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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지친(0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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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718회 작성일 06-08-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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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지친(魚水之親)
요15:1~8


어느 글에서 보니 요즈음 미국 신자들 중에 이런 말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네 종류의 신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1. fish christian(물고기와 같은 신자):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듯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2. bird christian(새와 같은 신자): 새는 9일 동안 먹지 않아도 산다고 합니다. 주일에만 나와서, 그것도 한번씩은 빼 먹고 교회에 나와서 은혜 받고 수일동안 버티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붙여진 이름입니다.
3. dog christian(개와 같은 신자): 개는 20일 정도를 먹지 않아도 산다고 합니다. 한달에 한번 정도, 두 달에 서너 번 정도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말씀 듣고 가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붙여진 이름입니다.
4. turtle christian(거북이와 같은 신자): 거북이는 50일을 먹지 않아도 산다고 합니다. 두세 달 만에 한번이나 교회의 중요한 기념일(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 등)에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버티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붙여진 이름입니다. 소위 무늬만 그리스도인입니다.

재미있는 표현들이지요! 그러면서도 오늘날 신자들의 삶에 도전을 주는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내 자신은 어느 부류의 신자에 해당되는지 생각해 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추스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자어에 ‘어수지친’(魚水之親) 혹은 ‘어수지교’(魚水之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고기와 물의 사귐(친함)이란 뜻입니다. 서로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두고 사용하는 말입니다. 주로 어진 임금과 충성스런 신하가 만나서 서로 존경하고 믿으며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경우를 두고 어수지친(교)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서로를 자기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한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 어수지친(교)의 관계입니다. 또한 같은 뜻으로 쓰이는 ‘풍운지회’(風雲之會)’라는 말도 있습니다. 저는 이 ‘어수지친(교)’ 혹은 ‘풍운지회’라는 말에 아주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우리 신앙생활에 아주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와 물의 만남, 바람과 구름의 만남처럼 하나님과 신자의 만남, 교회와 신자의 만남, 목회자와 신자의 만남, 그리고 신자와 신자의 만남이 이와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도 마찬가집니다. 물고기가 좋은 물을 만나야 활발하게, 그리고 마음껏 헤엄치면서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신자들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어야 풍성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또한 교회와 신자의 만남, 목회자와 신자의 만남, 신자와 신자의 만남이 물고와 물의 만남과 같아야 행복한 교회, 행복한 신앙생활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썩은 물, 독극물에 오염된 물을 만나면 물고기는 죽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면 어수지친(교)처럼 우리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면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될까요?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가 누릴 복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서의 삶이란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나무 줄기와 가지의 관계가 어수지친(교)입니다. 본문의 이 비유는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는 포도나무 가지의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복과도 연결이 됩니다. 그렇다면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 있는 포도나무 가지의 행복은 무엇입니까?

1.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4~5).
나무에 따라 쓰임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 강단에 놓은 나무들처럼 어떤 나무는 관상용으로 사용됩니다. 이런 나무는 열매나 꽃보다는 푸른 잎만 보여주어도 저 할 도리를 다한 것입니다. 어떤 나무는 재목으로 쓰이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땔감으로도 쓰입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의 존재는 열매에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포도나무는 관상용도 못되고, 덩굴성이라 기둥과 같은 재목으로 사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땔감으로도 별 가치가 없습니다. 열매 외에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나무가 포도나무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 신자들을 수많은 나무들 중에서 열매 외에는 쓸모가 없는 이 포도나무에 비유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신자의 존재가치와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즉 우리 신자의 존재가치와 의미가 포도나무처럼 그 열매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포도나무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방법,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유기적인 것입니다. 생명적으로 관계되어 있습니다. 가지는 줄기에 붙어 있어야 영양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줄기에서 떨어지면 열매는 물론 말라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마른 가지들은 모아서 불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5절).

우리 인간의 운명도 포도나무 가지와 같습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 이는 우리의 운명이 나무이신 주님께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어서 많은 열매로 풍성한 삶을 살 수가 있지만 주님을 떠나면 죽음이고, 심판입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고 줄기에서 잘린 가지가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외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We are nothing). 우리에게서 예수님을 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불교에서 세상만사를 공(空)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나의 삶도, 내가 이뤄놓은 성취도, 명예도, 뼈 빠지게 모아놓은 재물도, 자녀도 가족도 모두가 공(0)입니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세상 모든 일들이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이런 말을 남긴 사람은 솔로몬뿐만 아닙니다. 소위 인류의 스승이라고 하는 분들의 공통적인 가르침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말했습니다. ‘현대는 허무주의라고 하는 열매 없는 나무에 매달려서 진리의 열매를 구하고 있다.’ 사실입니다. 허무주의와 절망, 이것에 매달려 있으면서 돈을 벌고, 출세를 한들 그 결과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절망과 멸망뿐입니다. 오직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바로 붙어 있을 때 바른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부질없는 헛된 것들이 의미있는 것들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숫자 영(0)이 하나 있습니다. 이 영이 수십, 수 백 개가 있어도 그 가치는 영입니다. 그런데 이 영 앞에 일(1)을 놓으면 상황을 달라집니다. 영이 붙을수록 그 가치는 배가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아무 것도(nothing) 아니지만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 무엇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에 의미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무의미한 것을 의미있게, 무가치한 것을 가치있게, 쓸모없는 것을 유용하게 바꾸어 놓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매맺는 삶을 살 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게 될 때, 우리에게 어떤 열매들이 맺히게 될까요! 그 대표적인 것이 갈5:22~23절에 나온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와 같은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혀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자가 누리게 되는 행복입니다.

2. 기도응답입니다(7).
기도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신자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으로, 신자의 삶에 있어서 참으로 신비로운 것입니다. 신자의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 영혼의 호흡이고, 주님과 교제를 풍성하게 해주는 영혼의 대화이고, 천국의 문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주님의 보좌를 움직여 나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할 사항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도는 우리가 열매를 맺는 구체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에는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헛되 기도가 있고,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 응답을 받는 능력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능력있는 기도의 비결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거한다는 것은 주님과 지속적인 관계 가운데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는 것처럼 나무되신 주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과의 어수지친(교)의 관계를 형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응답받는 능력있는 기도생활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발전소에서 보낸 전기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전선이 끊어진 곳이 없으면 전기가 절로 오는 것처럼 주님께만 잘 붙어 있으면 어떤 기도도 응답되는 것입니다.

어느 돈 많은 부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집을 나갔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아들이 아주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아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연락이 안되는 것입니다. 연락만 닿으면 돕겠는데 연락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 신자들의 현주소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능력의 기도를 드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기도하여 홍해바다를 가른 모세의 기도와,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하고, 3년 6개월 동안 가문 땅에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의 기도가 가장 으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도의 능력이 모세나 엘리야의 개인적인 경건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이와 같이 능력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던 것은 철저하게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의 특징은 무슨 문제든 결코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크든 작든, 사소하든 중요하든, 무슨 일이든 주님 앞에 내어놓고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이 해결해 주시라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하겠노라고 주님께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에 나온 모세의 모습에서 이런 예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문제가 있을 때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추궁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이 되고, 길이 열렸습니다.

미국 탬플 대학의 창시자 러셀 코월 박사가 2차대전 말기에 미국의 백만장자를 비롯하여 성공한 사람들 4,043명을 모아놓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천여 명 중에서 69명만이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이 공부를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공통점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전이 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는 그 목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전만 가진 것이 아니고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다같이 자신의 무능함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자신의 비전을 발견하고 비전 성취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생의 성취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기도가 최선입니다. 인생의 실패 원인이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기도가 없으니까 열매도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을 스스로 체험하고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수지친, 어수지교!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와 같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의 말씀 안에,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감정이 주님의 말씀과 사랑에 온전히 지배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지배받는 삶이라야 참된 삶이고, 주님의 말씀에 지배받은 양심이라야 참된 양심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포로된 사람만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여 풍성한 열매로, 능력있는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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