결에만 집중한 것이다. 아무리 샘 주변을 깨끗이 소재하고 단장해도 샘 근원이 오염되면 깨끗하고 좋은 물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변화의 출발은 마음이다. 회개를 헬라어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라고 하는데, 이는 ‘바꾸다’(μετα)는 단어와 ‘마음’(νοια)이란 단어의 합성어다. ‘마음을 바꾼다.’(改心)는 뜻이다.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삶이 변하고(롬12:2),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여섯 번째 지복(至福)으로 사람의 마음에 주목하신 것이다. 그것은 ‘청결한 마음’이다.

 

1. 청결한 마음은 ‘동기의 순수함’이다.

청결이란 개념은 구약성경을 비롯한 옛 사람들이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제이다. 소위 ‘금기’(Taboo)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옛 사람들은 신비로운 힘이 자연계에 들어 있다고 믿었다(animism). 이 힘이 인간의 운명과 생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고, 이것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금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날을 구별하고, 음식을 구별하고, 장소를 구별하였다. 어떤 재앙이나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금기의 습관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불순한 힘이 침투하여 더럽힌 것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씻어내는 의식을 행하곤 했다. 이것을 의식화한 것이 고대‘종교’이다.

 

구약성경도 청결과 반대되는 것은 부정(不淨)이고, 부정을 죄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레위기’는 이런 부정을 유발하는 것들에 대한 금기를 기록한 책이다(‘죄가 무엇인가?’를 취급하고 있는 책). 이러한 부정을 씻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 ‘제사제도’다(레1:~7:). 원시종교나 구약성경이 청결의 목적을 자신들의 삶을 보존해가는 유일한 길이고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이것이 유일하신 하나님과 화해의 길, 그분을 만나는 방법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신 것이다. 그래서 청결의 목적을 ‘하나님을 뵙는 길’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청결을 종교의식이나 윤리적인 인간의 행위를 넘어서 ‘마음’의 문제로 보셨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갈등과 충돌의 원인이 바로 이런 청결에 대한 시각의 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종교의식과 윤리적 행위의 청결을 강조하였고, 주님은 이런 것은 썩은 시신을 묻어놓은 무덤의 겉을 장식한 것과 같다고 질타하셨다. 외적 청결이 아니라 마음의 청결을 강조하셨다. 그것이 곧 ‘동기의 순수함’이다.

 

주님은 청결을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 동기의 순수함으로 그 의미를 완성시켜 놓으셨다. 아무리 육체적인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으로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다(마5:28). 형제의 생명을 해치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 미워하면 살인한 것이라고 하셨다(마5:22, 1요3:15). 남의 물건을 직접 훔치지 않았더라도 마음으로 욕심을 품으면 도적질이다. 이처럼 주님이 말씀하신 청결은 마음의 은밀한 목적과 동기가 깨끗한 것, 교만과 욕심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사심이 없는 어린 아이처럼 되는 것이다(마18:4).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어린 아이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고(마18:3), 이런 사람이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마19:14)고 하셨다. 어린 아이는 순수하고 순결함, 깨끗함의 상징이다. 순수하고 순결하고 깨끗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천국의 주인공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2. 청결한 마음은 ‘한결같은 태도’이다.

청결이란 우선 말 그대로 ‘깨끗함’이다. 눈은 하루에 약 2만 5천 번 깜빡인다. 깜빡이면서 눈물샘에서 나온 액으로 안구를 계속해서 씻어낸다. 그래서 작은 먼지 하나도 눈에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씻어준다. 때문에 밝게 사물도 보고, 사람도 보고, 글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눈의 경우, 안구를 깨끗이 씻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눈의 초점이다. 초점이 ‘하나’(single focus)여야 한다. 그래야 사물을 밝히 보고, 제대로 볼 수가 있다. 주님은 이것을 ‘성한 눈’(건강한 눈, 좋은 눈)이라고 하셨다(마6:22). 이런 성한 눈이 곧 깨끗한 눈이다. 이는 눈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 초점이 흐리거나 이중초점을 가지면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청결이란 앞에서 말한 대로 여러 가지 복잡한 동기로 마음이 나뉘어져 있지 않는 상태, 곧 동기의 순수함이다. 나아가서 ‘단(한)마음’, 혹은 ‘한결같은 마음’을 뜻한다. 야고보 사도는 두 마음(double-minded)을 품는 것은 모든 일에 정함이 없기(unstable) 때문에(1:8)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고 했다. ‘한마음’(single-minded)을 가지라는 뜻이다.

 

청결한 마음이 아니고는 건강한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깨끗한 부부, 정결한 부부란 ‘한’마음, 한결같은 태도로 오직 상대방만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집중하는 부부다. 순수한 동기로 만나서 사랑하고 서로 부부의 연을 맺었을지라도 서로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과 태도를 잃어버리면 더 이상 건강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아니 관계자체가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토록 사랑해서 만나고 결혼까지 한 부부가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깨끗한 결혼생활은 한(단)마음을 가지는 것, 한결같은 태도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청결한 마음은 주님을 섬기는 태도다. 주님은 사람이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신 것이 ‘우상숭배’다. 우상숭배는 ①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 ②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 ③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고 하셨다. 오직 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순수한 동기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지만 또한 한 마음, 한결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태도이고 방법이다. 주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청결한 마음은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께만 충성을 다하는 마음이다. 내 삶의 1등이 항상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하는 마음이다. 바로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마음이 있기를 바라고, 그래서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한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충성된 사신은 효과가 탁월한 약과 같고(잠13:17),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처럼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했다(잠25:13).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서 충성된 자를 눈여겨보셨다가 주님과 함께 살게 하신다고 하셨다(시101:6). 주님께서 이토록 좋아하시고 귀하게 보시는 충성이 곧 한(단)마음이고, 한결같은 태도이다. 주님께서 충성스러운 사람을 좋아하시고 눈여겨보신 이유, 그래서 주님과 함께 살게 하신 이유는 오직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섬기고, 주님께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삶의 1등이 항상 주님이고,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사람을 보실 때 외모가 아닌 그 마음을 보신다고 했다.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은 마음의 동기를 보시고, 주님께 대한 한결같은 태도를 보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요구하신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조건이고 섬김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주님을 볼 수는 복을 누릴 수가 있다. 우리 모두 순수한 동기, 한결같은 태도로 주님을 보는 복을 누리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댓글목록

정성규.님의 댓글

정성규. 작성일

그것은 사람이 어디를 가든 자기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 법이란다. 그 마음이 그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도 하고, 나쁜 곳으로 만들기도 하지.’

또 읽고 또 읽게 되네요.

Total 859 / 19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